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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의지가 필요한 이웃사랑 2011.02.12 15:52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 4:3~4>

 

 

 

 

 

 

 

 

 

 

 

 

사마리아인들 유대인과 같은 아브라함의 후예이면서

유대인들로부터 엄청난 멸시를 받았다.

성경은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요 4:9).

하지만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자비를 베푼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통렬하게 비판하신다(눅 10:25~37).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묻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다시 물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답을 이끌어내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며 찬양을 드린다.

그런데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신앙문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웃사랑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만난 사람이

바로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유대인이라면 상종하지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

그것도 요즘에도 보기 힘든 다섯 남편을 두었다가 이혼하고

지금은 남편도 아닌 남자와 살고 있는 박복한 여인을 만나기위해,

유대 지방을 떠나서 사마리아 지역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셨다.

서둘러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정오 12시쯤에 도착하실 수 있었고

피곤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요 4:6).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웃사랑에 대한 모범을 보여주셨다.

이웃사랑에는 우리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의지를 이렇게 성경은 말하고 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옷이 벗겨져 피흘려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돌보아주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기억한다면

자신의 감정이 아닌 의지를 가지고 사랑해야 한다.

사마리아를 통과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달려오신 예수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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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톤즈 2011.02.09 13:57

 

 

 

 

 

울지마 톤즈

 

 

 

 


 

구정 연휴 기간이었던 4일 금요일 밤 10시에 KBS TV에서

구정특선영화로 "울지마 톤즈"가 방영되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고 이태석 신부의 삶을 기리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마지막까지 보았다.

이태석 신부는 절망의 땅 남수단에서,

그 중에서도 가난과 질병과 전쟁의 그늘 아래 버려진 땅 톤즈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다 지난 해 이맘때쯤 48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은 성직자이다.

 

 


그는 한국에서 의과대학을 나와 의사가 된 후에

다시 카톨릭 성직자가 되는 신부수업을 받은 후에

수단의 톤즈에 선교사로 갔던 사람이다.

그가 그런 삶을 선택한 동기는 마태복음 25장 40절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코자 하는 마음으로 선택하였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는 의사요 신부요 교사였으며 그리고 음악가였다.

그는 톤즈 땅의 버려진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자신의 삶을 투자하였다.

문둥병으로 몸이 썩어 들어가고 있는 환자들의 고름을 짜고

그들과 삶을 같이 하였다. 그러다 암으로 쓰러졌다.

톤즈의 어린이들이 이태석 신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며

서투른 한국말로 흐느끼며 부른 노래가 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나는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함께 울었다.

이 땅에 아직 그런 성직자들이 있기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출처] 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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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주님의 때를 앞당기는 믿음 2011.02.05 20:55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새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 2:1~11>

 

 

 

 

 

 


 

 

 

 

 

 

 

성경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한다(전3:1).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아직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지만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시키는대로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물을 최상급의 포도주로 바꾸는

첫 표적을 행하셨고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때가 분명히 있지만
그 때를 앞당길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님의 때를 앞당긴 일등공신(?)은 마리아이다.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크나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마리아는 아들에게 알린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직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지시한다.

여기에서 마리아의 위대한 믿음을 볼 수 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때를 앞당길 수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든 포도주를 공급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의 때를 앞당긴 또 다른 일등공신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혼인집 하인들이다.

그들의 순종이 없었더라면 예수님의 때를 앞당길 수 없었다.

포도주가 없다는데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고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하지만 하인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다.

 

 

 

 

본문의 말씀으로 보건데

내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할지라도

주님이 아름답게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주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종이 있다면

주님의 때는 얼마든지 앞당겨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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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예수께 나아가자 2011.01.29 16:29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 13:1~13>

 

 

 

 

 

신앙인의 삶을 성화되어가는 삶이라고 말한다.

즉 예수님을 닮아가며 예수께로 다가가는 삶이라는 것이다.

본문에서도 예수께 나아가자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치욕은 제자에게 배신 당해 누명을 쓰시고

침 뱉음과 조롱과 멸시와 천대, 비웃음, 채찍질을 당하시고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형제를 사랑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며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히 12:14).

 

 

 

또한 거룩함을 위하여 결혼을 귀히 여기고,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며  

말씀을 일러 주는 인도자의 믿음을 본받고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고도 말씀하고 계신다.

 

 

 

이러한 이웃 사랑과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우리는 세상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러

'가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다(마 28:19).

믿음의 공동체를 벗어난 곳이 바로 땅끝이요, 영문(camp gate) 밖이다.

그곳에는 배신이 있고, 억울함이 있고, 조롱과 비웃음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이웃과의 화평을 위해서 치욕을 짊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영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의 거룩함이 이루어져 가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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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란 2011.01.23 21:07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성경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다는 것과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아니하신다.

하지만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히 11:1).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다면

믿음은 믿음에서 끝나지 않고 행함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야고보서 기자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약 2:26).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방주를 준비하는 행함을 보였다.

 

 

 

 

 

 

 

아브라함은 낯선 땅으로 자신의 거처를 옮겼다.

 

 

 

가나안 땅으로 여행하는 아브라함 [Gustave Dore 삽화]

 

 

 

 

또한 아브라함은 백 세나 되어서 얻은 이삭을

하나님 앞에 실제 번제로 드리려고 했다.

그것은 네 자손은 이삭으로 말미암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위대한 믿음의 행위였다(히 11:18~19).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

이것을 믿는다면,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행함이 있어야 한다.

나를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주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나는 그분 앞에서 어떠한 행함이 있어야 할지는 不問可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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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선택하는 크리스천 2011.01.18 16:45

 

 

 

 

 

고난을 선택하는 크리스천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로마서 8장 17절>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삶이 크리스천들의 삶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받은 고난을 함께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을 기꺼이 함께 받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누리는 영광에도 함께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 한 가지 그릇 가르치고 그릇 배운 것이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만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와 함께 받을 고난에 대하여는 가르치지 않은 점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부활의 영광만을 가르치고

십자가의 고난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부활의 새벽은 십자가의 밤을 거쳐 도래하는 것인데

십자가의 밤을 거침이 없이 부활의 새벽의 영광만을 가르치게 되면

그런 신앙이 바로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은 꼴이 된다.

 

 



이탈리아가 국력이 쇠약하여져 열등국가로 주저앉게 되었을 때에

혁명가 마치니가 등장하였다.

그는 골목골목을 찾아다니며 이태리 청년들에게 호소하였다.

 

 



“이탈리아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잠 못 자는 밤의 행군과 굶주림과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위대한 이태리를 약속합니다.”

 

 



마치니의 이런 호소에 이탈리아 청년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우리 대장 예수 그리스도를 어찌 마치니에 비교하겠는가?

예수께서 지금 우리들에게 말씀하신다. 호소하신다.

 

 


“나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출처]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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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 경험담 2011.01.13 10:56

 

 

 

 

-미술 시간에 먹을거리 그리는 게 었었음

그런데 어떤 애가 도화지 전체를 까맣게 칠해서

"김이에요" 하면서 냈음

그러자 미술 선생님이 도화지를 쫙쫙 찢으면서

"떡국에 넣어먹어라" 했다는~

 

 

 

-어떤 사람이 엄마랑 같이 TV를 보면서 과일을 먹고 있었음

그런데 그 과일 씨가 진짜 엄청나게 커서 엄마한테

"엄마 이 씨 봐라" 이랬다가

엄청 맞았다는~

 

 

 

 

-호날두의 이적료가 1600억이라는 기사가 떴는데

그 밑에 연봉 1억 받는 분 댓글

'헐~xx 내가 근초고왕 때부터 일해야 벌 수 있는 돈' ㅋㅋ

 

 

 

 

-안방에서 뺨 때리는 소리가 나기에

부부 싸움하나 싶어서 달려갔는데

아빠 스킨 바르고 계셨음

ㅋㅋ 아빠, 아~ 놔~

 

 

 

 

-어떤 사람이 면접 보러가서,

면접관이 "아버지는 뭐하세요?" 이러니까

그 사람이

"밖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했다는~

 

 

 

 

-어떤 사람이 면접 보러 갔다가

면접보고 나오면서

불끄고 나왔다고~ ㅋㅋ

 

 

 

 

-예전에 가족끼리 식탁에 앉아서 밥 먹는데

내가 막 조잘조잘 얘기 하니까

아빠가  "넌 밥을 입으로 먹니?"

그럼 뭐로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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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우리가 굳게 잡을 믿는 도리 2011.01.09 20:48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4~16>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십자가의 고난에 순종하심으로

온전하게 되셨다. (히 5:8~9)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을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죄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의 고난에 순종함으로

온전하게 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도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담대히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연약함, 부끄러움, 부족함을 핑계로 주저한다면

그것은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당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며 동정하시는 분이시다.

그분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굳게 잡을 믿는 도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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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2011.01.03 10:29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1~2>

 

 

 

 

 

 

마태복음 21장에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가 나온다.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세로 주고 타국으로 갔다.

열매를 거둘 때가 되자 열매를 받으려고 종들을 계속해서 보냈지만

농부들은 그 종들을 때리고 돌로 치고 죽이기까지 했다.

그러자 주인은 아들을 보내면 존대할 줄 알았다.

하지만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마저 죽이고 말았다.

 

 

 

 

포도원 농부의 비유와 같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고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고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친히 보내셨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렸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은

그 분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내 아들을 다시 세상에 보낼 것이며

죄에 대하여 심판할 것이다.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 오게 하실 때에

~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히 1:6~9>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a>

 

 

"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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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방관의 기도 2011.01.03 10:02

 

 

 

 

글이 우리나라 사람이 쓴 것 같지 않은 이유는 외국의 한 가수가 소방관을 위해 부른 노래 가사를 번역한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래도 소방관의 간절한 마음은 충분히 전해지는 좋은 글입니다.) 글도 좋지만 사진에서 묻어나는 우리 소방관들의 표정이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어느 소방관의 기도]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게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저에게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시원한 물가에 나를 눕혀주오
내 아픈 몸이 쉬도록 눕혀주오

 

 


 

내 형제에게 이 말을 전해주오
화재는 완전히 진압되었다고

 

 


 

신이시여, 출동이 걸렸을 때
사이렌이 울리고, 소방차가 출동할 때
연기는 진하고 공기는 희박할 때
고귀한 생명의 생사를 알 수 없을 때
내가 준비되게 하소서

 

 


 

신이여! 열심히 훈련했고 잘 배웠지만
나는 단지 인간사슬의 한 분입니다.

 

 


 

지옥 같은 불 속으로 전진할지라도 신이여,
나는 여전히 두렵고, 비가 오기를 기도합니다

 

 


 

내 형제가 추락하거든 내가 곁에 있게 하소서.
화염이 원하는 것을 내가 갖게 하시고
그에게 목소리를 주시어, 신이시여!
내가 듣게 하소서

 

 


 

저희 업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저희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여 주소서

 

 


 

신이시여! 내 차례가 되었을 때를 준비하게
하시고, 불평하지 않고 강하게 하소서

 

 


 

내가 들어가서, 어린 아이를 구하게 하소서
나를 일찍 거두어 가시더라도 헛되지는 않게 하소서

 

 


 

 

그리고, 내가 그의 내민 손을 잡게 하소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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