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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이 형제를 품어야 하나요? 2012.01.24 00:48
   한 30대 중반 자매로부터 교제하는 형제가 여러 모로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하고 대화가 잘 통해 헤어지기도 쉽지 않아 고민이라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그 형제는 자매가 신앙적으로 방황할 때 교회에 다시 나와 은혜생활을 하도록 도움을 줬기에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하지만, 또 한편 경제적으론 어려운 편이라 아무리 기도를 해도 혼란함만 가중돼 답답하다는 그 자매의 고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갓피아를 통해 목사님의 칼럼을 접하고, 용기를 내어 이렇게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상담 내용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만, 새해를 맞아 좀더 구체적인 비전을 가지고 제 결혼문제에 관해 기도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어 용기를 내어 제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저는 삼십대 중반의 미혼으로 가족들은 모두 함께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짝을 찾지 못한 저를 가족들이나 주변 분들이 많이 안타까워 하셔서 만남을 여러 번 주선하셨지만 매번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네요.(중략)

 

목사님, 사실 저에게는 아직 연인 사이도, 그렇다고 친구사이도 아닌...하지만 일 년 넘게 연락을 주고받는 소중한 형제가 있습니다.  실은 그 형제 때문에 어떤 남자를 만나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족들은 알지 못합니다. 아직 저희들이 정식으로 사귀는 관계도 아닌데다가 중요한 것은 그 형제의 나이도 삼십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결혼에 대한 비전이 없기 때문이죠.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라 예술 계통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입도 불안하고 아직 경제적으로 아무런 기반이 없습니다.(중략)

 

객관적인 상황으로만 보면 여자로서 적지 않은 나이인 제가 이 형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바보같은 일이겠죠. 제가 이 형제를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저에게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해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교회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아예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집에서 기도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자위하며 제멋대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재작년말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게 되면서  다시 교회에 출석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즈음에 그 형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 형제가 교회에 가라는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저는 몇 년 간 담을 쌓았던 교회를 다시 찾았고 예전과는 다른 은혜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중략)

 

둘째, 그 형제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그동안 소개를 통해 많은 형제들을 만나봤지만, 크리스천이라 하면서도 너무나 세상적인 조건들만을 중시하는 모습에 많은 실망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형제는 너무나 순수합니다. 서로 관심사도 비슷해서 같이 있으면 얘깃거리가 끊이지 않고요. 누구보다 저를 잘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이 형제가 제 마음속에 있다 보니 아무리 결혼 준비가 완벽히 되어있는 다른 형제를 만나 잘해보고자 노력해도...결국은 잘 되지 않습니다. 애매모호한 상황이 답답해서 그동안 몇 번 제 쪽에서 연락을 끊을까도 했지만 이 형제는 끈질기게 저에게 먼저 연락을 해옵니다. 적극적으로 사귀자고 하지는 않지만요.(중략)

 

목사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이 형제가 주님이 예비하신 배우자가 맞는 걸까요? 형제의 마음이 정확히 어떤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결혼할 준비가 아직 안 되어있어서 저에게 정식으로 교제하자는 말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저에 대한 감정이 거기까지는 아닌 건지.. 제가 좀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포기해야 하는 걸까요? 아직은 결혼보다 자신의 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형제에게 족쇄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기도로 지혜를 구해 봐도 하나님의 응답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믿음이 아직 부족한 탓이겠죠. 제가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목사님의 현실적인 조언 부탁드립니다. 그럼 평안하시고 건강하세요.

 

여러 모로 잘 통하지만 현실적으로 불안정한 형제를 놓고 부모님께 말씀도 못 드리고 혼자서 고민 중이라는 자매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샬롬, 자매님! 용기를 내서 보낸 상담이메일 잘 받았구요 힘내시고 소망을 갖기 바랍니다. 자매님께서 비록 순간적으론 흔들리는 듯 보이지만 신앙적 관점에서 결혼문제를 풀려는 노력을 칭찬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결혼문제 앞에서 조심스럽고 때로는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세상사람들이 하는 방식 그대로 답습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주변사람들을 완전배제하고 내 맘대로 결정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기에 결혼결정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크리스천에게는 분명 길이 있으며, 그 좁은 길을 통과하고 나면 더 큰 은혜와 축복이 임하기 마련입니다. 자매님께서 겪는 고민은 다른 이들의 고민에 비해 그나마 행복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너무 염려 마시기 바라며, 중요한 몇 가지 문제만 점검하고 극복하시면 얼마든지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기에 다음 조언을 잘 새겨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그 형제에 대한 자매의 솔직한 마음의 문제입니다.

자매님은 그 형제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편안하고 즐겁고, 서로 관심사도 비슷해서 같이 있으면 얘깃거리가 끊이지 않는 편이라고 했죠? 사실 이런 정도면 배우자감으로 어느 정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더욱이 소위 조건 좋은 크리스천형제와 비교해 순수하며 누구보다 자매님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니 정말 다행스럽습니다. 보통 이런 정도의 배우자감이라면 결혼을 결정하는데, 자매님은 그렇지 못하니 고민이군요. 분명 지금 형제가 마음속에 있음에도 불안스러운 건 자매께서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계산하고 있거나, 아니면 진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시 말해 자매님께서는 그 형제님을 매우 좋은 배우자감으로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무언가 불안함을 느끼고 불만족스러워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양가감정(兩價感情)을 못 극복할 경우 결혼결정은 어려우며, 결혼 후에도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세상에서 내 입맛에 맞는 완벽한 배우자감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매님께서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그 형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차분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 형제의 현실상황과 자매에 대한 태도의 문제입니다.

예술계통의 일을 하는 형제의 현실을 놓고 볼 때 경제적으로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술계통의 특성상 현실가치보다 정신가치를 더 중시하거나, 현실감각이 있더라도 불안정한 수입구조가 대부분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 형제가 전혀 결혼이 불가능하거나 배우자감으로 결격사유가 있다고 생각하진 마시기 바랍니다. 그 형제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실제 예술계통을 업으로 삼는 경우에 비추어 보면 얼마든지 인격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형제가 어느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하면 남들보다는 적지만 어느 정도의 생활능력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이야 쉽지 않겠지만요. 그러기에 형제님이 자매에게 조심스러운 부분에 대해서도 그의 상황을 먼저 배려하는 게 중요하리라 봅니다.

 

그런데 그 형제님이 자매님에게 끈질기게 먼저 연락을 해오고 있는 걸로 미루어 분명 자매님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관심이 단순한 연애감정에 국한되는지, 아니면 결혼까지 고려하는 진지한 태도인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그러기에 자매님은 그 형제가 더욱 자신감 있게 다가오도록 배려하면서도, 또 한편 그 형제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본인이 아직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다고 하는데 그게 진심인지, 아니면 어려운 현실상황 탓에 자신 없음을 에둘러 표현한 건지는 잘 모릅니다. 물론 여러 정황상 후자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이지만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배려하더라도 그 형제님이 계속 결혼을 미루거나 자신없어할 경우엔 두 사람의 관계가 자매님 말대로 친구 사이도 연인 사이도 아닌 우정의 사각지대에 머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럴 경우 시간만 낭비할 위험성이 크기에 원점에서 재점검하셔야 합니다.     

 

셋째, 자매님의 어정쩡한 배우자기준의 문제입니다.

보통사람들처럼 자매님은 마음속으로 객관적인 현실상황을 깊이 고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을 옳다 그르다 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렇게 자매님께서 현실기준을 갖고 있을 경우엔 그 형제님을 배우자감으로 선택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할 확률이 높습니다. 어느 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자매님은 세상적으로도 좋고 마음적으로나 영적으로도 좋은 사람을 염두에 두기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론 양립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외적조건과 내적조건을 완벽히 갖춘 남자나 여자는 실제 거의 없습니다. 사람은 대단히 어리석고 미숙해서 어느 한쪽이 풍족하면 다른 쪽이 결핍하게 마련입니다. 소위 세상적으로 좋은 조건의 배우자감이 실제 결혼생활에서 멋진 남편과 아내로 자리매김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한쪽을 포기하거나 기준을 완화시키는 게 지혜입니다.

 

이러한 배우자선택문제에서 저는 최소기준점으로 다음 3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비전이 같은 배우자, 둘째 나와 여러 측면에서 어울리는 배우자, 셋째 대화가 잘 통하는, 즉 육적, 혼적, 영적으로 대화가 잘 맞는 배우자입니다. 이러한 기준에서 그 형제를 잘 살펴보고 자매님께서 평가해보시고 그 결과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현실적으로 부족함이 있더라도 주님께서 배우자감으로 품으라면 품어야 하며, 아무리 내가 좋아하고 상대방도 좋아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두 사람이 깨끗이 단념해야 합니다. 그만큼 배우자선택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교제하는 사람이 진짜 내 배우자감인지 구별하기 어렵더라도 길은 있으며, 하나님께로부터 분명한 응답을 받기 위해선 결혼기도노트를 써가면서 일정한 데이트기간을 두고 다음 4가지를 만날 때마다 체크해보면 보다 명확해집니다. 첫째 상대방의 장점(좋은 부분), 둘째 상대방의 단점(걸리는 부분), 셋째 내 솔직한 상대방에 대한 속마음, 넷째 영적인 메시지(주님의 뜻). 제 결혼칼럼 <결혼기도를 어떻게 하나요>를 읽고 참고하신 다음 이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결과가 한눈에 들어오니 꼭 실천해보시기 바랍니다.

 

넷째, 가족에 대한 부담감과 사람을 두려워하는 문제입니다.

자매님은 지금 교제하는 형제를 가족에게 소개시키기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 형제님도 그런 자매님의 모습을 보고 부모님께 알려지는 걸 꺼려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두 사람이 부모님을 부담스러워하는 건 더 깊은 교제로 나아가는데 방해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상식적으로 결혼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커플은 어느 시점에서 양가부모님께 교제사실을 알리게 마련입니다. 그만큼 두 사람이 결혼의 문턱에 가까워졌다는 뜻이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커플의 경우 두 사람끼리만 좋아했다가 결국 갈라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사람들의 벽을 못 넘어섰기 때문이죠.

 

한국결혼문화에선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의 영향력이 매우 큰 게 사실입니다. 당사자끼리 좋아하고 사랑했음에도 주변사람으로부터 오해를 받거나 불신을 사거나 반대의 벽에 부딪칠 경우 좌절하곤 하지요. 그런데 원인을 따져보면 꼭 주변사람들의 반대 때문만도 아닙니다. 두 사람 사이의 신뢰도와 깊은 사랑, 영적인 하나 됨이 결핍돼있을 경우 오히려 더 갈라설 위험성이 큽니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갈라서고 깨질 정도의 커플이라면, 결혼 후 맞닥뜨릴 수많은 어려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 점은 자매님뿐만 아니라 모든 미혼자들이 결혼 전 깊이 심사숙고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만일 두 사람이 정말 주님으로부터 분명한 확신을 얻고, 본인들이 서로를 위해 자기의 한 몸 기꺼이 던질 희생과 각오가 돼 있다면, 주변의 부정적 평가나 반대조차도 그리 큰 장애물은 안 될 것입니다. 참고로 제 좌우명인 잠언서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를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해준 형제에 대한 부담감 문제입니다.

자매님께서 또 한편 고마움과 동시에 부담을 느끼는 문제는 그 형제가 자매님이 신앙적으로 어려울 때 신앙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그 형제님에 대한 고마움은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이성간에 그 고마움을 사랑으로 혼동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어느 누구로부터 신앙적인 권면과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결국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은혜받도록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외의 어떤 사람도 주님께로 가까이 나가도록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러기에 그 한 가지 문제만을 놓고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거나 심적 부담을 느끼거나, 그 일 때문에 정작 맘에도 없는 사람을 운명적인 사람으로 비약해석해선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거기까지의 역할로 끝날 때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이상으로까지 역할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전자에 그칩니다. 그러기에 두 사람 모두 이 문제에서만큼은 족쇄처럼 생각 말고 그 어떤 부담감도 없이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단지 이 한 가지 이유 때문이라면 절대 결혼해선 안 되며, 이 이유말고 또 다른 여러 가능성 때문에 배우자감으로 고려한다면 가할 줄로 압니다.

 

여섯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배우자의 문제입니다.

제가 미혼자들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하는 내용이지만, 결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은 우리들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각자의 배우자를 선택토록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강제로 이 사람과 해라! 만일 하지 않으면 큰 벌을 내리겠노라고 협박(?)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결혼배우자선택에서 중요한 핵심은 ‘진짜가 오기 전에 가짜가 온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짝이라면 그 어떤 어려운 난관에도 불구하고 결혼으로까지 골인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두 사람이 아무리 좋아하고 사랑한다 할지라도 결혼하기 쉽지 않고 결혼하더라도 큰 고통과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는 운명론과 다른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경륜에 관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결혼하기 전까지 끈질기게 매달려 기도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얻어야 합니다. ‘바다에 나갈 때는 기도 한 번, 전쟁터에 나갈 때는 기도 두 번, 결혼하기 전에 기도를 세 번하라’는 러시아 속담을 묵상하시기 바라며, 주님께서 자매님을 선한 길로 인도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오묘하며, 어떤 때는 중도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한계상황에 다다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어려운 과정을 생략하거나 미봉책으로 수습하고 시간에 쫓기듯 결혼해버립니다. 그 결과 결혼 이후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 속에서 뜻하지 않은 갈등과 위기를 겪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이혼가정이 양산됨은 심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도 이성교제와 결혼배우자 선택문제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아 정확한 지식과 정보가 없이 우왕좌왕하고 실수를 반복하는 형제자매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는 교회의 실수와 잘못이기에 올바른 성경적 결혼관과 남녀차이, 성숙하고 지혜로운 데이트법에 대해 체계 있게 교육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위의 자매처럼 배우자선택을 놓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미혼자들을 주변에서 쉽게 보는데, 대부분 자기 판단에만 의존하거나 자기방식의 기도에만 치우치거나, 또는 지나치게 주변사람들의 말에 부화뇌동해 크게 실수하는 경우를 왕왕 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자선택문제는 결혼사역을 10여년 해온 필자도 정말 조심스럽고 부담스럽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각 개인의 사정과 정황이 다르고, 막상 한 꺼풀 벗겨보면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판이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전화로 상담하든 이메일로 상담하든 피상담자에게 꼭 맞는 정확한 답변을 해주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심도 있는 심리파악과 고유한 성향에 어울리는 적합성, 쌍방간의 유사성, 교제패턴, 원가족과의 문제, 인생관, 비전, 바라는 배우자상 등등의 문제파악을 위해서 <결혼적성검사표>를 통한 일대일심층상담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 그러한 경우라면 헤세드홈페이지에 들어오셔서 일대일상담신청을 통해 도움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아직 솔로인 미혼싱글 모두에게 주님의 크신 은혜가 임하고, 주님께로부터 귀한 믿음의 배필을 선물로 받아 누리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대표/ www.hesedwe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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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 응답받은 건가요? 2012.01.02 04:04

한 30대 초반 자매로부터 교제하던 형제와 헤어지고 새롭게 마음에 품은 형제를 놓고 기도 중인데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교제가 이뤄지지 않아 무척 힘들고 고민이라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자매는 이제껏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많은 응답을 받았기에 지금 이 문제도 쉽게 응답을 받으리라 생각했지만, 생각 외로 상대방이 꿈쩍도 안 해 혼란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 계시한 주님의 뜻은 분명히 그 형제와의 결혼인 것 같은데 현실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라는 그 자매의 고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너무 힘들고 고민되는 문제가 있어 목사님께 이메일을 보내니 귀한 조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올해 서른두 살로 현재 교회에서 같이 봉사하는 한 형제 문제로 고민입니다. 제가 그 형제를 놓고 기도한 지는 약 2년 정도 되고요...가볍게 따로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정도의 사이입니다. 그런데 그 형제는 제가 자기를 품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솔직히 제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데 사실 그럴 만한 용기가 없고, 또 그 형제가 거절할 경우엔 아예 관계가 단절될 것만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민은 그 형제가 나를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자매들과도 잘 어울린다는 것입니다.(중략)

 

제가 그 형제를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그러니까 지금 출석하는 교회로 옮겨왔을 때입니다. 당시 형제는 청년부에서 조용한 모습이었는데, 3년 전부터 회장단에 뽑혀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주님을 위해 저 정도의 열심과 헌신이 있는 형제라면 내 배우자감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싶어 마음에 두고 살피다가 특별히 누구와 교제하는 게 안 보여 2년 전부터 마음에 품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기도하기 시작하니 그 형제 앞에서 어색해지며 부담스럽고, 또 청년들과 친교모임에서도 그 형제가 자꾸 신경이 쓰여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졌습니다. 사실 속마음은 그 형제가 날 신경써주고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왔으면 싶었는데, 그 형제는 늘 청년부 자매들에게 실망스러울 정도로 공평하게 잘 대해줬습니다. 그래서 청년부자매들 대부분 그를 좋아하고 저 이외에 그를 품고 있는 자매도 제가 알기로 두 명이 더 있습니다.(중략)

 

사실 제가 이렇게 그 형제에게 빠져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제겐 그 형제 이전에 1년 간 교제하던 다른 형제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형제를 마음에 품기 시작하자 제 마음이 점점 교제하던 형제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사실 더 결정적인 계기는 2년 전 어느 날 꿈을 꿨는데, 제가 그 형제와 어디를 함께 여행하고 있더라구요. 해외단기선교는 각자 따로 갔다 왔고 또 꿈속의 장소가 선교지가 아닌 유럽의 어느 도시였는데, 정작 꿈속에서 제가 너무 행복해하고 그런 절 그 형제가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비슷한 꿈을 두 번 더 꾸고 난 후 결국 전 교제하던 형제와 결별을 선언하게 되었고, 영문을 모른 채 헤어진 그 형제는 상처를 입고 아예 교회청년부를 떠나게 됐지요... 사실, 이렇게 고민을 털어놓는 지금 이 시간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 때문에 애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시험에 들었다는 자책감도 들구요... 그렇다고 제가 다시 그 형제에게 돌아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고......암튼 제 마음은 온통 지금 그 형제에 대한 생각들로 꽉 차 있답니다.(중략)

 

목사님! 제가 가장 궁금하고 고민이 되는 건 왜 하나님께서 제게 응답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먼저 헤어진 형제는 제게 적극적이고 본인이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다며 저돌적이다시피 다가왔거든요. 저 역시 처음엔 그 형제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배필이 아닌가 생각돼 그 형제가 이끄는 대로 1년 동안 만났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형제에 대한 꿈이 꿔지고 그 형제가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게 무슨 메시지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 주님의 뜻이 새로운 형제에게 있는 건지, 아니면 제 욕심이나 시험에 치우쳐 그런 꿈이 꿔진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처음엔 스스로 욕심에 치우친 거 같아 회개하기도 했지만, 막상 교제하던 형제가 제 곁을 떠나니 더더욱 새로운 형제가 제 짝일 거 같은 예감을 느꼈습니다. 그런 상황을 만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확신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제게 적극 다가오지 않으니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전 이제껏 제 짝이 될 사람이 제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걸 주님께서 주시는 응답의 사인이라고 생각해왔었거든요. 물론, 헤어진 형제가 그랬던 편이었는데, 제가 이렇게 다른 남자를 품고 기도하고 있으니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현실은 답답한데 문제는 안 풀리고, 점점 새로운 형제에게도 지쳐가는 걸 느끼니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속 시원히 응답을 주시면 좋으련만, 아직까지는 현실이 갑갑하고 안갯속 같은 느낌입니다. 정말 지금처럼 답답하고 죽을 지경일 때 제가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을까요? 그리고 정말 제가 품고 기도하는 형제가 제 짝이 맞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제가 언제까지 꿈을 믿고 기다려야 하고,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요? 만일 이것도 아니라면 제가 깨끗이 단념하고 다른 짝을 찾아야 하나요, 아니면 저한테 상처 입고 떠난 형제를 힘들지만 다시 만나야 하나요? 너무 혼란스럽고 답답해 목사님께 제 고민을 털어놓으니 올바른 조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마음에 품고 기도 중인 형제가 자기 뜻대로 적극 다가오지 않는 탓에 너무 힘들어 단념해야 할지,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다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사람을 찾아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자매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샬롬, 자매님! 고민을 혼자 풀려 않고 상담을 요청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어떻게든 주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자매님을 격려하고 지지해드립니다. 자매님의 고민상담을 들으니, 요즘 우리교회 내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져오는 것 같습니다. 자매님처럼 교회 내 이성교제문제로 고민하는 청년들이 많기에 부끄러워하거나 기죽지 말고 힘내시기 바라며 다음과 같이 조언하니 잘 받아들이고 적용하셨으면 합니다.

 

첫째, 좋아하는 형제를 혼자 마음에 품고 있는 문제입니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자매님께서 지금처럼 계속 그렇게 행동하시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걸 미리 아시기 바랍니다. 남녀 간에 지나치게 필에 의존하고 감정에 치우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매님과 같이 속마음을 감추고 감정을 꾹꾹 억누른다면 아무런 결실도 안 맺어집니다. 자매님께서는 형제 쪽에서 무조건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걸 주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하셨는데, 이는 자기생각과 의가 앞선 듯 보이며 실제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이성이 적극적으로 다가오기만 한다고 내 짝이라고 판단하는 건 대단히 위험스러우며, 내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을 배제했다가 뒤늦게 후회할 위험성이 크기에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무르익었다면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본인의 속마음을 전달해줘야 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도 순순히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제가 늘 결혼세미나 때 강조하는 게 양손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두 남녀가 동일한 의지와 사랑의 감정을 느껴야만 교제가 성립하고 결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아무 의지도 행동도 없이 결혼을 꿈꾼다는 건 환상으로 끝나기 십상입니다. 아무리 그 결과가 두려워도 어느 시점에선 분명히 확인할 건 확인해야만 하며, 만일 상대방이 내게 전혀 그런 마음이 없다면 아쉽더라도 깨끗이 마음을 정리해야만 합니다.

 

둘째, 2년간 마음에 품고 있는 그 형제의 태도 문제입니다.

자매님의 말을 통해 정리해보면, 그 형제는 교회 내에서 인기가 있는 편이라 여러 자매가 마음에 두고 있고, 자매님과도 가끔 커피나 식사를 하는 관계인데, 정작 그 형제는 자매님이 자기를 품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거군요. 자매님께 관심이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애매한 관계. 그렇더라도 자매님께서 일방적으로 단정 짓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스럽습니다. 어떤 청년들은 이럴 경우 일방적으로 맹신하여 돌진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아무튼 자매님께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그 형제의 태도에도 어딘가 허점과 불안스런 모습이 엿보입니다. 그 형제는 소위 교회 내에서 인기 있는 모범생부류에 속하는 편 같네요. 하지만 그런 형제자매들에게 자리잡은 문제점은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 사이에 괴리가 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그 형제가 진짜 어떤 인격을 가졌고 성품이 어떠하고 내면의 세계가 어떠한지는 아직 섣불리 단정짓거나 속단하긴 이르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겪어보고 상세히 파악해봐야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남녀 사이에선 개인끼리 만나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기가 무척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타인의 평가나 저와 같은 전문가의 객관적 조언이 중요합니다. 제가 보기에 그 형제는 여러 자매를 놓고 저울질하는 타입이든가, 아니면 대단히 주님 일에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라 어떤 자매님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는 타입이든나, 아니면 자매님 생각대로 자매님을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 어떤 경우가 되었든, 앞서 언급한 대로 자매님께서 그 형제를 정확히 파악해 보는 게 급선무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셋째, 교제하다 헤어진 형제의 문제입니다.

1년간 교제하다 지금의 형제를 마음에 품고 나서 헤어진 형제임에도 자매님께서는 아직 그 형제에 대한 감정정리가 다 안 끝난 듯 보입니다. 물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그 형제가 상처를 입고 교회청년부를 떠났다는 데 대해선 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자매님께서 그 형제에 대해 죄책감을 갖거나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안 떨쳐지고, 계속 새로운 이성을 만나 교제했음에도 이렇다 할 진전이 안 이뤄질 경우엔 그 형제와 연관된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럴 경우엔 그 형제에게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상처를 입힌 부분에 대해 주님께 회개하고 깨끗이 마음을 정리하는 절차를 밟는 게 좋습니다. 혹시 자매님께서도 그런 절차를 안 밟아 그렇게 자꾸 마음에 부담이 남는 걸지도 모르기에 이번 기회에 그런 절차를 밟아보기길 권면드립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현재로선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그 형제가 주님의 어떤 뜻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한 번 더 그 형제를 놓고 기도해보는 게 필요합니다. 제가 쓴 연재칼럼 <이성간 만남의 26가지 성경적 원리>을 읽으시면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넷째, 새로운 형제에 대해 꾼 꿈의 문제입니다.

교제하던 형제와 결별하고 새로운 형제에게 마음을 둘 결심을 하도록 만든 2년 전 꿈은 언뜻 보기에 그 형제에게 어떤 특별한 뜻이 있지 않을까 싶은 내용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자매님은 그 형제에 더욱 집착하고 몰입하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꾸는 꿈이 다 똑같은 게 아니라 다음 3부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스스로 많이 생각하고 마음에 품다가 저절로 꿔지는 꿈입니다. 이럴 경우엔 별다른 사건이 안 일어납니다. 두 번째는 마귀가 주는 시험의 꿈입니다. 이럴 경우엔 우리가 혼란에 빠지고, 엉뚱한 시험에 들고, 잘못된 응답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착각하고, 내용이 안 좋을 때 자신도 모르게 우울해지고 두려움과 불안, 의심에 잠겨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선명하며 요셉에게처럼 반복적으로 주시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자매님께서 꾸신 꿈은, 물론 아직 불확실하지만, 현 단계에선 첫 번째로 귀결될 확률이 높습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그 형제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진전된 꿈의 메시지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이 문제도 내려놓고 기도해보시면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될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배우자와 응답의 때의 문제입니다.

결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되,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각자의 배우자를 선택토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강제로 이 사람과 해라! 만일 하지 않으면 큰 벌을 내리겠노라고 협박(?)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기도해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대다수 미혼자들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기 전 조건이나 감정에 이끌려 서둘러 결론 짓고 사후에 주님으로부터 승인을 받겠다는 어리석고 무모한 태도를 보입니다. 주님이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 사람에 빠져서 주님께 아무리 부르짖는다고 그 사람을 주실 리 만무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순간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기 판단에 이끌려 성급한 결론을 짓고 맙니다. 그 결과는 파국 또는 오랜 세월의 눈물의 골짜기이기 십상입니다. 그로 인해 이혼가정이 날로 증가하는 현실을 바라보는 제 심정은 탄식과 비통함입니다. 그러기에 자매님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배우자를 정확히 분별하고 찾아내기 위해 <올바른 결혼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한 정보는 제 결혼칼럼에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그리고 조급하게 자신의 시간표에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시간표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정확한 때에 정확한 응답을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단계에선 자매님께 어떤 길이 주님께서 예비하신 길인지 알 수 없기에, 자매님은 잠시 그 형제에 대한 몰입에서 벗어나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통찰하셨으면 합니다. 너무 가까이서 사물을 바라볼 때 흐릿해지기에, 자매님은 이번 기회에 그 형제로부터 감정적으로나 시간적․거리적으로 조금 떨어지시기 바랍니다. 그럴 경우 주님께서 반드시 자매님께 명확하고 구체적인 길을 보여주시리라 봅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선 위의 자매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미혼청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감추며 밖으로 끄집어내 해결치 않으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오래도록 속으로 곪게 되고, 급기야는 엉뚱하고 일탈된 행동으로까지 나아가기에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엉뚱한 사람을 내 배우자감으로 잘못 응답받는 한 결혼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의사와 무관하게 나 혼자 좋아한다고, 자기 혼자 응답받았다고 그게 곧 현실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무것도 애쓰지 않는 것보다는, 실수하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열심히 기도하고 도전해보는 게 필요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결혼하기 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올바로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내 짝을 만나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는 게 일반적이기에, 나 혼자 겪는 수치와 좌절이라고 오해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욕심과 정욕에 이끌리지만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정한 때에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결혼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는 물론, 결혼하려는 두 당사자의 확고한 의지와 결단, 깊은 신뢰와 사랑이 선결조건임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대표/ www.hesedwe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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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남과의 결혼으로 고민이 돼요… 2011.11.09 02:45
 

지방에 거주하는 한 40대 초반 자매로부터 사별남과의 결혼을 강요받는 문제로 고민이라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본인은 이제껏 교회봉사를 열심히 하며 주님께서 반드시 믿음의 배우자를 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는데, 자신의 기준과 너무나 동떨어진 남자를 배우자로 추천하는 가족들의 성화로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나가는 남자를 만나기 어려운 환경 탓에 그냥 결혼해버릴까 고민스럽다는 그 자매의 고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여러 번 주저하다가 목사님께 털어놓으면 뭔가 해결책이 있을 것 같아 부끄러움 무릅쓰고 이메일을 보내니 바쁘시더라도 조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현재 마흔한 살인 노처녀입니다. 대도시도 아닌 시골에서 이런 나이 되도록 시집가지 않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다른 분들은 모를 겁니다. 저도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참담한 심정일 때가 있습니다.(중략)


지금으로부터 석 달 전 제 결혼문제로 새벽기도까지 나가시던 어머니께서 저보다 다섯 연상 사별하신 남자집사님을 소개받았다며 너무 괜찮은 사람이라니 꼭 만나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더 이상 부모님께 불효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그분을 만났고, 그 이후 몇 번 더 만남을 가졌습니다. 만나는 가운데 성품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꽤 좋으신 분이고 배려심도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계속 마음이 부담되고 이제껏 결혼기도를 해온 기준과 너무 동떨어진 분이라 그만 만나려는데, 그 집사님이 저를 마음에 들어 한다니까 특히 어머니께서 제게 강력 푸시하고 계십니다. 너 같은 노처녀에겐 그런 남자가 과분하다나요... 물론, 그분이 재정적으로 넉넉한 것도 한 원인이겠지요... 그러나 저는 너무 답답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정말 주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분과 결혼해야겠지만, 아직까지도 주님께서는 제게 아무런 응답을 안 주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그분과 결혼해야 하나요?(중략)


목사님! 우리 가족은 부끄럽게도 아버지가 가장 역할을 제대로 못한 가정이랍니다. 어머니께서 가정경제를 책임지다시피 해오셨기에 지켜보는 자녀들의 심정도 힘들었고, 또 그러다 보니 가정에 도움을 주느라 결혼이 늦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컸었구요... 그러나 그렇다고 제가 결혼배우자마저 가족의 굴레에서 못 벗어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늙으신 어머니의 애원을 매몰차게 뿌리치는 듯한 제 모습도 신앙인답지 못한 듯해 괴롭습니다. 교회에서 예배 드리든 기도 하든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제가 정말 사람들 말대로 믿음이 부족하고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건가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제 자신이 속상하기도 밉기도 하답니다...(중략)


목사님! 제가 정말 크리스천미혼남자와 결혼하려는 게 너무 큰 욕심이고 잘못인가요? 제 나이가 정말 미혼청년과는 결혼할 수 없는 불가능한 나이인가요? 만일 그렇다면 깨끗이 미혼형제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고 재혼자와의 결혼이라도 해야겠지요? 결혼사역전문가이신 목사님의 조언을 통해 제 마음을 결정하려 하니 객관적이며 신앙적인 조언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목사님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조언해주세요. 이젠 어떤 길이든 순종할 생각이니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노처녀라고 무시를 당하지만 초혼남자와 결혼하고 싶은 자신의 바람과 달리 재혼자와의 결혼을 강요받는 듯한 현실에 낙담하며 힘들어하는 자매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샬롬, 자매님! 상담을 요청해주셔서 감사드리며 힘겨운 문제로 고민하는 자매님께 위로와 격려를 보내드립니다. 자매님께서 많이 편안해지신 듯하지만, 실상은 내면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복잡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어쨌든 결혼문제를 내가 응답받아 결정하지 않고 주변사람들에게 휘둘리며 남의 의견에 따라 결정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결혼했다 후회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으며, 그로 인해 파혼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겠지요. 그런데 대부분 미혼자들은 자매님과 같이 힘겹고 복잡한 상황으로 내몰리면 끝까지 주님을 붙잡는 게 아니라 자포자기해버리기에 안타깝습니다. 다행히 상담을 요청한 자매님께 용기를 가지시라고 말씀드리며, 다음과 같이 조언 드리니 잘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결혼적령기와 배우자조건에 대한 문제입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볼 때 자매님의 나이는 결혼적령기를 많이 지나온 게 사실입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미혼자와의 결혼이 쉽지 않은 일이며, 내 욕심껏 구하기엔 만만치 않은 나이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매님께서 미혼자와의 결혼이 불가능한 나이라는 얘기는 아니니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엔 자매님처럼 마흔이 넘은 미혼남녀가 생각 외로 많으며, 마흔이 넘어 미혼자끼리 결혼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춘 미혼배우자감을 꿈꾼다면, 자매님께서 속히 그 꿈에서 깨어나셨으면 합니다. 문제는 내가 어떤 기준에서 배우자를 고르려는가 입니다. 굳이 초혼을 고집할 경우엔 배우자의 경제적 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으며, 여러 면에서의 안정성을 우선시할 경우엔 재혼자라도 무방하겠지요.


둘째, 가족환경의 문제입니다. 자매님은 아버지가 가장 노릇을 제대로 못한 역기능가정 출신이기에 결혼에 대해 일반인보다 훨씬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그로 인해 결혼에 대한 기대감이 작았고 이성교제에 대해서도 소극적이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고생하시는 어머님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감으로 인해 오랜 시간 가정경제에 일정부분 기여하느라 결혼을 후순위로 돌려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자매님께서 늙으신 어머니의 애원에 못 이겨 결혼을 결정하려 하신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결혼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떠밀려서 해서도 안 되고, 주변에서 현혹하는 말에 넘어가서 결정해서도 안 되고, 단지 외적조건이 좋으니까 눈 딱 감고 결정해서도 안 되는 인생의 가장 큰 중대사입니다. 왜냐하면 결혼 후 신혼여행을 갔다 오자마자 바로 부부에게 적나라한 현실이 펼쳐지니까요. 자매님께서 먼저 불우했던 가정환경에 대한 억눌림과 상실감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에 차분히 결혼에 임하는 게 순서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늦었더라도 이 순서를 어길 경우 조급함과 서두름으로 인해 훗날 큰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큽니다.


셋째, 이제껏 기도해온 배우자기준에 대한 문제입니다. 앞서 잠깐 언급한 것과 달리 이제까지 자매님께서 어떤 배우자감을 놓고 기도해왔느냐가 중요합니다. 만일 자매님께서 외적조건도 완벽하고 인격과 신앙을 비롯한 내적조건마저 완벽한 남자를 찾아왔다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과거에도 그런 배우자는 쉽지 않았고, 현재도 더더욱 불가능함을 깨닫지 않습니까? 아무리 새벽기도를 열심히 해도 이렇게 욕심에 치우친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인 배우자를 구할 때 문제가 애매하고 복잡해집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천양지차이기에 주님께서도 우리들에게 결혼응답을 더디 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장 지혜로운 건 자기수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자를 찾으면 될 텐데, 정작 아이러니는 미혼자들이 자신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통찰하지 않고 과대시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십년이 다 되도록 결혼사역을 해온 저도 이런 미혼자들을 만날 땐 답답함과 연민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자매님께서 어떤 기준을 놓고 기도해오셨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까지 결혼응답이 없는 결과로 미루어볼 때 그 기준 어딘가에 문제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매님께서 미처 상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주님이 실망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좀 더 열린 시각으로 배우자기준을 새롭게 정립하셨으면 합니다. 이사야 55:8-9 말씀대로, 인간의 생각과 길보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높음을 깨닫고 주님 앞에 더욱 겸손해지셨으면 합니다.


넷째, 신앙인 재혼자와의 결혼문제입니다. 앞서 배우자기준에서도 언급했지만, 자매님께서 결혼응답을 받음에 가장 걸림돌인 재혼자와의 결혼문제를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초혼자와 재혼자의 결혼은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남자초혼에 여자재혼, 여자초혼에 남자재혼의 결합은 사회의 한 흐름이기도 합니다. 그것의 옳고 그름을 단지 초혼이라는 잣대로 삼아선 안 될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렇게 결혼하려는 배우자감이 어떠한 사람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초혼배우자보다도 더 나은 장점이 있다면 재혼배우자를 선택한들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떠미는 건 별개로 치고, 정작 자매님께서 그 남자분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의 신앙과 성품, 성격, 사람에 대한 태도, 성실성, 매너, 중후함 등등 얼마나 많은 체크항목이 있습니까. 단지 경제력이 좋다는 그 한 가지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필히 후회할 가능성이 크기에 절대 해선 안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것과 달리(그런 면도 일정부분 포함해서), 그 사람이 그 어떤 초혼자보다 더 나은 장점을 여럿 가진 분이라면 배우자감으로 손색없으리라 봅니다. 비록 미혼자와의 결혼을 꿈꾸고 기도해온 자매님의 소망과는 어긋나지만, 미혼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나은 면을 갖춘 배우자감이라면 그에 못지않은 좋은 배우자감일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자매님께서 거부감을 내려놓고 주님께 정직하고 겸손히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이분이 내게 예비하신 배필이냐고요. 반드시 주님께서 자매님의 기도에 가든 부든 응답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직까지 주님께서 아무런 응답을 주시지 않고 침묵하신다는 건 자매님께서 온전히 맡기고 기도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실 수도, 아니면 자매님의 선택을 존중해 자매님의 뜻대로 결단하길 기다리신다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어느 방향으로의 응답이든, 먼저 주님께 다 맡기고 주님 뜻에 따르겠노라는 겸손의 결단이 선행돼야 하리라 봅니다.

 

다섯째, 자매님께서 거주하는 환경의 문제입니다. 지금 자매님께서 사는 동네는 대도시가 아니기에 주변사람들의 영향이 큰 여건일 겁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하지 못하고,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게 마련입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남자나 여자와 결혼하려 할 때 가족을 비롯 주변사람들이 적극 의견을 개진하는 건 실수와 낭패를 줄여주는 장점이 있는 반면, 내가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결행하려 할 때 큰 걸림돌이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자매님께서 아직 주님으로부터 분명한 응답을 받기도 전에 주변사람들이 자매님보고 믿음이 부족하고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렇다는 식으로 함부로 얘기하는 걸로 미루어 자매님에게 크게 단점으로 작용하는 게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자매님께서는 그분들의 말에 갇혀 미로를 헤매듯 혼란을 겪고 갈팡질팡하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객관적으로 볼 때 자매님께서 크게 잘못한 게 없고, 주변사람들의 말도 객관성을 결여한 듯 보이니 한귀로 흘려버렸으면 합니다. 대도시에서는 자매님 같은 분들이 좀 더 생활하기 편한 편이며, 또 어떤 가정에서는 자매님 같은 분을 들볶지 않고 존중해주는 가정도 있답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볼 때 자매님처럼 결혼문제에 압박을 받는 게 전혀 안 받는 편보다 훨씬 좋고 바람직한 결론을 얻는다는 점을 아셨으면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의연하고 홀가분해지신 다음, 주님께 모든 걸 맡기기 바랍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당장 이래라 저래라 답을 줄 순 없지만, 주님을 의지하면 반드시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어떤 길이든 자매님께 가장 유익하고 좋은 길로 이끄시리라 믿기에, 패배감에 젖거나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지지 말라는 당부도 아울러 드립니다. 그럼 평안하시고 주 안에서 승리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샬롬!


인간의 결혼문제에선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게 아닙니다. 신앙인의 결혼문제도 어떤 틀에 맞춰 일방적으로 몰아가서는 안 됩니다. 이는 결혼할 미혼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이나 주변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말입니다. 위의 자매와 같이 적절한 나이에 교회나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 미혼자들이 우리주위에 너무 많기에 가슴이 아픕니다. 특히 형제들보다 자매들이 훨씬 많기에 필자는 막중한 책임감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어찌할꼬!” 하시며 탄식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셨으면 합니다.


오늘날 만혼(晩婚)자들의 결혼문제의 본질을 들춰보면, 그렇게 되도록 부추기거나 방임한 잘못이 교회공동체에 있음에도 별다른 책임감을 안 느끼고, 여전히 교회울타리 내에만 가둬놓으려는 목회자들의 편협된 시각이 문제라고 봅니다. 결혼문제는 아무리 대형교회라 하더라도 한 교회만의 노력으로는 결코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적자원과 전문성이 부족하거니와, 당사자들이 도저히 맘에 안 들어 할 경우 아무리 영적으로 권면하고 떠밀어도 안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소위 잘난 미혼자들끼리 몇 쌍 엮어주는 걸로 소임을 다했다고 자부하는 목회자라면, 그는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아직도 짝을 찾지 못한 99%가 애절한 눈빛으로 학수고대하고 있으니까요. 그러기에 결혼문제는 올바로 도와주려 들면 들수록 힘들고 어려우며, 사명감 없이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사역이며, 마귀가 미혹하는 오늘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영적 싸움인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둘 개교회 위주로 결혼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진행되는 걸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엔 안도감과 우려감이 교차함을 느낍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교회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건 매우 기쁜 일이지만, 너무 성급하게 만남방식의 프로그램을 추진하거나 모든 걸 우리교회가 다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식의 독식(獨食)과 우월감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결혼문제해결책을 결혼정보회사의 매칭방식을 차용 그대로 답습했다가는 머잖아 큰 낭패를 경험하거나 교회에 우환이 될 만한 무거운 짐으로 돌아올 것이며, 그로 인해 오히려 당사자의 불행은 물론 목회자의 권위마저 손상되는 참담한 결과를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이는 십여 년 간 냉혹한 결혼사역현장에서 눈물 흘리고 피 흘려온 경험자의 경고이자 사랑의 권면입니다. 부디 더 이상 결혼문제로 고통 겪는 미혼자들의 신음소리가 하나님 귀에 피 끓는 호소로 울리지 않길 학수고대하며, 한국교회의 연합과 결속, 겸허한 각성을 촉구합니다.


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대표/ www.hesedwe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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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이럴 땐 제가 어떡하나요? 2011.09.29 01:41
 

주변에서 반대하는 형제와의 교제로 인해 어찌할 바 모르겠다며 고민을 호소하는 한 자매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그 자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여기는 자신과 달리 주변사람들의 반응이 한결같이 그 형제에 대해 부정적이라 괴롭고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 자매의 고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제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하는 한 형제와 교제를 하는 중에 있습니다. 부친은 알콜중독으로 사망하셨구요. 저의 고등학교 때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던 분이 계셨는데 기도하던 어느 날 그분이 되게 보고 싶어서 기도를 계속하게 되었고 6개월이 되던 어느 날 그 선생님을 결혼식장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 만난 후에 모친이 자신의 아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하여 한두 번 만나고 교회로 인도 좀 해줄 수 있겠냐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그래줄 수 있냐고 하시길래 저의 생각에 한 영혼을 회복시키는 일이라 여겨져 흔쾌히 허락을 했고 그 이후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중략)

 

처음 그 형제를 만나기 전에는 기도할 때 상처주면 받으라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더 크지 않느냐는 그런 음성을 듣고 믿음을 가지고 만났습니다. 그렇게 만남을 이어가면서 그가 교회도 가고 수련회도 가고 모임에도 참석하게 됐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들에 대해 회복이 일어나고 있어서 저는 기도제목대로 역사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만남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저의 교회 멘토는 그의 믿음의 연약함과 부친의 알콜중독이었던 점을 들면서 상처가 많아서 성품도 좋지 않다고 맘에 들어 하지 않고 그를 향해 기도할 때도 진치고 있는 교만의 영이 떠나가도록 기도를 하시는 등 계속해서 반대를 하시며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해서 마치 교제를 하고 있는 제가 믿음이 없는 등으로 이야기를 하고 다니시고 다른 분들과 언니도 반대를 해서 제가 맘이 너무 상하고 만남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중략)

 

목사님! 이런 만남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쁜 것인지 조금 답답한 마음에 상담을 요청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그만두자니 인도하심이 너무 분명하게 느껴지는 일을 제가 힘들다고 그만하는 것은 믿음이 없이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계속하기에는 제가 힘들고 저의 힘들어하는 모습으로 인해서 형제도 힘들어하고 둘 다 상처가 되는 것 같은데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잘 분별이 되지 않습니다. 제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소망의 주님이시고 인간의 어떠함도 바꾸실 수 있는 분이란 믿음이 있는데 동일한 음성을 멘토 집사님들에게는 한 명도 안주시냐고 제게 그런 식으로 말하시는 것이 저를 더 힘들게 하고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좀 알려주세요.. 기도도 부탁드립니다.

 

본인은 점점 긍정적으로 생각됨에도 주변사람 대부분이 반대하기에 교제에 혼란을 느끼는 자매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샬롬, 자매님! 상담을 요청해주셔서 감사드리며 먼저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자매님과 같은 상황에선 누구나 혼란을 겪게 마련이며, 주변사람들 말에 더욱 갈팡질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매님께서 주님으로부터 분명한 응답을 받겠다는 자세가 급선무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지금 현재 교제하는 형제에 대한 자매님의 고민 충분히 이해하며 다음과 같이 간략히 조언 드리니 지혜롭게 잘 받아들이셨으면 합니다.

 

첫째, 그 형제의 가족력의 문제입니다. 특별히 형제의 부친께서 알콜중독으로 사망하셨기에 걱정하시는 점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그런 문제가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은 게 사실이구요. 하지만 문제는 지금 현재의 그 형제의 모습, 다시 말해 그 형제의 영적 상태와 정신.심리상태입니다. 그 형제에게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듯한 나쁜 습성이 여전히 남아있고 아무리 개선시키려 해도 개선 불가능할 경우엔 당연히 재고해봐야겠지요. 그러나 지금 현재상태가 건강하고 부족하더라도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물론, 성령으로 거듭났을 경우엔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러니 섣불리 예단하거나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지 말고 먼저 그 형제의 현재 상태에 대해 객관적이면서도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파악해야 할 줄 압니다.

 

둘째, 그 형제를 처음부터 이성소개로 만난 게 아니라, 교회학교 은사님으로부터 아드님의 신앙적 권면 요청으로 만나게 된 점입니다. 이럴 경우엔 애매한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기도한 대로 잘 따라와 교회도 가고 수련회도 가고 모임에도 참석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들에 대해 회복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자매님도 차츰 그 형제를 배우자감으로 고려하기 시작한 것 같군요. 이럴 경우엔 자매님이 진정 그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와 단순히 동정심이나 그 형제에 대한 신앙적 의무감으로 만나는 건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정심은 사랑과 다르며 또 오래가지도 않고, 결혼 후엔 뒤늦게 후회할 위험성도 있습니다. 만일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느 정도 선을 긋고 그 형제를 돕고, 이젠 더 이상 내 도움이 필요 없겠다 싶으면 더 이상 만남을 갖기보다 더 나은 신앙적 멘토에게 이양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물론, 이럴 경우 그 형제가 오해하거나 싫다고 할 경우 난감해질 수 있기에 언행에 조심하고 지혜롭게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 반응의 문제입니다. 자매님의 멘토와 주변 친구나 언니들이 그의 가족력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고 상처와 성품의 문제를 들먹이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앞서 언급했듯, 주변사람들이 성급하게 판단하는 건 아닌가 우려가 됩니다. 만일 그 형제를 충분히 겪어봐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경우라면 모를까(설령 그렇더라도 지금의 변화된 모습까지는 모를 수 있기에), 알콜중독의 아버지 때문에 무조건 나쁘게 될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배우자감으로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는 건 조금 지나치지 않나 싶습니다. 심지어 자매님께 교만의 영과 믿음부족을 언급하며 반대하는 건 역으로 그들에게 동일한 문제가 있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사실 저도 이제껏 주변사람들의 반대가 심할 경우 무조건 교제를 진척시키는 건 자칫 수렁에 빠질 위험성이 크기에 속도를 늦추거나 피하는 게 좋다고 권면해왔습니다. 그런데 자매님께서 그를 만났을 때 일단은 편안했고 앞으로의 인생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역사하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신중하고 조심스럽습니다. 정말 그렇게 말하는 자매님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고 충분한 기도 후에 얻은 확신이라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변사람들의 말에 무조건 휘둘리기보다 주님으로부터 분명한 확신을 얻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배우자를 확인하는 올바른 방법의 문제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에 이어서 내 결혼배우자를 확인하는 방법을 간략히 알려드리면, 먼저 나와 비전이 같으냐, 두 번째 나랑 여러 면에서 잘 어울리느냐, 세 번째 육적.혼적.영적 대화가 잘 통하느냐 입니다. 그러한 기초 위에 그 형제와 이제껏 만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 만날 때마다 다음 4가지 기준에서 노트에 적어가면서 체크해보시면 훨씬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 형제에 대해 좋은 점을 체크해보십시오. 두 번째는 그 형제의 걸리는 점(단점)을 체크해 보십시오. 세 번째는 그 형제에 대한 솔직한 느낌(내 속마음)을 체크해 보시고, 네 번째는 영적 메시지(성경말씀, 성령님의 내적음성, 환경을 통한 계시 등)를 체크해보십시오. 그렇게 꾸준히 기도하면서 객관적으로 노트에 기록하다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형제에 대한 내 마음의 그래프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객관적으로 여실히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결혼기도를 한 후 어떤 결론이 내려지면 더 이상 주변사람들 말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어질 것입니다. 주변사람이 반대하든 찬성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응답을 받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 형제도 기도하여 분명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쌍방이 분명한 응답과 확신을 얻어야 진정 주님께서 허락하신 배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생략한 채 단지 현실이 어렵다고 아무렇게나 결론을 내려버리면 후회할 위험성이 크며, 나중에 후유증으로 고생할지도 모릅니다.

 

아무쪼록 자매님께 주님의 선한 도움의 손길이 임하길 기도드리며, 두 사람이 지금부터 보다 치밀하고 꾸준한 자세로 결혼기도를 시작하길 권면합니다.

 

위의 자매처럼 우리주변엔 이성교제와 결혼문제에서 다양한 문제들로 고민하는 미혼청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변사람들로부터 도움과 지지를 받기는커녕 성급히 비난과 판단을 받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사실 이성교제와 배우자선택문제에서 최종결정권자는 하나님과 당사자 두 사람뿐입니다. 그런데도 주변사람들은 당사자보다 더 잘 아는 척, 그리고 하나님보다 더 의로운 척 함부로 판단하고 조언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는 대단히 위험하며 자칫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려스러운 부분은 두 사람만의 감정으로 치달아 주변사람들의 객관적인 조언이나 우려를 아예 무시하고 조급히 결혼으로 나아가는 경우입니다. 결혼을 그렇게 서둘러서 감정적으로 쫓기듯 결정해버리면 그만큼 후회할 가능성이 큼에도, 대부분의 미혼자들은 자기들의 생각과 감정과 판단에만 의지합니다. 이럴 경우 훗날 비극적인 결과로 귀결될 수 있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필자가 안타까운 건 우리 주변의 교회청년들이 지금까지 교회 내에서 이런 문제에서 이렇다 할 교육이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다보니 비성경적인 정보에 의해 휘둘리고, 또 엉뚱하게 금욕적이거나 성급한 계시로 인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를 봅니다. 이로 인해 교회 내에서든 밖에서든 이성교제를 더욱 터부시하고, 그로 인해 더욱 심각한 부작용이 악순환처럼 반복되는 경우를 봅니다. 결혼을 무조건 쉽게 아무렇게나 하겠다는 태도가 문제인 것처럼, 결혼을 아예 안 하겠다는 태도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게 극단적인 사고나 행동패턴으로는 제대로 된 결혼준비과정을 겪을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성령님의 인도함 받는 성경적인 결혼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아무쪼록 이성교제로 인해 힘들어하는 미혼청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한국교회가 저들을 위해 더 많은 관심과 기도를 기울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대표/ www.hesedwe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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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눈치 보느라 교제가 어려워요.. 2011.08.31 02:13
 

교회 청년부 내 리더인 한 30대 초반 형제로부터 남들 눈치 보느라 교제가 어렵고 힘들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형제는 리더로서의 거룩한 책임감과 청년부원들에게 행여나 소문이 날까봐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자매들과 거리를 둬왔지만, 그로 인해 점점 마음이 무거워지고 요즘엔 기쁨이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형제의 고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여러 가지 고민 끝에 목사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저는 올해 서른 두 살에 청년부 리더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해왔고, 임원으로서 실수하지 않도록 최대한 행동에 조심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게 이성의 감정을 드러내는 자매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가졌었고, 또 나 스스로 눈길이 가는 자매에게 결벽하리만치 관심을 차단하려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껏 그런 절제된 행동이 큰 어려움 없다가 요즘엔 맘대로 되지 않아 고민스럽습니다. 청년부원들에게 교회 내 이성교제를 각별히 조심하라고 주의를 줘왔던 터라 내가 청년부 내의 한 자매와 교제를 시작하게 되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자못 걱정스럽습니다. 이해해주는 쪽보다는 손가락질하는 숫자가 더 많지 않을까 고민이 됩니다.(중략)


목사님! 제가 지금 답답한 건 저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말들을 이제껏 두서없이 남들 앞에서 해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막상 어떤 한 자매를 마음에 품고 보니 제 감정이 제대로 통제가 안 됩니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죄책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교회 내 이성교제는 불미스런 일이 발생할 경우 교회의 덕이 안 됨은 물론 당사자들에게도 큰 상처로 남는다는 교육을 받아왔고, 스스로도 그렇게 인식하며 각별히 신경써왔습니다. 그런데 서른 살을 넘기다 보니 결혼에 대한 간절한 생각과 이성교제에 대한 갈급함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여전히 교회는 이성교제를 터부시하고 나 또한 이제껏 그렇게 청년부원들에게 강조해왔었기에, 내가 먼저 그런 인간적 생각에 빠져 교회 내 어떤 자매와 교제를 시작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시험에 빠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막상 그런 생각이 들면 이러지도 못하고, 또 그렇게 우유부단하면서도 이성에 대한 애틋함이 간절해지는 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청년의 정욕을 이기려고 종종 금식기도까지 해왔지만, 아예 이성에 대한 생각을 차단하고 마음에서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떨쳐버리고 싶지 않은 생각이 강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내 모습이 싫어지고 죄책감마저 드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중략)


목사님! 제가 지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청년부리더로서 깨끗이 교회 일에만 전념하고 이성에 대한 생각을 아예 접는 게 바람직한가요? 아니면 주변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관심 가는 자매와 눈에 안 띄게 이성교제를 하는 게 좋을까요? 지금 저는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예전과 같이 청년부원들 앞에 서는 게 부담스럽습니다. 어떤 땐 제가 위선자처럼 느껴지고, 하나님께마저 죄를 짓는 건 아닌가 답답합니다. 정말 언제까지 이렇게 이성과 담을 쌓고 교회에서 주님 일에만 신경 써야 하는지 괴롭습니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몰입할 수만 있다면 좋은데, 요즘엔 그마저도 제대로 안 되니 주님 앞에 부끄럽고 양심에 가책이 됩니다. 하나님께선 언제쯤 결혼을 허락해주시나요? 또 이런 식으로 기도만 하며 교회 일에 헌신하며 기다리는 게 성경적인 결혼준비인가요? 너무나 답답하고 혼란스러워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바쁘시더라도 꼭 답변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청년부리더로서 남들 눈치 때문에 이성교제를 엄두도 못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괴로워하고 죄책감에마저 시달리는 형제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샬롬, 형제님! 상담을 요청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이제껏 열심히 청년부리더로서 봉사해온 것을 격려하며 칭찬의 박수를 보냅니다. 형제님의 메일을 받고 제 마음이 무척 아팠고, 비록 형제님이 섬기는 교회 목회자가 아니라도 같은 목회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이제껏 십 년 가까이 결혼사역을 해왔지만, 아직도 한국교회엔 청년들의 이러한 고민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고, 제대로 된 도움을 못 주고 있습니다. 간헐적으로 잠깐 관심을 주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만, 그런 식으로나마 최소한의 관심을 기울이는 교회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아무튼 앞으로 현재 잘못된 한국교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형제님 또한 용기를 내시길 바라며 다음과 같이 조언 드리니 잘 새기시고 적용하셨으면 합니다.


첫째, 형제님은 한국교회 고착화된 전통의 피해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난날 한국사회에 복음이 심어지는 과정에서 터부시되던 교회 내 이성간 만남과 교제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형제님은 알게 모르게 길들여졌고,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교회 내 이성교제가 잘못이란 통념에 고착화됐고, 청년부리더로서 책임감을 갖고 이성교제보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게 중요하다고 남들에게 강조해왔던 게 아닐까요? 일단 형제님께서 느끼고 있는 죄책감에선 벗어나길 바랍니다. 형제님의 잘못보다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어른들의 잘못, 한국교회 패러다임의 잘못에 문제의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형제님 스스로 느끼는 이중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형제님은 이제껏 매우 자연스런 인간의 감정을 잘못된 걸로 오해해왔습니다. 교회 내 이성교제는 방임하는 것도 통제하는 것도 둘 다 문제의 소지가 큽니다. 그보다는 올바르게 이성 교제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성경적 원리에 따른 결혼준비교육을 시켜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껏 형제님은 교회 내 이성교제는 잘못이고, 자칫 악으로 빠지거나 많은 이들을 실족시킬 위험성이 크다고 믿어왔기에 스스로 괴리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제껏 그러한 교리(?)에 충실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막상 자신이 이성에 대해 관심이 가고 연모하는 자매가 나타나니 갈등하게 된 것이지요. 주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허락하신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임에도 형제님은 그것을 율법과 윤리와 도덕의 잣대로 판단하려 했으니 당연히 괴로울 수밖에요.


셋째, 사람들의 눈을 너무 의식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형제님과 같은 입장에서 다른 사람 입장을 무시하거나 전혀 고려치 않는다면 이 또한 문제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형제님이 마치 중세수도사나 독신은사자인 양 오해해 이성에 대한 감정을 아예 차단하고 마음을 닫는다면 이도 큰 문제입니다. 그렇게 위선적인 삶을 살다가는 훗날 자칫 성적 일탈의 수렁에 빠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솔직해져야 합니다. 지금 그 문제로 정말 힘들다면, 그 힘듦은 형제님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으며, 그 문제를 주님께 아뢰고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결책을 찾으려 지금과 같이 상담을 요청했기에 다시금 칭찬과 격려를 보냅니다. 저는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청년부리더인 형제님께서 담당교역자와 상의해 청년부분위기를 한 번 바꿔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청년부 내에서 건전한 이성교제가 죄악시되는 분위기가 아니라 권장되는 분위기로 말입니다. 저와 같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충분한 사전준비를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며, 풍성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형제님께서 한 번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넷째, 결혼적령기인 형제님 나이의 문제입니다. 형제님과 같은 나이에 이성교제를 제대로 못해보고 결혼을 하는 건 자칫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성을 보는 안목을 키우지 않고, 남녀 간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겪어보지도 않고, 그저 소꿉장난하듯 한 지붕 밑에서 사는 게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은 없습니다. 제가 이제껏 수많은 미혼청년들을 상담해본 결과 가장 참담하고 안타까웠던 사례는 마흔이 넘도록 제대로 이성교제다운 교제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채 교회 내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형제님께서는 이제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나이이고, 이성교제를 실천해야 할 나이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가정을 세우기 위한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만일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자매 쪽에서도 형제님을 마음에 두고 있다면 두 사람이 은밀히 교제를 시작하는 것도 좋습니다. 굳이 남들 눈을 의식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두 사람만의 감정으로만 치닫지도 말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서로를 확인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형제님이 평생 청년부소속원이 아니기에, 이젠 그 다음 인생스테이지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미래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며, 주님께서도 그런 형제님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다섯째, 청년의 정욕을 처리하는 문제입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게 좋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결혼제도를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혼자서는 외로움과 성적인 유혹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둘째치고 교회 내 수많은 이들이 날마다 그 문제로 고민하지만, 성경적 대안을 몰라 고민하는 걸 봅니다. 형제님께서 정욕을 이기려고 금식기도를 한 건 매우 잘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단지 그렇게 금식기도에만 매달린 채 결혼을 후순위로 돌려놓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성에 대해 생각하는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단지 이성을 떠올리며 음란한 생각을 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나 결혼할 마음도 없이 단지 성욕해소의 대상으로 이성을 바라보는 게 죄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형제님께서 사고를 전환해 교회 내 이성교제가 죄가 아니며, 잘못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혼과 가정을 세우는 준비단계라고 생각하기 바라며, 교회 내에서 이를 공론화하여 변화시키려는 거룩한 부담감을 갖는 것도 주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형제님을 귀히 사용해주시길 소망하며, 형제님의 앞날에 주님의 선한 인도하심이 있길 기도드립니다.


위의 형제처럼 오늘날 한국교회엔 이성교제와 결혼문제로 고민하는 미혼청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단지 교리에 가두거나 그릇된 전통에 가둬 놓는다면 청년부는 점점 공동화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욕망을 주시고 이성에 대해 민감한 관심을 가진 인간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독신(고자)을 강조하셨지만(마 19:12), 그렇다고 모두가 독신은사자는 아니라(고전 7:7)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이성에 대해 눈을 뜨고 관심이 크고 결혼을 코앞에 둔 미혼청년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못 주고 있는 한국교회의 구조적 모순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애통한 일입니다. 이들을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머잖아 한국교회는 큰 화를 입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현실이 이런데, 엉뚱하게 돈벌이나 정치에 관심을 파는 목회자는 참다운 목회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청년부 결혼문제를 잘 해결해줄 때 교회청년부는 힘을 얻고 크게 부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방치하거나 외면할 경우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청년들이 청년부를 떠나고 아예 교회를 떠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를 올바로 인식하는 목회자나 교회지도자는 깨어있는 선각자고, 이를 모르거나 알고도 방치하는 이는 게으른 종이며, 무지한 종이고, 양심을 저버린 바리새인과 같은 위선자일 뿐입니다. 내 자녀의 결혼문제처럼, 지금 교회청년들의 절규를 듣기 바라며, 결혼문제가 곪을 대로 곪았음을 통절히 깨닫길 바라며, 이제껏 게으르고 무관심했었음을 통렬히 뉘우치길 바라며, 양심의 화답이 있길 바랍니다. 뜻이 있는 곳에 반드시 길이 있으며,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반드시 새 길이 열릴 것입니다.


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대표/ www.hesedwe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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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만남의 형제가 불안해요! 2011.07.15 12:12

한 30대 중반 자매로부터 인터넷을 통해 만난 형제가 결혼하자고 적극 다가오는데 아직 확신이 안 서 불안하고 답답하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형제는 자신을 믿어달라며 묻는 질문에도 잘 대답해주지 않고, 궁금해 물으면 오히려 정색하며 너무 꼬치꼬치 알려고 한다며 핀잔을 주는 태도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지고 만남이 부담스러워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매의 고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목사님의 상담칼럼을 읽고 용기를 내 목사님께 이메일을 보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닌 올해 서른다섯의 초등학교 교사로 청년부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 저보다 4살 위인 한 형제를 우연히 기독교만남사이트를 통해 알게 돼 교제를 하게 됐습니다. 그 형제는 주일예배에 출석하는 정도로 특별히 봉사하는 건 없습니다. 그리고 그 형제는 직장에서 영업일을 하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가끔 해외출장을 간다고 하는데 상세히 알고 싶어 물으면 얼버무리거나 뭘 그리 꼬치꼬치 묻냐고 핀잔을 줍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내가 너무 상대방을 불신하고 불쾌하게 만든 건 아닌가 후회되기도 했습니다.(중략)

 

그런데 목사님! 저는 아직 그 형제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게 없고 그 형제가 너무 적극적으로 결혼하자고 달려드는 게 부담스럽습니다. 저 역시 그 형제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맞고 또 싫은 것도 아니기에 만나 진한 포옹을 할 땐 흥분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 형제에 대해 확신이 안 섰기에 이제까지 적극 저항하여 위기상황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형제에게 끌려 제 마음 한구석에선 저렇게 적극적으로 결혼하자고 다가오고 만나서 자상하게 배려해주는 이 형제를 그냥 받아주는 게 주님의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자꾸만 저항할 힘이 부치는 걸 느낍니다. 나이도 나이인지라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형제와 결혼해버리면 어떨까 고민스럽기도 합니다.(중략)

 

목사님! 혹시 제가 지금 잘못 판단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요? 혹시 있다면 지적해주시고 올바른 조언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생일대 가장 큰 사건인 결혼을 실패해 고생하는 주변사람들을 보아왔기에 제가 너무 예민하고 불안한 건 아닐까요? 어떨 땐 기분 나쁘게 돌아간 형제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낸 후 제가 너무 민감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사람을 의심한 건 아닌가 회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행동해 그 형제와 마찰 없이 교제하고 결혼할 수 있을지 조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터넷으로 만나 교제하는 형제에 대한 의구심으로 인해 불안해하면서도 형제에게 미안한 감정과 죄책감으로 고민하는 자매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샬롬, 자매님! 상담요청을 감사드리며 결혼 전 서두르지 않고 심사숙고하는 자매를 먼저 칭찬해드리고 싶습니다. 요즘엔 너무 성급하게 교제하고 결혼을 결정하는 이들이 많아 걱정스러운데 자매님은 그런 풍조에 휩쓸리지 않는 듯해 무척 다행스럽습니다. 아무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를 조언하니 잘 새겨들으시고 현명하게 판단하셨으면 합니다.

 

첫째, 기독교만남사이트라는 인터넷을 통해 그 형제를 알고 교제하게 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도록 이끄는 방법은 다양하며 오늘날 인터넷(페이스북, 트위터 포함)도 그 중의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제껏 제가 상담해본 여러 미혼청년은 기독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감정적으로 휘말렸던 경우를 보았습니다. 그런 곳에서 만난 남자나 여자가 모두 이상하기에 의심하라는 뜻이 아니라, 상대방이 제공한 정보에 대한 검증방법이 마땅찮고 거짓정보일 경우가 있을 수 있기에 확실한 검증절차를 밟으면서 천천히 교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만남의 방식은 가족이나 지인을 통한 만남의 방식보다 위험성이 훨씬 크기에 섣불리 믿거나 속아 넘어가선 안 됩니다. 아무리 기독교사이트라 하지만 인터넷의 특징인 ‘익명성(匿名性)’ 탓에 상대방을 충분히 검증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그런 사실을 무시하고 섣불리 감정에 휘말리다보면 자칫 큰 낭패를 겪을 수 있기에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둘째, 그 형제의 신앙의 문제입니다. 그 형제는 자매님의 말을 빌리면,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진 않고 주일예배에 출석하는 정도로 특별히 봉사하는 게 없는 신앙인이군요. 그 형제가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주어진 정보만 놓고 보면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는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교회봉사를 열심히 하고 선교에 비전이 있다고 다 믿음이 좋은 크리스천이라고 섣불리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지만 일단 현 단계에선 그 형제의 신앙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비전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세밀히 확인하고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한 출석교인이라면 구원의 확신과 중생하도록 돕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신중해야 하리라 봅니다.

 

셋째, 그 형제가 자매에게 보여주는 불성실하고 감추려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자매가 현재까지 파악한 그 형제는 가끔 해외출장을 가는 영업일을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고, 알고 싶어 물으면 얼버무리거나 뭘 그리 꼬치꼬치 묻냐고 핀잔을 준다고 하니 의구심이 듭니다. 만일 그 형제가 자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배우자감으로 여기고 있다면 자신에 대해 보다 솔직하게 알리는 게 정상 아닐까요? 무슨 특별한 이유도 없이 왜 그리 꼬치꼬치 묻냐고 핀잔을 주는 태도로 어떻게 상대방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요? 이는 자매보다 그 형제의 태도가 문제처럼 보입니다. 만일 끝까지 그 형제가 자신을 감추려 할 경우, 그 형제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선 안 되리라 봅니다.

 

넷째, 갈팡질팡하는 자매님 태도의 문제입니다. 마음 한구석에선 그 형제에 대해 의심이 들면서도 그 형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고, 한편으론 그 형제와 결혼하고 싶기도 하면서도 막상 그 형제가 적극적으로 결혼하자고 달려드니 부담스럽고, 상대방을 좀 더 세밀히 검증해보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기분 나빠하는 형제를 보곤 상대방을 불신하고 불쾌하게 만든 건 아닌가 후회되기도 하는 태도는 불안정해보입니다. 이는 자매님이 아직 배우자기준이 정립돼있지 않고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데, 자매님은 아직 그런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럴 경우 제 결혼칼럼 ‘결혼기도는 어떻게 하나요’를 세밀히 읽고 지시대로 결혼기도노트를 쓰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매님의 내면이 정돈되고 중심을 잡는 게 우선순위니까요.

 

다섯째, 자매님의 내면에 자리 잡은 부정적 결혼이미지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많은 미혼자들이 부모나 형제, 일가친척, 친구들의 잘못되고 실패한 결혼이미지에 악영향을 받아 결혼에 소극적이거나 결혼을 기피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로 인해 차일피일 미루다 나이를 훌쩍 먹어 뒤늦게 후회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내면의 결혼장애요소를 미리 극복하고 치유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럴 경우 결혼 후에도 부부관계에 악영향을 주기에 반드시 치유 회복돼야 합니다. 자매님은 지금 고민하는 형제와 상관없이 먼저 내면의 부정적 결혼이미지를 몰아내야 하며, 그런 과정을 병행하거나 또는 마친 후 건강한 이성교제와 행복한 결혼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섯째, 일생일대 가장 큰 사건인 결혼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자매님은 다행스럽게도 신중한 편이라 성급하고 덜렁대는 사람보다 실패할 확률이 적어 보입니다. 결혼 자체가 아무리 신중히 꼼꼼히 더디 가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기에, 오히려 자매님과 같은 태도를 지지하고 격려해드립니다. 하지만 자매님께서 앞서 언급한 대로 우왕좌왕하는 편이기에 자칫 예상치 못한 실수, 냉철해야 할 순간에 이성감정에 휘말려 엉뚱한 실수를 범할 위험성이 큽니다. 그러기에 원칙과 기준을 확고히 세우고 이성교제에 임해야 하며, 주님을 의지하고 곧장 앞만 보고 나아가야 하며,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도록 영적으로 더욱 민감해야 합니다. 그 형제를 놓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혼란한 지금 상태에서 섣불리 결론짓지 말고 21일이든 40일이든 작정기도를 해보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저 또한 지금도 어떤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그렇게 기도하여 응답받고 있으니까요. 아무쪼록 자매님께서 조언을 잘 새겨들으시고 적용하셔서 올바른 길로 나아가셨으면 합니다.

 

 오늘날 만남의 방식을 보면 매우 다양합니다. 위의 자매처럼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만나기도 하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터넷채팅을 통해 만나기도 합니다. 그만큼 인터넷이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뜻이지요. 필자 또한 12년 전 지금의 아내를 기독교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만나 결혼했기에 인터넷을 무조건 백안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환경은 12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고 음란하며, 사탄의 소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둡고 죄가 가득합니다. 익명성으로 자신을 감추는 데 익숙한 네티즌은 타인에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환경이다 보니 접촉방식도 예전의 이메일을 주고받는 고전적(?) 방식과 달리 최첨단기술을 동원한 방식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사람들을 겉모습(외모)에 치우치게 만들며, 상대방 내면을 충분히 파악하기도 전에 감각적이며 즉흥적인 만남방식(번개팅)을 선호하게 만들며, 외롭고 울적할 때 심심풀이로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의 자매와 형제는 크리스천이기에 그 정도로 문란하거나 위험하지 않아 다행스럽습니다만, 그렇다고 그런 분위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무한히 자유롭다는 건 그만큼 구속을 덜 받고 감시를 덜 받고 부담감 없는 무규율에 더 가깝다는 뜻이니까요. 그로 인해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청년들조차 즉흥적 이성교제에 임하고 쉽사리 성관계를 맺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화두인 ‘무거운 결혼보다 가벼운 연애가 좋다!’는 ‘가벼운 연애는 순간적이며 위험하고 무거운 결혼은 안전하고 행복하다!’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 전 심사숙고하고 주님께 기도하여 응답 받으려는 자세는 바람직하며, 결코 서두르거나 감정에 휩쓸려서도 안 됩니다. 아무쪼록 싱글의 수렁에서 외로움에 지쳐 힘들어하는 미혼싱글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섣부른 이성교제와 충동으로 오히려 더 깊은 죄의 수렁에 빠져 죄책감과 후회와 탄식으로 괴로워하는 영혼이 없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대표/ www.hesedwe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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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차가 꼭 결혼의 장애물인가요? 2011.05.12 00:28
 

30중반의 한 자매로부터 13년 연하인 형제와 교제중인데 고민이라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선교비전도 있는 형제와 믿음 안에서라면 얼마든지 결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인데 주변 친구들은 극구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께서도 탐탁지 않게 여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너무 괴롭다는 그 자매의 고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저는 모태신앙으로 청년부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는 올해 서른다섯 살 미혼자매입니다. 목사님의 칼럼을 읽고 많은 교훈을 받고 용기를 얻어 목사님께 이메일을 드립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배우자도 세상조건을 기준으로 삼지 말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큰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사실, 저도 이제껏 외적조건에 치우친 결혼은 비성경적이고 세속적이라고 판단해 왔었거든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혼을 단지 돈이나 직장, 외모로 판단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입니다.(중략)


목사님! 제 고민은 지금 배우자감으로 생각하는 형제와 13년이나 나이차가 나는 것입니다. 형제와 저는 신앙 면에서나 비전 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고 대화도 너무 잘 통합니다. 비록 그 형제가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리지만 어떤 때는 그 형제가 오빠처럼 의젓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위 사람들은 단지 그 형제가 나이가 너무 어리니까 결혼배우자로 부적합하다는 것입니다. 그 형제의 내면이 어떻고 그 형제가 얼마나 신실한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나이 하나만을 이유로 결혼이 쉽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물론 그 형제가 아직 대학생이고 경제적으로 미자립 상태라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제가 지금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에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습니다.(중략)


또 하나의 고민은 이제껏 담대했던 형제가 주변사람들의 말에 자꾸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정도의 반대와 부정적 환경을 대범하게 극복할 각오인데, 막상 결혼문제가 현실로 대두되니 그 형제가 많이 움츠러든 모습을 보입니다. 이 또한 그 형제의 연약함보다 주변사람들의 성화와 반대 때문이라는 생각에 야속하기까지 합니다. 왜 모두들 축하하고 격려해주지 않고 안 된다고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엔 차라리 그 형제와 외국으로 선교사로 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물론, 그 형제가 동의해야겠지만요...


목사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길을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제 마음은 요즘 너무 우울합니다. 그 형제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강하고, 또 한편 정말 놓아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형제가 사랑스럽다가도 이런 내 마음을 다 이해 못해주는 형제가 야속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말 이 형제가 주님께서 날 위해 예비하신 배우자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때는 확신이 들다가 어떤 때는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헤어지려니 눈물이 납니다.

목사님! 절 위해 기도해주시고 꼭 답장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제와 교제하며 고민하는 자매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샬롬, 자매님! 힘내시기 바라며 세상기준이 아닌 성경말씀의 기준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려는 자매님을 격려하고 지지해드립니다. 그런데 자매님의 말을 들으니 한쪽으로 치우친 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 염려스럽습니다. 결혼문제는 균형 잡힌 시각이 절대 필요하거든요... 아무튼 자매님께 다음과 같이 조언하니 잘 받아들이셨으면 합니다.


첫째, 배우자를 고려할 때 ‘어떤 기준으로 고민해야 하는가’ 입니다. 자매님께서는 감사하게도 세상조건을 기준 삼지 않고 성경말씀을 기준으로 삼으려 하기에 기쁩니다. 오늘날 세속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자매님이 신선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매님께서 그 문제에만 몰입돼 다른 여러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항들을 소홀히 하는 듯 보인다는 점입니다. 세상기준에 치우치지는 말아야 되겠지만, 그렇다고 눈 딱 감고 오직 믿음만으로 결혼하겠다는 건 올바른 성경적 결혼준비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막무가내로 결혼을 선택했다 후회하는 사람이 많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이혼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결혼생활이 그렇게 기도만 맞는다고, 신앙만 같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닌 매우 복잡한 관계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자매님께서 극단적 사고에서 균형 잡힌 사고로 전환하셨으면 합니다. 세상기준엔 얽매이지 않되, 세상기준과 신앙기준을 지혜롭게 조화시키려는 노력도 아울러 병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형제와 13년이나 나이차가 나는 문제입니다. 지금 자매님께서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자매님께서 단지 그 문제 하나 때문에 고민하는 거라면 그 형제와 얼마든지 극복하고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매님의 이메일에서 나와 있듯, 자매님은 그 문제가 아닌 여러 문제의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듯 보입니다. 왜냐하면 자매님 혼자 생각과 의지만으로 결혼이 성립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의사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형제와 신앙 면에서나 비전 면에서 잘 통하는 건 물론 배우자선택에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13년이라는 나이차가 아무런 영향을 안 끼친다고 보는 건 지나치게 안이한 판단입니다. 어쩌면 자매님께서 스스로에게 무조건 ‘하면 된다’는 식의 최면을 거는 건지도 모릅니다.


또 한 가지는 그 정도의 나이차가 날 경우, 결혼 후 예기치 않은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여자 쪽에서 연상일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흔히 결혼할 경우 여자보다 남자가 좀 더 여유로워지고 멋있어집니다. 여자는 출산 후 급격한 신체적 변화를 겪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여자가 일찍 나이가 들어 보이고 기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극히 예외적인 경우도 있고, 예술가나 연예인, 유명인사들 가운데는 그런 나이차도 극복하고 잘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에겐 이 문제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지금 자매님께 그 형제가 듬직해보일지라도 결혼 후 계속 그런 상태로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많은 나이차로 인한 세대 격차와 일반적 부부와 다르기에 신체 격차 등을 경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결혼의 사회성과 관계망 문제입니다. 만일 두 사람이 주변 사람들의 방해(?)와 간섭 없이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두 사람 모두 그런 문제를 초월할 수 있는 내적힘이 강한 경우라면 두 사람만의 선택으로 결혼이 성립될 수 있겠지요. 물론, 이럴 경우에도 직장생활이나 새로운 환경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려움을 겪을지 모릅니다. 아무튼 자매님은 지금 현재 주위 사람들이 단지 그 형제가 나이가 너무 어리니까 결혼배우자로 부적합하다고 말한다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단지 그 이유만으로 반대한다고 단정 짓는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신체적 나이보다 일반적으로 20대 초반 나이또래 남자의 내적성숙도가 그 나이또래 여자의 내적성숙도보다 크게 앞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혼이 단지 소꿉장난 같은 놀이(지나친 표현이라면 용서하세요)라면 별 어려움이 없을 수 있겠지만, 결혼생활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아무리 연령대가 비슷한 남녀가 만나 사랑해 결혼하더라도 반드시 위기와 갈등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험난한 인생의 수련장입니다. 30중반자매가 앞으로 짊어질 인생의 무게감이 아직 대학생인 형제가 감당해야 할 인생의 무게감과 동일할 수 있을까요? 자매는 스스로 가정경제를 책임질 각오까지 했다지만, 가장으로서 연하의 남편이 언제까지 그런 상황을 용인할지도 미지수고, 또 그 형제가 훗날 그 일로 인해 자존심이 상해 예기치 못한 갈등을 겪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더욱이 주변 사람이 반대하는 결혼을 강행할 경우 사회성이 떨어지고 이제껏 유지했던 관계망도 깨질 위험성이 큽니다. 그래서 외부와 차단된 채 두 사람만의 공간으로 더욱 고립되겠지요. 그렇다면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결혼이 될 수 있을까요? 단지 두 사람의 행복만을 바란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결혼을 통해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도록 이끄시려는 계획과는 어그러질 수밖에 없겠지요. 이 점 유념하셨으면 합니다.


넷째, 두 사람의 신뢰성 문제입니다. 앞서 얘기했듯 결혼이 단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구체적 현실로 드러날 경우 이제껏 감춰졌던 문제가 부각되기 쉽습니다. 그로 인해 자매뿐만 아니라 형제 또한 주변사람들과의 부딪침이 많아지고 자꾸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껏 의연하고 꿋꿋할 것만 같았던 형제가 그렇게 흔들리는 모습에 자매님이 당혹스러워하는 건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매님은 왜 모두들 축하하고 격려해주지 않고 안 된다고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푸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자매님이 주변 사람들에게 푸념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형제에게 푸념해야 할까요? 자매 또한 스스로 당혹감을 느낄 정도로 갈등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껏 철석같이 믿었던 그 형제가 고작 이런 시련 앞에 이처럼 흔들리다니 불안스러워진 거겠죠. 이처럼 어려워진 상황에서 자매님께서 그 형제를 얼마만큼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훗날 실망하지 않을 만큼 그 형제가 그렇게 견고하고 든든한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자매님 스스로 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도피의 위험성입니다. 자매님은 요즘엔 차라리 그 형제와 외국으로 선교사로 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자매님은 선교지를 도피처 정도로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떠나야 하는 선교를 단지 두 사람만의 안락한 행복을 위한 도피처 정도로 생각한다면, 자매님은 신앙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주의 일을 한다는 명분을 앞세운 지극히 개인적인 사욕을 채우려는 악행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이고, 위선적인 바리새인과도 같은 행동입니다. 이런 식으로 선교를 미화하고 포장하려는 크리스천청년들이 오늘날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이는 매우 주님을 슬프게 하는 일이고, 많은 영혼들을 상처 입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피해야 하리라 봅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고 의탁하라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선교지로 가는 문제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허락받음 속에서 떠난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만일 끝까지 내 생각과 내 고집과 내 의를 앞세워 결혼을 서두른다면, 설령 결혼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주님으로부터의 안전까진 보장받지 못합니다. 제가 결혼세미나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 모두의 결혼까지도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만 결혼문제에서 우리들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까지 허락하시기에 일방적으로 강요하시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그로 인해 많은 미혼자들이 결혼을 내 마음대로 선택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주님의 깊은 뜻을 오해한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지금 자매님께서 경험하는 우울감과 집착, 야속한 마음, 슬픔의 눈물 등은 자매님께서 아직 그 형제를 주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보다 인간의 뜻대로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그로 인한 모든 결과의 책임은 물론 우리 스스로가 져야 하겠지요.


아무쪼록 냉정을 되찾고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쳤던 아브라함처럼 주님께 그 형제를 의탁하고 다시금 주님의 뜻을 구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 두 사람이 작정기도를 해도 좋습니다. 그로 인해 두 사람 모두 분명한 응답을 받았다면 결혼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라도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계속될 경우 성급히 결혼으로 진행해서도 안 됩니다. 모든 닫힌 환경을 주님께서 열어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장시간 이어질 경우 대부분 포기하게 되고, 또 그것이 주님의 응답일 경우가 많습니다. 힘내시고 주님을 더욱 신뢰하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진리 안에서 명쾌하게 응답받는 두 사람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오늘날 동갑내지 여자연상커플이 네 쌍 중 한 쌍일 정도로 흔해진 경우를 봅니다. 그로 인해 나이차로 인한 거부감이 이전보다 상당히 완화된 것을 느낍니다. 사람에 따라선 나이차가 크게 나는 연상남과 연하녀, 연하남과 연상녀의 결혼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커플이 일반적이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오늘날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연예인들이나 유명인사의 결혼을 자주 접하다보니 일반대중들이 마치 자신도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착각하는데, 이는 자칫 큰 낭패를 초래할 위험성이 큽니다. 자신에게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다 갑자기 훌렁 벗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지왜곡 중 ‘과잉일반화’나 ‘비약적 단정’이 여기에 해당하기에, 각별히 주의하고 냉철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고전 10:23)라는 말씀처럼, 우리들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생각해도 모든 것이 유익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바다에 나갈 땐 기도 한 번, 전쟁터에 나갈 땐 기도 두 번, 결혼하기 전엔 기도를 세 번 하라’는 러시아속담을 다시 인용하며 경각심을 촉구합니다. 그처럼 결혼에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오늘날 이기적이고 개인주의가 팽배한 세태에선 결혼이 단지 두 사람만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만, 우리 크리스천은 이보다 더 깊고 넓은 차원에서 결혼문제를 바라봐야 할 줄 압니다. 결혼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시려는 사명을 먼저 깊이 묵상하고,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많은 이웃을 섬기려는 ‘선교적 가정’으로까지 나아가야 하리라 봅니다.


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대표/ www.hesedwe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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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상견례 후 파혼위기에 처했어요.. 2010.12.04 14:28

한 30대 중반의 형제로부터 결혼을 2달 앞두고 양가 상견례를 가진 후 양쪽 어르신들의 불화로 파혼의 위기에 처했다는 안타까운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형제는 양가 어르신을 설득하기에도 버겁고, 이 일로 자매와도 서먹해진 터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형제의 고민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심각한 문제가 대두돼 목사님께 급히 조언을 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1년 간 교제하던 5살 연하의 자매와 2달 후면 결혼을 해야 하는 34살의 크리스천 청년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양가상견례를 치른 후 갑자기 양가 분위기가 험악해져 너무 속상합니다. 결혼할 자매도 제 마음을 몰라주고 자기집안 입장만 앞세워 무척 서운하며, 이런 여자와 결혼해도 될까 심각한 생각마저 듭니다.(중략)

 

목사님도 알다시피 양가상견례는 서로 존중하는 자세로 치러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 아내 집안은 애초에 그런 배려의 자세가 전혀 없었습니다. 처음 상견례장소를 잡는 문제도 중간 정도의 위치가 아니라 자매 집 가까운 곳에 잡았고, 저희 쪽에 아무런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일식집으로 잡았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선 회를 싫어하시는 편이거든요. 아무튼, 그런 건 그렇다 치더라도 양가부모님이 대화하는 중에 자매 부모님께서 은근히 무시하는 투로 대하셔서 무척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10년 전 돌아가셨기에 어머니와 저, 남동생, 이렇게 셋이 나갔는데, 저쪽은 부모님과 이모님 두 분이 나오셨습니다. 그리곤 집안을 자화자찬하시면서 귀한 딸을 데려가니 큰 복을 받는 거라는 둥, 자기 딸은 이제껏 어려움 없이 곱게 자라 시집살이시키면 못 견딜 거라는 둥, 처음 보는 사돈지간에 너무 안하무인격으로 나와 속상했고, 어머니께서도 상심이 크셨습니다.(중략)

 

저는 지금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입니다. 기분 같아서는 어머니 말대로 결혼을 취소하고픈 생각도 들지만, 자매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모든 예식을 맞춰놓은 상태라 쉽지 않습니다. 자매 쪽 부모도 저희 어머니께서 너무 속상해하신다는 얘기를 듣고는 자기들이 뭘 잘못했기에 그렇게 힘들어하냐고 오히려 의아해하며 며느리를 호되게 시집살이 시키려는 구실을 만드는 걸로 의심까지 합니다. 그 말에 휘둘려 내게 불신의 태도를 보이며, 제 어머니에 대해서까지 부정적인 말을 할 때면 화가 치밉니다. 우리 집안보다 조금 낫다고 함부로 대하는 듯해 자존심이 상하며, 우리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들 입장에서만 모든 문제를 해석하려는 듯해 억울한 심정까지 듭니다.(중략)

 

목사님! 왜 크리스천집안끼리의 결혼임에도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요? 다른 문제도 아니고, 충분히 믿음 안에서 사랑으로 존중하고 양보하면 하나 될 수도 있는데, 왜 우리 집과 자매의 집은 이렇게 결혼 전부터 자존심을 앞세우고 갈등이 심한 걸까요?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 결혼을 막으시는 게 아닐까요? 저는 지금 무척 혼란스럽고 자매도 결혼의 설렘보다 근심이 큰 탓에 저와 자주 마찰을 빚고 헤어지자는 말까지 서슴없이 합니다. 저도 자존심 상한 양가 부모님을 생각하면 결혼 후 어떻게 감당할지 자신 없다가도, 막상 자매와 헤어질 걸 생각하면 도저히 자신이 없어 어떻게든 달래며 결혼식을 치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이미 예식장을 잡고 청첩장까지 돌리고 사진까지 찍은 상태라 결혼식을 취소한다는 건 끔찍해 생각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솔직히 마음 한구석 자매 부모님으로부터 무시당한 기분이 들며, 어머니와 제게 상처를 준 자매의 차가운 언행이 서운한 것도 사실입니다. 목사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귀한 조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양가상견례 후 감정의 골이 깊어져 파혼의 위기에 처한 형제를 안타까워하며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샬롬, 형제님! 어려운 가운데 상담을 요청해주셔서 감사드리며 힘내시기 바랍니다. 먼저 파혼의 위기 앞에서 상담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시는 자세를 지지하며 칭찬해드리고 싶습니다. 누구나 구경꾼의 입장일 땐 쉽게 얘기하다가 막상 본인의 문제로 닥치면 쉽지 않은 문제 중의 하나가 결혼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뭘 그까짓 문제로 그렇게 갈등하고 힘들어하나 싶다가도, 막상 내 일 내 문제 주변사람들과 관련된 문제로 비약할 경우 생각만큼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걸 깨닫곤 합니다. 아무튼 이번 기회가 형제님께 좋은 점검의 기회라 생각하시고 결혼문제를 다시 한 번 주님께 응답받기 바라며, 다음과 같이 조언 드리니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적용하셨으면 합니다.

 

첫째, 진심으로 자매를 사랑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형제는 정말 그 자매가 내가 바라던 배우자고 사랑하는 그 자매를 위해 나를 희생할 각오가 돼 있습니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끌려 결혼해야 한다는 주변의 부추김이나 조건에 의한 이끌림,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끌려 결혼하려는 겁니까? 형제님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런 질문에 흔쾌히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려 한다는 답을 할 수 있다면, 작은 문제들에 흔들리지 마셨으면 합니다. 만일 두 사람이 진실로 신뢰하며 사랑하고 있다면 현재 당면한 문제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을 테니까요.

 

둘째, 결혼 전 교제기간 동안 상대방과 상대방 집안을 얼마나 파악했느냐의 문제입니다. 두 사람이 1년간 교제해오면서 어느 정도 상대방 집안에 대해서도 파악했을 줄로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막상 부딪치니 자신이 생각해온 만큼 상대방 집안의 분위기나 태도가 호락호락하지 않고, 또 어느 면에선 실망스런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그런 상황에 처하면 기분이 상할 수 있고, 또 형제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매 쪽 집안의 처사가 심하다는 판단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사람간의 일이란 언제나 상대적이기에, 형제 쪽 말만 들어선 판단이 곤란한 부분도 있습니다. 왜 그쪽에서 그렇게 장소를 정했고, 일식집을 정했고, 또 그렇게 딸을 염려하는 말을 했는지 역지사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여나 형제님께서 지나치게 어머니를 생각하고 효도를 다해야 한다는 식으로 무언의 압력을 자매에게 줬을 수도 있고, 또 그쪽에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나름대로 고급음식점을 정해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그 상황을 정확히 모르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형제님께서 한번 돌려 생각해보라고 드리는 말씀이나 참고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셋째, 양가 부모님으로 인해 갈등이 벌어지는 현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형제님이 무척 곤란한 입장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특별히 어머니 입장에서는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처가로부터 무시당하면서까지 결혼시키고 싶은 마음이 안 드실 것 같고, 자매 쪽 입장에서는 경제력으로 넉넉지 않은 집안으로 시집보내는 딸의 처지가 불안하고 못미더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로가 한 발씩 양보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두 사람 사이에도 그러한 노력과 의지 안 보여 아쉽습니다. 설령 이런 문제가 벌어졌다 해도 두 사람이 한 마음으로 양가 부모님을 설득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따뜻한 말을 주고받는다면 얼마든지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텐데, 두 사람마저 이런 일로 틈이 벌어지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지금과 같이 두 사람이 서로를 불신하거나 회의하고 감정에 휘둘리다보면 문제가 더욱 꼬이고 악화될 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결혼식날짜에 쫓겨 결혼식을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두 사람의 신뢰관계와 양가 어른들의 불편해진 마음을 풀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셨으면 합니다. 물론 이는 형제님 혼자서가 아니라, 두 사람이 허심탄회하게 속을 털어놓고 상의해보아야 합니다. 만일 두 사람이 이러한 노력을 통해 접점을 찾고 해결책을 찾는다면, 파혼의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행복한 결혼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넷째, 형제님도 형제님 입장에서만 문제를 보려는 건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제님의 이메일을 통해 짐작하건대, 형제님의 내면에 상처가 많은 듯 보이며 상대방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고 자존심이 상하는 경향이 엿보입니다. ‘과잉일반화’의 오류처럼, 형제님과 같은 경우 상대방의 사소한 언행에 쉽게 흔들리고 파국적 행동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큽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형제님께서 내면의 평화를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가 있다면 그 상처로부터도 자유로워지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형제님께서 지나치게 어머니에 대해 연민을 품고 사소한 말에도 본인이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형제님께서 그런 태도를 보이신다면 그로 인해 결혼 후에도 부부갈등이 심화될 위험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형제님만 아니라 자매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 모두 차제에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정신적, 심리적으로 독립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며, 두 사람에게 보다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나 형제님께서 지금까지 형제님 입장에 더 치우쳐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으며, 설령 조금 손해가 난다 싶어도 자매 쪽을 좀 더 배려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이는 어느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솔로몬의 재판’의 사례처럼 아이의 생명이 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셨죠?

 

다섯째, 형제님 말대로 어쩌면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결혼을 막으시는 건 아닌가 다시 한 번 기도로 확인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결혼하려는 미혼자들은 결혼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점검하고 또 점검하는 자세를 잃어선 안 됩니다. 영적인 메시지에 민감해야하며,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일들에도 귀 기울여야 합니다. 만에 하나 두 사람이 아무리 결혼으로 진행하고 싶어도 주님의 뜻이 아니기에 막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는 일이고, 또 충분히 기도하지 않고는 알 수 없기에 지금이라도 며칠간 두 사람이 깊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만일 그런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분명하고 확고한 응답을 받는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사소한 장애물로 극복될 수 있고, 또 이것이 사탄의 시험으로 판명돼 능히 물리칠 수 있기에 원만히 수습되리라 봅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경우 앞으로 또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는단 보장이 없으며, 그때 뒤늦게 더욱 후회하며 땅을 칠 위험성이 있기에 반드시 기도해보아야 합니다. 마음 한구석 찜찜한 상태로 결혼하는 건 짚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기에, 결혼 전 원점에서 이 문제를 재점검하고 꼭 해결하시길 권면합니다. 아무쪼록 형제님께서 감정에 치우쳐 모든 문제를 극단적으로 해결하려 말고 신앙인답게 해결해 주님으로부터 분명한 응답을 받으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오늘날 우리주변엔 결혼 전 당사자가 아닌 주변사람들, 양가어른들 간의 사소한 오해와 갈등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결혼 전부터 불화를 잉태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는 크리스천가정이라 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들조차 잘못된 한국결혼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꺼풀 벗겨보면 신앙인답지 않고 비신자와 동일하거나 오히려 못한 경우도 눈에 띄기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정말 내 자녀의 행복한 결혼과 주님께로부터 축복받는 가정을 위해서 지금과 같은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지혜가 부족한지 통찰하는 부모님이 얼마나 될까요. 가장 복되고 기뻐야 할 크리스천가정의 결혼이 아주 사소한 갈등으로 삐걱거린다면 어느 누가 가장 기뻐할까요?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는 크리스천가정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며, 행여나 위와 같은 갈등과 다툼이 생겼을 경우 감정으로 치닫지 말고 한 발짝 물러서서 냉철히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통찰한다면, 더 이상 곁가지에 휘둘리지 않게 될 것이고, 결혼할 두 당사자가 중심을 꽉 잡고 나간다면 어떠한 외부의 시련도 능히 극복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주변에 그 정도로 성숙한 미혼크리스천들이 많지 않기에 안타깝고, 그러한 연약함을 더욱 부추기는 미성숙하고 전통가치관에 얽매인 크리스천부모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문제가 더욱 꼬이고 복잡해지는 경우가 있기에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아무쪼록 위의 형제님처럼 결혼 전 양가상견례나 그 외 사소한 문제들로 인해 낙심하거나 회의에 빠진 이가 있다면 주님께 무릎 꿇고 응답을 받기 바랍니다. 그런 후 분명한 응답을 받았다면 더 이상 주변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두 사람에게 더욱 집중하고 헌신하며, 어려운 난관을 헤치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힘주시고 위로하시고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의 믿음의 가정이 탄생하기까지 마귀는 어떻게든 그 행사를 무너뜨리기 위해 시험하게 마련입니다. 결혼이 일생의 축복되고 흥겨운 축제일뿐만 아니라, 마귀의 훼방을 무너뜨리고 쟁취해야 하는 치열한 영적 전투임을 명심하고 결혼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는 미혼크리스천과 그 가정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대표/ www.hesedwe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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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흉터로 인해 결혼에 자신 없어요.. 2010.11.07 03:08

한 30대 초반의 자매로부터 몸의 흉터로 인해 결혼에 자신 없고 이성교제가 두렵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자매는 이제껏 그런 콤플렉스로 인해 수영장이나 바닷가에도 못 갔고 이성이 다가와도 언제나 방어적이어서 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매의 고민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오랫동안 드러내놓기 부끄러운 제 상처로 인해 고민만 하다가 큰 용기를 내 목사님께 이메일을 드립니다. 저는 서울에 사는 31살의 미혼크리스천 자매입니다. 목사님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 고민을 간략히 요약하면, 어릴 적 부모님의 실수로 가슴에 큰 화상을 입은 상처가 있구요... 솔직히 그 문제로 인해 얼마나 주님을 원망하고 부모님을 원망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모님을 용서하고 이해할 정도가 되었고, 드러나는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제가 일부러 밝고 명랑하게 행동했으니까요..(중략)


전 이제껏 교회활동도 열심히 했고 제게 다가오는 형제들도 꽤 있는 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껏 그런 형제들을 받아들일 용기가 안 났고, 이런저런 핑계를 둘러대다 마침내 상대방에게 본의 아닌 상처를 주고 제대로 교제를 해보지도 못하고 끝낸 적이 많습니다. 제 마음 가운데 겉모습을 보고 다가왔던 형제들이 제 실제모습을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 두렵기도 했던 것입니다.(중략)


 목사님! 남들은 상처! 상처!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얘기하는데, 제가 보기엔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제가 이제껏 수술로도 아물지 않는 육체의 상처로 인해 받은 아픔에 비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건 제 불평불만이며 넋두리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요즘엔 제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회의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결혼이라는 현실 벽 앞에 좌절하며 흐느끼는 제 모습을 목사님은 상상이나 할 수 있나요? 물론, 목사님은 상담을 많이 하시니까 어느 정도는 이해해주시겠죠..(중략)


목사님! 제가 정말 이런 모습으로 결혼할 수 있을까요? 요즘처럼 얼굴과 육체의 매력을 중시하는 시대에 저 같은 여자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사랑해줄 남자가 정말 있을까요? 저는 솔직히 의심이 들고 확신이 안 섭니다. 만일 제가 반대로 남자의 입장이라 상상해도 저 같은 여자를 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할수록 절망감은 커져 더욱 우울해지고 아예 세상을 등지고 살거나 혼자서 주님 일만 하며 일생을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에 외로움이 가득하고 이성을 그리며 결혼을 선망하는 제 자신이 밉기도 합니다. 목사님! 이럴 땐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도 남들처럼 결혼의 꿈을 품고 기도해도 되나요? 너무나 답답하고 힘들어 목사님께 도움을 청하니 귀한 조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자신의 화상흉터로 인해 깊은 절망감과 우울증을 느끼며 결혼의 소망까지 잃은 자매를 안타까워하며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샬롬, 자매님! 어려운 가운데 상담을 요청해주셔서 감사드리며 힘내시기 바랍니다. 자매님 말대로 오늘날은 외모를 중시하는 시대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지만, 인간은 선천적으로 드러난 외모를 중시하는 눈을 갖고 태어났기에 그런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외모만을 중시하는 건 아니고 신앙적 자세도 아니기에 자매님께서 용기 내시길 부탁드리며, 다음과 같이 조언하니 잘 적용하셨으면 합니다.


첫째, 자매님께서 어릴 적 부모님의 실수로 인해 화상을 입은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 앞에 인간은 좌절하기 쉽고 또 쉽게 타인이 얘기하기도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자매님께서 그 동안 겪으셨을 쓰라림과 마음고생에 진심어린 위로를 드리며 다시 한 번 힘내시길 부탁드립니다. 목사님은 자매님께서 화상을 입은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다가 열등감에 사로잡혔음을 충분히 이해하며, 이겨내려는 그간의 노력에 격려와 지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자매님의 글 속에서 아직도 부모님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남아있는 듯 보여 안타깝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깊은 회의감에 젖어있는 듯 보여 염려스럽습니다.


자매님께서는 먼저 부모님에 대해 원망의 감정을 풀고 마음속으로 깊이 용서함으로 부모님과 화해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 화상 입은 자신을 미워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시기 바랍니다. 수술해도 완전히 회복할 수 없는 자신의 흉터에 탄식하고 원망하고 절망만 할 게 아니라, 그 정도에 그쳐 사회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해주신 하나님께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면 혹시 저항이 생길지 모르지만, 그것이 자신이 회복되고 복된 길로 나아가는 지름길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만일 부모님과의 화해가 이뤄지지 못했을 경우, 자신에게도 불행임을 깨닫는다면 목사님의 권면을 잘 수용하시리라 봅니다.


둘째, 열등감으로 인한 이성교제를 피해온 문제입니다. 자매님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한 심정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수동적이고 방어적이기만 해서는 이성교제에 아무런 결실을 못 얻고 결혼은 엄두도 못 낼 뿐입니다. 자매님에게 본질적 문제는 이성에 대한 두려움, 보다 엄밀히 말하면 이성으로부터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로 인해 자매님은 이제껏 자매님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오는 형제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결국엔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상처를 받고 떠나게 만들어온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어리석고 비겁한 행동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매님이라면 이런 식으로 계속 문제의 본질을 호도해선 안 되며, 사람들을 기만해선 안 됩니다. 아무렇게나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형제를 냉철히 객관적으로 살펴본 후 충분히 자신을 받아들일 만한 형제인지를 확인한 후 교제를 해도 되는데 이제껏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자매님께 이제껏 그러한 여유와 침착함이 결여됐기 때문입니다. 자매님께서 계속 그런 식으로 두려움에 쫓긴다면 하나님께서 자매님께 보내주시려는 어떤 형제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명심하시고 자신의 믿음 없는 행동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진정 주님을 신뢰하는 자매님이라면, 그러한 자신의 약점조차 주님께 내려놓고 주님 처분에 맡긴다는 고백을 해야 할 줄 압니다. 그러한 치부와 허물을 모두 이해해주고 받아줄 수 있는 형제를 보내주신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노라는 겸손의 고백부터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보다 앞서는 것은 교만이며 불신앙임을 명심하고 겸손히 주님께 무릎 꿇는 자매님 되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셋째, 지나친 자학과 자포자기의 문제입니다. 자매님께서 고민하는 육체의 상처가 일반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상황임에도 교회에 나가 열심히 신앙생활해온 자매님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의 속마음은 겉으로 꾸민 모습과 달리 너무 어두워 보입니다. 자매님보다 더 큰 화상을 입고도 천사처럼 해맑게 웃으며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지선 자매님도 있기에 힘을 내시고 밝은 마음 가지셨으면 합니다.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바보 같은(?) 질문보다 어떻게 하면 허락된 남은 생을 보람되게 살까를 고민하는 자매님 되시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자매님께 결혼의 꿈을 포기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결혼은사자’와 ‘독신은사자’가 있고(고전 7:7) 전자가 거의 대부분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억지로 혼자 살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단지 자신의 처지와 형편이 비관적이라는 판단에 스스로 동굴을 파고 그 속에 처박혀 밝은 세상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것일 뿐입니다.


자매님 말대로 목사님은 자매님의 속속들이 뼈아픈 눈물까지 이해하진 못합니다. 그렇지만, 자매님께서 지금처럼 동굴 속에서 흐느끼고 탄식하는 게 주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히 압니다. 세상에 아무리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해 있어도,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기에 극단적으로 비약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흑백논리에 빠지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해 더욱 왜곡된 사고를 하게 되고, 결국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게 마련입니다. 목사님이 늘 강조하는 게 ‘결혼엔 하나님의 주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제도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각 사람에게 알맞은 짝을 예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온전히 믿고 신뢰하면 주님께서 반드시 자매님을 위해 예비하신 짝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단지 그런 신체콤플렉스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라는 건 마귀의 속삭임이기에 떨쳐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으로 일으키시는 분이시며, 서두르거나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주님께로부터 결혼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답니다. 아무쪼록 용기를 내시고 어두운 생각을 떨치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자매님 편이시기에, 그 누가 뭐라 하든 기죽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매님께 주님의 크신 위로와 은총이 임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처럼 우리주변엔 여러 가지 말 못할 상처로 인해 고민하며 결혼에 자신없어하는 미혼청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위의 자매처럼 심한 상처로 인해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리 크지 않은 문제로 인해 힘들어하고 절망하는 미혼청년들도 많습니다. 그만큼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세태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외모만을 중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외모를 보시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마음의 중심을 더욱 중시하십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대부분 드러난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하려는 경향이 앞서기에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거나 거스를 때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배우자를 잘못 선택해 일생 후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무쪼록 위의 자매님과 같은 육체의 상처로 인해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이가 있다면 주님의 손을 붙잡고 힘차게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자신의 모든 치부까지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는 용기를 가지시길 권면 드립니다. 그래야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시고 모든 열등감으로부터 자유케 하시며,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게 하실 테니까요.


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대표/ www.hesedwe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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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의 신체접촉은 어디까지 되나요? 2010.09.23 14:54
   한 30대 초반의 자매로부터 교제하는 형제의 적극적 성관계요구로 인해 죄책감이 들고 힘들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형제는 결혼할 사이니 혼전성관계도 무방하며, 자신은 전혀 죄책감이 안 든다며 계속 성관계를 요구해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매의 고민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고민되는 문제가 있어 목사님의 상담칼럼을 읽고 용기를 얻어 목사님께 이메일을 보냅니다. 저는 6개월 정도 교제한 형제와 결혼을 전제로 이성교제를 하고 있는 자매입니다. 그 형제는 교회에서 매우 열심히 봉사하고 있고 또 직장생활도 잘하는 형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형제가 1주일 만에 제게 사랑을 고백하고 교제한 지 한 달 후부터 결혼하겠다고 한 후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는 날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런 형제의 행동에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중략)

 

목사님! 저는 어릴 적부터 혼전순결을 꼭 지켜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 형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와 만날 때마다 프렌치키스는 물론, 성적 흥분이 되면 제게 자위행위도 요구했습니다. 제가 성관계를 극구 반대하기에 어쩔 수 없다며, 자신을 위해 그 정도 해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마음에 걸리고 죄책감이 들면서도 그 형제가 하도 집요하게 요구하고, 또 앞으로 결혼할 사람이라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욕구를 풀어주지만, 언제나 뒤끝이 좋지 않습니다.(중략)   

 

목사님! 요즘 교회 다니는 친구들 중엔 결혼 전 성관계는 무방하다는 친구도 있기에 저는 무척 괴롭습니다. 정말 제가 시대에 뒤떨어진 건지, 아니면 세상이 잘못된 건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저 또한 은연중에 그러한 유혹에 흔들릴 경우도 있기에 주님께 부끄럽습니다... 제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목사님의 조언 부탁드리며, 헤세드 사역 위해 중보 기도드리겠습니다.

 

교제하는 형제의 집요한 성관계요구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자매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샬롬, 자매님! 상담을 요청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세상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자매님을 격려하고 지지해드립니다. 사실, 오늘날과 같이 포스트모더니즘, 뉴에이지 문화가 횡행하는 시대에선 전통적인 가치관, 기독교적인 행동양식이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자매님과 같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적 가치관과 괴리된 현실에 힘들어하며 유혹에 휘둘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그렇더라도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하기에 자매님께서 힘내셨으면 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흐름이 말초적이고, 본능과 충동, 섹시함에 치우쳐있더라도 단호하게 “No!”라고 거절하는 크리스천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음과 같이 조언드리니 잘 새기시고 적용하셨으면 합니다.

 

첫째, 혼전성관계는 <결혼의 과정 7단계> 중 3단계(매력이 미움으로 바뀌는 단계)의 고비를 못 넘기고 깨질 위험성이 크며, 의무가 없는 성적 합일은 데이트폭력 및 결혼 후의 폭력, 신비감 상실, 존중감 결여 등의 후유증을 유발할 위험성이 크기에 피해야 합니다. 만일 이를 무시하고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큰 상처를 입히게 되기에 마땅히 피해야 합니다.

 

둘째, 연애 따로 결혼 따로의 가치관으로 결혼 전 아무렇게나 내 맘대로 연애하고 결혼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 또한 대단히 탐욕적이며 이기적이고, 성결한 삶을 훼방하기에 피해야 합니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일 경우, 결혼 후에도 가정생활에 불성실하고 부부관계를 깨뜨릴 위험성이 큽니다. 도처에 ‘키스방’이나 ‘음란노래방’, ‘마사지숍’ 등이 넘쳐나기에 크리스천들도 미혹을 받아 흔들리기 쉬운 세태입니다. 그러기에, 우는 ‘음란의 사자’에게 먹히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하고 기도해야(벧전 5:8) 합니다. 만일 이를 소홀히 할 경우, 크리스천도 세상 사람과 똑같이 타락한 윤리관을 갖게 마련입니다.

 

셋째, 결혼할 사이이기에 혼전 성관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는 세상적 기준이지 성경적 기준은 아닙니다. 진정 결혼할 미래배우자로 여긴다면 오히려 더욱 존중하고 아껴주고, 내 욕심을 채우는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참고 견뎌주는 것이지 상대방을 내 방식대로 내 욕구를 채우는 이기적 행동의 도구로 삼아선 절대 안 됩니다.  이는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정욕이 불타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고전 7:9)고 성경은 권면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결혼하기 전 아무리 애써도 유혹을 이기기 어려울 경우엔 어떡해야 할까요? 그냥 타협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하여 절제하라(벧후 1:6)고 권면하고 있으며,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다(잠 25:28)고 경고했습니다.

 

넷째. <성의 사다리>라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어느 선에서 멈출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포옹 정도에서 그치라고 할 수도 있고, 또 어떤 분은 가벼운 키스 정도에서 그치라 할 수도 있고, 또 어떤 분은 프렌치키스까지는 허용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적 자극을 유발하거나 성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자극은 피하는 게 바람직하며 이는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미혼청년들에게 자제력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육체적 흥분이 유발될 정도의 신체접촉은 피하는 게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자매님께 적극 성관계를 요구하고 유사성행위를 강요하는 형제는 이미 신체접촉(다정포옹)의 선을 넘어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기에 자매님께서는 그 형제에게 결연한 태도를 보이며 어렵더라도 잘 설득해야 합니다. 만일 형제가 계속 그렇게 '육체의 정욕'에 휘둘린다면 신실한 크리스천도 아니며, 시험에 든 상태기에 결별할 각오까지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자매님께서 그렇게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형제에게 계속 연민과 유혹과 동정으로 이끌리면 더 큰 상처를 남기고 관계가 깨질 위험성이 크기에, 더 이상 휘말리지 말고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이라면 마땅히 세상흐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결을 원하시며, 결혼 전 성관계는 피하고 결혼 후 부부관계 속에서 성의 즐거움을 누리길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이 점 잘 생각하시고, 이 기회에 올바른 이성관, 교제관, 결혼관을 정립하는 자매님과 형제님 되시길 권면 드리며, 주님께서 두 사람에게 거룩한 절제와 경건의 능력을 부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오늘날 이성교제 시 혼전성관계의 유혹으로 힘들어하는 미혼자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드라마와 영화, 인터넷의 악영향 때문이지만, 대부분 무방비로 받아들이고 답습하려 하기에 문제가 심각합니다. 크리스천청년들도 일반청년들과 별 차이 없이 교회에서의 행동과 세상에서의 행동을 구분 짓는 ‘이원론적 경향’을 보이기에 문제가 심각합니다.

물론, 기독교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게 마련입니다. 기독교복음의 본질을 변질시키지 않는 선에서 이성교제의 모습을 이전과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어디까지가 기준인지에 대해선 깊은 고민을 요합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기준점은, 크리스천들이 이 시대의 흐름을 맹목적으로 본받아선 안 된다는 것(롬 12:2)입니다. 아무리 성개방풍조가 횡행한다 해도, 혼전성관계와 혼전동거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돼선 곤란합니다.

 

오늘날 ‘키스방’이라는 것이 합법을 가장한 채 독버섯처럼 번지는데, 이 또한 음란의 죄를 짓는 일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직접 성관계를 하든 안 하든, 이미 돈을 주고 이성과의 키스행위를 통해 성적 욕구를 충족했기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여자를 보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간음죄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마 5:28)에 비추어, ‘유사성행위’로 발전하고, 심지어 ‘매매춘’으로 이행될 위험성이 큰 유사성행위업소 출입은 절대 해선 안 됩니다.

노래방이나 디스코장도 성적 탈선의 장소로 변질된 곳이 많기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점점 소돔과 고모라 성처럼 음란의 소굴로 타락해가는 이 시대에서, 불의와 음행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 의와 경건의 삶을 살아가려는 신실한 크리스천이 많아지길 기도하며, 지금 이 시간도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으로 흔들리는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주님의 크신 위로와 거룩한 영이 임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대표/ www.hesedwe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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