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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23편, 골프 23편 2010.04.13 09:06

 

 

 

 

 

 

 

 

 

 

텔레비전 23편

 

 

 

텔레비전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따뜻한 아랫목에 누이시며

쉴 만한 자리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멍청하게 하시고 시청률을 위하여

바보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폭력과 음란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그가 나를 재미있게 하심이라.

 

그의 탤런트와 가수가 나를 안위하시는도다.

 

텔레비전께서 내 현실의 목전에서 나를 도피시키시고

재미있는 드라마로 내 머리를 채우셨으니 내 기쁨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드라마와 스포츠 중계가 나를 따르리니

내가 텔레비전 앞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골프 23편

 

 

 

골프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가슴이 탁 트이는 필드(field)로 이끄시며

모든 골치 아픈 일로부터 벗어나도록 쉘터(shelter)로 부르시는도다.

내 마음이 쉼을 누리고 Golf(Green-Oxygen-Light-Friend)로 건강을 얻게 되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해저드와 샌드(sand)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절망하지 않음은

주께서 슬라이스(slice)와 훅(hook)으로부터 나를 지키시고

우드 3번과 아이언 4번이 나를 위기에서 건져줌이라.

 

주께서 드라이브 잘 쳤다고 뻐기는 자 앞에서

세컨 샷으로 나를 위로하시고

마지막 퍼터로 코를 납작하게 만드시니

홀컵에 딱 들어감이로다.

 

나의 평생에 홀인원과 언더가 나를 따르리니

내가 그린 위에 영원히 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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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발람의 꾀 2010.04.10 23:35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민 31: 16>

 

 

 

민수기 31장 8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을 공격하여 죽인 자들이 나와 있다.

미디안을 공격하여 남자들을 다 죽이고

그 외에도  죽인 미디안의 다섯 왕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 이름 다음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왜 성경은 발람을 죽였다고 그의 이름을 특별히 언급할까? 

 

발람은 민수기 22장 38절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발락의 요청에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임의로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만 보면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신실한 선지자 같다.

물론 발람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말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베드로후서 2장의 말씀처럼 불의의 삯을 사랑한 거짓 선지자이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발람이 이스라엘에,

그리고 하나님 앞에 어떠한 죄를 저질렀는지를 밝히고 있다.

발람이 꾀를 내어 '브올의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민수기 25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을 하고

모압 여자들의 신들에게 제사하며 절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24,000여 명이 죽는

염병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브올의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에서는 2장 14절에

" ~내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민수기 24장 25절에는 나귀의 경고까지 받은 발람이

발락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자기 곳으로 돌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불의의 삯을 사랑한 발람은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켜

이스라엘 민족을 소멸시킬 꾀를 발락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민 25:11> 

 

발락이 낸 꾀,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소멸시킬만한 놀라운 꾀는 바로  

음행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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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극지방의 오로라_극광 2010.04.0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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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라 2010.04.04 17:27

 

 

 

"일곱째 달 열흘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말것이니라"  <민 29:7>

 

 

 

 

 

오늘날의 태양력으로 9월이나 10월에 해당되는 유대력의 일곱째 달은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이며,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는 이 달을 새해를 시작하는 정월로 여겼다.

 

 

이 달의 열흘 날은 대속죄일로 대제사장이 1년에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바로 이 일곱째 달 열흘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령을 괴롭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예표한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값 없이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너무 익숙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기도하셨는데

한낱 인생인 우리가 죄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려면

우리는 더 많은 금식을 해야하고 심령을 괴롭게 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며, 눈이 즐거워하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자칭 미식가라며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고

컴퓨터, TV, 영화, DVD등의 미디어 매체를 통한

즐거움을 찾아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은 고난 주간에 미디어 금식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금식도 등장하였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재미있는 여가를 즐기는 것이 죄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서기 위해 가슴을 치며 애통해하고

눈물흘리는 모습은 사라져가고

자신의 입과 배와 눈과 귀의 즐거움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장 16절 이하에서 올바른 금식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16>

 

 

또한 이사야 58장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 58:6~7>   

 

 

주일성수라는 말에서 거룩하게 지킨다는 성수가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사 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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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지키는 청지기 2010.04.02 09:53

 

 

자연을 지키는 청지기

 

 


 

옛날에 우리 조상들은 자연 속에

신성(神性)과 마력(魔力)이 있다고 여겼다.

큰 산이나 나무나 물속에 신이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런 신앙을 정령론(精靈論, Animism)이라 한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자연을 두려워하고 섬기기도 하였다.

그런 연고로 자연을 개발하거나 훼손함을 금기시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의 창조신앙은

자연을 비신격화(非神格化)하였다.

자연은 하나님의 피조세계이고

인간의 생존과 발전을 위하여 주신 선물이다.

이런 창조 신앙이 자연과학의 발전을 촉발시켰다. 

이리하여 자연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이

서구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자연과학의 발전에 따라

환경이 파괴되고 오염되었다.

결과로 오늘날과 같은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고 환경파괴의 주범이

기독교라는 비판이 일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창조신앙이 생태계 위기의 주범이란 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로마서 8장에는 성령께서 고통당하는 피조물과 함께

아파하며 탄식한다고 이르셨다.

하나님은 인간들에 의하여 착취당하고 파괴당한

피조물들과 함께 신음한다. 

하나님은 인간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전체를 사랑하신다.

마태복음 10장에서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고 하였다.

 

 

 


 
진정한 창조정신은 창조세계를 선하게 보전하는 것이며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연을 보존(保存)하는 일에

선한 청지기로 앞장 서야 한다.

 

 

 

 

 

-김진홍 목사의 아침 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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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에 대하여 2010.04.02 00:14


 

 

4월 1일을 만우절이라고 하여 거짓말을 해도 되는 날로 여기고 있는데,

이 날에 속아 넘어간 사람을 4월 바보(April Fool)라 하여

일반적으로 April Fools Day 라고도 한다.

 

 

만우절의 유래로는 여러 가지 기원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다섯 가지를 보면 첫째로, 옛날에 부활절에 상연된 기적극(miracle play)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극에서는 유대인 고승인 아나스가 가이아파스 고승에게 그리스도를 인도하고, 이어서 가이아파스가 로마의 유대 총독이며, 그리스도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던 빌라도에게 인도합니다. 그리고 빌라도가 유대 왕 헤롯에게 인도하고 또다시 헤롯이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그리스도는 4월 1일에 처형되는 것으로 되어 있구요. 이 사실을 익살맞게 기념하는 행사가 만우절로 되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노아의 홍수 때 물이 빠져나가기 전에 지금의 4월 1일에 해당하는 날에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구원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 만약 그날의 의미를 잊는 사람이 있다면 노아가 불운의 비둘기를 노아의 방주의 창문으로 날려 보냈듯이, 무심한 사람에게 헛된 심부름을 시키는 관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것이 만우절의 유래가 되었다는 것이죠

 

 

세 번째는 4월 초에 거행되던 로마 농업의 여신 케레스제를 모방한 것이라는 설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들판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던 페르세포네 왕녀가 저승의 신 플루토에게 유괴되어 저승으로 갔을 때,  그녀의 어머니인 케레스가 페르소포네의  목소리를 듣고 찾아 헤맸으나 헛된 일로 끝나 버렸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유래도 노아의 비둘기처럼 헛되이 심부름을 시키는 습관이 발전해서 만우절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네 번째는 옛날 일반 서민층에서 행해지던 춘분의 제사로부터 남겨진 관습이라는 설입니다. 춘분제는 구달력의 설날인 신달력의 3월 25일에 시작해서 4월 1일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춘분제를 훌리(Huli)라고 말하고 그 마지막 날인 3월 31일에 헛된 심부름을 시키고 사람들을 놀리는 관습이 있었다고 하네요. 이것이 발전해서 만우절이 되었다는 설입니다.

 

 

다섯 번째는 유럽에서 그레고리 달력을 최초로 사용한 나라는 프랑스인데, 샤를 9세(Charles Ⅸ, 1550∼74)는 1564년에 현재의 1월 1일부터 신년이 시작되는 것으로 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이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4월 1일에 농담반으로 신년의 선물을 보내거나 신년 인사를 해서 남을 놀리거나 놀라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습관이 발전해서 다른 나라에서도 4월 1일을 만우절로 정하고 긴장을 푸는 의미에서 이날 하루를 바보짓을 하는 날로 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 kogas
 
 
 
 

 

 

 

 

유래가 어찌 되었든 만우절은 결코 바람직한 절기(?)가 아니다.

큰 피해가 없는 가벼운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당하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고, 상대방에 대한 신뢰감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개인적인 이유말고도 사회적으로도 큰 피해를 가져온다. 특히 매년 만우절이면 허위신고나 장난전화로 소방 공무원이나 경찰 공무원은 쓸데없는 출동을 하게되어 인력이 낭비뿐만 아니라 정작 필요한 손길에 도움이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올해 부터는 이러한 허위신고나 장난전화를 하게 되면 최고 200백 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한다. 과태료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긴급한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위험한 현장을 생명을 걸고 묵묵히 일하는 소방 공무원이나 경찰 공무원을 생각해 보라. 어떻게 장난으로 허위신고나 장난전화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짓말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하는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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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을 충실히 2010.03.30 08:59

 

 

기본을 충실히

 

 

 일본에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업으로 백제인(百濟人)이 세운 기업이 있다. 금강조(金綱組)란 기업으로 사찰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586년 백제의 건축기술자였던 금강중광(金綱重光)이 일대 창업주였다. 창업주는 사천왕사(四天往寺)를 건축한 분이다. 593년 사천왕사가 준공되자 성덕태자가 “대를 이어 그 절을 보수·관리하라”는 명을 내려 지금까지 40대를 이어오며 그 일을 담당하며 사찰을 건축하는 전문업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1995년 고베지진이 일어났을 때에 다른 건물들은 다 쓰러졌는데 금강조가 건축한 사찰건물은 말짱하였다. 서까래 일부만 비틀렸으나 1년이 지나자 저절로 원상복귀가 되었다. 금강조의 39대 사장이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기본이 충실히 하면 된다”고 하였다. 기본을 충실히 한 건물은 웬만하여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더 충실히 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천정같은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비싼 자재를 들여 깔끔히 마무리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초공사부분도 콘크리트 50센티면 되는데 70센티를 시공하는 식으로 흙 속에 묻히는 부분이지만 오히려 더 충실히 시공하였다. 이 회사의 경영지침으로 2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회사의 규모를 무리하게 확장하지 않는다”는 지침이다. 둘째는 “사장이 현장에 살아야 한다”는 지침이다.
기업의 평균수명이 30년이라는데 금강조는 무려 1419년의 수명을 누려 왔다. 그렇게 장수하는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이들 2가지에 있었다. 이런 정신과 전통이 바로 장인정신(匠人精神)이다. 우리가 일본기업에서 이런 장인정신만큼은 배워야 한다
.

 

 

 

-출처-

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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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우리가 정말 단 지파의 후손일까요? 2010.03.27 11:20

 

 

 

 

 

 

 

" 단 자손의 종족들은 이러하니라"  <민 26:41a>

 

 

 


 한마디로 우리 민족이 단 지파의 후손이라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단 지파는 우상숭배하다 멸망당한 좋지 않은 지파입니다. 우리 한민족은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의 후손으로서, 니므롯의 우상숭배를 피해 동쪽으로 이주해 온, 야곱의 아들 이 아닌 에벨의 차남 욕단의 후손입니다.

 

 창10장 21절에서 32절에 보면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 아들 이름은 벨렉이고 작은 아들의 이름은 욕단이었습니다. 특히 큰 아들 이름을 벨렉(나눔)이라 지은 것은 그 당시에 바벨탑 언어혼란 사건으로 인해 여러 민족으로 갈라지기 시작(땅이 나누어지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_대륙이동)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차남 욕단으로부터 태어난 아들들은 13명이나 소개되고 있는데 그들의 이름이 26절 이하에 나옵니다.

 

 <창 10:21-32>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의 아들은 엘람앗수르아르박삿아람이요 아람의 아들은 우스게델마스아르박삿셀라를 낳고 셀라에벨을 낳았으며 에벨(=의 셋째아들 아르박삿의 손자->모든 히브리인의 조상->데라->아브라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욕단은 ①알모닷②셀렙③하살마웻④예라⑤하도람⑥우살⑦디글라⑧오발⑨아비마엘⑩스바⑪오빌⑫하윌라⑬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이란 동북부에 있는 메삿)에서부터 스발(시베리아)로 가는 길의 동쪽 산(시베리아를 향하여 가는 길목에는 천산산맥이 자리 잡고 있다)이었더라 이들은 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이들은 그 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이들은 아마도 부친의 인도를 받아 이동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라 했습니다. 메사란 이란 동북부에 있는 메삿을 말하는 것이고 스발이란 시베리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란 동북부 메삿에서 시베리아를 향하여 가는 길목에는 천산산맥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곳이 본문에서 말하는 동쪽 산인 것입니다. 동쪽 산이란 하나의 작은 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쪽에 있는 산맥>을 뜻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욕단의 후손들이 거주한 동쪽 산을 아라비아에 있는 것으로 생각들을 하는 데 오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아라비아에는 그만한 산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니므롯으로 말미암아 우상숭배가 만연해진 중동지방을 벗어나서 욕단의 후손들이 시베리아로 가는 길의 동쪽 산맥, 천산산맥을 넘어와서 해 돋는 곳으로 가다가 만주, 요동반도와 한반도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이 바로 오늘날 한민족의 조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반도에 정착한 민족이 욕단의 13후손 중 누구의 후손인지는 더 연구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결론은 아브라함에벨의 장남 벨렉의 후손이고 한민족은 차남 욕단의 후손인 고로 우리가 의 후손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의 후손이 아니고 욕단의 후손인 것입니다.

 

 야곱의 12 아들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스블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요셉, 베냐민입니다.<창 49:3~27> 그런데 야곱의 축복을 받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각각 하나의 지파를 이루고 레위 지파는 제사장직분을 수행함으로써 가나안 땅에서의 12 지파는 르우벤 지파, 시므온 지파, 갓 지파, 유다 지파, 잇사갈 지파, 스블론 지파, 므낫세 지파, 에브라임 지파, 베냐민 지파, 단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로 구성되어집니다. 하지만 계시록에 보면 12 지파가 또 달라집니다. 유다 지파, 르우벤 지파, 갓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 므나세 지파, 시므온 지파, 레위 지파, 잇사갈 지파, 스블론 지파, 요셉 지파, 베냐민 지파로 이루어지고, 단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없어져 버립니다.

 

 호세아 4장 17절에 보면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시고 그 지파를 아예 지워 버립니다. 단 지파는 어떻습니까? 단 지파도 또 지워버립니다. 은 벌써 야곱이 죽을 때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떨어지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상과 연합할 것을 이미 예언한 것입니다.

 

 사사기 17, 18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의 미가라는 사람이 집에 신상을 만들고 레위인을 한 가정의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이때 거주할 기업을 찾아 헤매던 단 지파가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을 유혹하여 우상을 가지고 나오게 하고, 자기 지파의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하고 에브라임은 지워지는 것입니다. 레위가 빠졌다가 다시 대신 들어가고 에브라임 대신 다시 요셉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12 지파는 이렇게 또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를 했기 때문에 단 지파는 완전히 지워져 버린 것입니다. 단 지파라고 했을 때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국의 단군 신화가 단 지파라서 단 아니냐? 그러나 이것은 절대 근거 없는 얘기입니다. 이런 얘기 믿으면 안 됩니다.

 

 또 적그리스도가 단 지파에서 나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 랍비의 해석 중에 그런 해석이 있습니다. 우리가 참고는 할 필요가 있지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런 해석도 있을 수 있는데 단 지파가 한국 사람이라는 이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입니다. 성경적으로 보아 단지파의 후손이 된다면 큰일이지요.

 

홍의봉 선교사의 “유대 민족과 한국 민족” 중에서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과 유대 민족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음은 틀림없다. 그동안 두 민족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씀과 학문을 통해 연구하신 분들이 많이 계신데, 나는 보다 영적인 측면에서 두 민족 사이에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깨닫고 있다. 하나님은 노아의 세 아들 중 에게 영적 복을 내려 주셨고, 특히 의 삼대 손인 에벨을 택하셨다. 그런데 에벨에게는 벨렉욕단의 두 아들이 있었으며, 벨렉에게서 유대 민족이 나왔음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욕단의 후손에 대한 기록은 정확히 나타나 있지 않지만, 연구가들은 욕단의 후손이 해돋는 동방으로 이주하여 한민족의 조상이 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나는 창세기에 중요한 비유로 나타나 있는 장자와 차자의 영적원리가 중요한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출처] 우리가 정말 단 지파의 후손일까요? |작성자 우림과둠밈

 

*** 내용을 첨삭하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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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간 미국인 2010.03.27 00:28

 

 

 

 

 

 

 

어떤 미국인이 충청도 이발소에 찾아갔다.

 

미국인이 들어오자 이발사는

 

"왔시유? (What see You?) 라고 말했다.

 

그때 미국인은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무엇을 보고 있냐고 묻기에

 

"미러" (Mirror)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발사는 미국인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렸다.-_-;;

 

 

이렇게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 미국인.

 

'다음부터 이발소 갈 때에는

 

한국말을 배워야지'하면서

 

한국말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차츰 머리가 자랐고

 

다시 그 이발소를 찾아가게 되었다.

 

역시 이발사는

 

"왔시유?" (What see You?) 라고 말했다.

 

갑자기 지난번과 같은 말을 들은 미국인은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침착하게.......,

 

 

이발사의 발을 보고 있었으니

 

발을 보고 있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발'이란 단어는 생각나는데

 

'보고 있다'는 한국말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미국인이 말했다.

 

 

 

 

 

 

 

" I SEE 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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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별 주제_성경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 2010.03.26 09:54

 

 

 

[구약 성경에 나타나신 하나님]

 

1. 창조하시는 하나님-------------------------------창세기

 

2. 구원하시는 하나님-----------------------------출애굽기

 

3. 언약하시는 하나님-------------------------------레위기

 

4. 훈련시키는 하나님-------------------------------민수기

 

5. 설교, 설명 하시는 하나님-------------------------신명기

 

6. 성취하시는 하나님-----------------------------여호수아

 

7. 재판하시는 하나님-------------------------------사사기

 

8. 우리의 기업을 회복하시는 하나님--------------------룻기

 

9.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사무엘상

 

10. 감찰하시는 하나님----------------------------사무엘하

 

11. 다스리시는 하나님----------------------------열왕기상

 

12. 예언자를 보내시는 하나님---------------------열왕기하

 

13. 기억하시는 하나님------------------------------역대상

 

14. 회복하시는 하나님------------------------------역대하

 

15. 도우시는 하나님--------------------------------에스라

 

16. 위로하시는 하나님----------------------------느헤미야

 

17. 전화위복을 이루시는 하나님---------------------에스더

 

18. 시험하시는 하나님--------------------------------욥기

 

19. 찬양받으실 하나님--------------------------------시편

 

20.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잠언

 

21.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전도서

 

22.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아가

 

23.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사야

 

24. 심판하시는 하나님----------------------------예레미야

 

25. 통곡하시는 하나님-----------------------예레미야 애가

 

26. 진노하시는 하나님------------------------------에스겔

 

27.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다니엘

 

28. 사랑, 질투, 권면하시는 하나님-------------------호세아

 

29. 권면하시는 하나님--------------------------------요엘

 

30. 공평, 정의(공의)의 하나님-----------------------아모스

 

31. 도덕적인 과오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오바댜

 

32. 이방인과 육축도 아끼시는 하나님-------------------요나

 

33. 경제 정의 부르짖는 하나님-------------------------미가

 

34. 원수에게 보복하시는 하나님-----------------------나훔

 

35. 응답하시는 하나님------------------------------하박국

 

36. 숨겨주시는 하나님------------------------------스바냐

 

37. 책망하시고 격려하시는 하나님---------------------학개

 

38. 기억하시는 하나님------------------------------스가랴

 

39. 기가 막혀 말을 못하시는 하나님------------------말라기

 

 

 

[신약성경에 나타나신 하나님]

 

40. 유대인의 왕 되신 하나님-----------------------마태복음

 

41. 섬기시는 하나님------------------------------마가복음

 

42. 천하만민의 하나님----------------------------누가복음

 

43. 초월자로 오신 하나님-------------------------요한복음

 

44. 성령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사도행전

 

45.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하나님---------------------로마서

 

46. 하나 되게 하시고 은사 주시는 하나님---------고린도전서

 

47. 위로하시는 하나님--------------------------고린도후서

 

48. 자유케 하시고, 섬기게 하시는 하나님---------갈라디아서

 

49. 예정하시고, 선택하시는 하나님-----------------에베소서

 

50. 기쁨주시는 하나님----------------------------빌립보서

 

51.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하나님-------------------골로새서

 

52. 다시 오실 하나님-----------------------데살로니가전서

 

53.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데살로니가후서

 

54. 교회 세우시고, 직분주시는 하나님------------디모데전서

 

55. 면류관(상)주시는 하나님---------------------디모데후서

 

56.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디도서

 

57. 변화시키는 하나님----------------------------빌레몬서

 

58. 모든 것보다 우월하신 하나님-------------------히브리서

 

59. 참 믿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야고보서

 

60. 우리의 소망되시는 하나님-------------------베드로전서

 

61. 성장과 성숙을 바라시는 하나님---------------베드로후서

 

62. 사랑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요한1서

 

63. 이단을 경계하시는 하나님----------------------요한2서

 

64. 나그네(전도자)를 생각 하시는 하나님------------요한3서

 

65. 이단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유다서

 

66. 교회를 지키시고, 최후 승리하시는 하나님-----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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