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pia 블로그
언제부터 말씀뽑기를 했을까...? 2012.01.03 17:08

해마다 송구영신 예배에는 말씀뽑기라는 이벤트(?)가 있다.

신년에 내게 혹은 우리 가정에 주신 말씀과 찬양을 받기 위해 줄을 쭈욱 서서 받는다.

참석못하거나 못받은 사람은 나중에 사무실에서 따로 뽑기를 한다.

신년 대심방 기간에는 이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 말씀뽑기 행사는 방식은 좀 다르더라도 요즘 대부분의 교회에서 하는 듯 하다.

 

그런데, 과연 이 행사가 성경적일까? 라는 의문을 던져본다.

신년에 내게 주신 말씀이 달랑 이 한구절일까?

물론, 성경 전체를 주셨지만 특별히 붙잡고 외우고 삶에 힘이 되는 말씀이라고 이해해도

되지만 나는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나눠주는 말씀을 보면 대부분 축복의 말씀이지만 사실 앞뒤 상황에 따라 특별한 구절일 수도 있고, 성경에서 말하려는 의도는 다른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말씀을 받은 사람은 마치 무슨 부적이라도 하나 받은 것 처럼 신년에 우리집에 모실 말씀이라면서 소중히 간직하고 그 구절하나에 나와있는 내용을 내 상황에 끼워 맞추려고 노력을 한다.

옆사람 말씀카드를 슬쩍슬쩍 보면서, "와~ 좋은 거 뽑으셨네..." 라든가.

"정말 집사님 상황에 딱 맞는거 뽑으셨네요" 라고 하며 용하다는 식으로 이야기 한다.

서로 바꾸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중에는 축복적이지 않고 훈계적이나 물질에 대한 구절이 있으면 난색을 보이기도 한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을까 하면서 얼굴이 어두워진다.

 

이런 모습들은 거의 "미신행위"에 가깝다.

성경말씀이 부적처럼 되어 버리고 나의 새로운 해를 점치는 도구가 되버린다.

하나님이 과연 이런 모습을 보고 기뻐하실까?

 

교회는 이런 이벤트를 왜 할까?

현재 다니는 교회에서 알게된 이 행사를 처음 접할때는 적잖이 당황했다.

게다가 끝나고 행운권 추첨까지 하지 않는가...?

연말에 행운을 잡았다고 좋아한다.

물론 이것도 교회가 성도들 기쁘게 해주려고 마련한 작은 이벤트라고 이해하면 된다.

하지만, 세속적으로 물들어가는 이 시대에 구별되어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교회에서 굳이 이런 식의 이벤트는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나는 송구영신 예배의 이런 이벤트들은 교회의 성도 끌어안기와 보다 많은 헌금확보를 몇 수 앞에 둔 상업적인 전략이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너무 비판적일 수도 있다.

그냥 웃고 지나갈 수도 있다.

혹은 정말 의미심장한 이벤트라 성도라면 꼭 동참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 경우는 내가 써놓고도 공감하지는 못한다)

 

뽑은 말씀 책갈피로 성경에 끼워다니면서 그 말씀 의지해서 사는 사람도 별로 못봤고,

그 말씀 이외에 다른 성경을 더 많이 읽는 성도도 많이 보지 못했다.

성경을 읽으라고 하면 다소 재미없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참된 진리를 얻으려면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것도 많이, 깊이 읽어야 한다.

 

뽑은 말씀 한 구절로는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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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말씀대성회 영상을 보고... 2011.11.02 16:13


두가지 씨와 추수에 대한 설교를 하는 영상이 있습니다.

흔히 신천지 하면 추수꾼에 대한 말을 많이 하죠.

그쪽에서 말하는 기사를 보니 이번 전국적으로 진행한 말씀대성회에 참석한 개신교인 8000명이 신천지에 등록했다고 하더군요.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무슨 말을 하는가..... 하고 영상을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기전에, 이 영상의 말로 인해 제 자신이 미혹되지 않게 하소서 하고 짤막한 기도도 했습니다.

 

일단 마태복음의 천국의 비유에 기준한 설교는.... 저희가 듣던 설교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일반 교회에서는 "말씀"이 없다고 하는군요.

목사들조차 "말씀"을 들으려면 "신천지"에 가라고 한다는 군요.

지금은 비유로 설명을 하지만 나중에 "때가 되면" 다 풀어 설명할 때가 온다고 되어 있는 구절을 들어, 신천지가 비유의 말씀을 이제야 풀어 설명하기 때문에 "마지막 때"가 왔다고 합니다.

같은 말을 계속 지루하게 반복시키면서 초등학생들처럼 앵무새처럼 "예", "아니요"로 답변하게 만드는군요.

 

추수할때가 되면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 불사르고, 곡식은 곳간에 들인다고 되어 있습니다. 기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것은 "가라지"로 단에 묶여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교회가 밭을 의미하므로, 교회에서 "곡식"은 곳간으로 옮겼고, 교회에 남아있는 성도들은 "가라지"라는 표현입니다.

신천지에 가지 말라고 하는 목사들은 천국문앞에서 막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신천지를 곳간으로 은근슬쩍 이야기 하네요.

 

추수된 성도들은 곳간을 찾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군요.

곳간이 어딘지 아는 성도들이 추수된 성도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4장을 언급하여 세상 끝날은 시온산에 내려온다고 했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새노래로 영광을 돌리는데, 이 새노래라는 것은 "새로운 말씀"이고, 이런 말씀이 신천지에서 듣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있는 12지파의 이야기대로 신천지에서는 12지파를 이루고 있다고 하는군요. 성경대로 했기 때문에 정통이라고 주장합니다.

먼저 구원받는 숫자는 144,000 명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다수의 구원받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첫열매인 144,000 명 안에 드는게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이 "추수때"라면 교회에 남아있어야 하느냐 곳간으로 추수되어야 하느냐 라는 것을

열번도 넘게 강조하면서 약간은 세뇌하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음... 영상이 끝났습니다.

이들이 "추수꾼", "추수"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이해가 되는군요.

기성 교회를 무너뜨리고, 믿는 성도들을 미혹하여 꾀어 와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방해하려는 세력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설교 내용으로 봤을때 기존 교회 다니는 성도들이 대부분 와서 듣는 분위기 같은데, 말도 안되는 질문으로 계속 빠져들게 유도하는 언변을 이용하는군요.

하지만 잘 들으면 모순의 이분법 논리로 대부분 진행합니다.

"지금이 태초입니까?, 추수때입니까?"

"태초가 아니니 추수때지요?" "아멘" ...

이런식입니다.

 

마태복음의 이 천국의 비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교회와 목회자는 없습니다.

아주 유명한 비유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천지 설교자는 일반 교회에서 이런 귀한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에 대해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곳간으로 찾아간다는 논리부터가 이곳은 사이비 집단임이 확실합니다.

교회에서 믿음 굳건이 지키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내 신앙 굳건히 하고 있을때

여러분은 알곡이 되어 세상 끝날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교회에는 가라지도 있습니다. 성도들을 꾀어내기 위해 잠입한 저 신천지 사람도 가라지라고 볼 수 있겠군요. 또한, 교회를 다니기만 했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도 가라지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무서운 곳입니다.

마치 피리부는 사나이가 피리를 불며 아이들을 꾀어내어 동굴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연상이 되는 느낌입니다.

"말씀"이 부족하십니까?

주일 낮예배 한번으로 부족하시면 일주일에 여러번의 좋은 예배들이 있으니 그 때 말씀을 들으시면 되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여러가지 성경학교등에서 배우면 될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읽으며 묵상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수많은 적으로 부터 우리를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부디 이곳의 수많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지헤를 받아 참과 거짓을 분별해 내어 끝날까지

승리하면 나가길 기원합니다.

 

 

<아래 사진은 실제 말씀대성회에 모인 인파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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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족보 2010.04.22 11:23

[크리스챤 투데이에 기고된 김영한 박사의 글을 퍼왔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족보에 큰 차이가 보여서 궁금해 하다가 찾아본 글입니다.

 

+

 

나사렛 예수의 역사적 실재성을 나타내는 역사적 증거 가운데 하나가 예수의 족보이다. 예수가 족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임을 가장 명확히 말하는 것이다. 족보는 가계보로서 가문의 혈통을 나타내는 사회문화적 전통이다. 마태와 누가는 그들의 복음서에 예수의 족보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마태와 누가가 예수의 족보를 작성한 것도 족보를 중시하는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른 것이다. 유대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을 언급할 때는 그 사람의 아버지, 할아버지 등 직계 혹은 방계의 몇 대를 언급하는 관습이 있다. 이것은 특히 구약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종족들에게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찾아왔으니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민 27:1).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습 1:1)

유대사회에서는 족보는 “신원 확인”의 역할을 하였다. 나사렛 예수의 경우에는 신구약 성경 몇몇 곳에서 아예 긴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한 예로 마태는 긴 족보를 바로 복음서 첫 부분에 삽입하였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의사 누가 역시 전혀 기억도 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누가복음 3장의 족보에 길게 삽입하였다. 마태나 누가는 처녀로 잉태된 예수를 유대인들이나 그 시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긴 족보를 복음서의 첫 부분에 삽입한 것이다. 이 족보는 나사렛 예수의 역사적 실재를 증언하는 것이다.

마태복음의 족보

마태는 그의 복음서 시작에 “아브라함과 다읫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마 1:1)라는 제목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그는 유대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마태복음의 족보는 법정족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태는 예수가 이스라엘 출신임을 증명하려는 것보다는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가 예수 안에서 성취된다는 것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 예수에 이르러 성취되었다는 것을 증언하고자 한다. 마태 글의 제목은 정확하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관한 책이다. 말하자면 예수의 계보 책, 또는 예수의 출신에 관한 책이다. 글의 제목은 마태복음 전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계보 내지 예수의 탄생 이야기까지만 해당된다.

마태는 법적 아버지인 요셉을 족보에 기록하고 있다. 마태는 족보를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에 이르는 내림차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태는 누가 누구를 “낳고”라는 형태로 내려가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족보를 42대로 잡고 있지만, 구약에 등장하는 많은 왕들과 영웅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마리아와 같이 “정상적”이 아닌 방법으로 아이를 낳은 다말, 간통녀 밧세바, 이방출신 룻과 같은 여인이 있다. 이런 여인들은 과거가 있는 여인으로서 보통사람 같으면 족보에 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의도적으로 넣었다.

누가복음의 족보

누가는 예수로부터 시작해서 아담까지를 오름차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아담으로부터 예수님에 이르는 총 대수를 75대로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족보도 42대가 아니라 55대로 소개하고 있다. 누가는 누구의 “아들”이란 형태로 올라간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인물들, 특히 다윗과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 사이에 있는 40명의 인물은 거의 들어보지 못한 인물들이다. 그래서 누가족보는 형통족보라고 한다. 누가는 아담에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는 예수가 가져다 주는 구원은 온 세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가 아담의 후손인 것을 말하고 있다. 인류 전체와 예수의 깊은 연대성을 말한다. 22절의 요셉의 아들인 예수는 38절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 아담에게까지 소급한다. 23절에 “사람들의 아는대로 요셉의 아들이니”라는 표현은 예수의 처녀 출생에 대하여 특별한 사정을 고려한 표현이다. 이러한 특수한 예수의 출생은 바로 다윗을 거쳐 아브라함과 아담을 거쳐 하나님에게까지 거술러 올라간다. 이것은 누가복음 족보의 독특성이다. 누가는 마리아를 족보에 기록하고 있다. 아담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인류의 전 세대의 운명을 전환 시킬 것이다.

누가는 이 족보 서술에 있어서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삽십세쯤 되시니라”(눅 3:23절상)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30세의 나이란 이스라엘에서 다른 위인들도 역시 그들의 일생의 사업을 착수할 나이다. 요셉은 30세에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요셉이 애굽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삽십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창 41:46). 다윗도 삼십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다스리기 시작하여 70세까지 통치한다; “다윗이 30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년을 다스렸으되”(삼하 5:4). 나사렛 예수도 유대의 전통에 따라서 30세에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기록이 나사렛 예수의 생애가 구체적인 역사적 실재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는 들어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두 족보의 차이점과 공통점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는 몇 가지 점에서 상이하다. 첫째, 마태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에 이르는 내림차순으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 누가의 족보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담까지를 오름차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마태는 누가 누구를 “낳고”라는 형태로 내려갔고, 누가는 누구의 “아들”이란 형태로 올라갔다. 이것은 다만 기록 양식의 차이일 뿐 족보 자체는 다르지 않다.

둘째, 두 사람이 족보를 기록하는 순서와 인물들이 다른 것은 물론 총 대수(代數)도 상이하다. 마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까지의 족보를 42대로 잡고 있다. 그러나 누가는 아담으로부터 예수에 이르는 총 대수를 75대로 기록하고 있으며,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까지의 족보도 55대로 소개하고 있다.

셋째, 마태는 구약에 등장하는 많은 왕들과 위인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이에 반해 누가는 들어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즉 마태복음에 기록된 인물들은 대부분 구약성경에서 이미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누가복음에 기록된 인물들, 특히 다윗과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 사이에 있는 40명의 인물은 거의 들어보지 못한 인물들이다. 도대체 어떻게 한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이렇게 다른 조상들을 기록할 수 있을까?

히브리인들은 족보를 기계적으로 기록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사람들을 생략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실수로 일부 세대를 빠뜨린 것이 아니라 성경기자의 기록 목적에 따라 의도적으로 한 세대 혹은 여러 세대들을 생략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누가복음 3장과 마태복음 1장, 창세기 5, 10-12장, 역대상 1-10장 등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이다.

마태와 누가의 족보기록에서 한 가지 공통점은 두 사람 다 자신이 소개하고 싶은 예수의 모습을 고려해서 족보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왕으로서의 예수를 소개하고자 했던 마태는 예수의 왕통을 강조하기 위해 누가가 기록하고 있지 않는 다윗으로부터 솔로몬, 르호보암을 거쳐 남쪽 유다의 여러 왕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고, 또 왕들은 아니라 할지라도 구약에 등장하는 여러 큰 인물들의 이름을 예수의 족보에 삽입하고 있다.

이에 비해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고자 했던 누가는 다윗까지는 동일하지만 다윗 이후는 구약 성경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사람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를 강조하고자 했던 누가는 다윗 다음으로 솔로몬이 아닌 나단(나단 선지자가 아닌 것이 분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이후 등장하는 맛다다, 멘나, 멜레아, 맛닷, 요림, 에르, 엘마담, 고삼, 앗디, 멜기 등등도 전혀 구약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물론 누가가 예수님의 족보에 삽입하고 있는 요셉, 유다, 시므온, 레위 등도 열두 지파와 무관한 사람들이다.

인물중심의 족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족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족보기록이 매우 선택적임을 지적할 수 있다. 마태복음 1장 8-9절에 보면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역대상 3:11-12절을 보면 “그 아들은 요람이요 그 아들은 아하시야요 그 아들은 요아스요 그 아들은 아마샤요 그 아들은 아사랴요 그 아들은 요담이요”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다음 두 구절을 보면 웃시야와 아사랴는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륙세라.”(왕하 14:21); “유다 온 백성이 웃시야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륙세라”(대하 26:1). 따라서 마태는 그의 독자들이 요람이 웃시야의 고조 할아버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가정을 하고 요람 이후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등 세 사람을 생략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고냐에서 스룹바벨에 이르는 족보를 보더라도 마태는 스알디엘만을 기록하고 있는데 역대상에는 스알디엘은 없고 대신 시드기아와 브다야가 등장한다.

둘째, 족보에 사람들을 선택적으로 넣게 되니 당연히 성경기자에 따라 족보의 대수도 달라진다. 예를 들면 마태는 다윗으로부터 바벨론 이거까지 14대라고 기록하고 있지만(마 1:17) 실제로 다윗으로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하는 유다 최후의 왕 시드기아까지는 14대가 아니라 22대이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를 열왕기상, 하에 기록된 유다왕 계보와 비교해 보면 마태는 아하시아, 아달랴, 요아스, 아마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 등 7명의 왕들을 아예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성경 기자는 족보를 기록할 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인물들만 선별적으로 포함시켰다. 이는 성경의 족보에서는 기록자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을 생략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레위로부터 모세까지는 43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출애굽기 6장이나 역대상 6장에서는 레위->고핫->아므람->모세 등 4대만을 연결시키고 있다. 또 역대상 7장에서는 레위의 조카인 에브라임으로부터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여호수아까지를 10대로 기록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성경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인물들을 족보에서 생략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성경의 족보에는 필요한 사람들, 특히 기록자가 생각할 때 의미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만을 선별해서 기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성경의 족보 기록은 역사 교과서처럼 엄밀하게, 그리고 기계적으로 족보를 기록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의미 있고 중요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기록된 족보를 아래에서는 “위인 족보”(Heroic Genealogy)라고 부르기로 한다.

족보가 갖는 함축성: 성육신의 실재성과 계시의 연속성

첫째, 족보는 나사렛 예수가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육신의 실재성을 말하는 것이다. 족보는 아담에게까지 거술러 올라간다. 예수가 실재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성경의 족보에 소수의 “위인들”만을 기록했다는 것은 할아버지가 손자를 낳았다고 기록하기도 하는 히브리인들의 족보 기록 관습으로 생각해 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히브리어로 아들 ‘벤’(ן󰔲 bên)이란 단어는 “아들”이란 뜻으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손자, 아니 몇 대 아래 후손을 나타낼 때도 사용된다

유대인들의 조상-자손 동일시 관습은 복음서에서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유대인들에게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담대하게 도전하였다(요 10:30). 이것은 자신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나아가 하나님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생각하며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둘째, 마태의 족보는 계시의 연속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문전에 서 있다. 그러나 과거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는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메시야이며, 다윗왕권의 참 후계자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모든 약속의 상속자이다. 누가의 족보는 예수가 선택된 민족의 상속자일 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는 사람들의 형상을 하나님의 아들로 회복시키시는 제2의 아담이다. 예수는 모든 인류에게 그들의 근본적인 인간의 목적을 성취하도록 하고 있다(눅 3:23-24).

이 족보들은 역사의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강조한다. 그의 구속 약속은 역사의 각 세대를 거친다는 것이다. 어떤 인간의 잘못이나 오류조차도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킬 수 없다. 더욱이 이 족보에는 4 여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 다말은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여인(창 38장)이 있고, 라합은 매춘부(수 3장)였고, 룻은 이방 여인(룻기)이어고, 바셋바는 간음한 여인(삼하 11-12장)이었다.

예수의 족보는 인간 역사 속에서 하나님 구속의 경륜을 드러내는 함축성을 지닌다. 예수 족보의 의미는 하나님이 구체적인 인간의 혈통 속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어떠한 인간의 허물과 죄도 우연성도 하나님의 구속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혈통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도구라는 점을 알려준다. 은총의 역사는 인간의 구체적인 혈통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초대교회의 이단 영지주의가 도외시한 이 혈통의 역사를 인정하시고 사용하셨다. 하나님 자신이 이 인간 혈통의 역사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러면서도 예수의 처녀탄생은 인간 혈통의 역사를 너머서는 하나님의 구속계시 사건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의 족보는 나사렛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성육신의 실재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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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장례좀 치르겠다는데... 2010.04.08 19:19

마태복음 8:21~22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1 Another disciple said to him, 'Lord, first let me go and bury my father.'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22 But Jesus told him, 'Follow me, and let the dead bury their own dead.'

 

난해한 성경 구절 중 하나이다.

아버지 장례를 아들이 치르는 것은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예수님은 이를 막으신다.

예수님은 반인륜적이신가??

 

죽은자 = 믿음이 없는자 = 영적으로 죽은자 = 불신자

 

불신자들로 아버지를 장례하게 하라...

이것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그런식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첫째,

세상의 어떤일이 중요하든 예수님이 부르셨으니 따라야 한다.

만일 자신에게 닥치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예수님이 부르시면

모든 일을 놔두고 따라야 한다.

 

둘째,

성경 글자대로 아버지가 지금 돌아가신게 아니라 중병을 앓고 게셔서

아머지의 임종과 장례를 지켜본 후에 오겠다는 것으로 해석도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구원하는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아버지의 일은

다른 가족들에게 맡기고 오라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마태복은 4장 22절에 보면 아래와 같다.

 

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2 and immediately they left the boat and their father and followed him.

 

야고보와 요한 형제 이다.

 

앞의 제자보다 더 심하지 않나? 살아계신 아버지를 그 자리에서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다니...

제자들의 믿음도 참 대단하다. ^^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사람들이 걸고 넘어지는 성경의 난해한 구절에 대해

정확하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해야 한다.

나도 이런 부분이 너무 부족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세상 어느 지식보다 높은 성경 지식을 더 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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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믿음 2010.04.08 19:06

마태복음 8:8~9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8 The centurion replied, 'Lord, I do not deserve to have you come under my roof. But just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For I myself am a man under authority, with soldiers under me. I tell this one, 'Go,' and he goes; and that one, 'Come,' and he comes. I say to my servant, 'Do this,' and he does it."

 

난 처음에 이 구절을 읽고 '뭐 그리 대단한 믿음이라고 예수님은 이스라엘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했을까?' 생각했었다.

나도 권력좀 있는 사람으로서 살아보니 뭐 그정도 명령하면 되더라... 뻐기는 건가?

라는 생각도 했었다.

 

내 기본적인 생각 구조에 문제가 있는 걸까?

가끔 난 한없이 비판적인 생각을 갖는다.

 

이 구절도 내 나름대로 해석해보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다. ㅎㅎ

 

백부장 자신은 어느 권력자 밑에 있고, 동시에 권력을 부릴 수 있는 위치이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다.

이런 하나님께서 못하실일은 없다.

백부장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와 전지전능함을 그 자리에서 고백한 것이다.

 

혼자 생각이지만 그럴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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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 섬기기 2010.04.08 18:44

마태복음 6:24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4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he will be devote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

 

두 주인 = 하나님과 재물

 

참 어려운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잘 아신다.

그렇게 창조하셨다.

정말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땅에서 가진 것에 대해 탐닉을 하지 말아야 할텐데...

세상 살다 보면 이 부분에 참 많은 번민도 생기고 갈등도 생긴다.

 

아직은 믿음이 많이 부족한 이유겠지.

 

하나님,

제가 두 주인을 섬기지 않도록 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길 원합니다.

강한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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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비추자 2010.04.08 18:38

마태복음 5:16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6 In the same way, let your light shine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praise your Father in heaven

 

우리가 비추는 빛 = 착한 행실

 

빛은 더 광범위하게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위 구절에서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건 착한 행실이다.

착하다는 것 자체가 광범위 하지 않은가?

착한 것은 무엇일까....

 

마음이 온유하고...

비판하지 않고...

너그럽고...

남을 도와주고...

화를 내지 않는...

 

이런 모습을 보였을때, 우리의 행실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크리스쳔이라고 세상 살면서 손해봐서는 안되겠지만...

너무 이득을 취하려고 바득바득 하지 않아야겠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도록 노력해야겠다.

내가 입으로 하는 전도보다 더 큰 전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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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현 박사와 창조과학 2010.04.08 18:32

인터넷에서 우연히 김명현 박사의 창조과학 강의를 듣게 되었다.

총 13강에 한 강의마다 1시간반은 되는 방대한 분량이다.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3~4일만에 다 봐버렸다. (회사에서^^)

 

진화론을 반박하고,

창조에 대한 증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그 외에도 노아의 방주나 다양한 내용에 대해서 설명한다.

창조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자체가 말이 안되긴 하지만, 하나님의 영역을 건드리는게

아니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증명을 하고 있다.

나도 오랫동안 이런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나름 고민해오던 터라...

이 박사님의 설명이 너무나 가슴이 와닿았고... 큰 은혜를 받았다.

 

이 방대한 내용을 축약해서

멋진 자료를 만들어서

우리 교회 주일학교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세미나를 해주고픈 의지가 생겼다.

정말 잘만 준비된다면 주일 오후예배에 교인들을 위해서도 이야기 해 주고 싶다.

김명현 박사님을 초청한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많이 비쌀듯 하다 ^^*

 

이 이야기를 흘리듯이 장로님께 말씀드렸더니... 내용이 아주 신선하다며, 준비 마치면 말씀하라고 하셨다. 목사님과 의논해서 그런 기회를 꼭 갖게 해주겠다고 하셨다.

 

나에게.... 조그만 사명이 하나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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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의 자녀 교육 2010.04.08 18:10
EBS에서 미국의 유태인들의 교육에 대한 동영상을 봤다.
10명이나 되는 자녀를 키우고 있었는데 집안 분위기는 질서 정연하다.
그러나, 부모는 어떤 억압을 하지 않는다.
큰소리도 나지 않고, 형제 자매들끼리의 우애는 매우 돈독하다.
몇가지 얻은 교훈을 적어보겠다.
 
1. 강한 억압을 하지 않는다.   
    : 어떤 잘못된 혹은 잘못될것 같은 행동에 대해서 강하게 억압을 하면 아이들의
      상상력은 줄어들게 되고, 다양한 사고를 하지 못한다.     
      이럴때는 오히려 부모가 같이 대안을 모색해서 아이 스스로 좋은 방향을 찾도록
      도와준다.
 
2. 아이를 존중한다.   
   : 아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행동과 의사를 존중한다.   
 
3.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배운다.   
    : 좋은 모습을 가르치고 싶을때는 그것에 대한 부모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신앙이든 언어든...     부모가 확신을 가진 신념이라 판단되면 아이들도 눈치를
      채고 따라서 하게 된다.
 
4. 인내, 관심, 사랑, 존중.... 부모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
가끔.... 왜 내시간은 없고 온종일 아이들에게만 매달려야 하나.
공허하기도 하고 삶이 허무할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가정에서의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들 교육이다.
가정은 아이들의 배움의 장이 되어야 하며, 부모는 좋은 선생이다.
아이들의 미래가 곧 나의 미래 가정의 미래 아닌가?
우리 두 아이에게 정말 바른 신앙과 바른 인성을 갖게 하기 위해 우리 부터 앞장서고...
항상 인내로 자애로움으로 아이들을 교육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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