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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드보라 이야기 2016.06.07 11:05

   오래전 묵상했던 내용을 다시 정리해서 어제 만든 블로그에 첫 글로 올립니다.

유모의 믿음이 왜 좋은가를 찾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유모 드보라의 이야기

 

창세기 358절입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이 구절은 야곱의 어머니요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에게 드보라라는 이름의 유모가 있었는데 그 유모 드보라가 죽어서 벧엘에서 장사지냈다는 기록입니다.

리브가의 유모 이름 드보라는 성경에서 이 창세기 358절에 단 한 번만 나옵니다. 유모 드보라를 기억할만한 다른 내용이 거의 없어 그런지 성경의 이 구절은 관심 없이 지나치기 쉽습니다.

창세기 2459절에서 이삭에게 시집가는 리브가가 유모와 함께 하란을 떠나 이삭의 집으로 향하는 이야기 외에는 유모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으므로 대부분은 유모 드보라에 대해 흥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잠깐만 살펴봅시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야곱의 식구 일행은 하란의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아버지 이삭이 살고 있는 가나안의 헤브론으로 향하고 있던 도중입니다. 그런데 리브가가 시집올 때 리브가와 같이 가나안으로 왔던 유모가, 그러니까 이삭의 집에서 리브가와 함께 있어야 마땅한 유모가 야곱의 식구들과 같이 있었다니 이해가 안 됩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의문을 조금이라도 가져본 적이 없습니까. 이런 의문을 지금이라도 가졌다면 이제 유모의 입장에서 창세기를 다시 살펴나갑시다. 그러면 유모 드보라에 대한 이야기를 곧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2745절입니다.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내가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기도를 가로챈 사건으로 해서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바람에 이삭의 집안에 난리가 났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에게 몇 날 동안만 외삼촌 집으로 피신하라고 합니다. 형의 분노가 풀리면 곧 사람을 보내 야곱을 불러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리브가가 보낸다는 사람이 누굴까 하고 관심을 가져보니까 아무래도 유모 같습니다. 하란의 라반 집에서 살았고 거기서 리브가와 함께 가나안에 왔으니 유모만한 적임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따져보니 그렇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보낸다는 사람은 바로 유모 드보라였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유모는 이미 하란을 다녀왔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다녀온 증거가 성경에 있습니다.

바로 창세기 281~2절입니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에 가서 네 외조부 드부엘의 집에 이르러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이삭은 집 떠나는 야곱에게 외삼촌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분부합니다.

이 구절도 대부분 그냥 지나칩니다. 그런데 이곳도 잠시만 따져보면 이상합니다. 아니 어떻게 이삭은 라반의 딸들 중에 아들 야곱의 신부감이 있음을 알고 그렇게 야곱에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요.

하란은 이삭의 집에서 이천리길이나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것도 광야를 지나야만 하는 곳으로 하란을 다녀온 누군가가 일부러 알려주지 않는 한 야곱은 처남에게 야곱에게 합당한 미혼의 딸들이 있다는 사실은 결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얼마 전에 아내 리브가의 친정으로 심부름 다녀온 유모 드보라가 라반 집안의 그러한 사정을 알려줬기 때문에 이삭이 그렇게 아들에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유모의 하란여행은 하란에서 며느리 감을 알아오라고 이삭부부가 의논해서 보낸 겁니다.

이삭 부부는 장남 에서가 가나안의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한 일로 크게 근심하고 있었기 때문에(2634~35) 야곱만은 믿음이 있는 여자와 결혼하가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의 아버지가 늙은 종 엘리에셀을 하란으로 보내 라반의 동생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게 한 것 같은 방법으로 야곱에게 합당한 믿음의 처녀를 골라보라고 유모를 리브가의 친정 쪽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유모는 하란에 가서 여러 처녀들을 물색했고 그중에서 라반의 딸을 선택해서 이삭 부부에게 추천한 겁니다.

이런 사정이니 야곱은 하란으로 떠나기 전 이미 하란의 레아와 라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며 어머니가 곧 하란으로 자기를 부르기 위해 보낸다는 사람이 유모란 것도 알고 집을 떠났을 것입니다. 아니 어머니 리브가는 아예 유모를 보낼 거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가 깊이 생각한 끝에 유모 대신 사람이란 단어로 바꾼 것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이 성경 구절, 281~2절을 통해 유모 드보라가 그동안 적어도 한번이상 하란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모가 야곱의 식구들과 함께 있게 된 연유도 자연스럽게 상상됩니다.

 

그 연유는 이럴 겁니다.

가나안의 이삭에게 시집온 리브가는 고향의 소식이 궁금해서 그리고 나중에는 며느리 감을 찾아보라고 유모를 하란의 친정에 다녀오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야곱을 친정으로 피신시킨 후에도 유모를 보냅니다. 야곱의 소식이 궁금해서 유모를 보냈는데 아직 형 에서의 분노가 풀리지 않았지만 더 기다리면 형의 분이 풀리는 대로 다시 유모를 보낼 거라고 하며 말입니다.

그런데 이삭 부부는 하란을 다녀온 유모 드보라로 부터 야곱이 장가들 거라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야곱 도련님이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좋아해서 외삼촌 라반으로부터 칠년간 일 해주는 조건으로 결혼 승낙을 받고는 힘든 줄 모르고 즐거워하며 일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들이 라반의 술수에 속아 큰 딸 레아와 먼저 결혼하게 됐고 이어서 삼촌 집에서 칠년을 더 일 해주는 조건으로 사랑하는 둘째 라헬도 아내로 맞이한 이후로 손자들이 태어나기 시작했고 두 여종 빌하 실바까지 아내로 맞이하여 네 아내를 거느리게 되는 아들 소식까지 계속 알게 됩니다.

이제 아들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오기 어렵게 되었고 손자들도 늘어나고 하니 어머니 리브가는 이삭과 의논해서 하란에 있는 야곱의 식구들을 돌보아달라며 유모를 아예 친정으로 보냅니다.

그래서 유모 드보라가 야곱의 식구들과 함께 있게 되었으며 벧엘에서 장사지낼 때까지 동거 동락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모 드보라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유모 드보라의 입장에서 창세기를 살펴봅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의 배필을 가나안이 아닌 자신의 고향으로 충성된 종 엘리에셀을 보내어 친척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며느리로 맞이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며느리 감을 찾은 연유는 이방신을 섬기는 가나안의 여자가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고향의 믿음이 좋은 처녀를 며느리로 맞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늙은 종은 주인의 뜻에 합당한 리브가를 찾았는데 과연 리브가는 믿음이 좋은 여자입니다. 시아버지 아브라함이 늙은 종을 보내어 자신을 이삭의 신부로 택한 것이 여호와의 뜻임을 확실히 믿고 그 먼 곳으로 두려움 없이 즉시 떠나겠다고 대답하는 것을 볼 때 리브가의 믿음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리브가와 동행한 유모 드보라도 믿음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으로 와서 유모의 믿음은 한층 더 몰라보게 성장합니다. 아니 믿음이 성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모는 가나안으로 와서 이삭의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삼십오 년을 함께 생활합니다. 그리고 계속해 리브가의 남편인 이삭과도 함께 지냅니다.

유모 리브가는 이방신을 섬기는 가나안 사람들 사이에서 믿음을 지키는 믿음의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생하게 보고 듣습니다.

백세에 경수가 끊어진 사라에게 이삭을 낳게 한 아브라함의 하나님.......

텃세가 심한 이방인의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큰 재산을 모으고 거부가 된 아브라함.....

이삭이 농사를 지으니 그해에 백배나 얻으며.....

이삭을 시기하여 우물을 빼앗아도 이삭은 싸우지 않고 새 우물을 파는데 파면 팔 때마다 물이 솟아나고.....

드디어는 그랄의 아비멜렉 왕이 그 친구 아후삿과 군대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브엘세바의 이삭에게 왔는데 이들은 이삭을 미워하여 우물도 빼앗고 쫓아내던 이방인의 우두머리들로 이들이 마침내 하나님이 함께하는 이삭을 두려워해서 화친을 청하러 왔고.......

그들이 떠나고 바로 그날 또 이삭의 종들이 새 우물을 얻고......

이런 일들을 이삭의 가족과 생활하며 직접 듣고 보면서 드보라의 믿음은 한층 자라서 유모는 큰 믿음의 여인이 됩니다.

유모는 아브라함이 큰 민족의 아버지가 되어 후손이 번창하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확신하게 됩니다.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합니다.

태중에 쌍둥이가 서로 싸워 리브가가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까 하고 여호와께 아뢰니두 민족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25 23) 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리브가로부터 알게 된 유모는 형 에서가 아닌 동생 야곱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후손을 번창시키는 적자라는 것을 믿고 확신합니다.

유모는 야곱이 장자의 기도를 가로 챈 일도 그리고 야곱이 네 아내를 거느리게 된 일도 사실은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이 간섭하신 일이라고 확신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신부 감을 찾으러 하란으로 다녀올 때도 그랬고 리브가가 유모를 하란으로 아주 보낼 때도 유모 드보라는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후손에 대한 언약을 이루기 위해 자신에게 맡긴 귀한 소명인 것을 명심하고 기쁜 마음으로 떠난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소명을 위하여 야곱의 가족을 위해 온 힘을 쏟아 돌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모든 식구들이 유모의 죽음을 무척이나 슬퍼한 것입니다. 성경 본문의 알론바굿이라 함은 통곡의 상수리나무라는 뜻으로 그 장례식에서 유모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통해하는 야곱 식구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야곱 식구들에게서 유모 드보라는 없어서는 안 될 여인입니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외삼촌 라반과 처남들, 야곱의 라헬에게 치우친 사랑으로 질투하는 레아와 그로 인해 서로 미묘한 관계로 지날 수밖에 없는 네 아내들과 배다른 자식들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반목 등 ........

이런 야곱의 식구들 가운데서 유모 드보라는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를 대신하여 그녀의 믿음과 사랑으로 헌신적으로 집안일을 돌보아 나갑니다. 라반도 유모를 무시하지 못 합니다. 야곱의 식구들은 유모가 같이 있음으로 해서 서로 화합하며 평안을 유지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특히 유모는 야곱의 아들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합니다.

그들의 증조부 되는 아브라함과 할아버지 이삭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하신 이야기,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손의 번창에 대한 언약 등을 야곱의 열한 아들에게 자상하게 가르쳤습니다. 하란에서 야곱의 식구들은 유모로 인하여 함께 믿음을 키우고 지켜나갑니다.

특히 영특한 막내 요셉은 유모의 가르침으로 어려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굳게 따르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고향으로 향하던 야곱의 식구들은 세겜 성읍에 이르러 다시 정착하여 식구들이 이방인의 풍습에 물들어 이방인의 복장을 즐기고 이방 신상을 지니는 등 믿음이 흔들립니다. 유모 드보라에게 큰 근심이 됩니다. 그러다 급기야 야곱의 딸 디나가 하몰의 아들에게 겁탈을 당하고 디나의 오빠들이 세겜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위기에 몰린 야곱의 식구들은 야곱의 지시에 따라 모든 이방의 풍속을 정리하고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세겜을 무사히 떠나 야곱이 처음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에 이르러 그곳에 제단을 쌓았으니 즉 야곱의 온 가족이 회개하고 믿음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일행 중의 유모 드보라가 죽었고 그래서 장사를 지낸 것입니다.

야곱의 식구들은 유모의 죽음을 매우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유모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큰 민족의 본격적인 시작임을 보여주는 야곱의 열한 명 아들을 포함하여 모든 야곱 집안 식구들이 믿음을 회복했기에 평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마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다 이루었다.”하신 후 돌아가신 것과 흡사합니다.

유모는 큰 축복을 누린 여인입니다.

성경에서 유모만큼 큰 축복을 누린 사람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유모는 창세기의 사대 족장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까지 모두 함께 지냈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이요 은혜입니까. 사대 족장과 함께 가까이 지낼 수 있었던 큰 축복을 누린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성경에서 사대 족장과 함께 지낸 사람은 유모 드보라 외에 한 사람 더 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야곱의 형 에서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네 족장을 만나고 같이 지냈으나 유모만큼의 축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나 어머니 리브가에게 근심이었지 기쁨을 주고 사랑받는 아들이 되지 못했고 조카 요셉과는 단 한 번 만나 인사를 받았을 뿐으로 더 이상 만나거나 가까이 한 적이 없었습니다.

성경에 수십 번 이름이 기록된 에서보다는 단 한번만 이름이 기록된 유모가 오히려 말할 수 없는 큰 축복을 누린 것입니다.

이 두 사람 드보라와 에서는 에서가 태어나면서부터 수십 년을 같은 집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다가 뜻밖의 해우를 합니다.

야곱의 식구들이 얍복강을 건너 사백 명을 거느린 형 에서를 만날 때 에서는 야곱 식구들 중에 동생 야곱 이외에 단 한사람의 잘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유모 드보라입니다.

얼마나 두 사람이 반가웠을까요. 유모와의 만남은 형 에서로 하여금 동생에 대한 미움의 앙금을 씻어내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을 런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하고 싶었던 창세기 저자 모세는 2745절에서 애초 유모라고 쓰려던 대신 사람이라고 바꾼 것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만남의 기록을 아예 숨기기로 한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을 기록하려면 창세기의 여러 곳을 고쳐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따져봅시다.

창세기 24장에는 아브라함의 충성스러운 늙은 종 엘리에셀이 이삭의 신부를 찾아오는 이야기가 총 67절에 걸쳐 기록됐는데 창세기 중에 가장 긴 기록입니다. 그 안에 종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여기저기서 넘쳐납니다. 24장에서 주연은 당연히 종 엘리에셀이고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는 조연입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이 맡았던 그 역할과 거의 같은 일을 훌륭하게 완수하고 거기다 마지막까지 야곱의 식구를 도왔던 유모 드보라의 이야기를 유모와 에서의 만남까지 엮어서 기록한다면 창세기가 얼마나 더 늘어나야 하는지 상상이 될 겁니다.

오히려 단 한 번 기록된 그 이름 때문에 성경에 숨겨진 유모의 이야기를 이렇게 찾아낼 수 있음을 알고 나니 성경은 읽고 묵상할수록 은혜의 깊이를 더함을 깨닫게 됩니다.

하여튼 유모 드보라는 이스라엘 후손들로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서 믿음의 선배로 존경받으며 기억되고 있던 인물이 분명합니다. 오백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인데도 모세에 의해 드보라의 이름이 창세기에 기록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지금까지 성경 안에 숨어있던 믿음의 여인 유모 드보라의 이야기를 찾아서 정리해봅니다.

유모는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이 주인 드보라가 맡긴 일이지만 사실은 하나님 여호와가 자신에게 맡긴 귀한 소명임을 알고 그 일을 기쁨으로 감당한 여인입니다. 창세기 사대 족장들과 평생 가까이 지내면서 믿음을 배웠고 실천했고 가르쳤습니다. 야곱의 온 식구들이 애통해하는 가운데 평안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도 자자손손 믿음의 선배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주목받기 어려운 유모라는 신분이지만 세상의 어떤 권력자나 실력자보다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을 누린 여인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은 유모에게 큰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소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소명을 기쁨으로 감당할 믿음이 충만한지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혹시 세상의 기준으로 치우쳐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나요. 세상에 들어나는 권력자 실력자 가진 자 이름난 자들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말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삶을 통해 받은 하늘의 축복이 무엇인지 돌이켜봅시다. 조용히 유모 드보라의 더욱 숨겨진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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