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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문법 10 페, 짜데, 코프, 레쉬.. 2019.10.1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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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문법 01 히브리어 알파벳 읽고,.. 2019.10.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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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문법 10 주의 기도 강해(마 6:9~.. 2019.10.1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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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문법 01 개론, 언어란, 헬라어 알.. 2019.10.1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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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4 모든 불의는 죄이다 [요일 .. 2019.10.1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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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3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 [핵심.. 2019.10.1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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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예수님보다 먼저 왔는가? 2019.10.05 12:02

<<나는 반드시 크리스토스 보다 먼저 와야만 한다>>

당신은 예수님보다 먼저 왔나요 나중 왔나요? 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중이라고 답변합니다. 나중이라는 답변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역사적인 입장에서 하는 답변이기에 지체없이 답변을 하곤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언급을 보자!
[요 10:7] 그런즉 예수스께서 다시 저 삶에게 언급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양 삶의 문이라는 것을 네 삶에게 말한다. [8] 모든 삶이 나의 앞서 왔으니 도적이며 강도이다; 오히려 양 삶이 저 삶에게서 듣지 않았다. 

 

세례요한의 언급을 보자!
[요 1:15] 요안네스는 그의 관하여 증언하며, 소리질러 말한다, 내가 언급하였던 이가 이자더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의 앞서 발생하였으니, 그는 나보다 먼저 있었기 때문이더라.

 

[요 1:29] 다음날 요안네스가 그를 향해 오는 예수스를 보고 말한다, 보아라 세상의 죄를 지고 있는 하나님의 희생양이다. [30] 이 자가 내가 그의 관하여 언급하였던 자이다, 장정이 내 뒤에 오는데, 나의 앞서 발생한 것이니, 그는 나보다 먼저 있었더라;

 

먼저 와야만 하는 이유

첫 번째사망의 법을 받고 죄인임을 알고 나서 죄에서 구원해주실 메시아(크리스토스)를 구하는 것이 순서에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2천 년 전에 왔다가 하늘로 가셨다는 역사적 인 근거에 의하여 예수스를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2천 년 전 예수스의 탄생을 목도한 자들은 모친 마리아와 부친 요셉과 동방 박사들과 일부 목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탄생의 상황을 기록해 놓지 않았다. 또한 예수스의 부활과 승천을 목도한 자들은 제자들 뿐이기에 객관적인 근거가 미약하다.

 

역사적인 사실이란 객관적인 증거가 명백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적 사료로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고, 역사적인 사실은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실로 입증된 사안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대상은 될지언정 구원을 해주는 믿음의 대상으로선 비논리적인 모순을 갖고 있다. 그래서 크리스토스 예수스는 나 보다 뒤에 오셔야 함이 맞다.

 

두 번째사도 바울이 기록한 14권의 신약 책은 구원에 대한 설명을 잘 주는 책으로서 매우 중요한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의 기록 [갈 2:19~20] 왜냐하면 나는 법으로 인하여 법으로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으로 살고자 함이다. [20] 그래서 내가 크리스토스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나는 더 이상 살지 못하고 내 안에 크리스토스께서 살고 계시니; 지금 내가 육체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내게서 초월하여 자신을 넘겨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19절에선 법으로 죽고 하나님으로 살고자 함이라 했고.
20절에선 크리스토스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살았다고 한다.

 

사도 바울의 고백은 결국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며, 이 사건은 복음서 내에 예수스의 십자가 사건에서도 이 기록의 내용과 일치해야 한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예수님의 좌우편에 강도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예수스께서 말씀하신 요 10:7에서 예수스보다 먼저온 내가(바울) 강도였기에 예수스와 함께 십가에 못박혔다는 고백이 맞아 떨어진다.

 

특히 누가복음에는 십자가에서 예수스와 강도가 나눈 대화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누가는 2차전도 여행 때 바울에 의해 제자로 입문되었던 자인데, 그는 바울에게서 바울서신에 분한 복음을 전해듣고 자신의 신앙고백을 기술한 것이 누가 복음서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예수스의 직계 제자인 마태와 요한의 기록과 틀리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마가복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해야 한다. 마가는 바울과 의견 충돌로 헤어지는 바람에 누가보다는 바울에게 복음 전수를 덜 받았다. 그래서 로마 옥에서 순교를 앞 두고 디모데에게 편지하여 겨울옷과 가축책과 함께 마가도 함께 데려오라고 명한다. 아마도 못다 전한 복음의 핵심을 전하려고 했떤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이유로 마가복음이 짧고 간결한 문체로 기록된 것인데, 이를 원 복음이라고 보는 시각은 참으로 어리석은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예수스의 직계 제자인 마태와 요한이 마가만 못해서 마가의 책을 배껴서 보완한 것으로 보는 것은 연구의 결과로 보기엔 너무 조악한 주장이다.

 

세 번째, 성경은 역사적 배경을 두고 기록한 것이지만 영적인 구원을 위한 지침서 임을 말하고 있다.

 

<<모든 성경은 영적 하나님이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영적 하나님이며, 교리를 향하여, 책망을 향하여, 교정을 향하여, 의 안에서 훈육을 향하여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모든 선한 일을 향하여 온전케 갖춰져 온전하게 하려 함이다.

 

<<영적 계시를 받아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고전 2:9~11] 오히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스런 삶에게 예비하신 삶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과 접하여 올라 가지 못하였다” 함과 같다. [10]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영으로 인하여 내 삶에게 계시하셨으니; 영은 모든 삶 곧 하나님의 깊은 삶도 감찰하신다. [11] 왜냐하면 사람의 삶을 그의 안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고는 사람 중에 누가 알아 보았겠느냐?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삶도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믿음의 결과인 목숨의 구원은 육적으론 불가>>
[벧전 1:9] 네 삶의 믿음의 결과인 목숨의 구원을 마련하는 것이다.

 

 <<계시는 아들이 결의해야 주신다>>

[마 11:27~28] 모든 삶이 나의 아버지에 의하여 내게 넘겨주셨으니, 아버지 말고는 아들을 인지(認知)하는 자가 없고, 아들 말고는 누구도 아버지를 인지하는 자가 없으나 아들이 계시하기로 결의(決意)한다면 그에게 계시하신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짊진 삶은 모두 나를 향해 오라 나도 네 삶을 쉬게 할 것이다.

  

<<믿음에서 싹나서 믿음화 하려고 복음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계시된다>>
[롬 1:16~17] 왜냐하면 나는 크리스토스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나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에 이르고자 하나님의 능력이다, 먼저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왜냐하면 의인은 믿음에서 나서 살 것이라고 기록된 바와 같이, 그(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 이르고자 믿음에서 나서 계시된다.

 

네 번째예수스의 탄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승천과 보혜사 사건은 영적사건으로 이해해야만 예수스께서 예언하신 언약이 내가 살아있을 때 내 안에서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지, 내 죽고 나서 완성된다면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완성에 이르고자 견디는 자는 구원>>
[마 24:1~13] 그리고 예수스께서 성전으로부터 나와서 가시는데, 그의 제자 삶이 그에게 성전의 건물 삶을 직접 보여주려고 다가왔다; [2] 그러자 예수스께서 저 삶에게 언급하셨다, 이 모든 삶을 보지 못하느냐? 진실로 나는 네 삶에게 말한다, 여기 돌이 돌에 접해 결단코 놓임 받지 못한다면, 돌은 결단코 붕괴되지 않을 것이다. [3] 그가 감람나무 삶의 산에 접하여 앉으시자 제자 삶이 그에게 다가와 자신을 낮추고 말하되, 언제 이런 삶이 있을 것이며, 당신 임재(臨在)와 내세의 공동 완성의 표적이 무엇인지 내 삶에게 언급해주세요. [4] 그리고 예수스께서 답변하여 저 삶에게 언급하셨다, 누군가 네 삶을 미혹하지 못하게 주목하라; [5] 왜냐하면 많은 삶이 나의 이름으로 접해 와서 말하되, 나는 크리스토스라며, 많은 삶을 미혹할 것이다. [6] 전쟁과 전쟁의 소문을 들으려 할 것이나, 보고, 겁먹지 말라; 왜냐하면 모든 삶 발생이 마땅하나, 아직 완성은 아니다. [7] 왜냐하면 열국(列國)이 열국을 접해, 그리고 나라가 나라를 접해 일어나게 될 것이며, 장소 삶을 좇아 기근 삶과 전염병 삶과 지진 삶이 있을 것이다; [8] 그러나 이 모든 삶이 고통의 시작이다. [9] 그때 저 삶이 네 삶을 환란에 이르고자 넘겨주고 네 삶을 죽일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름을 인 하여 열국 삶 모두에 의하여 미움 받을 것이다. [10] 그리고 그때 많은 삶이 실족될 것이며 서로 삶을 넘겨줄 것이며, 서로 삶을 미워할 것이다; [11] 그리고 많은 거짓 예언자 삶이 일어나게 되며 많은 삶을 미혹할 것이다; [12] 그리고 증가할 불법을 인하여 많은 삶의 사랑이 식어지게 될 것이다. [13] 그러나 완성에 이르고자 견디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다.

 

 

5째 날의 구원론엔 문제가 많다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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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신론 2019.09.27 12:45

<<삼위일체 신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啓示)한 하느님은 성부(聖父)·성자(聖子) 및 성령(聖靈)의 세 위격(位格)을 가지며, 이 세 위격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교리이다.

 

하느님 아버지[聖父]인 유일신(唯一神)은 그의 독생자(獨生者:聖子)를 이 세상에 보내어 성령(보혜사)으로써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이다. 이 교의는 325년 니케아공의회(公議會)에서 교회의 정통신조로 공인되었으며, 451년 칼케돈공의회에서 추인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정식 교의로 확립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위일체 [trinitas, 三位一體] (두산백과)

  

따로 또 같이
그리스도교도들은 하나의 신이 성부, 성자, 성령의 세 가지 '위격'을 취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교리다. 유대인과 무슬림은 삼위일체를 별도의 세 신으로 보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유일신이 '아들'을 두었다는 생각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신이 어떻게 하나이면서 셋일 수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은 그것을 커다란 미스터리로 남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신을 완전히 이해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삼위일체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붙인 책들은 서고에 넘칠 정도로 많지만, 학자도 인간인데 신의 본질을 말로 형용할 수는 없다. 아무리 신이 세 가지 '위격' 또는 '실체'를 가진다고 말해도 그 미스터리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위일체 [Trinity] (『바이블 키워드』, 2007. 12. 24., J. 스티븐 랭, 남경태)

 

 

<<분석>>
삼위일체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며 유일한 실체로 존재한다. 는 주장이 기독교의 정설이다. 예를 들어, 한 남자가 있는데 아내에겐 남편이며, 자녀들에겐 아버지이며, 직장에서 과장님이라고 하자; 이런 설명을 두고 양태론이라 부르며 삼위일체 설명엔 부적절하다고 해서 이단으로 정죄받았다. 그런데 한 남자는 남편과 아버지와 과장님으로서 본질은 같으며, 유일무이한 실체로 존재하고 있지 않은 가? 성부, 성자, 성령이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있는데 다른 위격으로 나타났다면 역활론 또는 변장술이라 해야지 삼위일체란 표현을 빌려서 신론을 설명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신론>이 신학이며 신학의 핵심이 <삼위일체>인데, 지금껏 기독교 신학 박사님들은 신학의 핵심인 삼위일체를 올바르게 규명하여 정의하지 못하고 무얼하고 있었단 말인가? 다른 분야를 보라! 수 많은 박사들이 배출되면서 수많은 발전된 논문들이 발표되고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신학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벗어나는 논문이 발표되지 않고 있다. 아니 발표를 할 수 없는 분위기라 해야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현재의 교리를 반박하는 발전된 논문을 작성했다고 하자, 과연 그 논문을 올바르게 심사해줄 담당 교수가 있겠는가? 대답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담당 교수를 능가하는 박사 논문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의 현주소는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수 없는 신학 논문이 쏟아져 나오지만 지엽적이거나 철학을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삼위일체>>란
나라의 복음에서 그 힌트를 얻어야 한다. 마 4:23, 마 9:35, 마 24:14에서는 나라의 복음(토 유앙겔리온 테스 바실레이아스)을 말하고 있는데, 천국 복음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라고 행 1:6에서는 제자들이 예수께 "주여! 이 기한 안에 나라를 이스라엘로 독립하십니까?" 라고 나라를(목적격) 이스라엘로(여격) 언급하고 있어서, "이스라엘 나라를" 이란 번역은 오역이다.

 

이와 같이 나라를 예수님 공생애 제1성으로 선포하신 내용이 나라의 복음이며, 공생애 마무리도 나라를 이스라엘로 아버지께서 독립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독립된 나라는 3요소를 갖고 있다. 그것이 국민, 영토, 주권이며 이 셋이 결합해서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이론이 나라의 복음의 핵심 내용이다. 이때 3요소는 독립적으로 존재 할 수 있기에 위격으로 설명이 가능하나, 각자의 위는 나라가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위격은 설명(입증)이 불가능했다. 그러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언제 완성되는가?

 

먼저 사도 요한의 고백을 들어보자.
요일 1:1 시작부터 (미완료로)계시는 생영의 말씀에 관하여, 내 삶이 들어온 바요, 내 삶의 눈으로 보아온 바요, 내 삶이 주목하였던 바요, 내 삶의 손이 만졌던 바다.

 

구약에는 아버지께서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셨고 성령의 역사도 함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를 마치고 나서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은 후에야 요일 1:1의 고백하게 된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어서 요일 5:6~8을 보자!
[요일 5:6] 이 분은 물과 피로 인하여 오신 분이시니, 크리스토스이신 예수스이시다; 물 안에만 아니요, 오히려 물과 피 안에 오셨으며, 증언하는 이가 영이시니, 이는 진리가 영이기 때문이다. [7] 이는 하늘 안에서, 증언하는 삶이 세 삶이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요; 이 세 삶이 또한 하나요, [8] 또한 땅 안에서 증언하는 삶이 세 삶이니, 영과 물과 피, 세 삶도 하나에 이르고 있다.

 

7절에선 하늘의 증인으로 오신 삼위(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일체(예수님)를 보았고 주목하고 만졌다고 1:1에서 고백하였고,

8절에선 땅의 증인인 삼위(물과 피와 영) 일체(사도)로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하여 고백하고 있다.

7절의 하늘의 증인은 내 안에 전해지고 보여진 나라의 복음의 실체이며, 8절은 나에게 완성된 나라인 이스라엘을 증언하는 사도의 모습이다.

삼위일체를 이해할 때 기본 등식을 1+1+1=1은 성립될 수 없는 등식이다, 그래서 1*1*1=1로 사고 전환부터 해야 한다.

 

<<하나님의 실체>>
[요 10:34~35] 예수스께서 저 삶에게 답변하셨다, 네 삶을 하나님 삶이라고 내가 언급한 것이 네 삶의 법 안에 기록되어져 있지 않느냐? [35] 하나님의 말씀이 저 삶을 향하여 발생하였으니 저 삶을 하나님 삶이라 언급하였다, 그리고 성경은 풀려짐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실체>>

[롬 6:7~11] 죄로부터 죽은 자는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다. [8] 내 삶이 크리스토스와 함께 죽었거든 그와 함께 살 것이라는 것도 믿는다. [9] 이는 크리스토스께서 주검 삶에서 일으킴을 받으셨으니 더 이상 죽지 않는다고 내 삶이 알았으니, 그의 사망이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한다. [10] 왜냐하면 그가 죽으셨으니, 죄로 단번에 죽으셨 으나; 살았으니, 하나님으로 산다. [11] 이와 같이 네 삶도 네 자신 삶을 죄로는 주검 삶이요 그러나 내 삶의 주 크리스토스 예수스 안에서 하나님으로 산 자라고 동의하라.

 

<<하나님의 실체>>
[갈 2:19~20] 왜냐하면 나는 법으로 인하여 법으로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으로 살고자 함이다. [20] 그래서 내가 크리스토스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나는 더 이상 살지 못하고 내 안에 크리스토스께서 살고 계시니; 지금 내가 육체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내게서 초월하여 자신을 넘겨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하나님의 모양 같은 사람의 아들을 완성하시고자 함이 아버지의 뜻이다. 이 뜻이 완성되는 것이 신학의 핵심이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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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사의 고백 - 나는 이렇게 무너졌.. 2019.09.2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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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고 올려주세요 2019.08.19 16:49
Q: 설교 원고가 필요합니다

A: 설교 원고를 올리고 싶으나 시스템이 따라주지 못해서 올리지 못하

고 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직역한 성경 내용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저희 본 사이트로 들어오시면 원고와 함께 설교를 싶게 보고 들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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