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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랑 살 것인가? 2013.03.25 20:31
    누구랑 살 것인가? 바다 속에는 세 종류의 물고기가 삽니다. 상어와 돌고래와 참치입니다. 1.상어 – 바다 속의 무법자 상어는 잡식성이어서 뭐든 닥치는 대로 잡아먹습니다. 날카롭고 안쪽으로 굽은 이빨은 뭐든 한번 물면 놓치는 법이 없고 심지어 같은 상어끼리도 서로 잡아먹습니다. 상어는 자기보다 더 큰 물고기는 잡아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걸 믿고 몸을 길게 만들었다가는 금방 후회하고 말 것입니다. 상어는 눈치도 빠릅니다. 2.돌고래 - 돌고래는 지능이 매우 높고 유쾌하고 명랑한 물고기입니다. 돌고래는 떼 지어 몰려다니면서 상어의 공격을 피하고 다른 물고기들을 보호해줍니다. 자기들끼리 서로 대화를 하면서 우아한 아치 모양을 그리며 점프를 하지요. 돌고래는 다른 물고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삶을 즐길 줄 알며 인간들과도 매우 친숙한 물고기입니다. 3.참치 - 인간들이 가장 맛있게 먹는 참치는 매우 미련한 물고기입니다.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나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그 피가 자신의 피인지도 모르고 근처에 피를 흘리는 먹이가 있다고 좋아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관심도 없고 다 남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물고기들의 가장 쉬운 먹잇감이 바로 참치입니다. 인간들의 세상에도 세 종류의 물고기와 같은 사람들이 삽니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포식하는 상어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삶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돌고래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되든 말든 피 냄새만 좇아다니는 참치와 같은 수많은 군중들이 있습니다. 돌고래와 같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왜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하늘과 들판, 사랑스러운 꽃과 훌륭한 사람들만 보고 사는데, 다른 어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이나 장소를 찾느라고 그리도 고생하며 사는 것일까?" - 레오 버스카글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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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 Dolorosa 2013.03.25 20:24
 
      Via Dolorosa Down the Vía Dolorosa in Jerusalem that day The soldiers tried to clear the narrow street But the crowd pressed in to see The Man condemned to die on Calvary He was bleeding from a beating, there were stripes upon His back And He wore a crown of thorns upon His head And He bore with every step The scorn of those who cried out for His death Down the Vía Dolorosa called the way of suffering Like a lamb came the Messiah, Christ the King, But He chose to walk that road out of His love for you and me. Down the Via Dolorosa, all the way to Calvary. Por la Vía Dolorosa, triste día en Jerusalén Los soldados le abrían paso a Jesús. Más la gente se acercaba, Para ver al que llevaba aquella cruz. Por la Vía Dolorosa, que es la via del dolor Como oveja vino Cristo, Rey y Señor, Y fue Él quien quiso ir por su amor por ti y por mí. Por la Vía Dolorosa al Calvario y a morir. The blood that would cleanse the souls of all men Made its way through the heart of Jerusalem. Down the Vía Dolorosa called the way of suffering Like a lamb came the Messiah, Christ the King But He chose to walk that road out of His love for you and me Down the Vía Dolorosa, all the way to Calv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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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했는데 2013.03.19 11:09
    기도 했는데 기도 했는데, 그 기도에 응답이 없다면 그것만큼 뻘쭘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아마도 다시는 기도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떤 것을 부탁했을 때 상대방이 거절하면 괜히 부탁한 사람이나 거절한 사람이 서로 무안해지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 기도의 응답이 있었는데, 기도를 한 사람이 별로 관심이 없다면 기도를 응답해 주신 분이 얼마나 뻘쭘할까요? 기껏 부탁을 들어주었는데 부탁한 사람의 반응이 시큰둥하거나 부탁을 들어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면 이거야말로 허망하고 답답한 일입니다. '다음부터는 아무리 사정해도 내가 들어주나 봐라. 괴씸한 인간' 이런 생각을 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기도 했는데, 그래서 응답 받았는데도 내 마음속에서 감사의 마음이 확 올라오지 않는 경우는 왜 그런가요? 그 응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껏 주었더니 "이건 우연히 된 거야" 한다면 주었던 것을 다시 빼앗아버리거나 엉덩이를 발로 차버리고 싶지 않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기도 했는데, 그래서 기도에 응답을 받고, 받았으니 좋아서 감사하고, 감사하니 기분 좋아 더 주시고, 더 받으니 찬양이 절로 나오고, 찬양을 받으니 또 주시고, 또 받으니 할렐루야! 이런 아름다운 기도 응답의 선순환이 무한 반복되는 인생을 산다면 참 좋지 않을까요? 안 그렇습니까?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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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받을 만한 훌륭한 변호사 2013.03.19 09:22
    상 받을 만한 훌륭한 변호사 엄상익 /변호사 대한변협 상임이사회에서 열띤 토론이 열리고 있었다. 법률분야 공로자에게 상을 주는데 어떤 기준에 의해 훌륭한 변호사를 선정하느냐였다. 인권운동가, 고위공직자출신, 변호사회 회장과 전문기능을 갖춘 법의 달인 등이 존재했다. 마치 배와 사과, 바나나 중 어떤 과일이 최고냐를 묻는 것 같았다. “이제는 최고의 달인이 된 전문가에게 상을 줘야 하지 않나요?” 로펌출신 상임이사의 의견이었다. 내남없이 명예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 같았다. 그냥 변호사로 만족하지 못하고 상을 받거나 대접받는 자리를 좋아한다. 그게 안 되면 어느 위원회 위원이라도 걸치고 싶어 한다. 꼭지 하나 더 단 도토리가 으스대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어느 법정에서였다. 재판장이 변호사에게 변론하라고 하자, 자리에서 일어난 변호사가 생긋 웃으면서 황송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재판부의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변론하지 않겠습니다.” 부장판사 출신인 그는 변호사가 아니었다. 변론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철저히 비굴했고, 그의 표정 속에서는 얼굴을 보고 알아서 처리해 달라는 얄팍한 계산이 서려 있었다. 그가 재판장을 할 때는 변호사들에게 모멸감을 많이 주던 거만한 판사였다. 나는 병아리 시절에 돈을 많이 벌었거나 고위공직자 출신 변호사를 거물로 알았다. 그들은 구름 위의 존재 같았다. 그런데 그런 시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다. 이십 대 재벌그룹회장이 비자금으로 재판을 받던 1995년 겨울 서울지법 대법정에서였다. 변호사업계의 간판스타들은 다 변호사석에 모였다. 대법관 출신, 장관 출신 등 화려한 경력들이었다. 나는 방청석 한 귀퉁이에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법원에는 재판받는 재벌회장들을 위한 귀빈실은 없었다. 유일한 휴식장소가 화장실이었다. 그곳에서 씁쓸한 장면을 목격했다. 재벌회장들이 오줌을 누고 있었다. 그 소변기 옆에 내가 평소에 존경하던 선배변호사들이 부동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네, 회장님!” 하면서 지시를 받고 있었다. 재판장 때의 그들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낮에 먹은 밥알이 곤두섰다. 결국은 저렇게 비굴해져야 잘 살 수 있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 법정에서도 웃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한 변호사가 재판장에게 말했다. “모시던 어르신을 어떻게 법정이라고 함부로 피고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그는 봉건시대 머슴의 생각을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그냥 가지고 있었다. 돈과 권력 앞에서 변호사들의 영혼이란 없는 것 같았다. 그때 나의 변호사에 대한 직업관이 바뀌었다. 더는 그들을 존경하지 않기로 했다. 자존심을 포기하면 그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대한변협 일을 도우면서 지난 2년 동안 생각이 깊다고 알려진 수십 명의 변호사와 만나 진지하게 ‘변호사란 직업은 무엇인가?’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그 과정에서 훌륭한 변호사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공통된 기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존경받는 변호사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돈과 명예욕을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변호사들은 이 직업이 부자가 되기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란 의식을 가지고 감사하고 있었다. 변호사란 권력에 대항하고 사회문제를 법정에 현출시킬 수 있는 보람 있는 직업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좋은 변호사는 찾아오는 의뢰인을 돈으로 보지 않고 사랑해야 하는 이웃으로 여겼다. 상은 그런 변호사들에게 주어야 할 것 같았다. <2013년 목마르거든 2월호 -한 마리 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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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인생 24시 2013.03.19 09:18
    내게 주어진 인생 24시 이의수/ 사랑의교회 사랑패밀리센터 어떤 사람이 인생을 80년으로 보고 이를 24시로 계산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나이 15세는 오전 8시 51분에 해당하고, 20세는 11시 8분, 25세는 정오가 넘어간 12시 25분이다. 결혼하고 3~4년이 지나는 30세는 오후 1시 25분, 하루의 신체리듬으로 따진다면 지루하고 하품도 나는 시간으로 소위 말하는 권태기다. 자식을 하나둘 낳고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얻어 경제적 안정을 찾을 때인 35세는 2시 59분, 이제는 뭔가 이루어냈다고 한숨을 돌릴 때인 40세는 벌써 4시 16분이란다. 45세라면 인생을 웬만큼 관조하며 그야말로 생을 즐길 시간이다. 가장 힘 있는 나이다. 그러나 그 나이도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는 시간이다. 50세는 6시 50분, 55세는 8시 8분, TV의 골든 프로그램도 끝날 시간이다. 60세는 10시 11분, 이제 이부자리를 펼 시간이다. 인생이란 이렇게 덧없이 흐른다. 중년을 사는 사람이라면 잠시 후면 저녁밥을 먹고 잠자리에 눕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인생은 끝나 버린다. 그런데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유한한 인생을 낭비해 버린다. 사람들은 바쁘게만 사는 데 익숙해져 있다. 어쩌다 여유가 생겨도 적절하게 즐기지 못하고,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괴로워한다. 실로 비극이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마라톤 선수들은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고, 주어진 코스를 단시간 내 완주하기 위해서 전략을 세운다. 길고 어려운 싸움을 하면서 자신이 이겨내야 할 순간이 언제인지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남성들이 인생을 뛰는 모습을 보면 위기감을 감출 수 없다. 마라톤 전 구간을 뛰어야 할 선수가 100m 달리기를 하듯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를 밀어붙이며 뛰는 것처럼 보인다. 조지 클루니가 주연배우로 나오는 업인디에어(Up in the air)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라이언 빙험은 비행 마일리지 1,000만을 앞둔 중년의 해고전문가이다. 1년 365일 중 322일을 출장 가서 사람들을 해고하게 시키는 탁월한 해고전문가다. 그의 임무는 만나는 사람들이 현재 가진 계획과 꿈의 궤도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퇴직이라는 절망스러운 일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유지하도록 한다. 그의 꿈은 1,000만 비행 마일리지를 갖는 것이다. 주인공 라이언은 매일 수많은 사람을 해고시키고 다니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을 해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는 소중한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준비해 가는 행복한 마무리로 영화는 끝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은 자기 스스로 거부할 수 없는 소중한 인생이고 스스로 해고할 수 없는 인생이 분명하다. 내게 주어진 하루, 그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며 살아가는가? 명절이 되면 많은 사람에게 덕담을 하고 덕담을 듣는다. 그런데 그 덕담을 듣는 순간 즐거움으로 끝이 나는 것 같다. 내가 들은 덕담을 가슴에 담고 곱씹는 모습이 거의 없다. 나에게만 주어진 내 인생의 24시, 그 끝은 어디인가? 내가 달려가야 할 목표와 목적이 분명한 인생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후회 없고 흔들림 없는 인생이 만들어진다. 자신이 목적한 대로 후회 없이 열심히 사는 사람의 인생은 등수와 상관없이 성공한 인생이다. 그러나 목적 없이 흔들리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목적이 있는 인생에만 등대가 의미 있고 나침반이 쓰임새가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목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현실 속에 이미 동거하고 있다. <2013년 목마르거든 2월호- 행복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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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에게 좋게하랴 2013.03.15 11:54
      내가 사람에게 좋게하랴 내가 사람에게 좋게 하랴 내가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내가 사람의 기쁨을 구한다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육신을 좇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을 좇는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하네 육신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오직 영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네 육신의 생각은 사망 영의 생각은 생명 육신의 생각은 사망 영의 생각은 평안 내가 사람에게 좋게 하랴 내가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내가 사람의 기쁨을 구한다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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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자신을 주셨다 2013.03.15 11:51
    주님은 자신을 주셨다 주님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주셨다.
    아무것도 감추시지 않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주셨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언제나 자신을 주는 것이다. 자기에 머무를 때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에 담긴 뜻을 제자들 앞에 분명히 보여주신 것이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 심지어 자기의 "독생자"까지 주셨다는 뜻이다. 아들로서는 그 사랑을 몸으로 나타내셔서 자신의 삶을 권리를 포기하고 자기 생명을 세상을 위해 주셨다는 뜻이다. 이 사실 (아들이 세상을 대신하신)에 비추어 볼 때만 우리는 비로소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들을 주신 사랑을 인정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없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은 오직 무한한 방법으로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의 죄로 죽어야 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으로 아들을 우리 대신 죽도록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 13) -주님의 전도계획 / 로버트 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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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2013.03.14 14:00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미소의원 원장, 정신과 전문의 문지현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소개해야 할 때 약간은 망설여집니다.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에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 때문이지요. “혹시 저를 분석하시려는 것은 아니지요?” 하는 반응은 귀여운(?) 편입니다. 정말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느냐는 사람, 오래 묻어두었던 속상한 일을 털어놓는 사람, 아는 사람의 정신질환을 상담해 오는 사람, 위험하지는 않으냐고 묻는 사람 등 많은 분이 걱정을 해주십니다. 한두 명만 힘든 소릴 하는 걸 들어도 골치 아픈데 어떻게 종일 남의 고민을 들어 주느냐는 거지요. 공식적인 자리라면 뻔한 답변을 하게 됩니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괜찮아요.” 적절한 거리(optimal distance)는 환자와 치료자 사이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는 걸 말합니다. 이 간격이 너무 멀어서 서로 데면데면하면, 환자는 치료자가 자신에게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불안해하거나 화를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아무 말 없이 떠나가 버릴 수도 있겠죠. 치료자 역시 환자의 문제에 집중이 잘 안 되고, 딴생각을 하거나 핵심을 놓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간격이 너무 가까우면 그 역시 문제입니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 치료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치료자로서는 너무 가까운 거리를 요구하는 환자 때문에 숨이 막히거나 불편해질 수 있고, 환자 처지에서는 지나치게 개입하려 드는 치료자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지 모릅니다. 숙련된 치료자라 하더라도, 익히 만나 왔던 환자라 하더라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과제입니다. 서로 조금씩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며 그때그때 가장 적절한 자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이건 치료자와 환자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모든 관계가 지나치게 가깝거나 지나치게 멀어서 불필요한 아픔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적절한 거리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치지 않는 모든 삶의 뿌리에는 감사가 있는데, 진료실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정신과 진료실만큼 뼈아픈 자리도 없습니다. 깨어진 관계가, 이루지 못한 꿈이, 뜻대로 되지 않는 절망과 혹독한 현실이 날것으로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서 매서운 추위를 이겨낸 감사가 싹틉니다. 이러한 감사는 신앙인에서 더 잘 드러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처음부터 마음의 아픔에서 예외가 된다면 참 좋겠죠. 고단한 우리 삶과 연약한 우리 성정이 우리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신앙인이라면서 우울증을 앓는다는 게 더 큰 무게로 느껴질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깨어지고 상처 입은 모습까지 모두 그러모아 다시 시작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진료실은 아픔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지만, 이 자리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귀한 고백을 듣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울증을 앓지 않았더라면 사는 건 훨씬 수월했겠지만, 고통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만난 하나님 덕분에 내 삶이 더 깊어졌습니다. 일부러 우울증을 앓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지요. 그렇다고 그 시기가 나에게 헛된 낭비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시 병이 재발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 때도 많아요. 하지만 아프고 난 뒤에는 내가 누리는 일상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깊이 깨달았기 때문에, 이 병의 기억을 내 삶에서 들어낼 생각은 없어요.”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님의 율례를 배웠습니다. (시119:71, 새번역)”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근심을 
    대신하게 하신(사 61:3) 주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2013년 목마르거든 2월호 -마르지 않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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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터널이 주는 유익 2013.03.14 13:55
    인생의 터널이 주는 유익 김광석 /푸른솔송곡교회 담임목사 “좌충우돌 청소년 제자훈련 이야기” 저자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해리 할로는 원숭이 실험을 통해 절망의 마지막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스테인리스로 윗면만 빼고 사방이 막힌 직육면체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위는 넓고 아래는 좁게 제작되었습니다. 연구팀은 어린 원숭이들을 이 상자에 넣고 관찰하였습니다. 어린 원숭이들을 위로 오르려고 노력하나 스테인리스 표면이 매끄럽고 경사가 졌기 때문에 미끄러집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원숭이들은 올라가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좁디좁은 바닥에 끼어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간을 보낸 어린 원숭이들은 상자에서 꺼내주어도 여전히 우리 구석에 웅크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다고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절망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기대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은 생을 포기하는 것 외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말합니다. 살다 보면 좋은 일뿐 아니라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안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생이 긴 터널에 들어설 때가 많습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터널에 들어서면 겁도 나고 두렵고 특히 절망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터널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더 많다는 희망적인 마음가짐입니다. 터널이 주는 유익함은 먼저, 끝이 멀어서 안 보일 뿐이지 터널은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인생의 터널을 통과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터널에 갇혀 삶을 마감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질투 때문에 애굽에 내려가서 종살이하다가 보디발 장군의 아내 모함으로 옥살이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십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리앗을 물리친 후 승승장구할 것 같았으나 그도 인생의 터널 속으로 들어갑니다.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는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십니다. 성경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인물이 인생의 터널을 통과했습니다. 터널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끝없는 터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터널의 끝에는 밝은 태양과 푸른 하늘이 보입니다. 터널의 또 하나의 유익은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터널을 통과하면 더 빨리 목적지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그 목적지는 다름 아닌 하나님입니다. 인생의 터널을 통과한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5).” 그동안은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이었지만 고난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나서 하나님을 눈으로 뵈올 수 있게 되었다고 욥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 어떤 좋은 복보다 가장 좋은 복을 얻은 것입니다.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하는 우리 자녀들이 가져야 할 것은 절망이 아닌 희망입니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자녀가 있다면 부모들은 그들에게 희망의 나팔수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인생의 터널을 지날 때에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새봄이 희망의 나날이 되길 기도합니다. <2013년 목마르거든 3월호-틴틴, 걱정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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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유월절 2013.03.13 08:48
     
        여호와의 유월절 지극히 높은 주님의 나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세상의 신을 벗고서 주 보좌 앞에 엎드리리 내 주를 향한 사랑과 그 신뢰가 사그라져갈 때 하늘로부터 이곳에 장막이 덮이네 이곳을 덮으소서 이곳을 비추소서 내 안에 무너졌던 모든 소망 다 회복하리니 이곳을 지나소서 이곳을 만지소서 내 안에 죽어가는 모든 예배 다 살아나리라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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