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pia 블로그
쓰임받는 축복. 2010.10.16 00:12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종합선물셑트를  한꺼번에 주시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고통속에서 울지말고, 고개들고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라는 뜻인가 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도 받지않고, 슬슬 피하길래 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이유를 알수없어 답답했습니다.

결국, 가정예배때 나의 고민을 가족들앞에 내놓았습니다.

"요즘, 이상해요~ 친구들이 나를 피하는 것 같은데, 이유를 모르겠어요.  뭘 잘못한 건지.... 알아야 고치든지

 할텐데, 혹시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요?"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아들 후니가 후다닥 말을 합니다.

"엄마!  저는 알 것 같아요.  엄마는 다른 사람의 약점을 너무나 잘 건드리시는 것 같아요.

  저도  기분나쁠 때가 정말 많아욧!!!"

"그래? 그래서 그런가?"

왠지 그런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사이니까 괜찮겠거니하고  너무 허물없게 대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마음에 남아있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임이 있어서

출근하는 남편과 함께 전철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여보~ 당신생각은 어때? "

"편하니까 별 쓸데없는 이야기나 하고... 다 부러워서 그러지"

"뭐가 부러워? 얼굴도 못생겼는데~ 그리고, 다들 나보다 다 잘사는데 왜?"

"너는 하고싶은 거 다하고 살잖아~ 나도 하고싶은 거 못해....나도 네가 부러워~"

 

남편이 나를 부러워 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남편의 눈에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사는 것처럼 보이나 봅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전철역을 빠져나오다가

아침에 남편 용돈을 주지 않은 것이 생각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미안해. 깜빡했네~ 용돈 말이야."

"아니야. 남은 돈 있으니까 걱정마~ 참 그리고, 내가 널 인정해 주면 되는거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  사람들에게 너무 기대하지마.   

 언젠가 필요하면 다시 전화할꺼야.  그게 사람이니까...사람한테는 더 바라면 안돼~"

".........."

나는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남편의 입에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말이 튀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나를 인정해 준다고? "

너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 내가 널 인정해 주니까 다른 사람때문에 속상해 하지말라구~"

 

이게 왠" 내귀에 캔디!"스러운 말투입니까?

남편과의 연애기간을 다 합쳐보아도 이런 닭살 멘트는 생전 처음 들어봅니다.

남편이 드디어 미쳐(?)가나봅니다.

 

어느새, 갑갑하고 무겁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밤하늘에 수놓는 불꽃놀이처럼, 내 어둡던 마음에 사랑의 불꽃이 팡팡하며 터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고마워~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줘서...그럼 그렇게 알고 그만 끊을께!"

혹시라도 딴소리로 마음을 다치기 전에, 서둘러 전화를 끊었습니다.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해대는 것이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첫사랑의 고백을 듣는다면 이런 기분 일까요?

정말 사람은 끝까지 살고 볼 일입니다.

남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흥분을 가라앉히질 못하고, 다락방모임에 갔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아내의 역할과 창조의 질서 원리를 배웠습니다.

돕는 베필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하나님의 명령....복종....순종......

가정은 교회의 모형. 천국의 모형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너무나 소중한 말씀...

어찌보면 힘겨운 말씀일 수도 있었는데, 그 사랑의 불꽃덕분에 술술 잘 받아먹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의 말 한마디가 아내에게 이토록 큰 위로와 힘이 될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의 성품과 형편을 잘 아시기에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을 부담스러워 할 줄 아시고,  

미리 남편을 사용하셔서 먼저 사랑의 말로 저를 감동하게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멘~아멘~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귀한 말씀을 잘 받아 먹었습니다.

먼저 사랑을 베풀어 주는 이에게는 순종과 복종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모양입니다.

감사하게도 남편 먼저 사랑의 말을 건네주어서 순종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왜 가정이 천국의 모형인지 이제 조금은 알듯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부모밑에서 자라는 자녀는 사랑이 많은 아이로 자랄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을 주고 받는 모습을 통해서 자녀는 사랑을 배우며 자랄 테니까요.

가정이 회복되면, 하나님나라가 이땅에 실현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이모양 저모양으로 알게 모르게 쓰임을 받고 사는 게 아닐까요.

남편을 사용하심으로 저를 감동시키셔서 상처로 단단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신 것도....

아들의 입을 통해 저의 연약함을 보게 하시는 것도.....

다락방에서 성도간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도...

우린 모두 한 순간도 쓰임받지 않는 순간이 없습니다.

 

돌아보면, 참 힘든 길을 걸어왔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주예수와 함께.....

앞에서 끌어주고, 옆에서 일으켜 주고, 같이 울어주고, 함께 기도해 주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명을 감당하기위해 오늘도 누군가의 기도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어머니로, 남편으로, 아내로 .... 아버지로....또한 자녀로.형제로 자매로..

앞으로 살아갈 날동안도 서로 사랑하며 격려하며 위로하며 쓰임받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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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읍시다 - 오정현 목.. 2009.10.30 19:00

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읍시다 - 오정현 목사

설교 본문; 누가복음 15:20~24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So he got up and went to his father. 'But while he was still a long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was filled with compassion for him; he ran to his son, threw his arms around him and kissed him.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The son said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against you. I am no longer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But the father said to his servants, 'Quick! Bring the best robe and put it on him. Put a ring on his finger and sandals on his feet.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Bring the fattened calf and kill it. Let's have a feast and celebrate.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For this son of mine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So they began to celebrate
 
아버지의 마음은 십자가이다.
집나간 아들이 어서 돌아오기만을 바라면서, 문가에 늘 서성이며 기다리신다.
그 아버지의 심정을 알게 될때 탕자는 비로소 진정한 자녀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간섭, 통제가 싫어 자기 몫을 챙겨서 집을 나간 아들은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아버지 집을 떠올린다.
그 집의 일꾼이라도 되기를 바라고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성대한 잔치를 하고 따스하게 맞아주신다.
그럴 자격도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아버지의 귀한 마음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다. 
다시 자녀로 받아주시는 마음....돌아온 자식을 내치지 않으시는 심정...그것을 아는 것이 거듭남의 비밀이다.

에스겔 1장
뼈저린 각성.. 하나님의 심정..을 알게 하신다.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하늘문이 열리게 하신다.
복음의 능력으로 돌진하시는 하나님의 불병거를 보게 하신다.
이세상의 역사는 똑똑한 사람이나,  정치인이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록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될때에, 하나님앞에서 헌신을 드릴때,
그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 돌파구를 주신다.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이세상에는 똑똑한 스승도 많고, 대단한 준비를 한 사람은 많다. 그런데 아버지는 많지 않다.
아버지는 다 안 갖추었어도 아버지의 심정이 있다.부족한 부모가 아이를 기른다.
산부인과 간호사가 아이를 낳는 과정과 아이에 대한 지식은 훨씬 더 많이 안다.
그러나, 자식은 아직 아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엄마가 낳는다. 엄마에게는 엄마의 심정이 있기 때문이다.
자식은 똑똑한 교수와 스승과 잘 아는 간호사와 정치인이 낳고 기르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심정을 가진 사람과 아버지와 엄마가 낳고 기르는 것이다.
나는 스승처럼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간호사처럼 모든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복음의 비밀을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아  섬기게 하여 주십시오.
그 맘 가질때 복음을 위하여 쓰인다.
똑똑하지 않더라도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신다.
시편 37: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
아버지의 심정을 깨달은 사람은 아버지의 영상이 날마다 확인되게 하신다.
이땅에서도 목자의 심정, 아버지의 심정, 어머니의 심정으로 살게 하신다.
 
***************************************반응*****************************************
하나님께서 오목사님을 통하여 아버지 심정을 알게 해 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부족함 대신 하나님으로 제 자신을 채워가길 바라십니다.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언젠가, 아들 후니를 기르며 하도 힘들어서 울고 불고 하면서 떼를 쓰던 기억이 납니다.
왜 이렇게 부족한데 아이를 기르게 하시냐면서, 후니를 잘 기를 수 있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속 썩이는 아이를 전철역에 그냥 버려두고 왔지요.
얼마후 집에 와보니 아들 후니가 집에 와있었어요. 알지도 못하던 누군가 집으로 데려다 놓았지요.
여러모로 부족하더라도 아들 후니를 잘 기를 수 있는 곳이 우리집인 것을 그때 알았지요.
그후에, 주님께서 네가 잘 기를 것 같아 너에게 맡겼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또 많이 울었어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요.
혼자 몸도 가누기 어려울 때였잖아요. 그땐....사느라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도 순종했어요.  하나님 말씀이시니까요. 저의 주인 이시니까요.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네요.  제가 어미의 심정을 가지고 살기를 바라신 겁니다.
똑똑하지 않아도, 준비가 잘 되지 않았어도, 재정이 없어도,
어미의 심정을 가지고, 아이를 기르길 원하셨던 겁니다.
지금...후니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여전히 속을 썩이지만, 이제 제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줍니다.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자기를 기르느라 힘들겠다고도 말합니다.
아침마다 맨날 울고 불고 학교에 지각하던 놈이, 벌써 커서, 내년엔 중학교에 갑니다.
세월이 참 빠르죠~잉. 
오늘 아침 인터넷으로 말씀 듣고, 참 좋으신 하나님을 다시한번 불러봅니다.
어리석은 자를 들어서 그 귀한 어머니의 사명을 맡겨주신 것 너무나 감사합니다.
주님..앞으로도 부족한 저로 살게 해 주시고,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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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보살핌. 2008.11.18 11:48


보살핌, 모든 치유의 원천


보살핌은 치유와는 다른 말입니다.

치유는 ‘변화’를 뜻합니다.


의사, 변호사, 목회자, 사회 복지 요원과 같은 이들은

모두 자신의 전문가적 기술을 이용해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해내는 어떤 치유책이든 그것에 대해 사례를 받습니다.


그러나 치유는, 바람직한 것일지 몰라도,

그것이 보살핌에서부터 자라서 나오지 않을 때는 쉽게 과격해지고, 조직적이며

심지어 파괴적으로까지 바뀔 수 있습니다.


보살핌은 같이 있어주는 것이고,

같이 울어주는 것이며, 같이 고생하고 같이 느끼는 것입니다.


보살핌은 측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이 인간적이며,

죽을 수 밖에 없고, 취약한 나의 형제 자매라는 것이 진리임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보살핌이 우리의 첫번째 관심이 될 때, 치유를 선물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치유할 수는 없으나, 우리가 언제나 보살필 수는 있습니다.


보살피는 것은 바로 인간답게 되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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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고독이 만날때 2008.10.11 21:12

  고독과 고독이 만날때

(춤추시는 하나님중에서 옮김)

우리는 공동체안에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정으로 돕고, 다른 사람의 고난에 사랑으로 반응하는,
믿음과 긍휼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 알수있다.
공동체란 단순히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이 아니라,
고독고독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외로움과 외로움을 만나고,
필요가 필요와 충돌하는 것과는 다른 만남이다.
이런 만남은 오히려 사람들을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얽혀들게 한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잘 지내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른 사람을 도우러 갈 때 내면 깊은 곳에서 이런 간절한 말이 들려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를 사랑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절박한 필요에 매달리는 것이다.

우리가 폭력적이 되는 주된 이유는 상대가 줄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해답을
사람에게서 찾는다면 사람을 신(god)으로 만들고 자신은 마귀가 된다.
우리의 손이 이제는 쓰다듬지 않고 움켜쥔다.
우리의 입술이 이제는 입맞춤이나 친절한 말을 하지 않고 물어뜯는다.
우리의 눈이 이제는 기대하지 않고 의심하며 바라본다.
우리의 귀는 듣는 것이 아니라 엿듣는다.

개인이든 단체든 결국 내 두려움과 불안을 인간이 해결해 주리라고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깊은 좌절에 빠져 온유함을 잃고 폭력적이 되게 마련이다.

이렇듯 공동체란 외로움에서 자라날 수 없다.
사람들에게 내 모든 해답이 되어달라고 요구하지 않을때,
비로서 상대가 내게 주는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

상대에게 모든 것을 바라고 신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자세를 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가 주는 선물을 정확히 볼 수 있다.
무한한 사랑의 유한한 표현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과 함께 살며 섬기며 예배할 때,
우리는 서로 의지하고, 자신이 신이 아니며,
자신의 필요를 스스로 채울 수 없으며,
상대방의 필요도 완전히 채워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게 된다.
여기에는 놀랍도록 우리를 겸손케 하고 자유케하는 요소가 들어 있다.

십자가의 승리....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을 은혜로, 값없이 받았음을 알고 깨닫는 순간
내 마음 속에 감사가 저절로 생긴다.
이제 나는 자신의 "명분"을 위해 남의 도움을 끌어내거나 제어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 우리의 편협한 시각도 깨질 수 있다.
삶을(그리고 다른 사람을) 내가 소유하고 통제하고 정복할 소유물로 대하면
우리는 바로 볼 수 없다.
꽃을 움켜쥐면 아름다움을 오래 발산하지 못하고 곧 시들고 만다.

누구든 자기를 조종하려는 태도로 대하면, 상대방에게 자신을 열지 않는다.
꼭꼭 문을 닫아건다. 참 모습을 숨긴다. 불투명해진다.
그러나, 이때 기도가 도움이 된다.
기도를 통해 모든 삶을 선물로 보게 되면
인간이야 말로 그 중 최고의 선물이 된다.

그들은 이제는 이리저리 옮겨 놓는 장기판 위의 말이나 내 계획과 야망을 도와줄
대상이 아니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뭔가 가르쳐 출 사람이 된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사람이 평가할 대상을 넘어서는 존재임을 발견한다.

우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되면 우리는 서로 투명해 진다.
우리를 통해 빛이 비칠 수 있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실 수 있다.
우리 각자가 평가 대상이라는 한계를 초월하여 사람이 될 때,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시며 우리를 공동체로
묶으실 수 있으며 우리는 투명해진다.

"이 남자는 이일을 잘해. 저 여자는 그 일을 잘해" 우리는 사람을 이용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사람이란 역할 이상의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내 안에서 내기능이나 직무 이상의 것을 본다면 나는 서서히 더 깊은
차원에서 당신과 대화할 수 있다. 당신에게 진정한 의미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삶이란 세상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람을 단순한 역할에서 한 인간으로 바꿔 놓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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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의미> 2008.08.02 07:36

<고통의 의미>손봉호 교수,  누가복음 12:6~7

2008.7.28
 
 명심 보감의 첫 번째 구절에도, 인과 응보라는 법칙이 적응됩니다.
이번 재앙에 다 죽은 사람들 외에도 더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잘 삽니다.
게다가,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도 죽거나 고난을 겪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다른 사람들이 졸지에 그로 인하여 죽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고통을 다 당해도 팔자 소관 이라는 것은 그릇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고통이나 재앙을 당해도, 운이라고 하는 것도 그릇된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진실이라면, 중국의 한 지역에 난 유명한 지진 때,
어쩌다가 다수의 시민이 다 ‘운이 나빠서’그 지역에 머무르다가 다 죽었다는 말이 되고 맙니다.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데,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인데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대하실 수 있나?’
그에 대한 답은 각자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이나 운 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고난이나 고통에는, 무조건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당해도, 하나님을 계속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입니다.
말이 안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알기 위해서, 알고 있어서 믿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를 모든 악한 것에서 지켜 주세요.
저에게 고난의 이유를 알려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퍼온곳;http://blog.empas.com/haksu3/2978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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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누구냐? 2008.07.26 23:33
때때로 나는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내가 누구인지..혼란스러울때...나는 나에게 묻는다.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남들이 알고 있는 나와,
실제로 존재하는 나 사이에 얼마나 많은 혼란이 있는지 모르겠다.

되고 싶은 나.
닮고 싶은 누군가의 옆에서 몸부림 치는 나.
그렇게 나는 서럽게, 간절하게 나를 못살게 군다.

며칠전,
어지러움이 심해서인지 넘어지다가 발가락을 삐었다.
무시하고, 볼일을 보다가 발가락이 너무 아파서 살펴보니 피멍이 들었다.
결국..절둑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서는 며칠동안 고생을 했다.

불편한 마음으로
아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며칠을 보내고서야 오늘 외출을 할수 있었다.
어지러움은 계속되었지만, 발가락이 많이 편안해 졌다.

아침마다 "어머니..발가락좀 어디 봐요!  많이 나았네요. 이젠 걸어다니셔도 되는 거 아니예요?"
비지땀을 흘리며, 오전엔 학교(방학중 특별수업)에 다니랴, 엄마 심부름하랴, 식사준비하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아들 후니는 엄마의 발이 어서 나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침마다 엄마의 발가락 검사를 한다.

점심은 라면으로, 저녁은 생선구이로 부족한 솜씨지만, 애를 쓰며 차려내는 아들의 식탁에
감격하고, 미안해 하면서 나는 불편하지만 감사한 식사를 했다.

학교에서, 특강을 마치고,12시 반이면 집으로 오는 후니를 위해
엄마인 내가 점심을 준비해야 하지만, 오히려 배고픈 아들 후니가
며칠동안 고사리 같은 제 손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식을 부려 먹는 것 같아 속이 아팠다.

아들 말대로, 오늘은 발가락이 많이 좋아져서...아침을 손수 했다.
아직 어지러움은 가시지 않아서인지 기운이 없다.

누워서...누군가의 엄마로 사는 것을 새롭게 느꼈다.
저 어린 것도 아픈 제 엄마를 위해 밥을 해야한다는 것을 아는 구나...
고맙다는 말을 계속 하면서, 평상시에는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고맙기는 한데, 왜 불편한 것일까?
자식에게는  왠지 받는 것이 익숙치가 않은 것같다.
주면 줄수록 더 주고 싶은 아들....
주고 싶어도 아무렇게나 줄 수 없어서 뒤돌아 눈물 흘릴때가 더 많은 아들...
버릇없어질까봐 때로 칭찬도 아낄때가 많기에, 미안한 아들....
안고, 품어주기보다, 매부터 드는 무정한 엄마...
나는 아들에게 사랑을 주는 데 서툰 그런 어설픈 엄마다.

누워서, 아들과 함께 아이스크림도 먹고, TV도 같이 보면서 한가롭게 휴식을 즐겼다.
아들이 많이 웃어주어서, 짜증을 부리지 않고, 심부름을 해주어서 참 고마웠다.

엄마가 누워서 아무일도 하지 못하는데도 아들은 제어미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한다.
아침마다 의사선생님처럼 발가락 검사를 하며 걱정을 하기도 하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이렇게 착한 아들인데, 나는 말썽꾸러기로만 여기고, 해야 할일도 못하는 아이로만 여겼다.
아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지 못하고, 욕심으로 바라보아서 아들이 얼마나 예쁜지 몰랐다.
발가락이 아픈 것보다, 그동안 아들에게 이런 저런 상처를 준 것이 더더욱 아팠다.

옳은 소리만 해대는 엄마였지,  지원을 해주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엄마는 아니었다.
어디서 배워서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일까?  어디서 저런 마음이 샘솟는 것일까?
사랑을 퍼다 나르는 아들덕에 나는 행복이란 것이 가정에 있음을 알았다.

나는 무엇을 찾아 다닌 것일까?
더욱 가치있는 일을 만나면, 그동안 가치있다고 여겼던 것들을 내려놓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가정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 가정에 생명이 살고 있음을 보았다.
옳은 이야기를 하는데도, 왠지 미운 엄마가 아니라,
아프더라도 보살펴 주고 싶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름다운 아이가 있음을 보았다.


나는 아무런 능력도 없이 엄마가 된 사람이다.
자신의 희생에 너무 민감한 철부지 엄마다.
기분대로, 제멋대로 인생을 살아서 혼란을 주는 엄마다.

그런 나에게 아름다운 눈망울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천사처럼 착한 내 아들...
너무나 맑아서 금방 흔들리는 여린 마음을 가진 온유한 아이....

사랑이 고파서, 울부짖는 모습을 보며 문제아라고 놀려대던 나쁜 엄마.

나는 아직도 엄마로서 알아야 할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소리지르고, 협박하고, 때때로 매를 드는  것 이외에 아이와 잘 지내는 방법을 모른다.
힘들어하고, 울고불고, 못 견뎌 하고 도망치고 싶어한다.
나자신과도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기에 어느누구와도 관계가 힘들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에게 큰 선물을 주셨다.
넘어지게 하셔서, 아들의 사랑을 받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를 짐으로 여긴 나의 죄를 보게 하신다.
세상의 눈으로 아들을 보며 아들을 못살게 굴었던 것을 보게 하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잘 자라고 있는 아들에게
세상의 가치를 들이대며 고통을 주었던 것을 보게 하신다.
이 보잘것 없는 열등감 투성이인 엄마를 그래도 좋다며 사랑해 주는 아들을 보게 하신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아들.

나에게도 사랑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우리 모두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하기 위해 이세상을 살아간다.

나또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받고 살고 싶다.

아직은 내힘으로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사랑의 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부자가 되어서 가치있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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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2008.07.15 07:36

<문제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설교자; 손인식 목사님

2008.7.14


거짓은 강력합니다.
거짓말은 참 무섭습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모든 다른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믿음에서 떠나면, 진리의 영이 떠나고 거짓의 영이 다가와 버립니다.
사단과는 맞서고 싸워야 합니다.
교회가 일어나 거짓을 없애야 합니다.
거짓이 민족과 성도들의 원수입니다.
외식은 위선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거짓은 거짓인데, 위선입니다.
우리는 원수를 쳐부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을 감사하면서 받으면,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자족하는 삶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져야 합니다.
거룩함은 하나님과 나의 눈길이 마주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거짓을 잘 물리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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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 2008.07.05 08:12


그동안 고통스러웠던 일상을 보냈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몸둘 바를 모르고, 방황했다.
사는 것이 더이상 행복하지 않았고,
죽는 것에 대한 불안이 나를 두렵게 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죽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노후에 대한 걱정이 앞선 것이었다.

나의 한계를 넘어선 죽음의 문제....
불안한 노후의 문제..

우리동네로 이사오신 친척 노부부와 교제를 나누면서,
노후의 생활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미래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자녀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녀가 아니기때문이다.

나에게
노후를 준비한다는 것은 돈을 모으는 것을 의미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모을 수 있을까?
저축을 해야 하는가? 보험을 들어야 하는가? 어딘가에 투자를 해야 하는건 아닐까?

어느새,
내 마음속은 어둡고, 우울한 마음으로 가득찼다.
남편도, 아들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바보같이 살았던 것은 아닌지 후회가 들었다.

교회를 다니는 일에 너무 열중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빚을 갚지 않고, 돈을 모으지 않았던 것도 어리석게 느껴졌다.
남의 가정 걱정하느라, 내 생활이 엉망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살던 집을 정리하고, 서울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월세집을 알아보기위해, 부동산을 부리나케 드나들었다.
은행의 대출창구도 함께 다니면서 나의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그동안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산건지...내 인생이 한심했다.
한순간에 천국에서 지옥의 삶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 이런 삶을 살게 되다니....
현실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통장에 여유자금도 없고, 빚은 어쩔수 없이 내야하는 형편이고,
남편은 집을 정리하고 서울로 이사가는 것에 반대를 하고.....
생각이 다른 남편과의 관계가 악화가 되고,
아들을 보살필수 없을 정도의 바쁜 생활이 게속되었다.

마음은 무척 괴롭고, 몸은 몹시 피곤했다.

오 주님~ 살려주세요.~
너무나도 지쳐서 나는 쓰러질 것만 같았다.

잠언 장 8절
곧 허황한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여 주시고, 가난도 부함도 허락하지 마시고, 오직 일용할 양식만 주소서.


마태복음 장 11절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


수요여성예배를 통에서 나는 나의 죄를 알게 되었다.
오늘 하루의 양식을 구하지 못하고,
언제까지 살지도 모르면서,
미래의 양식을 쌓아놓고 싶은 나의 불안한 욕심이 드러났다.

출애굽기
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말라 하였으나
20.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는 믿음없음이 나를 불안한 현실의 거친파도에 휩쓸리게 한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세상에 살지만, 하늘나라 사람이다.
이세상은 나를 평안하게 하지 못한다.
내가 아무리 미래를 철저히 준비한다고 한들 나의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나는 잊고 있었다.

오늘 하루 주신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오늘 하루 양식 주신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생기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걱정과 염려로,
가족들을 함께 세상의 거친파도 속에 던져 넣은 것을
회개했다.

주님께 감사한다.
나하나로 인해 가정이 불안해진 것을 알게 하시고,
세상에 속한 인생이 아니라, 세상을 그저 통과하는 인생임을 알게 하신 것에 감사한다.
세상의 상식과 법칙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법칙으로 살아야 하는 인생임을 ......알게 해 주셨다.

죽음은 그저 성화의 한 과정이라는 누군가의 말씀처럼,
죽음은 통과할수 밖에 없는 한 과정일 뿐 ....나에게 더이상 공포를 주지 못함을 인정한다.

내 목숨도, 내 건강도, 내생활도, 내 양식까지도 책임져 주실 주님께 감사 찬양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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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에 울지마. 2008.05.30 21:38
 
 
사랑하는 후니에게...
벌써 여름이 시작되는지, 날씨가 더워지는구나.
오늘 학교에서는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단다.
어제,
네가 숙제를 하지 못했다고,
학교가면 욕먹을것이 싫다며 울고 불고 흥분되어서
진정하고 가느라 학교에 늦게 갔지.
덕분에 엄마의 스케줄도 엉망이 되었구...아~~
 
후나,
건강하지 못한 상상력은 주변을 모두 병들게 해.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은
숙제를 통해 너희들의 성실성과, 최선을 다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네가 숙제를 통해 인내심과 성실과 최선을 배우길 바란다.
게다가 숙제를 하지 못했다고 해서 학교수업을 포기하는 행동은 어리석은 선택이란다.
엄마가 학교엘 보내지 못한 이유는 흥분상태에서 학교에 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것때문이지,
너의 행동이 옳아서가 아니었음을 알아주렴.
 
사랑하는 후나.
네가 이제는 책임감을 배워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이 엄마는 감사하구나.
해야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단다.
책임을 지는 삶을 살기는 몹시 어렵지만, 모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세상은 엉망이 되고 말거야.
숙제를 하는 일은 너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훈련이란다.
그 일을 통해 너의 부족한 점을 알게되고, 고쳐나간다면
너의 성품과 장래는 멋지게 변하게 될거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알고,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분별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하고, 분명해 질거야.
 
사랑하는 후나.
네가 마음이 가벼워져서 학교엘 가는 모습을 보면서,
후니가 책임감에 대한 공부를 할 준비가 된 것이 기쁘다.
 
잘못한 것에 대한 댓가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댓가를 치를 때는 겸손하게 받아들이렴.
해야 할일을 끝내지 못했을 때 받게 되는 불이익과 손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정직하게 반응하길 바란다.
과장되게 받아들여서 자존감까지 무너뜨리는 일이 없기를 말이야.
실수와 잘못은 행동에 대한 결과일뿐 너의 가치와는 무관한 것이야.
행동이 너의 가치를 결정짓는게 아니니까, 너는 너 자체로
눈부시게 아름다운아이란다.
네가 무슨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너의 가치는 절대 변하지 않는단다.
 
 
그것은 칭찬을 들었을때도 마찬가지야.
과장되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행동에 대한 결과 일뿐, 그 칭찬이 너의 가치를 바꾸지 않아.
칭찬을 통해 교만한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도 옳지 않은 일이란다.
 
행동에 따라 자존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
다른사람의 칭찬과 욕에대해 인정은 하되, 자유하길 바란다.
 
자존감이 건강한 상태에서는
행동에 대한 미련이 남지 않는단다.
우리는 부족한 인간이라서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지.
엄마를 보렴.
얼마나 실수가 많은지..잘 알지 않니.
그렇다고 해서 슬프게 살진 않잖아.
당당하고 씩씩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는 것 알지?
생각할 것 이상을 상상해서 두려움과 죄책감, 교만에 빠지지 않길 바래.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전에 먼저,
네가 너의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렴.
이세상에서 너를 가장 잘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너고,
너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네가 될 수 있도록...말이야.
너의 잘못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자학하지 말고,
너에 대한 칭찬을 지나치게 받아들여 교만하지 않길 바란다.
 
엄마도,
너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지 못한 많은 날들이 있었어.
미안하다. 용서해주렴.
 
우리가족 모두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며 살기로 결단하자!!!!
 
너를 언제나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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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과 자존감. 2008.05.30 21:37

 
자존심을 버리는 일....
자존감을 살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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