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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2010.06.21 18:55

 

 

 

 

 

태초에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장 1, 2절)


위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시던 때의 사정을 담은 내용이다.

1절과 2절을 살펴보건데 1절에서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일과

2절에서는 창조 직후의 사정을 말해준다.

창조 직후의 하늘과 땅은 지금처럼 아름답고 질서정연치 못하였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말한다.

‘혼돈하다’는 말은 무질서를 뜻한다.

혼돈을 뜻하는 헬라어 Kaos는 뒤죽박죽인 상태를 일컫는다.

‘공허하다’는 말은 텅텅 비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는 말은 절망적인 어두움을 일컫는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처음 지으시던 때에는 땅이 무질서하였고

텅 비어 있었고 칠흑같은 어두움이 있었다.

그런 정황이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함에 따라

무질서, KAOS가 질서, COSMOS로 바뀌었다.

텅 빈 자리 공허가 가득 찬 자리가 충만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절망적인 어두움이 빛이 비쳐 들었다.

말씀의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우주로 변하였다.

중요한 것은 그런 창조의 역사가 창세기 1장에서 1회성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무질서가 있고 공허가 있고 절망이 있다.

사람들은 그 무질서와 공허와 절망을 메우지를 못하여

서로 원망하고 상처를 주며 고통을 안기고 있다.

모두가 자기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무질서와 공허와 절망 탓이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면 무질서한 자리에 질서가 잡히고

공허한 자리에 열심히 살아야 할 의미가 생겨나고

절망적인 어두움에 희망의 빛이 스며든다.

이것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역사이다.

 

 

 

 

-김진홍 목사의 아침 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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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성도 제일의 기쁨 2010.06.20 14:03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 10:17~20>

 

 

 

사람들은 귀신들을 무서워한다.

그런 귀신들이 자신들에게 항복하는 것을 경험한 제자들은 얼마나 기뻤을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신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할 문제가 있다.

우선 예수님이 귀신을 제어할 능력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이다.

그에 대한 답은 누가복음 9장 1, 2절 말씀을 보면 답이 나와 있다.

 

"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신것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거나, 자신의 부나 권위를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앓는 자는 고치는데 있다.

 

또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구원의 감격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다.

귀신이 항복하는 기쁨에 들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신다.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 죄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늘나라의 호적에 기록되는 것,

이것이 성도들에게는 제일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 받았을 때의 감격과 기쁨을 잊어서는 안된다.

에베소 교회에 하시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예수님의 책망은

곧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잊어버린 모든 이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

믿는 자들이 기뻐해야 할 기쁨의 근원이고,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과 병고치는 능력을 주신 예수님의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데 있다면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님을 증거하여

그들의 이름을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게 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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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무리 vs 너희 2010.06.14 23:20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고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눅 9:18~20>

 

 

세상의 무리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라고, 엘리야라고,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았났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는 달랐다.

마태복음 16장 16절의 표현을 빌려오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정확하게 고백했고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칭찬하셨다.

 

지금도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는 무리들이 있다.

예수님을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가 아니라 선지자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인도에서 수행을 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은 하나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분한 데까지 이르고 있는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3>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고

메시아로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주님을 아는대로 믿고 있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서의 말씀과 같이

온전한 주님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내가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하고 있다고 해서 '무리'가 아니라

'너희'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일 수 있다.

자신이 믿음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은

있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눅 8:18>

 

나는 예수님은 누구라고 고백하고 있는가?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입술의 고백과 같이 열매를 맺고 있는가?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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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 - ".. 2010.06.09 09:21

 

 


“창조과학자가 진화론자에게 이긴 적이 있나요?”

“다른 과학자들은 노아의 홍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성경과 함께 과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나요?”

‘2010년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대회장 이남식 전주대 총장·박진구 전주안디옥교회 목사)가 열린 5일 전주대 JJ아트홀은 창조과학에 대한 궁금증들이 무수히 쏟아졌다.1000여명의 참석자들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학자들은 창조과학의 나아갈 방향과 한국교회의 사명을 강조했다.

첫 발표자로 나선 박창성 세계창조선교회장은 “6일 창조론을 믿을 경우 성경 안에서는 우주 150억년, 지구 45억년의 나이를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현재까지 우주와 지구의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자연 속의 시계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세상의 학문은 계속 변화되고 과학도 마찬가지다. 대폭발설이 부정되고 언제 새 이론이 나올지 모른다. 또 방사성동위원소 이외에 새 연대측정법이 나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며 “성경을 과학에 맞추기 위해 새 이론이 나올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어 해석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 침체의 원인이 우리 자녀들의 교육 현장인 학교를 적의 수중에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적들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내는 세금으로 의무적인 진화론 교육을 통해 무신론자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데 비해, 우리는 어렵게 헌금을 모아 개인 전도를 하고 있으니 힘겨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교회 침체의 원인을 진단했다.

이어 우사미 미노루 일본창조론연구회장은 “하나님을 등진 사탄이 진화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강조한 뒤, “기독교인들 중에서조차 창세기 사건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으로써 복음 전파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진화론의 허구성을 밝히는 데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영길 한동대 총장은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을 우연의 산물로 보고, 창조론은 생명체를 설계의 결과로 본다”며 “컴퓨터 하드웨어와 프로그램에 파워(에너지)가 공급돼야 기능이 작동하는 것처럼 생명의 근원은 성령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인간 창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학자들은 연구할 뿐”이라며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창조원리를 거역하면 지구환경은 파괴되고 인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기에 창조신앙 회복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윤봉 전북대 교수는 “진화론을 입증할 만한 과학적 자료는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다”며 “창조신앙과 과학은 반목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들과 법칙들은 창조주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병수 경인여대 교수는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진화론을 발표한 후 150여년이 지난 오늘날 발견되는 수많은 화석들은 진화론이 허구였음을 증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술대회는 4개 분야로 나뉘어 진행됐다. 제1분야 ‘창조신앙 다지기-창조과학과 창조신앙’은 창조과학의 대중화 및 진화론과 창조론의 실상, 노아 홍수의 역사성, 성경과 과학 등 대중 강연으로 구성됐다. 제2분야 ‘생명과학-생명의 신비’에선 줄기세포, 뇌 형성, 종양파괴 바이러스 등 의료 분야에서의 창조과학 최신 논문이 발표됐다. 제3분야 ‘지구·우주과학-젊은 지구와 우주’에선 지구 격변의 증거, 물리학에 나타난 하나님을 통해 진화론자들의 연대에 반대되는 젊은 지구의 증거들을 발표했다. 제4분야 ‘창조극장’에선 홍수지질학, 우주와 지구, 경이로움의 하나님 등 창조과학 DVD 영상을 통한 창조과학 전파와 대중 참여 기회를 제공했다.

이웅상 한국창조과학회장은 “진화론이 끊임없이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시대에 이번 학술대회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쉽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됐다”고 평가했다.

학술대회를 찾은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깨우침을 얻었다. 교회 식구들과 함께 참석했다는 서행자(49·전주순복음교회)씨는 “창조과학자들의 설명을 듣고 보니 창조과학이 성경의 사실들을 그대로 입증해 주는 것을 알 수 있겠다”고 말했다. 김재호(49·전주 열린문교회)씨는 “아이들에게 창조과학을 가르쳐 주고 싶어 함께 참석했다”며 “운영하는 유치원에도 창조과학 비디오 영상을 틀어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대회를 주최한 한국창조과학회는 내년 창립 3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 5월 서울에서 미국과 일본, 인도네시아, 유럽의 창조과학자들을 초청해 ‘2011 창조과학 국제학술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또 창조와 관련된 30가지 주제로 서적을 편찬하고, 30년사 발간을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와 협력해 진화론의 허구를 밝히는 데 힘을 모을 방침이다. 전주대 등 기독교 대학의 창조과학과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전주=글·사진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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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자식은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행한다 2010.06.05 10:3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하지 못하니

어떤 이가 알리되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눅 8:16~21>

 

 

 

본문의 말씀은 앞의 씨 뿌리는 비유와 연관이 있다.

앞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는

씨앗이 길가, 바위 위, 가시떨기 속, 좋은 땅에

각각 뿌려졌다고 말씀하시면서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마귀에게 말씀을 빼앗기는 자를(12)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시련을 당하면 배반하는 자를(13)

가시떨기에 떨어졋다는 것을 말씀을 들은 자이나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를(14)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15) 라고

제자들에게 그 비유를 풀어주셨다.

 

여기에서 길가나 바위 위, 가시떨기, 좋은 땅은

모두 씨가 뿌려진 곳으로 모두 말씀을 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차이는 말씀을 듣고 행하였느나(지키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빛을 발하여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 밖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다.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16b)

 

 

씨앗이 작고 흙에 묻혀있을 때에는

숨겨져 있고 감추어져 있는 것 같아도

싹이 나오고 열매 맺는 것을 보면

그 땅이 결실하는 좋은 땅인지 그렇지 않은 땅인지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들을 때에는 숨겨져 있고 감추어져 있는 것 같아도

그 사람이 말씀을 듣고 인내하며 지켰는지

세상의 염려와 물질과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하나도 숨김 없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17)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말씀을 듣고 이해하며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함으로 빛을 드러내지 못한 사람이기에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마저도

세상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빼앗기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18)

 

 

우리는 말씀을 듣고 인내하며 지키는 행함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빛을 발하는 등불이 될 수 있고

가정에서 아버지의 말씀에 자녀가 순종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물론 불효자식도 자식일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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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2010.06.04 08:53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지시하는 일은 덜 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은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그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우게된다면

아이가 많이 배우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더 많이 관심을 갖게 하는 법을 일러주리라.

자전거도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더 많은 벌판을 뛰어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도록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루리라.

상수리 숲의 떡갈나무를 다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여지리라.

 

 

 

-다이아나 루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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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 개소감사예배 및 .. 2010.06.01 21:10

 

 

 

 



 

[현판식 후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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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예수님을 놀라게 한 믿음의 실체 2010.05.30 23:36

 

 

"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이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의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덕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냈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눅 7:2~10>

 

 

 

 

본문에는 예수님이 놀랍게 여기신 믿음의 주인공이 나온다.

그는 군대 장교(백부장)로서 명령만으로 부하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하인을 낫게 하실 수 있다고 믿는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얼핏 생각하면 그의 말에서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예수님을 놀라게 한 믿음의 실체를 잊어서는 안된다.

 

우선 그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종을 자신의 소유물의 하나로 생각하던 그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생각할 때

2절의 사랑하는 종이라는 표현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데리고 있는 종에게만 그친 것이 아니라

유대인 장로들의 고백과 같이 다른 민족인 유대 민족을 사랑하였다.

로마는 지배민족으로서 지배당하는 유대인들을 무시하고 경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백부장은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서 유대 장로들의 입에서

백부장의 종을 구해달라고 청하게 하고

이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고백이 나오게 한다.

 

또한 그는 사랑을 실천하는 희생적인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종을 아끼고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병들어 죽게 되자

그 종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예수님께 펼친 것이다.

유대 민족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회당을 지어준 것이다.

사랑은 결정적인 순간에 실천을, 희생을 요구한다.

백부장은 평소에 사랑했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유대인의 장로에게 부탁을 하여 예수님을 오시게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백부장은 유대 민족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 민족의 모든 생활의 구심점이 되는 회당을 

자신의 물질을 희생하여 회당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도 겸손한 사람이었다.

백부장은 당시 유대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의 군대 장교로서,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유대의 떠돌이(?) 청년을 강제로 압송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본문 6절과 7절의 고백과 같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들어오시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으니 오시지 마시고

자신이 주께 나아가는 것도 감당하지 못해서 벗들을 보내어

말씀만 하셔서 종을 낫게 해달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백부장은 신분과 민족을 뛰어넘는 사랑의 소유자이며

그 사랑을 위해 실천하고 희생하는 사람이었으며

자신을 낮게 여기고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의 사람이었다.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종을 고쳐주시되

자신의 집에 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니 오실 것 없이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해 달라는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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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위한 기도 2010.05.28 11:35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예레미야 17장 14절>

 

 

 

주님! 나를 고쳐주소서

세상 사람 그 누구도 나의 고통을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나의 나음을 위해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주님,

이 땅에서의 여정이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나의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도 잘 되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강건한 복을 허락하소서(요한3서 1: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한다(잠 17:22)고 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에 평안함을 허락하소서

나의 연약함이 나의 죄악, 나의 잘못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이 아닐까 정죄하는 마음을 갖지 않게 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시편 118편 5~7절>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

나에게 돕는 자들을 붙여주시옵소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을, 나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을,

나의 연약함에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내려줄 사람을,

나의 아픔을 위로하는 사람을,

그리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주님의 사람들을 허락하소서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시편 116:7~9>

 

 

그리하여 앞으로의 삶이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청지기로서의 삶이 되게 하소서

사명이 있는 사람은 결코 주님이 멸하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딤전 4:8)고 하셨사오니

약간의 유익일지라도 이 땅에서 주님의 사명을 위해

육신의 건강을 잘 관리하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범사에 유익하도록 경건한 삶을 살게 하소서

 

그런즉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갈 2:20) 사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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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별 싫어하는 사람 2010.05.26 19:32

 

 

[직업별 싫어하는 사람]

 

 

 

 

 

*의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 '앓느니 죽겠다'는 사람

 

*치과 의사 제일 싫어하는 사람 :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사람

 

*산부인과 의사 제일 싫어하는 사람 : '무자식 상팔자'라는 사람

 

*한의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 '밥이 보약'이라고 하는 사람

 

*변호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 '법 없이도 살' 사람

 

*학원 강사제일 싫어하는 사람 :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사람

 

*선생님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 : ‘모르는 게 약’이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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