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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을 아시나요? 2011.04.10 18:28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포함하여 많은 소년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단 1:4).

그들은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 때 성씨개명을 강요받은 것처럼

치욕적인 이름으로 개명을 강요받았다.

그래서 다니엘은 벨드사살로, 하나냐는 사드락으로

미사엘은 메삭으로,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개명을 하였다(단 1:7).

그런데 주일학교나 설교시간에 다니엘은 그냥 다니엘로 부르고

다니엘의 세친구는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라는 이름대신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이름으로 설교를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다니엘의 개명이름인 '벨드사살'을

그리고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라는 이름을 거의 모른다.

그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성경에서 어느 이름을 주로 사용했느냐 때문이다.

성경에서 다니엘은 원래 이름 '다니엘'로 주로 사용했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로 주로 사용했다.

 

 

 

그렇다면 성경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은혜로운 이름

-'하나냐'  =>  '여호와의 참으로 은혜로우시다'

 '미사엘'  =>  '하나님과 같은 분이 누가 있겠는가'

 '아사랴'  =>  '하나님은 참으로 나의 도움이시다'- 대신에

 

바벨론의 우상을 찬양하는 치욕적인 이름

-'사드락'    =>  '달신의 명령'

 '메삭'       =>  '바벨론의 아쿠신과 같은 분이 또 있겠는가'

 '아벳느고' =>  '느고가 나의 신이다'  - 을 주로 사용한 것일까?

 

 

 

성경은 원래 이름과 바뀐 다음의 이름을 사용할 때는

각각 다른 의미가 있고 그럴 필요가 있어서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즉 다니엘의 세 친구의 경우는 포로로 잡혀 온 다음 회개하고

신앙에 매진한 면을 성경이 주로 가르쳤기 때문에

바뀐 이름을 주로 사용했고

다니엘의 경우는 포로로 잡혀 오기 전

이스라엘에서부터 가졌던 그 이름으로

그의 신앙면을 나타낼 필요가 있어서

벨드사살(벨은 나의 심판자다)이란 이름대신에

다니엘이(하나님은 나의 심판자가 되신다)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한 것이다.

 

 

 

성경에서 또 다른 예로 야곱과 베드로를 들 수 있다.

'야곱'은 창세기 32장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후 성경은 '야곱'이라는 이름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고 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꾀와 술수로 살아가던 시절의 이름이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뵙고나서 하나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모신

신앙인으로서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야곱'과 '이스라엘'이라는 2가지 이름을

그의 신앙이력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때그때 사용하고 있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의 '게바'라는 이름도 있지만

이것은 예수님께서 붙여주신 별칭이므로 제외하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시몬'이라는 이름과 비교해 보자.

'시몬'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이름이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뒤 회심한 상태의 이름이다.

따라서 성경이 '시몬'이라고 적거나 예수님께서 '시몬'이라고 부를 때는

주님 없이 인간의 힘으로 살던 옛사람 베드로를 상기시킬 때이고,

'베드로'라고 부를 때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새사람을 상대로 부를 때 사용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이름들은 하나하나 그 의미가 다르며,

상황에 따라 그 의미에 맞게 세심하게 기록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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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세상 것과 다른 평안 2011.04.09 09:40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세상이 주는 평안을 버려야 한다.

그릇 안에 이물질이 있다면 거기에 음식물을 담을 수 없다.

음식물을 담게 되면 그 음식물은 먹을 수 없는 쓰레기로 변하고 만다.

그릇을 비우고 깨끗하게 준비해 놓아야 음식물을 담을 수 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도 이와 같다.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의 평안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온전히 누리며

근심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의 평안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세상의 것과는 다른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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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기적을 보면 예수님을 믿을까? 2011.04.03 10:34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요 12:37>

 

 

 

전도를 하다보면 예수님이 물위를 걷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눈먼 사람을 눈뜨게 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많은 사람을 먹였다는데

그런 허무랭랑한 거짓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런 기적을 나에게 보여주면 믿겠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에게는 기적을 보여준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전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요12:47b).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기적,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여러가지 표적을 보여주셨다.

 

 

하지만 본문의 말씀과 같이 많은 표적을 행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다.

믿음은 봄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용서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는데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

생겨나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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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참사람이신 예수님 2011.03.26 11:28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 11:33~35>

 

 

 

 

 

예수님은 참사람이셨다.

그분은 비통함과 불쌍함을 느끼시고

우리와 똑같이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가장 초라한 출생을 경험하셨고

가장 비참한 죽음을 경험하셨다.

피곤하셔서 바닷물이 들이치는 배에서 주무시기도 하셨으며(마 8:24),

고민하고 슬퍼하셨다(마 26:37).

 

 

 

 

 

그래서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히 4:15).

 

 

 

 

 

동병상련이란 말이 있다.

같은 처지가 되어 보지 않으면 그사람의

고통과 어려움과 외로움과 아픔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어느 누구도 나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나의 처지를 이해하신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참사람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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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율법을 아는 축복 받은 무리 2011.03.12 18:55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중략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들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그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요 7:42~52>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

율법을 알지 못하는 저주 받은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49).

왜냐하면 그들은 사무엘하 7장 12, 13절 말씀 즉,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는 말씀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그본은 상고에 , 영원에 있느니라"는 <미 5:2>의 말씀을 근거로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유다 지파 중에서 나올 것이며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나사렛 예수로 불리는 청년을 그리스도라 믿는 사람들을

저주 받은 무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마태복음 2장 23절에 나오는

"나사렛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는 말씀

모르는 무지의 소치로 그런 저주를 하게 된 것이다.

 

 

 

나다나엘도  빌립이 예수님을

모세와 여러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로 소개하자

처음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하였었다(요 1:46).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신다(마 5:17).

성경에 이르기를 사랑은 율법의 완성(롬 13:10)이며,

하나님은 곧 사랑이시라고 말씀하고 있다(요1 4:8).

따라서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는데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야말로

온전한 율법을 아는 축복받은 무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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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그림 2011.02.26 12:37

'벨기에' 에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이자 화가인

Ben Heine의 작품집

 

 

 

자신이 직접 촬영한 사진 위에

그림을 절묘하게 스케치하여 결합시킨

재미있고 독특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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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참만나 2011.02.26 12:00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 6:47~51>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며 참 형상이 아니다(히 10:1a).

구약의 많은 사건들은 참 형상이신 예수님의 그림자들인데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에서부터

메시야의 오심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다윗이 쓴 시편 22편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과

예수님을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까지 그대로 나타나 있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7~8)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14~15)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18)

 

 

민수기 21장에는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이 살기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죄인인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어야 함을 상징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이사야서 53장에 잘 나타나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

 

 

 

그런데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구약의 만나에 비유하고 있다.

 

 

구약의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당신도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지만

자신을 믿는 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죽지 않고 영생하게 하신다.

왜냐하면 만나는 그림자이며 예수님은 참만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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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어 2011.02.2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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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어거스틴의 기도 2011.02.21 12:36

 

 

 

 

성 어거스틴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심령 속에 들어오셔서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죄악된 생각을 버리고

유일한 선의 근원이신 주님만 모시고 살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나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하나님이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하옵시고,

나는 너의 구원이라고 내 영혼에게 말씀하여 주시는

음성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나의 심령을 맡기오니 그 귀를 여셔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시고

그 음성만 따라서 살게 하옵소서.

 




오! 주여 내가 주님만 찾사오니

주님의 얼굴을 숨기지 마옵시고

나의 영혼이 너무나 편벽되오니

이를 넓히시고 친히 들어와 계시옵소서.

 




나의 영혼의 집이 너무나 황폐하게 되어 있사오니

주님이 거하시기에 합당하도록 수리하여 주옵소서.

 

 




오! 하나님, 우리의 주이시며

성부와 성령과 함께 이제와 영원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들어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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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진실로 진실로-예수님의 간절한 mess.. 2011.02.19 12:14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 5:19, 24, 25>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자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정죄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나님과 동등히 여기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

그런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간절히 말씀하신다.

 

 

 

 

19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야이심을 말씀하고 계신다.

38년된 병자를 말씀으로만 고치시는 분,

말씀으로 온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예수님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실 수 있는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이시다.

 

 

 

 

 

24절에서는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믿으라고,

그래야 심판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말씀으로 육신의 질병을 고치신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질병-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정녕 죽으리라는 영적인 죽음, 하나님과의 단절-을

치유하실 수 있으신 분이다.

 

 

 

 

25절에서는 심판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롬 3:23).

또한 죄의 댓가는 죽음이다(롬 6:23).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시 살아나게 된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살아나게 된다(요 5:29).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선한 일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선행이 아니다.

재물이 많은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고 꾸짖으셨다(마 19:16~17).

즉 선한 이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시며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그 행위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부활로 살아나게 될 선한 일을 행한 자의 선한 일은

예수님이 하나님되심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야이심을 믿는 일이다.

 

 

 

 

'진실로 진실로' 거듭 강조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온 메시야이심과,

믿는 자들에게 허락할 영생과,

이후에 모든 사람에게 있을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메시지에서

인류 구원을 열망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Michelangelo-LastJud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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