기도 안 하는 사람 4가지 유형 2010.02.17 00:33

      기도 안 하는 사람 4가지 유형 세상에는 먼저 해야 하는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이 있고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필요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기도는 먼저 해야 할 일이며,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먼저 해야 할 일을 나중에 하려 하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적당히 하려 함에 있습니다. 믿음의 성숙이란?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알아 신속히 적용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중요한 일과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과 필요한 일이 혼돈되기 시작하면 우리의 삶과 영성은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기도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성도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가 바쁘고 힘들다 하여 호흡을 미루거나 멈추겠습니까? 사단은 기도의 위력을 잘 압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밥(?) 먹고 하는 일이 성도들의 삶속에 침투하여 기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무장해제 된 군인은 전쟁에서 포로가 되거나 패잔병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터에 투입된 십자가 군병들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오직 기도뿐입니다. 기도로 모든 것을 공급받아야만 합니다. 기도로 우리의 총사령관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래서 사단은 우리의 무기인 기도를 빼앗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 속에서나 교회 속에서나 가정에서 기도를 제거하면 성도와 교회와 가정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고 사단의 놀이터가 되고 사단의 하수인이 됩니다. 그래서 사나워지고 거칠어지고 불평과 짜증의 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 살아야 되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 속에 머물러야 합니다. '왜 기도해야 하느냐'라고 묻는 것은 '왜 물고기가 물속에 살아야 되느냐?'는 질문과 같은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듯이, 성도들도 기도를 멈추거나 게을리하면 그리스도인의 영성과 능력을 잃고 결국은 죽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 사단의 전략이 성공하고 있다고 봅니다. 교회마다 기도의 불이 꺼져 가고 있습니다. 성도마다 기도의 부담감은 있으면서 실제로 기도의 부재를 경험합니다. 웬일인지 예전처럼 기도가 안 되고 기도의 집중이 힘들다고 합니다. 기도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고 푸념들 합니다. 기도는 하지만 건성과 타성에 빠질 때가 잦다고 합니다. 애절함이나 간절함이 식고 건성으로 기도합니다. 오래 기도하지 못하고 자주 기도하지 못합니다. 분명히 기도의 제목이 태산 같은데 실제로 기도의 양은 적어집니다. 부르짖어야 하는데 실제로 부르짖지 못합니다. 눈물로 통곡하면 해결됨을 아는데 실제로 눈물 없는 건조한 기도시간에 더 익숙하여져 있습니다. 사단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바쁘게 살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피곤하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게 하며 피곤해서 기도할 수 없다고 합리화시키게 합니다. 사단은 기도 안하는 대신에 우리와 거래를 하려 합니다. 전도·봉사·구제·성경공부도 하고 선한 일에 힘쓰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은 하지 말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기도를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기도로 채워야 하고 기도는 기도로 풀어야 합니다. 기도 없는 바쁨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기도 없는 피곤함을 부끄러워하십시오. 기도에 생활에 실패하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기도의 패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기도의 패배주의는 우리를 기도의 골방에서 나오게 하며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기도해도 별수 없다' '기도해도 안 되던데' '내 기도는 하나님이 안 들으신다.' 이런 학습 된 확신이 기도의 무릎을 꿇지 못하게 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기도하려 하면 공중에서 별과 같이 많은 귀신이 달려들어 기도하지 못하도록 온갖 궤계와 술책을 동원한다고 합니다. 갑자기 어디가 아프거나,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기거나, 갑자기 누가 찾아온다든가 갑자기 기도에 대한 회의가 생기거나 하는 것입니다. 어찌하든 사단은 성도의 목을 졸라 기도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도 기도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도 기도인 듯합니다. 분명 기도하지 못하게 역사하는 결박에 많은 성도와 사역자가 묶여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못 하게 하는 결박은 기도로 푸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많은 분이 기도해야 되는데 기도가 안 되고 못하겠다고 하소연합니다. 사실은 기도를 못 하고 기도 없이 하루를 살면 발이 부러지고 기도를 이틀 쉬면 양발이 다 부러지면 기도를 중단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를 한 달 두 달 쉬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기에 기도의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이것 봐라 기도 안 해도 아무 일이 없지 않으냐?' '하나님이 내 형편 다 아시고 봐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징계 중에 무거운 징계는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아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사는 데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것이야말로 큰일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기도 안 하고 살면 이미 영이 죽어 가거나 병이 드는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기도 안하는 사람을 보면 대체로 4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사단의 영에 사로잡혀 있거나 둘째, 교만하거나 셋째, 기도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넷째, 영적 불감증에 걸린 것입니다. 이미 죽은 물고기는 물이 필요하지 않듯이 이미 죽은 영은 기도가 필요하지 않으며 기도의 위기감도 못 느끼며 삽니다. 21세기가 되었지만 기도의 효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도 열린 기도만 할 수 있다면 응답의 문은 열립니다. 기도는 파이프입니다. 댐에 아무리 물이 많아도 우리는 댐의 물을 퍼서 마시지 않습니다. 댐의 물이 파이프를 통하여 가정에 공급되듯 기도의 파이프를 통하여 하늘의 기름지고 좋은 것들이 우리에게 채워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링크입니다. 기도만이 절대 무능한 우리와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파이프가 막혔거나 링크가 끊어지면 우리는 하나님과 무관하게 고아처럼 버려진 삶을 스스로 살아야만 합니다. 그곳에는 좌절·불안·염려·불평·갈등만 더할 뿐입니다. 물론 기도해도 어렵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소원성취의 통로가 아니며 만사형통의 지름길이 아니라 기도는 관계회복입니다. 하나님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응답, 성취,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관계가 막혔거나 삐뚤어져 있으면 무엇을 해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먼저 막힌 것을 뚫어야 합니다. 먼저 관계를 열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산자 같으나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기도가 막혔거나 기도가 중단되면 우리의 삶은 그런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온통 마귀의 놀이터로 변하게 되고 우리는 하루하루를 마귀의 충성스런 하수인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알지만 행할 능력을 상실한 채로 날마다 죄책과 자책으로 얼룩져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가 열리면 하나님을 닮아 살게 되지요. 그러나 기도가 막히면 곧 마귀의 형상으로 하나님과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지요. 그러므로 기도의 유무에 따라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합니다. 때로는 천사로, 때로는 마귀로 변질되어 살게 됩니다.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다시 기도로 무장 하십시오. 하수구가 막혔을 때에는 먼저 뚫어야 합니다. 일이 안되고 사방이 막히고 삶이 지치고 죽고 싶을 때에는 죽을힘을 다해 기도의 막힘을 뚫으십시오.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과 통하여야만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감동시켜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일, 영혼이 잘 되는 일, 먼저 해야만 할일 그것은 기도입니다. 이 세상에 기도를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기도의 역사를 막을만한 바리케이드는 없습니다. 설교도 목회도 전도도 기도를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바쁘고 피곤해서 기도할 수 없다고 속이지 마십시오. 차라리 기도가 덜 중요하다고 솔직히 고백하십시오. 기도의 중요성을 아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릎으로 만나는 것이지 입으로나 머리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그리스도인의 영성회복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먼저 기도를 여십시오. 사방이 막혔다 해도 기도가 열리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방이 다 형통하다 하여도 기도가 막혔다면 그 열림은 결코 축복이 아닙니다. 솟아오르는 활력, 마르지 않는 샘, 고단하지 않은 새 힘 그것은 기도로 얻을 수 있는 하늘의 힘입니다. 기도만이 우리를 땅에서도 하늘을 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새는 날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사람이 차라리 되십시오. 기도의 사람이 기도하는 것은 어쩌면 즐거운 일이 아닐까요? 그러나 강아지가 하늘을 나는 것은 아무리 훈련해도 강조해도 노력해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강아지는 땅의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사람으로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십시오. 기도의 은사를 구하십시오. 간구의 영을 구하십시오. 기도는 거룩한 노동입니다. 노동은 힘든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의 노동자가 되기 위하여 우리의 할 일은 그분의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을 날마다 구하는 것입니다. 노동은 어쩌다 하려 하면 힘들어 못합니다. 그러나 날마다 노동을 하시는 분들은 노동을 쉬면 몸에 병이 난다고 합니다. 기도를 이따금씩 하려 마십시오. 그러면 더 힘이 듭니다. 쉬지 말고 날마다 하십시오. 그러면 기도를 안 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기도는 문제가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부모님과 대화 하는 것은 일이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는 것입니다. 불효자가 아니라면…. 부부가 별거중이 아니라면 매일 대화를 나누듯이 우리도 주님과 별거중이 아니라면 매일 매일 그분 앞에 나아가 거룩한 수다(?)를 떠십시오. 기도는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앞에서 말을 줄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말을 늘이십시오. 대화 없는 부자지간, 대화 단절된 부부지간처럼 삭막하고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면서 하나님과 대화의 단절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아마도 당신은 불신자일지도 모릅니다. 시간만 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기도를 통해 대화를 나누십시오. 그 길만이 사단을 대적하고 마르지 않는 샘으로 잘 사는 길입니다. 기도!! 지체 하지 말고 당장 엎드리십시오. 기도 없이 인생을 산다고 하는 것은 태평양 바다를 헤엄쳐 건너겠다는 것과 같이 무모한 것입니다. 그럴 가능성은 1퍼센트도 안되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를 반드시 그리고 먼저 해야만 합니다. 반대로, 기도로 인생을 산다고 하는 것은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느 편에 서시겠습니까? 병들어 있음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기도 없이 하루를 보냄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가난함이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기도 없이 하루를 지냄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실패함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 못함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교인 없음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하지 못함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문제 많음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 오래 할 수 없음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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