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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너희는 가만히 있어 함께하시는 하나님.. 2011.08.06 20:57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시 46:10~11> 

 

 

 

 

 

 

 

 

 

 

 

 

하나님은 하늘에서 사람들을 지켜보고 계시다가

마지막 날, 재림 하셔서 심판하시는 하나님도 아니시고,

또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에만 가끔씩 응답하시는 하나님도 아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우리의 앞길을 예비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며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시 46:1).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임재)을 자주 잊는 것일까?

본문에서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나의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치지도 말고

나의 지혜와 경험으로 판단하지도 말며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의견을 믿어서도 안된다.

오직 지금 나와 함께 하시며

누구보다도 나의 필요를 아시는 그분께 온전히 나를 맡기고

그분의 도우심만을 바라보고 믿으며 잠잠히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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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첫째날은 이해하기 쉬운 번역일 뿐.. 2011.08.04 11:09

 

 

 

"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5>

 

 

 

 

 

본문에 나오는 첫째 날의 첫째는 차례를 나타내는 서수이다.

이는 창조의 전과정을 놓고 봤을 때 첫번째 날(first day)이지만

맨 처음 창조된 한 날로써 둘째날, 셋째날이 아직 없으므로

순서를 나타내는 첫째날이 아닌 기수의 한 날(one day)이 원래 의미이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영어성경에도 first day라는 번역본도 있지만 one day라는 번역본도 있다.

6일동안의 창조가 이루어진 후에 태초의 날들을 헤아리면서 

첫째날, 둘째날과 같이 순서를 나타내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애초에 태초의 처음날(one day)로 돌아가서 생각해 본다면

빛을 만드시고 물에 덮여있는 자전하는 지구를 만드시어

24시간의 하루를 제정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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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의 복 2011.07.30 14:55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시41:1~3>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도 지으셨고 부한 자도 지으셨다(잠 22:2).

사람들은 자신보다 가난한 자들을 모른체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르짖음을 모르체 한다면

자신도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앞날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잠 21:13>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전 11:1~2>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을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으며

모른척 하는 자에게도 저주가 크다고 말쓰하고 있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잠 17:5a>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 14:31>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잠 28:27>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면 오히려 풍족해진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흩어져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 11:24~25>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한낱 인생에게서 꾸리요마는

성경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을 이에 비유하고 있다.

이 비유는 그만큼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라고 강조하는 것이리라.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잠 19:17>

 

 

본문에서도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는 재앙의 날에 건짐을 받고,

(내세의 복 뿐만 아니라)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복을 받을 것이며,

병상에 누워 있을 때마다 병 고침을 받는다.

 

 

위를 바라보면 나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하고 불평이 쏟아지지만

아래를 바라보면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을 누리고 싶지 않은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김으로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복된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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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혼돈과 공허, 흑암도 창조하셨나.. 2011.07.29 17:24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창 1:1~2>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선언한 후

2절에서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1절과 2절 사이에는 

긴 세월의 간격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간격이론(GAP THEORY)을 주장하기도 한다. 

간격이론은 창세기 1장 2절이 심판의 결과이며,

이때 화석과 지층이 형성되었고,

지금의 세상은 그 후에 재창조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 이론은 성경 문법적으로 옳지 않으며,

성경의 말씀에 비추어 봐도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여졌으며 장과 절로 구분하기 전부터 문단구분이 나타난다. 문단 구분은 열린 문단(프툭하 open paragraph)과 닫힌 문단(쓰투마 closed paragraph),  두 종류의 문단 구분이 있다. 열린 문단이란 행을 완전히 바꾸어 쓴 새로운 문단을 말하며 닫힌 문단이란 같은 행 안에서 몇 글자를 띄어서 새로운 문단을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천지를 창조한 날과 날 사이에는 프툭하 문단으로써 완전히 행을 바꾸어서 문단구분 표식을 둔 열린 문단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창세기 1장 1절에서 5절까지는 한 문단으로써 첫째 날을 의미하며 1절과 2절 사이에 간격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로마서 5장 12절에는"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고 말씀하고 있다. 즉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죄가 없었으므로 사망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간격이론에서 주장하는 수많은 생물들의 죽음이나 화석의 생성등은 성경에 비추어 볼때 맞지 않는 허무맹랑한 이론인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혼돈(토후)과 공허(보후)는 6일 간의 창조 과정 중에 있는 최초의 날의 땅의 상태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그것은 혼란이 아니라 계획된 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다른 성경 번역을 보면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지금처럼 짜임새 있는 모습이 아니었고,

생물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쉬운 성경)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를, 가구를 갉아먹고 무서운 전염병을 옮기는 쥐를, 징그러운 바퀴벌레를 창조하셨을까? 그렇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또한 흑암도 창조하셨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롬 11:36a>

 

 

  하나님이 처음에 창조하신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죄로 인해서 동식물이 저주를 받고 땅도 저주를 받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동산과도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 또다시 홍수를 통하여 이 땅을 심판하심으로써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궁창의 물이 없어짐, 육식의 시작 등-

 

 

 

  어쨌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이며 흑암이나 환난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사45:7a>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사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오나이다"  <시 104:20>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창조 질서에 따라 온 우주를 창조하셨으며

모든 만물을 아름답게 지으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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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물절약 아이디어 2011.07.2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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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주의 빛 안에서 2011.07.25 10:11

 

 

 

"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빛을 보리이다 "  <시 36:7~9>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본문에서도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으며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본다고 말씀하고 있다.

 

 

주의 그늘 아래로 피하는 자는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하게 되고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 오신 이유를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0:10).

 

 

 

우리는 빛되신 주님 안에서 예비하신 풍성한 것들을 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의 빛 안에 거하여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 안에 거할 수 있는 방법도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0~12>

 

 

 

 

 

서로 사랑하면 주님 안에 거하게 되고

우리는 주의 빛 안에서

살진 것들로 풍족하게 먹고

복락의 강물을 마시며

주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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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먹을래~? 2011.07.19 21:17

 

 

 

 

 

 

 

강아지:   "흥 ,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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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2011.07.19 21:14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사 스올에서 잠잠하게 하소서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이

말 못하는 자 되게 하소서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시 31:15~19>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설계하여

자신의 뜻대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편기자는 우리의 앞날은 주의 손에 달려있다고 고백한다.

지혜의 말씀, 잠언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또한 욥기서에도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과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요나 선지자는 자신이 계획한 대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려 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니느웨 성에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있어 최선의 길은 우리의 앞길을 아시고

우리를 단련하여 순금과 같이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께

나의 삶을 맡겨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 피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원수들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주실 것이고,

주의 얼굴을 나에게 비춰주시고,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시며,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를 위해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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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완전함에 행하라 2011.07.10 19:08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시 26:1~12>

 

 

 

 

 

 

본문의 시편 기자는 자신이 완전함에 행했다며 

자신의 믿음을 증거하고 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으니

자신을 판단해 달라고 간구하기까지 한다.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않았고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의 모임을 미워하여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않겠다도 말한다.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 완전한 자로서

평탄한 길을 걷게 될 것이며

복 있는 사람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의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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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을 수 밖에 없는 글 2011.06.0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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