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과거가 아니라 영원한 현재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김화영·김인환·오정희·정과리·구효서)는 최근 독회를 열고 지난 8개월 동안 고른 후보작 17편 중 다음 달 최종심에서 논의할 후보작 5편을 선정했다. 최시한의 '간사지 이야기', 정한아의 '친밀한 이방인', 김숨의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이기호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김종광의 '놀러 가자고요'가 최종심에 올랐다. 후보 작가들의 창작 의도와 심사위원 평을 5회 연재한다. 첫 회로 최시한 작가와 김인환 교수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

후보① 최시한의 '간사지 이야기'

최시한의 소설은 놀라운 문장의 힘을 보여준다. 겪은 이야기는 대개의 경우에 지어낸 이야기처럼 완결성과 자족성을 갖추기 어렵다. 어떠한 사태에도 전혀 동요를 보이지 않는 문장들이 이 소설에 바친 정성의 밀도를 짐작하게 한다.

최시한이 묘사한 한 시대의 풍경에는 한국인의 삶에 내재하는 보편성이 들어 있다. 자식에게조차 대놓고 무엇 하나 요구한 적이 없는 어머니와 쉬지 않고 일해서 집안을 일으킨 아버지는 이웃에 대한 배려와 염려가 생활의 중심이 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이 소설의 영웅들이다. 그러나 아들을 기다리며 재개발되는 집을 비우지 못하는 이모 또한 딱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헌신의 대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저밖에 모르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자살한 사람까지 포함하여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괜찮은 사람들이다.

서술자의 시선 속에서 독자는 자기 자신도 그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최시한의 자부심을 감지한다. 이 놀라운 긍정의 미학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신뢰에 근거한다. 아아 우리는 이처럼 괜찮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고 우리 자신도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었구나!   /김인환 문학평론가

"내 기억의 창고 갈무리하고 싶어"

어떤 장소나 거기 있던 사물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한테는 나고 자란 충남 보령의 '간사지' 마을이 그런 곳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곳의 밀물 가득한 바다, 붉은 자운영 꽃밭, 새마을운동 깃발이 꽂힌 들판 같은 장소에서는 잊고 있던 사람들이 살아났다. 그러더니 점점 기억의 창고를 벗어나 온몸 속을 돌아다니며 장면을 만들고 '이야기'를 엮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나는 그것을 몸에서 꺼내 책에 갈무리해 두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리고 막상 꺼내면서는, 1960~1970년대에 서울 쪽으로 무너지던 지방의 모습을 그려 두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꼈다. 하지만 최종 교정을 하며 내가 내 이야기에서 본 것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어머니 그분이었다.  /최시한 소설가

☞'간사지 이야기'는…

충남 보령 출신 작가가 고향인 '간사지' 마을을 회상한 연작소설로 구성됐다. '간사지'는 '간척지'를 뜻한다.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산업화가 시골 마을에 일으킨 변화를 재조명한다. 동시에 작가의 성 장기 시점으로 가족과 이웃들의 삶을 재현한다. 수필과 소설이 뒤섞인 이야기 모음집이다. 이 책에서 작가의 어머니는 가난 때문에 자식들 소원을 들어주지 못해 늘 "미안혀다"고 했다. 어머니는 세상 앞에서 주눅이 든 채 살아갔다. 작가는 "당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터라, 어려서부터 세상이 너무 넓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며 어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