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류 - 맥스 슐만(Max Schulman)
나는 논리적이고 멋진 녀석이었다. 예리하고 빈틈 없으며 통찰력있기까지 했다. 내 머리는 발전기처럼 쌩쌩 돌아갔고 화학자의 저울처럼 정확했으며 외과용 메스처럼 날카로웠다. 생각해봐라, 난 겨우 열여덟살이었단 말이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그런 훌륭한 지성을 갖춘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내 대학교 룸메이트 피티 벨로우즈를 한번 볼까? 나와 똑같은 나이에 비슷한 배경에서 자라났으면서도 이 녀석은 완전 얼간이였다. 친구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녀석이었지만 머릿 속엔 든 게 없었던 것이다. 감정적인 타입에 이리저리 휘둘리는데다가 귀도 얇은데, 더군다나 최악인 것은 유행이나 쫓아다니는 녀석이라는 것이었다. 유행이야말로 이성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 아니던가!! 무엇인가 새롭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이 나타날 때마다 이에 혹한다고? 단지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생각도 없이 그걸 따라한다고? 내가 보기에 유행이야말로 몰지각한 행동의 전형이었지만, 피티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어느 날 오후, 피티가 침대에 누워 무지하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니 맹장염이라도 걸린 것만 같았다.
"움직이지마. 아무 약이나 먹지 말고. 내가 의사를 불러올게." 내가 말했다.
"너구리잉" 순간 그녀석이 웅얼거렸다.
"너구리라고?" 나는 뛰어가다 말고 멈추며 말했다.
"너구리털 코트가 갖고 싶어." 녀석은 꼭 울부짖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녀석이 몸이 아픈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너구리털 코트가 왜 갖고 싶은데?"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피티는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외쳤다. "찰스턴 댄스가 다시 유행하면 너구리털 코트도 다시 유행할거라는 걸 알았어야했어. 바보처럼 교과서를 사느라 돈을 써버려서 너구리털 코트를 살 수가 없다니!!"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시 너구리털 코트를 실제로 입고 다닌단 말이야?"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학교의 모든 인기남들은 다들 그걸 입고 있다구. 넌 도대체 어디 쳐박혀 있었던 거냐?"
"나야 뭐 도서관이지." 나는 학교의 인기남들은 절대 오지 않을 만한 곳을 댔다.
그는 침대에서 뛰어나와 방안을 왔다갔다하면서 열을 내며 말했다.
"너구리털 코트를 가져야해, 가져야한다구!!"
"피티, 도대체 왜야?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구. 너구리털 코트는 비위생적인데다가 털도 빠지고 냄새도 난다구. 너무 무거운데다가 볼품도 없어. 그리고..."
"넌 이해를 못하는구나." 그가 참을성 없이 끼어들었다. "다들 입는거야. 너도 유행을 좀 따라가는 게 어때?"
"아니, 난 됐어." 나는 솔직히 말했다.
"뭐 좋아, 하지만 난 너구리털 코트를 위해선 뭐든 하겠어. 뭐든지!!"
내 총명한 두뇌는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든지라고?" 나는 그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래, 뭐든지!!"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해보았다. 나는 너구리털 코트를 얻을 수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대학 다닐 때에 입었던 너구리털 코트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우리 집 다락 트렁크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피티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녀석이 정확하게 그걸 소유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녀석에게 우선권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여자친구 폴리 에스피였다. 나는 오랫동안 폴리를 탐내 왔었다. 하지만 이 아가씨에 대한 나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감정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해 두고 싶다. 물론 그녀는 확실히 남자들의 욕정을 자극하는 여자였지만, 나는 가슴이 머리를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폴리를 원하는 이유는 주도면밀한 계산된 끝에 얻어진 합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법대 신입생이었고 몇 년 후면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변호사 경력에 있어 배우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관찰해 온 바에 의하면, 성공적인 변호사들은 거의 예외없이 아름답고, 기품 있고, 지적인 여자들과 결혼했다. 한 가지만 빼면 폴리는 이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여자였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남자들이 벽에 사진을 붙여놓고는 두고두고 볼만큼 균형잡힌 미인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욱 예뻐질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그럴만한 자질이 엿보이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기품 있었다. 기품있다는 것은 행동 하나하나가 우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꼿꼿이 세운 상체에 자연스러운 태도, 가정교육을 잘 받은 여성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몸가짐이었다. 거기에다 테이블 매너는 또 얼마나 훌륭한지. 나는 그녀가 '코우지 캠퍼스 코너'에서 특별요리인 샌드위치를 먹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구운 고기 조각과 육즙, 잘게 썬 땅콩류와 소금에 절인 양배추가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손가락에 물기 하나 묻히지 않고 깔끔하게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적이지는 못했다. 사실대로라면 정반대랄까. 하지만 내가 이것저것 가르쳐주면 똑똑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쨌든 시도해볼만한 일이 아닌가. 못생기고 똑똑한 여자애를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는 예쁘고 멍청한 여자애를 똑똑하게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니까.
"피티, 너 폴리를 사랑하니?"
"뭐 괜찮은 애이긴 하지만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왜?"
"너 그녀랑 정식으로 사귀자는 약속한적 있니? 뭐 잘해보자거나 하는 그런..."
"아니, 우린 꽤 자주 보긴 하지만 우리 둘 다 다른 사람도 만나. 왜 그러는데?"
"그럼 그녀가 특별히 좋아하는 놈이 있나?"
“내가 알기론 없어. 왜?”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너만 아니라면 폴리에 대한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거군. 그렇지?"
"뭐 그런 것 같네. 도대체 뭘 바라는거야?"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나는 천연덕스레 말하며 옷장에서 옷가방을 꺼내었다.
"어디 가려는거야?"
"주말이잖아. 집에 가야지." 하면서 나는 가방을 챙겼다.
"이봐," 녀석이 내 팔을 다급히 붙잡았다. "집에 가면 너희 아버지한테 돈을 좀 뜯어낼 수 있지? 그래서 나 좀 빌려줄 수 있을까? 너구리털 코트 좀 사게."
"그거보다 더 좋은 걸 해줄지도 몰라." 나는 알쏭달송한 윙크를 던지며 가방을 마저 싸서 집으로 향했다.
"자아, 봐라!!" 월요일 아침에 돌아와서 피티에게 말했다. 옷가방을 열어제끼니 크고 털이 북슬북슬한 냄새나는 너구리털 코트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아버지가 1925년 스터츠 베어캣에서 입었던 것이었다.
"오오, 세상에나!!" 그는 두 손을 코트에 파묻다가 이내 얼굴까지 파묻었다. "오오, 세상에나!!" 녀석은 이 말을 열다섯 번이나 스무 번쯤 반복했다.
"그렇게 좋냐?" 내가 물었다.
"당근이지!" 그는 기름기가 번득이는 너구리털을 꽉 움켜쥐면서 환호하다가는 갑자기 의심스러운 눈빛이 되었다. "내게 원하는게 뭐지?"
"네 여자친구", 나는 굳이 점잔빼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폴리? 너 폴리를 원하는거야?" 그는 깜짝놀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맞아."
그러자 녀석은 코트를 멀리 집어던지며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안 돼"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좋아, 뭐 유행에 따르고 싶지 않다면 마음대로 해."
나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척 했지만 사실은 곁눈으로 피티를 계속 훔쳐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 고뇌의 화신이었다. 처음에는 빵집 창문에 달라붙은 걸인 같은 표정으로 코트를 쳐다보다가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다가 다시 더욱 갈망하는 눈으로 코트를 돌아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단호해보이진 않았다. 고개를 까닥까닥하는 동안 욕망은 커지고 결심은 약해지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는 더 이상 돌아서지 않고 코트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내가 폴리를 사랑한다거나, 계속 사귀겠다거나 그런건 아니니까 말이지," 그는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렇잖아." 내가 말했다.
"그럼 내게 폴리는 뭐고, 폴리는 내게 뭐지?"
"아무 사이도 아닌 거잖아. 그냥 만났다 헤어지는 다른 애들하고 똑같은거야. 몇 번 웃어주면 그만이지.... 이봐, 어서 코트나 입어보라구" .
그는 순순히 따랐다. 코트는 귀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덮을 정도여서 녀석은 꼭 죽은 너구리 무덤처럼 보였다. "히히, 잘 맞는데~" 그는 행복하게 말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거래는 성립된거지?" 내가 손을 내밀며 묻자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마주 잡았다.
"그래, 거래성립."
다음날 저녁이 폴리와의 첫 번째 데이트였다. 이번 데이트는 그녀의 지성을 내가 바라는 수준까지 올리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탐색전이었다. 우선 저녁을 먹고 레스토랑을 나서는데 그녀가 말했다. "이야, 이 집 딥따 맛있구나" 영화를 보고 나서 극장을 나서는데 그녀가 말했다. "이야, 영화 진짜 캡숑인데!!"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자 작별 인사를 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이야, 열라 잘 놀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방에 돌아왔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애를 써야 할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녀의 무식함은 놀랄 정도여서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택도 없었다. 그녀는 "생각하는 방법"부터 배워야했다. 이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으며 처음에 나는 그녀를 피티에게 돌려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풍만한 육체, 그녀가 방에 들어올 때의 아름다운 모습, 칼과 포크를 다루는 우아한 손놀림 등을 떠올리며 한번 노력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다른 모든 걸 할 때와 마찬가지로 체계적으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녀에게 논리학을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나 스스로가 논리학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다음 번 데이트에서 그녀를 만나 말했다. "폴리, 오늘밤엔 '놀(Knoll)'에 가서 이야기하고 놀자." "이그, 쪼아!!" 그녀는 대답했다. 이 여자애한테 말할 때 좋은 점이 한가지 있다면 그녀는 무엇이든 도무지 반대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캠퍼스의 밀회 장소인 '놀'에 가서 오래된 참나무 아래 앉았다. 그녀는 기대에 차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얘기를 할꺼야?"
"논리학."
그녀는 여기에 대해 잠시 생각하더니만 한번 좋아해볼까 하고 마음먹은 것 같았다. "머찌구나" 그녀는 말했다.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논리학이란건 말야, 생각하는 방법과 관련된 과학이야. 우리가 정확하게 생각할 수 있으려면 먼저 논리학의 일반적인 오류를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해. 우리가 오늘밤 이야기할 게 이거야."
"와자붕!!" 그녀가 기쁘게 손뼉을 치면서 외쳤다. 나는 주춤했지만 용감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먼저 알아볼건 단순화의 오류(Dicto Simpliciter)라는 거야." "좋아좋아." 그녀는 열심히 속눈썹을 깜빡이면서 재촉했다.
"단순화의 오류라는 건 무조건적인 일반화에 기반한 주장을 말하는거야. 예를 들면 운동은 좋다. 따라서 모두는 운동을 해야한다. 같은거지."
"나도 동의해." 폴리가 진지하게 말했다. "운동은 좋은거잖아. 몸이 멋지고 튼튼해지니까!!"
"폴리," 나는 점잖게 말했다. "그 명제는 오류야. 운동이 좋다는 것은 무조건적 일반화라니까. 예를 들어 네가 심장병이 있다면 운동은 나쁜 거잖아. 의사한테 운동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도 많다구. 일반화의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운동은 대체로 좋다' 혹은 '운동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다'라고 말해야해. 그렇지않으면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게 되는거야. 알겠어?"
"잘 모르겠는걸." 그녀는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머찌다. 더 얘기해줘!! 더!!"
"알았으니 소매는 그만 잡아당기라구."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음에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Hasty Generalization)에 대해서 살펴보자. 잘 들어봐. 너는 불어를 못해, 피티도 불어를 못해. 그래서 나는 미네소타 대학 학생들은 아무도 불어를 할 줄 모른다고 결론내렸어."
"정말이야?" 폴리는 놀라서 말했다. "정말 아무도 못해?"
나는 짜증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폴리, 그러니까 이게 오류란 말이지. 일반화가 너무 급하게 이루어진거야. 그런 결론을 뒷받침할만한 예가 너무 적잖아."
"다른 오류들도 알고 있어?" 그녀가 숨가쁘게 물었다. "이거 춤추는 것보다도 더 재미있네."
나는 절망의 파도와 싸워야만 했다. 도대체 이 여자애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전혀 없었다. 하지만 계속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아닌 일, 나는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엔 인과관계의 오류(Post Hoc)야. 들어봐. 우리 소풍에 빌을 데려가지 말자. 그 녀석을 데려가기만 하면 비가 오잖아. 같은 거지."
"나 진짜 그런 사람을 알고 있어." 그녀가 주장했다. "우리 고향에 있는 여자앤데 이름이 율라 베커야. 매번 그랬어. 걔를 소풍에 데려가려고 할 때마다..."
"폴리, 그것도 오류란 말이다. 그 아이가 비를 몰고 다니는 게 아니잖아. 그녀는 비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 만약 율라 베커를 욕한다면 인과관계의 오류를 범하게 되는거지."
"다시는 안그럴게." 그녀는 깊이 뉘우치며 약속했다. "나한테 화났어?"
나는 한숨을 쉬며 "아냐, 폴리. 화 안났어." 라고 대답했다.
"그럼 오류 몇 개 더 이야기해주라."
"좋아, 그럼 모순되는 전제(Contradictory Premises)의 오류를 이야기해줄게."
"그래, 좋아." 폴리는 눈망을을 깜빡거리며 좋아했다.
나는 찡그리면서도 이야기를 계속했다. "예를 들어볼게. 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스스로 들 수 없는 무거운 돌을 만들 수 있을까?"
"당연하지." 그녀는 잽싸게 대답했지만 "근데 신은 모든 걸 할 수 있어. 돌도 들 수 있다구." 하고 내가 지적하자 "아, 그럼 그는 돌을 못 만들겠구나." 하고 말했다. 다시 내가 "하지만 그는 뭐든지 할 수 있는데?" 라고 하자 그녀는 "아, 헷갈려" 하면서 그 예쁘고 텅빈 머리를 긁적거렸다.
"물론이지, 논리의 전제가 서로 상반되면 논리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이야. 만일 무한한 힘이 있다면 움직일 수 없는 물체란 있을 수 없지. 또 만일 움직일 수 없는 물체가 있다면 무한한 힘이란 있을 수 없고, 알겠어?"
"재밌는걸~ 좀더 얘기해줘." 그녀가 말했지만 나는 시계를 보았다. "이제 밤이 깊었다.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 가서 오늘 배운걸 복습해봐. 내일 또 계속 하자."
나는 그녀를 여자기숙사에 데려다주었고 그녀는 아주 즐거웠다고 수없이 재잘거렸다. 우울해져서 방에 돌아오니 피티는 자기 침대에서 코를 골고 있었고 너구리털 코트는 그의 발치에서 거대한 털복숭이 짐승처럼 구겨져 있었다. 그를 깨워 폴리를 다시 데려가라고 할까 싶기도 했다. 그녀를 가르치려는 계획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폴리의 뇌에는 특수코팅이라도 되어 있어서 논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생각했다. 어차피 하루 저녁을 날렸는데 하루쯤 더 못하겠는가. 누가 알아? 그녀 머릿속 꺼져버린 분화구 어디에 불씨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부채질을 해서 불꽃을 키울 수도 있는 노릇 아냐? 썩 희망적이진 않았지만 한번 더 해보는거다.
다음날 저녁 참나무 아래에 앉아 말했다. "오늘의 첫 번째 오류는 동정에의 호소(Ad Misericordiam)야." 폴리는 기뻐서 몸을 떨었다. "자, 한 남자가 직장을 구하려고 해. 사장이 그에게 자격증이나 갖고 있는 능력 같은 게 있냐고 물으니까 그 남자는 이렇게 대답하는거야. 집에 아내와 여섯 아이가 있어요. 아내는 장애인이고 아이들은 먹을 것고, 입을 옷도, 신을 신발도 없고 집에는 침대도 없고 광에는 석탄도 없는데 겨울이 오고 있군요. 라고 말이지."
폴리의 양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 불쌍하다. 가여워." 그녀는 흐느꼈다. "그래, 불쌍하지. 하지만 이건 논리엔 맞지 않는거야. 그 남자는 자격에 대한 사장의 질문에 답도 제대로 안하고 동정심에 호소하고 있잖아. 그는 동정에의 호소 오류를 범한거야. 이해하겠니?"
"혹시 손수건 있어?"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주고 그녀가 눈물을 닦는 동안 비명을 질러버리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아내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음엔 말야, 잘못된 유추(False Analogy)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자, 학생들은 시험볼 때 교과서를 보는 것이 허용되어야한다는 주장이 있어. 사실 외과의사도 수술할 때 X레이를 참고하고 변호사들도 재판 때 서류를 보잖아? 목수들도 집을 지을 때 청사진을 본단 말야. 그런데 왜 학생들이 시험 때 교과서를 보는건 안되지?"
"그거 내가 몇 년 동안 들은 것 중에 젤루 멋진 아이디어야!!" 그녀가 열광했다.
"폴리, 이 명제도 틀렸어. 의사나 변호사나 목수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아는지 알기 위해 시험을 보는 게 아니잖아. 학생들과는 다르다구. 모두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추론을 할 수는 없어."
"여전히 좋은 아이디어 같기는 한데에" 폴리가 말했다.
"바보" 나는 중얼거리면서도 끈질기게 버티어갔다.
"다음에는 사실과 상반되는 가정(Hypothesis Contrary)이야."
"왠지 땡기는걸" 이라고 폴리가 대답했다.
"자, 퀴리부인이 우연히 우라늄 덩어리가 들어 있는 서랍 속에 사진 감광판을 놓아두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세계는 라듐에 대해 모르고 있을 것이다 라는 명제가 있어."
"맞아, 맞아." 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퀴리부인 영화봤어? 정말 죽이더라. 월터 피젼 너무 멋지지 않니? 나는 그 사람만 보면 어쩔 줄을 모르겠다니까."
"이봐이봐, 잠시 피젼씨는 잊고 내 말을 들어봐. 그게 오류라는 걸 가르쳐줄게. 퀴리부인이 나중에 발견할 수도 있잖아. 다른 사람들이 발견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지. 진실이 아닌 가정을 전제로 그로부터 논거가 충분한 주장을 이끌어낼 수는 없어."
"월터 피전이 더 많은 영화에 나와야하는데, 요새 통 보기가 힘드네."
나는 딱 한번만 더 해보자고 결심했다. 정말로 한번 만이다. 더 참다가는 피와 살이 녹을 것 같았다. "다음 오류는 우물에 독타기(Poisoning the Well)야."
"어머 귀엽게스리!!" 그녀는 침을 꼴깍 삼켰다.
"두 사람이 논쟁을 하고 있어. 첫 번째 사람이 일어나서 말해. '저놈은 악명 높은 거짓말쟁이야. 저녀석이 하는 말은 한마디도 믿으면 안된다구'... 자, 폴리 생각해봐, 열심히 좀 생각해봐. 뭐가 잘못되었을까?"
나는 그녀가 크림색 눈썹을 찡그리며 잔뜩 집중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한 줄기 지성의 빛이, 내가 그녀를 안 이후 처음으로 그녀의 두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공평하지가 않네" 그녀는 분노해서 말했다. "공평하지 않잖아. 얘기도 시작하기 전에 첫 번째 사람이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이면 그 사람은 아무런 기회가 없는 거 아냐?"
"정답!!" 나는 환호했다. "만점짜리야. 그건 공평하지 못하다구. 첫 번째 남자는 누가 우물물을 마시기 전에 독을 탄거야. 시작도 하기 전에 상대편을 불구로 만든거지. 폴리, 난 네가 자랑스럽다!!" "피잇" 그녀는 수줍게 기뻐했다.
"봐, 폴리.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지? 집중하기만 하면 되. 그러면서 생각하고 조사하고 평가하는거야. 자, 이제 배운 것들을 복습해보자."
"쭈앗!! 얼마든지 해보자구" 그녀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폴리가 아주 바보는 아니라는 사실에 고무되어 나는 내가 여태껏 말해주었던 것들을 길고도 인내심 있게 복습시켜주었다. 몇 번이고, 정말 몇 번이고 예제들을 언급해주고, 결함을 지적해주고, 끊임없이 단련시켰다. 마치 터널을 파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할 일 투성이에다가 모든 것이 불안이요 암흑이었고 도대체 언제 빛을 보게 될지, 아니 그럴 수는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두들기고, 파고, 깎아내자 마침내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저어기 틈새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틈은 더욱 커졌고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모든 것이 밝아졌다!!
책 한권에 5일간의 맹훈련을 쏟아부었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폴리를 논리적인 여인으로 변신시켰지 않은가. 그녀에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내 임무는 완수된 것이고 마침내 그녀는 나에게 어울릴만한 여자가 된 것이다. 그녀는 내게 꼭 맞는 아내이자, 여러 저택을 거느린 안주인, 유복한 내 아이들에게 딱 맞는 어머니였다. 내가 폴리에게 아무런 사랑의 감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피그말리온이 스스로 만든 완벽한 여인을 사랑한 것처럼 나도 내 창조물을 사랑했다. 나는 다음 번에 만날 때, 그녀에게 나의 감정을 알리리라 결심했다. 드디어 우리의 관계가 아카데믹한 것으로부터 로맨틱한 것으로 바꾸어질 때가 온 것이다. 우리는 참나무 아래에 앉았다.
"폴리, 오늘밤은 오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자구."
"오, 이런." 그녀는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폴리, 우리는 벌써 닷새 저녁을 함께 보냈어. 아주 멋지게 지내왔고 말야. 우리가 매우 잘 어울린다는 것이 확실해졌어."
"성급한 일반화네." 폴리가 밝게 말했다.
"뭐라고 그랬어?"
"성급한 일반화라구. 겨우 다섯 번 보고서 어떻게 우리가 잘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는거야?"
나는 재미있어서 킬킬 웃었다. 요 귀염둥이, 수업을 아주 잘 받았다니까. 나는 점잖게 그녀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폴리, 다섯 번이면 충분해. 케이크가 맛있는지 알아보려고 케이크 전체를 다 먹어볼 필요는 없지."
"그건 그릇된 유추인데? 난 케이크가 아니라 여자라구." 폴리가 즉시 대답했다.
나는 아까보다는 좀 덜 기뻤지만 그래도 웃었다. 이 여자, 아무래도 수업을 너무 열심히 받은 것 같다. 나는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가장 좋은 접근법은 확실히 단순하고, 강하며, 직접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리라. 나는 잠깐 멈춰서 내 온머리를 짜내어 적당한 말을 골라내고는 입을 열었다.
"폴리, 나 너를 사랑해. 너는 나한테 세상 모든거야, 아니 거기다가 달이고 별이고 별자리까지 합쳐야지. 사랑하는 폴리, 나와 사귀어줘.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나는 시들시들해져서 밥도 먹지 못하고 눈이 움푹 꺼져서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폐인이 될거고 말야."
팔짱을 끼면서 이정도면 됐겠지 하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동정에의 호소로구나."
나는 이빨을 드득 갈았다. 나는 피그말리온이 아니었다. 나는 프랑켄슈타인이었고 내가 만든 괴물이 나를 삼키려하고 있었다. 나는 내 안에서 밀려오는 공포감에 처절하게 맞서 싸워야만 했다. 어쨌든 침착하는 것만이 최고였다.
"좋아, 폴리," 나는 억지로 미소지으며 말했다. "너 확실히 논리학을 마스터한거 같아."
"그렇고말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누가 그걸 너한테 가르쳐주었니, 폴리?"
"너."
"맞아. 그러니까 너는 나한테 빚을 좀 진거지. 내가 아니었다면 너는 오류에 대해서 배울 수가 없었을텐데 말야."
"그건 사실과 상반되는 가정이네." 그녀가 틈도 안주고 대답했다.
미간에서 땀이 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꽥꽥거렸다. "폴리!! 오류들을 너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거 아냐? 그러니까 이것들은 강의실 안에서나 써먹는거라구.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쓸모 없는지 너도 알잖아!!"
"단순화의 오류." 그녀는 장난스레 나에게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그걸로 됐다,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질렀다. "나랑 사귈꺼야 말꺼야?"
"안사귈껀데."
"도대체 왜? 응? 도대체 왜 그런건데?"
"아까 낮에 피티랑 사귀기로 했거든."
아아, 나는 그 자식의 파렴치한 행위에 충격받아서 뒤로 휘청휘청거렸다. 분명히 약속하지 않았던가, 분명히 거래를 했고 악수까지 하지 않았던가!! "개새끼!" 나는 잔디밭을 걷어차며 소리질렀다.
"그녀석과 사귀면 안되!! 폴리. 그 자식은 거짓말쟁이라구. 사기꾼에 배신자란 말이야."
"우물에 독을 타고 있구나. 그리고 소리 좀 그만 질러라. 나는 소리지르는 것도 오류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는데?"
굉장한 의지력을 발휘한 덕분에 목소리를 좀 가다듬을 수 있었다. "좋아, 너는 논리적인 아이야. 어디 이 사태를 논리적으로 봐보자구. 어째서 나를 버리고 피티를 선택할 수 있지? 나를 봐, 총명한 학생에 탁월한 지성인에다가 똑똑하고 미래도 보장되어 있어. 피티? 그 녀석은 얼간이에 신경질쟁이에다가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녀석이라구. 도대체 왜 피티와 사귀기로 했는지 논리적인 이유를 하나만 대보란 말야."
"얼마든지 대주지." 폴리는 선언하듯 말했다.
나는 논리적이고 멋진 녀석이었다. 예리하고 빈틈 없으며 통찰력있기까지 했다. 내 머리는 발전기처럼 쌩쌩 돌아갔고 화학자의 저울처럼 정확했으며 외과용 메스처럼 날카로웠다. 생각해봐라, 난 겨우 열여덟살이었단 말이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그런 훌륭한 지성을 갖춘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내 대학교 룸메이트 피티 벨로우즈를 한번 볼까? 나와 똑같은 나이에 비슷한 배경에서 자라났으면서도 이 녀석은 완전 얼간이였다. 친구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녀석이었지만 머릿 속엔 든 게 없었던 것이다. 감정적인 타입에 이리저리 휘둘리는데다가 귀도 얇은데, 더군다나 최악인 것은 유행이나 쫓아다니는 녀석이라는 것이었다. 유행이야말로 이성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 아니던가!! 무엇인가 새롭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이 나타날 때마다 이에 혹한다고? 단지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생각도 없이 그걸 따라한다고? 내가 보기에 유행이야말로 몰지각한 행동의 전형이었지만, 피티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어느 날 오후, 피티가 침대에 누워 무지하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니 맹장염이라도 걸린 것만 같았다.
"움직이지마. 아무 약이나 먹지 말고. 내가 의사를 불러올게." 내가 말했다.
"너구리잉" 순간 그녀석이 웅얼거렸다.
"너구리라고?" 나는 뛰어가다 말고 멈추며 말했다.
"너구리털 코트가 갖고 싶어." 녀석은 꼭 울부짖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녀석이 몸이 아픈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너구리털 코트가 왜 갖고 싶은데?"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피티는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외쳤다. "찰스턴 댄스가 다시 유행하면 너구리털 코트도 다시 유행할거라는 걸 알았어야했어. 바보처럼 교과서를 사느라 돈을 써버려서 너구리털 코트를 살 수가 없다니!!"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시 너구리털 코트를 실제로 입고 다닌단 말이야?"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학교의 모든 인기남들은 다들 그걸 입고 있다구. 넌 도대체 어디 쳐박혀 있었던 거냐?"
"나야 뭐 도서관이지." 나는 학교의 인기남들은 절대 오지 않을 만한 곳을 댔다.
그는 침대에서 뛰어나와 방안을 왔다갔다하면서 열을 내며 말했다.
"너구리털 코트를 가져야해, 가져야한다구!!"
"피티, 도대체 왜야?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구. 너구리털 코트는 비위생적인데다가 털도 빠지고 냄새도 난다구. 너무 무거운데다가 볼품도 없어. 그리고..."
"넌 이해를 못하는구나." 그가 참을성 없이 끼어들었다. "다들 입는거야. 너도 유행을 좀 따라가는 게 어때?"
"아니, 난 됐어." 나는 솔직히 말했다.
"뭐 좋아, 하지만 난 너구리털 코트를 위해선 뭐든 하겠어. 뭐든지!!"
내 총명한 두뇌는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든지라고?" 나는 그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래, 뭐든지!!"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해보았다. 나는 너구리털 코트를 얻을 수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대학 다닐 때에 입었던 너구리털 코트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우리 집 다락 트렁크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피티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녀석이 정확하게 그걸 소유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녀석에게 우선권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여자친구 폴리 에스피였다. 나는 오랫동안 폴리를 탐내 왔었다. 하지만 이 아가씨에 대한 나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감정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해 두고 싶다. 물론 그녀는 확실히 남자들의 욕정을 자극하는 여자였지만, 나는 가슴이 머리를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폴리를 원하는 이유는 주도면밀한 계산된 끝에 얻어진 합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법대 신입생이었고 몇 년 후면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변호사 경력에 있어 배우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관찰해 온 바에 의하면, 성공적인 변호사들은 거의 예외없이 아름답고, 기품 있고, 지적인 여자들과 결혼했다. 한 가지만 빼면 폴리는 이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여자였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남자들이 벽에 사진을 붙여놓고는 두고두고 볼만큼 균형잡힌 미인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욱 예뻐질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그럴만한 자질이 엿보이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기품 있었다. 기품있다는 것은 행동 하나하나가 우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꼿꼿이 세운 상체에 자연스러운 태도, 가정교육을 잘 받은 여성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몸가짐이었다. 거기에다 테이블 매너는 또 얼마나 훌륭한지. 나는 그녀가 '코우지 캠퍼스 코너'에서 특별요리인 샌드위치를 먹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구운 고기 조각과 육즙, 잘게 썬 땅콩류와 소금에 절인 양배추가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손가락에 물기 하나 묻히지 않고 깔끔하게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적이지는 못했다. 사실대로라면 정반대랄까. 하지만 내가 이것저것 가르쳐주면 똑똑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쨌든 시도해볼만한 일이 아닌가. 못생기고 똑똑한 여자애를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는 예쁘고 멍청한 여자애를 똑똑하게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니까.
"피티, 너 폴리를 사랑하니?"
"뭐 괜찮은 애이긴 하지만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왜?"
"너 그녀랑 정식으로 사귀자는 약속한적 있니? 뭐 잘해보자거나 하는 그런..."
"아니, 우린 꽤 자주 보긴 하지만 우리 둘 다 다른 사람도 만나. 왜 그러는데?"
"그럼 그녀가 특별히 좋아하는 놈이 있나?"
“내가 알기론 없어. 왜?”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너만 아니라면 폴리에 대한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거군. 그렇지?"
"뭐 그런 것 같네. 도대체 뭘 바라는거야?"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나는 천연덕스레 말하며 옷장에서 옷가방을 꺼내었다.
"어디 가려는거야?"
"주말이잖아. 집에 가야지." 하면서 나는 가방을 챙겼다.
"이봐," 녀석이 내 팔을 다급히 붙잡았다. "집에 가면 너희 아버지한테 돈을 좀 뜯어낼 수 있지? 그래서 나 좀 빌려줄 수 있을까? 너구리털 코트 좀 사게."
"그거보다 더 좋은 걸 해줄지도 몰라." 나는 알쏭달송한 윙크를 던지며 가방을 마저 싸서 집으로 향했다.
"자아, 봐라!!" 월요일 아침에 돌아와서 피티에게 말했다. 옷가방을 열어제끼니 크고 털이 북슬북슬한 냄새나는 너구리털 코트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아버지가 1925년 스터츠 베어캣에서 입었던 것이었다.
"오오, 세상에나!!" 그는 두 손을 코트에 파묻다가 이내 얼굴까지 파묻었다. "오오, 세상에나!!" 녀석은 이 말을 열다섯 번이나 스무 번쯤 반복했다.
"그렇게 좋냐?" 내가 물었다.
"당근이지!" 그는 기름기가 번득이는 너구리털을 꽉 움켜쥐면서 환호하다가는 갑자기 의심스러운 눈빛이 되었다. "내게 원하는게 뭐지?"
"네 여자친구", 나는 굳이 점잔빼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폴리? 너 폴리를 원하는거야?" 그는 깜짝놀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맞아."
그러자 녀석은 코트를 멀리 집어던지며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안 돼"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좋아, 뭐 유행에 따르고 싶지 않다면 마음대로 해."
나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척 했지만 사실은 곁눈으로 피티를 계속 훔쳐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 고뇌의 화신이었다. 처음에는 빵집 창문에 달라붙은 걸인 같은 표정으로 코트를 쳐다보다가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다가 다시 더욱 갈망하는 눈으로 코트를 돌아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단호해보이진 않았다. 고개를 까닥까닥하는 동안 욕망은 커지고 결심은 약해지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는 더 이상 돌아서지 않고 코트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내가 폴리를 사랑한다거나, 계속 사귀겠다거나 그런건 아니니까 말이지," 그는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렇잖아." 내가 말했다.
"그럼 내게 폴리는 뭐고, 폴리는 내게 뭐지?"
"아무 사이도 아닌 거잖아. 그냥 만났다 헤어지는 다른 애들하고 똑같은거야. 몇 번 웃어주면 그만이지.... 이봐, 어서 코트나 입어보라구" .
그는 순순히 따랐다. 코트는 귀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덮을 정도여서 녀석은 꼭 죽은 너구리 무덤처럼 보였다. "히히, 잘 맞는데~" 그는 행복하게 말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거래는 성립된거지?" 내가 손을 내밀며 묻자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마주 잡았다.
"그래, 거래성립."
다음날 저녁이 폴리와의 첫 번째 데이트였다. 이번 데이트는 그녀의 지성을 내가 바라는 수준까지 올리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탐색전이었다. 우선 저녁을 먹고 레스토랑을 나서는데 그녀가 말했다. "이야, 이 집 딥따 맛있구나" 영화를 보고 나서 극장을 나서는데 그녀가 말했다. "이야, 영화 진짜 캡숑인데!!"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자 작별 인사를 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이야, 열라 잘 놀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방에 돌아왔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애를 써야 할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녀의 무식함은 놀랄 정도여서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택도 없었다. 그녀는 "생각하는 방법"부터 배워야했다. 이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으며 처음에 나는 그녀를 피티에게 돌려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풍만한 육체, 그녀가 방에 들어올 때의 아름다운 모습, 칼과 포크를 다루는 우아한 손놀림 등을 떠올리며 한번 노력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다른 모든 걸 할 때와 마찬가지로 체계적으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녀에게 논리학을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나 스스로가 논리학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다음 번 데이트에서 그녀를 만나 말했다. "폴리, 오늘밤엔 '놀(Knoll)'에 가서 이야기하고 놀자." "이그, 쪼아!!" 그녀는 대답했다. 이 여자애한테 말할 때 좋은 점이 한가지 있다면 그녀는 무엇이든 도무지 반대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캠퍼스의 밀회 장소인 '놀'에 가서 오래된 참나무 아래 앉았다. 그녀는 기대에 차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얘기를 할꺼야?"
"논리학."
그녀는 여기에 대해 잠시 생각하더니만 한번 좋아해볼까 하고 마음먹은 것 같았다. "머찌구나" 그녀는 말했다.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논리학이란건 말야, 생각하는 방법과 관련된 과학이야. 우리가 정확하게 생각할 수 있으려면 먼저 논리학의 일반적인 오류를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해. 우리가 오늘밤 이야기할 게 이거야."
"와자붕!!" 그녀가 기쁘게 손뼉을 치면서 외쳤다. 나는 주춤했지만 용감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먼저 알아볼건 단순화의 오류(Dicto Simpliciter)라는 거야." "좋아좋아." 그녀는 열심히 속눈썹을 깜빡이면서 재촉했다.
"단순화의 오류라는 건 무조건적인 일반화에 기반한 주장을 말하는거야. 예를 들면 운동은 좋다. 따라서 모두는 운동을 해야한다. 같은거지."
"나도 동의해." 폴리가 진지하게 말했다. "운동은 좋은거잖아. 몸이 멋지고 튼튼해지니까!!"
"폴리," 나는 점잖게 말했다. "그 명제는 오류야. 운동이 좋다는 것은 무조건적 일반화라니까. 예를 들어 네가 심장병이 있다면 운동은 나쁜 거잖아. 의사한테 운동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도 많다구. 일반화의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운동은 대체로 좋다' 혹은 '운동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다'라고 말해야해. 그렇지않으면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게 되는거야. 알겠어?"
"잘 모르겠는걸." 그녀는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머찌다. 더 얘기해줘!! 더!!"
"알았으니 소매는 그만 잡아당기라구."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음에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Hasty Generalization)에 대해서 살펴보자. 잘 들어봐. 너는 불어를 못해, 피티도 불어를 못해. 그래서 나는 미네소타 대학 학생들은 아무도 불어를 할 줄 모른다고 결론내렸어."
"정말이야?" 폴리는 놀라서 말했다. "정말 아무도 못해?"
나는 짜증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폴리, 그러니까 이게 오류란 말이지. 일반화가 너무 급하게 이루어진거야. 그런 결론을 뒷받침할만한 예가 너무 적잖아."
"다른 오류들도 알고 있어?" 그녀가 숨가쁘게 물었다. "이거 춤추는 것보다도 더 재미있네."
나는 절망의 파도와 싸워야만 했다. 도대체 이 여자애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전혀 없었다. 하지만 계속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아닌 일, 나는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엔 인과관계의 오류(Post Hoc)야. 들어봐. 우리 소풍에 빌을 데려가지 말자. 그 녀석을 데려가기만 하면 비가 오잖아. 같은 거지."
"나 진짜 그런 사람을 알고 있어." 그녀가 주장했다. "우리 고향에 있는 여자앤데 이름이 율라 베커야. 매번 그랬어. 걔를 소풍에 데려가려고 할 때마다..."
"폴리, 그것도 오류란 말이다. 그 아이가 비를 몰고 다니는 게 아니잖아. 그녀는 비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 만약 율라 베커를 욕한다면 인과관계의 오류를 범하게 되는거지."
"다시는 안그럴게." 그녀는 깊이 뉘우치며 약속했다. "나한테 화났어?"
나는 한숨을 쉬며 "아냐, 폴리. 화 안났어." 라고 대답했다.
"그럼 오류 몇 개 더 이야기해주라."
"좋아, 그럼 모순되는 전제(Contradictory Premises)의 오류를 이야기해줄게."
"그래, 좋아." 폴리는 눈망을을 깜빡거리며 좋아했다.
나는 찡그리면서도 이야기를 계속했다. "예를 들어볼게. 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스스로 들 수 없는 무거운 돌을 만들 수 있을까?"
"당연하지." 그녀는 잽싸게 대답했지만 "근데 신은 모든 걸 할 수 있어. 돌도 들 수 있다구." 하고 내가 지적하자 "아, 그럼 그는 돌을 못 만들겠구나." 하고 말했다. 다시 내가 "하지만 그는 뭐든지 할 수 있는데?" 라고 하자 그녀는 "아, 헷갈려" 하면서 그 예쁘고 텅빈 머리를 긁적거렸다.
"물론이지, 논리의 전제가 서로 상반되면 논리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이야. 만일 무한한 힘이 있다면 움직일 수 없는 물체란 있을 수 없지. 또 만일 움직일 수 없는 물체가 있다면 무한한 힘이란 있을 수 없고, 알겠어?"
"재밌는걸~ 좀더 얘기해줘." 그녀가 말했지만 나는 시계를 보았다. "이제 밤이 깊었다.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 가서 오늘 배운걸 복습해봐. 내일 또 계속 하자."
나는 그녀를 여자기숙사에 데려다주었고 그녀는 아주 즐거웠다고 수없이 재잘거렸다. 우울해져서 방에 돌아오니 피티는 자기 침대에서 코를 골고 있었고 너구리털 코트는 그의 발치에서 거대한 털복숭이 짐승처럼 구겨져 있었다. 그를 깨워 폴리를 다시 데려가라고 할까 싶기도 했다. 그녀를 가르치려는 계획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폴리의 뇌에는 특수코팅이라도 되어 있어서 논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생각했다. 어차피 하루 저녁을 날렸는데 하루쯤 더 못하겠는가. 누가 알아? 그녀 머릿속 꺼져버린 분화구 어디에 불씨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부채질을 해서 불꽃을 키울 수도 있는 노릇 아냐? 썩 희망적이진 않았지만 한번 더 해보는거다.
다음날 저녁 참나무 아래에 앉아 말했다. "오늘의 첫 번째 오류는 동정에의 호소(Ad Misericordiam)야." 폴리는 기뻐서 몸을 떨었다. "자, 한 남자가 직장을 구하려고 해. 사장이 그에게 자격증이나 갖고 있는 능력 같은 게 있냐고 물으니까 그 남자는 이렇게 대답하는거야. 집에 아내와 여섯 아이가 있어요. 아내는 장애인이고 아이들은 먹을 것고, 입을 옷도, 신을 신발도 없고 집에는 침대도 없고 광에는 석탄도 없는데 겨울이 오고 있군요. 라고 말이지."
폴리의 양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 불쌍하다. 가여워." 그녀는 흐느꼈다. "그래, 불쌍하지. 하지만 이건 논리엔 맞지 않는거야. 그 남자는 자격에 대한 사장의 질문에 답도 제대로 안하고 동정심에 호소하고 있잖아. 그는 동정에의 호소 오류를 범한거야. 이해하겠니?"
"혹시 손수건 있어?"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주고 그녀가 눈물을 닦는 동안 비명을 질러버리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아내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음엔 말야, 잘못된 유추(False Analogy)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자, 학생들은 시험볼 때 교과서를 보는 것이 허용되어야한다는 주장이 있어. 사실 외과의사도 수술할 때 X레이를 참고하고 변호사들도 재판 때 서류를 보잖아? 목수들도 집을 지을 때 청사진을 본단 말야. 그런데 왜 학생들이 시험 때 교과서를 보는건 안되지?"
"그거 내가 몇 년 동안 들은 것 중에 젤루 멋진 아이디어야!!" 그녀가 열광했다.
"폴리, 이 명제도 틀렸어. 의사나 변호사나 목수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아는지 알기 위해 시험을 보는 게 아니잖아. 학생들과는 다르다구. 모두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추론을 할 수는 없어."
"여전히 좋은 아이디어 같기는 한데에" 폴리가 말했다.
"바보" 나는 중얼거리면서도 끈질기게 버티어갔다.
"다음에는 사실과 상반되는 가정(Hypothesis Contrary)이야."
"왠지 땡기는걸" 이라고 폴리가 대답했다.
"자, 퀴리부인이 우연히 우라늄 덩어리가 들어 있는 서랍 속에 사진 감광판을 놓아두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세계는 라듐에 대해 모르고 있을 것이다 라는 명제가 있어."
"맞아, 맞아." 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퀴리부인 영화봤어? 정말 죽이더라. 월터 피젼 너무 멋지지 않니? 나는 그 사람만 보면 어쩔 줄을 모르겠다니까."
"이봐이봐, 잠시 피젼씨는 잊고 내 말을 들어봐. 그게 오류라는 걸 가르쳐줄게. 퀴리부인이 나중에 발견할 수도 있잖아. 다른 사람들이 발견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지. 진실이 아닌 가정을 전제로 그로부터 논거가 충분한 주장을 이끌어낼 수는 없어."
"월터 피전이 더 많은 영화에 나와야하는데, 요새 통 보기가 힘드네."
나는 딱 한번만 더 해보자고 결심했다. 정말로 한번 만이다. 더 참다가는 피와 살이 녹을 것 같았다. "다음 오류는 우물에 독타기(Poisoning the Well)야."
"어머 귀엽게스리!!" 그녀는 침을 꼴깍 삼켰다.
"두 사람이 논쟁을 하고 있어. 첫 번째 사람이 일어나서 말해. '저놈은 악명 높은 거짓말쟁이야. 저녀석이 하는 말은 한마디도 믿으면 안된다구'... 자, 폴리 생각해봐, 열심히 좀 생각해봐. 뭐가 잘못되었을까?"
나는 그녀가 크림색 눈썹을 찡그리며 잔뜩 집중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한 줄기 지성의 빛이, 내가 그녀를 안 이후 처음으로 그녀의 두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공평하지가 않네" 그녀는 분노해서 말했다. "공평하지 않잖아. 얘기도 시작하기 전에 첫 번째 사람이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이면 그 사람은 아무런 기회가 없는 거 아냐?"
"정답!!" 나는 환호했다. "만점짜리야. 그건 공평하지 못하다구. 첫 번째 남자는 누가 우물물을 마시기 전에 독을 탄거야. 시작도 하기 전에 상대편을 불구로 만든거지. 폴리, 난 네가 자랑스럽다!!" "피잇" 그녀는 수줍게 기뻐했다.
"봐, 폴리.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지? 집중하기만 하면 되. 그러면서 생각하고 조사하고 평가하는거야. 자, 이제 배운 것들을 복습해보자."
"쭈앗!! 얼마든지 해보자구" 그녀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폴리가 아주 바보는 아니라는 사실에 고무되어 나는 내가 여태껏 말해주었던 것들을 길고도 인내심 있게 복습시켜주었다. 몇 번이고, 정말 몇 번이고 예제들을 언급해주고, 결함을 지적해주고, 끊임없이 단련시켰다. 마치 터널을 파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할 일 투성이에다가 모든 것이 불안이요 암흑이었고 도대체 언제 빛을 보게 될지, 아니 그럴 수는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두들기고, 파고, 깎아내자 마침내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저어기 틈새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틈은 더욱 커졌고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모든 것이 밝아졌다!!
책 한권에 5일간의 맹훈련을 쏟아부었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폴리를 논리적인 여인으로 변신시켰지 않은가. 그녀에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내 임무는 완수된 것이고 마침내 그녀는 나에게 어울릴만한 여자가 된 것이다. 그녀는 내게 꼭 맞는 아내이자, 여러 저택을 거느린 안주인, 유복한 내 아이들에게 딱 맞는 어머니였다. 내가 폴리에게 아무런 사랑의 감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피그말리온이 스스로 만든 완벽한 여인을 사랑한 것처럼 나도 내 창조물을 사랑했다. 나는 다음 번에 만날 때, 그녀에게 나의 감정을 알리리라 결심했다. 드디어 우리의 관계가 아카데믹한 것으로부터 로맨틱한 것으로 바꾸어질 때가 온 것이다. 우리는 참나무 아래에 앉았다.
"폴리, 오늘밤은 오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자구."
"오, 이런." 그녀는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폴리, 우리는 벌써 닷새 저녁을 함께 보냈어. 아주 멋지게 지내왔고 말야. 우리가 매우 잘 어울린다는 것이 확실해졌어."
"성급한 일반화네." 폴리가 밝게 말했다.
"뭐라고 그랬어?"
"성급한 일반화라구. 겨우 다섯 번 보고서 어떻게 우리가 잘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는거야?"
나는 재미있어서 킬킬 웃었다. 요 귀염둥이, 수업을 아주 잘 받았다니까. 나는 점잖게 그녀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폴리, 다섯 번이면 충분해. 케이크가 맛있는지 알아보려고 케이크 전체를 다 먹어볼 필요는 없지."
"그건 그릇된 유추인데? 난 케이크가 아니라 여자라구." 폴리가 즉시 대답했다.
나는 아까보다는 좀 덜 기뻤지만 그래도 웃었다. 이 여자, 아무래도 수업을 너무 열심히 받은 것 같다. 나는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가장 좋은 접근법은 확실히 단순하고, 강하며, 직접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리라. 나는 잠깐 멈춰서 내 온머리를 짜내어 적당한 말을 골라내고는 입을 열었다.
"폴리, 나 너를 사랑해. 너는 나한테 세상 모든거야, 아니 거기다가 달이고 별이고 별자리까지 합쳐야지. 사랑하는 폴리, 나와 사귀어줘.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나는 시들시들해져서 밥도 먹지 못하고 눈이 움푹 꺼져서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폐인이 될거고 말야."
팔짱을 끼면서 이정도면 됐겠지 하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동정에의 호소로구나."
나는 이빨을 드득 갈았다. 나는 피그말리온이 아니었다. 나는 프랑켄슈타인이었고 내가 만든 괴물이 나를 삼키려하고 있었다. 나는 내 안에서 밀려오는 공포감에 처절하게 맞서 싸워야만 했다. 어쨌든 침착하는 것만이 최고였다.
"좋아, 폴리," 나는 억지로 미소지으며 말했다. "너 확실히 논리학을 마스터한거 같아."
"그렇고말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누가 그걸 너한테 가르쳐주었니, 폴리?"
"너."
"맞아. 그러니까 너는 나한테 빚을 좀 진거지. 내가 아니었다면 너는 오류에 대해서 배울 수가 없었을텐데 말야."
"그건 사실과 상반되는 가정이네." 그녀가 틈도 안주고 대답했다.
미간에서 땀이 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꽥꽥거렸다. "폴리!! 오류들을 너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거 아냐? 그러니까 이것들은 강의실 안에서나 써먹는거라구.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쓸모 없는지 너도 알잖아!!"
"단순화의 오류." 그녀는 장난스레 나에게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그걸로 됐다,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질렀다. "나랑 사귈꺼야 말꺼야?"
"안사귈껀데."
"도대체 왜? 응? 도대체 왜 그런건데?"
"아까 낮에 피티랑 사귀기로 했거든."
아아, 나는 그 자식의 파렴치한 행위에 충격받아서 뒤로 휘청휘청거렸다. 분명히 약속하지 않았던가, 분명히 거래를 했고 악수까지 하지 않았던가!! "개새끼!" 나는 잔디밭을 걷어차며 소리질렀다.
"그녀석과 사귀면 안되!! 폴리. 그 자식은 거짓말쟁이라구. 사기꾼에 배신자란 말이야."
"우물에 독을 타고 있구나. 그리고 소리 좀 그만 질러라. 나는 소리지르는 것도 오류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는데?"
굉장한 의지력을 발휘한 덕분에 목소리를 좀 가다듬을 수 있었다. "좋아, 너는 논리적인 아이야. 어디 이 사태를 논리적으로 봐보자구. 어째서 나를 버리고 피티를 선택할 수 있지? 나를 봐, 총명한 학생에 탁월한 지성인에다가 똑똑하고 미래도 보장되어 있어. 피티? 그 녀석은 얼간이에 신경질쟁이에다가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녀석이라구. 도대체 왜 피티와 사귀기로 했는지 논리적인 이유를 하나만 대보란 말야."
"얼마든지 대주지." 폴리는 선언하듯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