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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옥한흠 목사를 향한 그리움, 회고집으로 .. 2010.10.04 03:15
[미션라이프] 옥한흠 목사가 소천한 지 한 달여, 그를 기리는 회고집이 나왔다.

‘은혜의 발걸음 옥한흠’(사진. 국제제자훈련원). 국내외 교계는 물론 정치 경제 시민단체 등 각계 64명 인사들이 고인 없는 현실을 탄(嘆)하고 있다.

고인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은 마치 옥 목사 소천 직후의 슬픈 광경으로 돌아간 듯하다.

하지만 고인이 뿌려놓은 씨앗이 어느덧 나무로 자라나고 있다는 희망의 소식도 전하고 있다.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변호사는 “목사님은 그리스도인들로부터만 존경을 받은 게 아니라 나 같은 국민들도 흠모하고 사표로 생각하고 따랐다”며 “목사님은 한국 교회의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큰 별이었고 정신적 지주였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한국 교회의 회개와 자성을 이끌어 오셨는데 이제 누가 그 역할을 담당할 건가?”라며 고인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손봉호(서울대 명예교수) 장로는 “목사님은 나와 동갑이나 나보다 훨씬 더 성숙해 보였고 그런 인상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며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후에도 자주 만나 교제했고, 남한산성으로 소풍을 같이 가기도 했다.

그때 그가 카메라를 들고 왔던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또한 “나는 큰 교회를 좋아하지 않고 대교회주의를 많이 비판했지만 옥 목사의 사랑의교회만큼은 비판하지 못했다”며 “큰 교회의 많은 약점 가운데 상당 부분이 사랑의교회에는 없었고, 오히려 많은 장점이 그 약점들을 능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손 장로는 “그가 일산 지역에 위성으로 설교할 수 있는 지교회를 설립하려다 그 지역 교회들이 반대하자 즉시 그만둔 것은 나를 감동시켰다”며 “그가 단순히 교회를 키우기 위해 노력한 목회자가 아님이 그것으로 증명됐다”고 평가했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옥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목사님께서 제게 안수기도를 받으러 오셨을 때”라며 “당시 목사님은 성령충만을 위해서 저에게 안수를 받겠다고 하셨다”면서 “저는 목사님을 적극 만류하며 오히려 저에게 안수해 주시기를 원한다고 간청했고, 결국 저와 옥 목사님은 무릎 꿇고 얼싸안으며 서로를 위해 기도했다”고 털어놨다.

조 목사는 “목사님은 그토록 주님을 향한 열망이 가득하고 겸손하시며 진실하셨다”며 “한국 교회의 성숙을 위해, 세계 교회의 갱신을 위해 제자훈련으로 수많은 평신도와 목회자를 훈련하며 양성하신 목사님의 업적과 열매는 한국 교회에 사회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장) 장로는 1980년대 초 예장 합신이 예장 합동에서 갈라져 남서울교회에서 신학교를 개교하던 때를 회고했다.

초청을 받아 경건회를 인도하던 옥 목사는 사무엘상 22장의 다윗의 아둘람 굴에 대해 설교했다.

이에 대해 이 장로는 “목사님은 설교에서 다윗 당시 의지할 곳이 아둘람 굴이었듯이 신군부에 의해 고난당한 자들이 찾아가 위로를 얻어야 할 곳이 바로 교회여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셨다”면서 “당시 복음주의권에서 그런 설교가 쉽지 않았던 때에 그는 말씀을 시대 상황에 비춰 적절하게 성육화했다”고 평가했다.

이 장로는 1980년대 중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태동할 수 있었던 데도 옥 목사가 소개한 한 기업을 통해 가능했던 사실을 공개하며 “목사님은 한국 교회와 사회의 필요를 공감하고, 선견(先見)하는 지도자적 혜안과 그 필요에 대비해 많은 인력을 준비해 가는 자세를 갖춘 분이었다”고 밝혔다.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은 1970년대 성도교회 대학부 초창기 당시 옥 목사의 첫 제자이자 사랑의교회 장로이기도 하다.

그는 “목사님은 세상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영역으로 파악하셨던 분”이라며 “목사님은 제자들에게 교회 밖으로 나가 직업을 통해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고 하나님 나라로 바꾸라고 가르치셨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목사님한테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노력의 중요성과 그 한계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며 “그것은 30년간 회사 생활을 하며 더 노력하는 것과 아침 첫 시간에 기도와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제자훈련은 세상과 직업에서 승리할 뿐 아니라 모든 세상과 사람을 하나님 나라와 권세로 인도하는 목표를 갖게 했다”며 “그래서 나는 목사님의 제자훈련을 제2의 종교개혁을 여겨왔다”고 고백했다.

사랑의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백화종 국민일보 부사장은 “목사님의 설교는 항상 비장했다.

죄 많아 감추고 싶은 내면을 들켜 질책을 받는 느낌이었다”며 “그러나 나쁜 짓 한 학생이 불안해하다가 선생님께 들켜 꾸중을 듣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듯,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나면 죄 사함 받은 양 영혼이 편안해졌다”고 고백했다.

한완상(전 부총리) 장로는 “때로 목사님의 설교를 접할 때마다 코미디언처럼 은혜롭지 않게 설교하는 분들의 모습이 겹쳐 떠오르면서, 새삼 목사님의 진지한 말씀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면서 “교회 규모가 커질수록 사랑의 공동체는 어려워지는 이 심각한 모순 앞에서 옥 목사님처럼 진솔하게 고민하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눈물의 목회자들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옥 목사님의 고뇌와 고독은 바로 갈릴리 예수님의 고뇌였음을 새삼 깨닫는다”며 “오늘의 한국 목회자들이 목사님의 삶과 목회에서 옥처럼 빛나는 그의 고민과 고뇌와 겸손을 이어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말콤 맥그리거 SIM국제선교회 총재는 “2008년 11월 SIM 국제본부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현지 교회 지도자들을 사랑의교회 CAL 세미나에 참석시켰다”며 “참석자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돌아갔으며 이미 나이지리아와 에티오피아, 잠비아 지역에서 제자훈련을 교회 사역에 접목하려는 노력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 (국민일보)
201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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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선아, 사랑해' 저자 이지선씨 인터뷰 2010.07.24 17:53
“하나님께서 다시 생명을 주신 날인 걸요. 10번째 생일인 만큼 근사한 데 가서 외식하자고 가족들을 조르는 중이에요.” 2000년 7월 30일. 추돌사고 후 발생한 차량 화재는 예뻤던 이지선(32)씨의 얼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끔찍한 흉터를 남겼다.

유치원 교사의 꿈을 안고 사회 첫발을 내디디려던 대학 4학년의 부풀었던 마음은 무참히 찢기고 말았다.

누가 봐도 악몽 같았던 그날, 하지만 그녀에겐 5월 24일 생일보다 더 소중한 진짜 생일날이 됐다.

지선 씨는 아직까지 범인과 대면하지 못했다.

아니 이름도 모른다고 했다.

용서할, 아니 감사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지만 나타나주질 않았다.

용서는 가당치 않다고도 했다.

“용서라뇨? 저는 그런 말을 쓸 자격도 없는 걸요. 하나님이 저 같은 사람을 배려하시고 용서하신 걸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할 따름인 걸요.” 최근 출간된 ‘지선아, 사랑해’(문학동네) 개정판엔 이처럼 그녀의 농도 짙은 신앙고백이 곳곳에 묻어난다.

7년 전 출간돼 큰 화제를 모았던 책을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너무 흥분된 마음으로 쓴 거라 촌스럽기도 하고, 그때는 차마 못했지만 이제야 할 수 있는 얘기들도 많았거든요.” 이 기간 동안 달라진 게 몇 개 있다.

우선 자신 같은 장애인들을 돕겠다며 2004년 시작한 재활상담학 공부는 노인복지학으로 바뀌었다.

컬럼비아대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에서 만난 한 교수의 열정적인 강의, 개인 상담보다는 정책이 급선무라는 거시적 안목, 보건복지부에서의 인턴 경험 등이 두루 작용했다.

지선 씨는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돌아보면 어느 하나 허투루 시키신 게 없는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그녀는 UCLA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오는 9월 출국한다.

수년 후 돌아와 한국의 복지정책 담당자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배우자를 위한 기도제목을 살짝 물어봤다.

예전엔 ‘귀여운 얼굴’이 먼저였지만 지금은 ‘따뜻한 마음’이 먼저라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먼저 생각하고 서로 말이 통하는 것도 새로 생긴 기도목록이다.

맨 나중이 외모다.

기준도 많이 낮아졌다.

‘귀여워야 한다’가 아니라 ‘귀여우면 좋을 것 같다’다.

남보다 몇 갑절의 중압감으로 20대를 건넌 그녀에게서 내면의 깊은 성숙함이 묻어났다.

지난해 11월과 올 3월, 지선 씨는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불편한 몸으로 뉴욕과 서울의 마라톤대회를 각각 완주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마라톤은 불가능, 아니 죽음과도 같았다.

여러 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하느라 그녀의 다리는 성한 곳이 없다.

피부의 55%나 화상을 입어 체온 조절도 안된다.

땀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었던 데는 주위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뉴욕마라톤대회 때는 길가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그녀를 위해 한 한국인이 “이지선, 파이팅”이란 피켓을 직접 제작해 흔들어줬다.

낯선 이국땅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하는 모습에 힘이 솟았다.

그렇게 해서 7시간 20분 만에 그녀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올 3월 서울에서 열린 마라톤대회 때는 친오빠가 함께 달려줬다.

진통제를 먹는 투혼을 발휘한 끝에 뉴욕마라톤대회 때보다 40분이나 단축했다고 그녀는 자랑스러워했다.

어머니 심정(58)씨는 지선 씨가 마라톤을 완주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딸의 몸 상태로는 자칫 목숨도 위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선이가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얘길 들었을 때, ‘쟤가 내 딸 지선이 맞나?’ 의심할 정도였어요. 소소한 일에 아직 엄마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데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지선이에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지선이를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지난 10년은 우리 가족에게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감사의 시간이었어요.” 두 번의 마라톤 완주 경험을 지선 씨는 이렇게 표현했다.

“마라톤을 뛰다보면 반드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구요. ‘이 짓을 왜 할까’ 하는 회의도 들고, 죽을 것만 같은 위기도 오구요. 그런데 포기하지 않으니까 기적이 오더라구요. 내 형편으로는 10km도 힘든데 포기하지 않고 뛰다보니 기적 같기만 한 42.195km도 극복이 되더라구요. 제 인생에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파이널 지점이 있을 텐데, 그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디뎌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녀는 하나님과 함께 걷고, 뛰고 있었다.

그 하나님이 절망을 소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 주셨다.

그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다.

지선 씨의 삶과 고백이 여러 가지 이유로 실의와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힘찬 응원가가 되고 있는 이유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 (국민일보)
2010-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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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남은 인생 주의 종으로 살고자 목사 안수.. 2009.10.26 19:06
[미션라이프] “그대 나를 두고 떠나가지 마라 토요일은 밤이 좋아. 그대 바라보며 사랑할 수 있는 토요일은 밤이 좋아. 이 밤은 영원한 것 그리움이 흐르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감미로운 목소리로 ‘토요일은 밤이 좋아’를 부르던 가수 김종찬(50)씨를 기억하는가. 한때 TV, 라디오만 틀면 온통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을 주름잡던 그가 어느 날 무대에서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만난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미소를 머금은 그의 눈가는 그새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주름이 패었다.

“당시 제 얼굴 기억하세요? 눈매도 날카롭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냉혈한 같은… 그때 돈을 그렇게 많이 벌었어도 단 한군데 좋은 일에 써본 적이 없어요. 지금이요? 교도소 양로원 탈북인 장애인 미자립교회 등 안다니는 곳이 없어요. 자동차 뒤에 음향기기 싣고, 찬송 부르고 예수님 전하고, 그렇게 꿈과 희망, 떡도 전하고 있습니다.

” 비로소 삶의 정답을 발견했다는 그는 오는 22일 한국독립교단 및 선교단체협의회(한독선연·총회장 김상복 목사)에서 목사안수를 받는다.

내년에는 교회개척도 준비 중이다.

김씨는 78년 가수로 데뷔했으나 주목을 받은 건 ‘내 사람아’ 등을 발표한 85년 이후부터. ‘사랑이 저만치 가네’라는 곡으로 모든 방송 가요차트를 석권했고 ‘토요일은 밤이 좋아’ ‘당신도 울고 있네요’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귀한 몸’이 됐다.

“당시 최고로 유명한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무대에 섰고, 외제차 남부럽지 않게 타고 다녔지요. 가수를 접어도 내 인생은 탄탄대로일 줄 알았어요. 자만심의 끝은 과연 어디인지… 그때 내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요? 40대는 사업가로 성공하고, 50에는 정치인, 60에는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이었지요.” 무대에서 사라진 그는 사업에 손을 댔다.

그러나 98년 IMF를 겪으며 여러 사람들에까지 큰 피해를 입히고 결국 구치소에 수감됐다.

최고의 자리에서 곤두박질 친 그는 미움 분노 증오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고통 중에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도관 한명이 왼쪽 오른쪽에 사람들을 모으더니 찬송을 부르는 장면을 목격했다.

미션스쿨을 다니며 불렀던 찬송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234장(새 199장)을 따라부르며 자연스레 그 자리에 동참했다.

3일에 한번씩 열리는 그 모임에 네 번째 참석한 날,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회개기도를 드렸다.

돈과 명예에 집착한 인생, 남을 시기하고 미워했던 것, 이웃을 도와주지 못한 죄 등 온갖 추악한 것들이 필름처럼 그의 뇌를 스쳤다.

그날부터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

주님은 그런 그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주셨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리고 두 가지를 서원했습니다.

하나님, 38년 지나온 삶을 잘못 살았으니 나머지 인생은 주님의 종으로 살겠습니다.

또 절대로 세상의 노래 안부르고 주님만을 찬양하겠습니다.

” 6개월 뒤 구치소에서 나왔지만 그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주머니에 1000원짜리 한 장 없었다.

그에게 온갖 유혹들이 다가왔다.

밤무대에 서면 1억원을 선불로 준다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는 말씀에 힘입어 세상의 것과 단절했다.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매달렸다.

4년간 성경을 연구하고 그는 백석대·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런 중에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찬양을 불렀다.

“세상의 노래를 버리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달려가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니 하나님께서 저를 굶기시지 않더라고요. 그게 바로 주님이 원하는 삶인데… 그게 바로 인생의 정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실 것을 믿고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이요.” 12월까지 그는 찬양 스케줄을 마치면 내년엔 교회를 개척할 계획이다.

그가 그리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곳일까. “미래를 지향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입니다.

세상이 존경하는 교회이고, 성도, 목사가 될 겁니다.

찬양으로 말씀을 세우는 그런 교회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 하지만 어디에 교회를 개척할지, 자금이 얼마나 들지, 구체적으로 세워놓진 않았다.

아무 것도 없던 지난 10여년의 세월을 하나님께서 세워주셨듯, 그는 교회도 그렇게 세워주시리라 믿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국민일보)
200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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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루터가 발견한 복음 2009.10.18 20:58
루터는 천주교가 가르쳐 준 하나님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경이 알려주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드러났다.
종교개혁은 루터라는 한 젊은이가 진지하게 자신의 구원의 문제를 질문한데서 시작되었다. 1505년 7월의 후덥지근한 어느 날 루터는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먹구름이 덥히고, 소나기와 함께 번개가 내리쳤다. 루터는 천둥 번개 속에서 자기는 영생을 위해서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중세 천주교는 인간이 영생에 들어가는 가장 확실한 길은 수도원이라고 가르쳤다. 수도원이야 말로 모든 죄에서 벗어난 장소요, 사람들을 안전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피난처였던 것이다. 루터는 당시 가장 엄격한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갔다. 루터는 이곳에서 천주교가 가르치는 구원의 길을 성실하게 걸었다.천주교는 모든 죄를 용서받은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쳤고, 죄를 용서받는 첫 번째 단계는 진정한 참회였다.

루터는 수도원에서 자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면 할수록 또 다른 죄가 기다리고 있었다. 루터는 고해신부에게 모든 죄를 다 고백했다고 생각했지만, 고해소에서 나오는 순간 또 다른 죄가 생각이 났다고 고백했다. 죄가 남아 있는 한 구원은 불가능한 것이다. 루터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항상 죄를 따지는 무서운 분이었다. 루터는 이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후에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난 그분을 증오했던 사람이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루터에게는 새로운 계기가 왔다. 그것은 비텐베르크 대학의 성서학 교수가 된 것이다. 그는 성경을 열심히 읽게 되었고, 그러는 가운데 루터는 천주교가 가르쳐 준 하나님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경이 알려주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드러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증거가 아닌가?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루터가 성서를 통해서 재발견한 복음이요, 구원의 길이었다.

종교개혁은 한 젊은이가 자신의 구원의 문제를 진지하게 질문하고, 성서를 통해서 그 해답을 얻은 데서 시작했다.

※ 본 컨텐츠는 국민일보와 제휴에 의해 제공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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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장애우 자립 돕는 둥지 – 안산제.. 2009.10.18 20:46
교회를 중심으로 교인들과 학부모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간. 집안에 틀어박혀 그들만의 세상 안에 갇힌 많은 장애인의 사례를 들으며 이곳에서 함께 웃고 작업하고 삶을 배워가는 모습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함께하는 그날을 그려본다.
“하하하” “호호호” ”낄낄낄” 심상치 않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는가 하면 어느새 웃는 얼굴로 머리엔 하트를 그리는 친구도 있다. 혹시 작업에 방해되진 않을까 걱정하던 나의 마음을 녹이는 이들. 이곳은 안산제일교회가 운영하는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빛과둥지’다.

2003년 10월 안산제일교회의 교육관 2층에서 5명으로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성장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안산제일교회 고훈 목사의 말에 따르면 시작은 그야말로 소박했던 듯하다.

“교육관 방 하나에서 아이들과 밥도 해먹고 함께 뒹굴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필요한 기구들을 지원받고 친구들에게 맞는 직업은 교회 내에 실업인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그러기를 3년, 2005년에 현재 건물에 입주를 시작으로 체계적인 지원과 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빛과둥지는 크게 직업재활사업과 장애아동 주간보호센터, 방과후교실, 성인주간보호센터, 장애인 공동생활 가정 등이 운영되는데, 첫해엔 2년을 등록할 수 있고 이후 1년씩 두 번 연장이 가능해 4년 후면 다른 시설로 떠나야 한다. 이는 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관계로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것. 안산시에 있는 모든 시설들에 이 기준이 적용된다.

직업재활사업은 처음에 5개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천연비누 제작과 포장 작업만 진행한다. 작업에 참여하는 인원은 40여 명, 그중 15명만 천연비누 제작에 참여한다. 포장작업과 천연비누 판매 수입은 매달 각각의 작업량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불된다. “모든 작업이 그렇지만 특히 천연비누 제작은 장애인들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고훈 목사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장애의 정도도 따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장애아동 주간보호센터와 성인주간보호센터는 장애우를 가진 부모라면 늘 겪었을 어려움을 덜어주는 공간이다. 집안에 큰 일이 생기거나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우를 혼자 둘 수 없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때로는 방안에 묶어놓고 외출하는 경우도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도 접하게 된다. ‘빛과둥지’가 생기고 난 후 이러한 부모들의 걱정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동을 보호할 뿐 아니라 각 연령에 맞추어 다양한 여가활동과 취미활동, 학습활동, 사회적응활동 등을 통해 성장기에 있는 아동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미 성장이 멈추어버린 성인들은 일상생활에 대한 훈련을 통해 사회적응능력이 향상되도록 돕니다.

방과후학교는 특수학교나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 다니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 평일에는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그리고 수요일에는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며 부모님들의 요청에 따라 오후 7~8시까지도 자녀를 보호해준다.

장애인공동생활가정은 말 그대로 발달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장애우들에게 가정과 같은 주거환경을 제공하고 장보기, 은행 업무보기, 식사 준비하기, 빨래하기 등 실제적인 가정생활을 통해 향후 자립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1가정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에는 장애우 4명과 선생님 1명이 함께 생활한다.

장애인공동생활가정은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6개월에서 1년 정도 훈련을 받는다. 교회를 중심으로 교인들과 학부모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간. 집안에 틀어박혀 그들만의 세상 안에 갇힌 많은 장애인의 사례를 들으며 이곳에서 함께 웃고 작업하고 삶을 배워가는 모습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함께하는 그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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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독교 초기 자녀교육 방법’… 세계신.. 2009.10.18 17:14


















신약학의 세계적인 거장 안드레아스 린데만 박사가 6일 서울신대 초청으로 내한했다.

지난 8월 세계 신약학회장에 취임한 린데만 박사는 17일까지 한국에 머무르며 서울신대 장신대 협성대 감신대 나사렛대 경안신학대학원대학교 한국기독교학회 한국신약학회에서 강연을 한다.

6일 오후 그가 머무르고 있는 연세대 상남 경영원에서 만났다.

-세계 신약학회 회장에 취임한 것을 축하 드립니다.

세계 신약학회는 어떤 곳입니까 “1930년 영국에서 태동했으며 2차대전 이후 신약성서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학문 연구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세계 각국 1000여명의 학자들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세계신약학회는 어떤 한 교파나 교단의 교리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대부분이 기독교 신학자이지만 종교학자와 유대인 학자들도 있습니다.

” -주요 할동은 어떤 것 들이 있습니까 “1년에 4번 학술잡지(뉴 테스트먼트 스터디스)를 발행하고, 전문 연구 서적 모노그래프 시리즈를 편집하고 있습니다.

매년 한 차례 연례 총회와 연구 모임을 개최합니다.

연구 모임에는 보통 300여명의 학자들이 참석하는데 신약성서 연구 분야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학술적 교류를 합니다.

학회 회장의 기조연설을 포함해 4개의 주제 강연, 소강연이 발표됩니다.

또 16개의 세미나가 진행됩니다.

” -세계 신약학회의 최근 연구 동향을 알고 싶습니다.

“나사렛 예수에 대한 역사적인 질문(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 공관복음 연구 방법, 바울신학 중 ‘믿음으로 얻는 의’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세례의 기원과 그 의미에 대해서도 연구가 활발합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는 당시 갈릴리의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예수를 연구하는 것인데 19세기 알베르트 슈바이처에 의해 시작된 이래 많은 발전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새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성경 뒤에 있는 예수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20년 전부터는 성경 안에 있는 역사적 예수를 찾는 연구가 활발합니다.

또 기독교가 형성되던 시대에 어린이에 대한 교육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연구도 새로운 분야입니다.

기독교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어떤 형태로 교육을 받았는지가 핵심입니다.

”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 분야는 무엇입니까 “바울신학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적 숙고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편지를 썼습니다.

신학은 바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적 주제에 관해 서로 대화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서의 진술이 현재의 신학적 그리고 윤리적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성서학 특히 신약성서학은 어떤 의미와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신약과 구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신학의 근거를 제공하는 텍스트입니다.

그 가운데 신약은 성육신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입니다.

기독교의 복음 선포는 성서에 있고, 당연히 신약성서를 그 근본 텍스트로 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한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이며, 교회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연구입니다.

그래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알프레드 로이지(A Loisy)는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교회가 왔다”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역사적인 평가가 들어 있는 것이며, 또한 어떤 교회의 자의식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다가오는 것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그 선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재성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것은 교회와 공동체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여기 계시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선포입니다.

” -세계 경제 위기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경제 위기를 통해서 우리는 금융과 경제의 성공이 그리 중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안정이 꼭 거기에만 있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도 바울이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했던 모금 운동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즉 신앙과 현재적 연대는 함께 묶여 있는 것입니다.

” -독일과 유럽교회가 비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맞춰 이슬람의 확산도 기독교 선교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라는 분석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독일에만 이슬람 신도가 300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이는 이슬람의 전방위 선교 때문이 아니라 이슬람인들의 유입 때문입니다.

히틀러 당시 독일교회는 가장 침체됐습니다.

그러나 그후 다시 성장했고, 통독 이후 다시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출산율 저하와 교회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요인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성장하다가 정체되는 순환을 해 왔기에 다시 성장할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를 가치 있는 공동체로 만들어 가면 성장할 것입니다.

” ◇린데만 회장은 1943년 독일 레어 출생으로 괴팅겐대에서 목회실습을 하고 한스 콘첼만의 연구조교를 거쳐 78년부터 베텔신학대 신약학 교수로 재직하다 올 3월 은퇴했다.

내년까지 세계신약회 회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Thelogische Rundschau’ 편집장을 지냈다.

스승 콘첼만과 공동 저술한 ‘Arbeitsbuch zum Neuen Testament’(신약성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신학교재 중 하나다.

이승한 기자 shlee@kmib.co.kr (국민일보)
200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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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주장신대 김한호 교수 “장애인 사역위.. 2009.10.18 17:08
“교회는 차별 없는 복음으로 하나 됨을 추구해야 되는데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에서 그 물꼬를 터야 합니다.

” 사랑의복지재단(이사장 오정현 목사) 산하 한국장애인사역연구소가 최근 개최한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김한호(45·사진) 미국 미주장신대 교수는 6일 한국의 사회복지 정책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크리스천들이 발상의 전환과 변화를 선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참다운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사역자들부터 변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애인을 단지 불쌍한 존재로 여긴다거나 무능력자로 여길 때는 교회 안에서조차 온전한 ‘디아코니아(봉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디아코니아는 그리스어 어원에 따르면 식탁에서 시중 드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 땅에 오셔서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식탁에 시중 들러 왔다’는 말에서 비롯됐다.

김 교수는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 등 부정적 행동 양식을 버릴 때 통합적인 사고방식이 정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애인 사역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조기 교육과 통합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독일 등 선진국에서 유치원조차 통합 교육을 추진하고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가도록 돕는 데서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합적인 삶이 장애인뿐 아니라 다문화권 사람들, 자연 및 환경과도 더불어 지낼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따라서 “교회는 성장을 말하는 곳이 아니라 진리와 진실을 말하는 곳이 돼야 하고, 크리스천들은 고백과 행동하는 신앙, 전문성과 연대의식 등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회가 진실을 말할 때 사회가 결국 교회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라는 확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장로회신학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를 거쳐 오스나부룩대에서 실천신학 분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8년 전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교회가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유학 길에 올랐다.

독일에서 실천을 중시하는 디아코니아학을 배우면서 복지와 장애인 등 예수의 나눔 사역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시도했다.

현재 미국장로교회(PCUSA) 회원으로 아이교회를 담임하면서 미주장신대 등에서 디아코니아학을 강의하고 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국민일보)
200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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