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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르네상스 2010.05.24 22:34

전성기 르네상스는 초기 르네상스의 모든 경향이 최고점에 도달한 시기였다. 또한 그것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출발이기도 했다. 초기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예술가들은 예술이 어떤 법칙에 지배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법칙이란 음악적 조화를 유지하기 위한 수학적 비율, 인간 신체의 해부학적 구조, 과학적 원근법 등의 여러 가지 원리를 말한다. 그리고 전성기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은 예술가 스스로의 영감에 의존하였다.

 

16세기의 여명기에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거장들 - Leonardo da Vinci, Donato Bramante, Michelangelo, Raffaelo, Tiziano 등은 르네상스를 고전으로 이끌어간 인물들 이었다. 이들은 이제껏 발현해내지 못했던 엄청난 창조력을 발휘하였다.

전성기 르네상스는 약 1495년에서 1520년까지만 지속되었는데 그것은 이러한 전성기를 일구어낸 위대한 사람들이 1520년대에 이르러 작고하기 때문이다.

 

(1) 작가들

 

①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1452∼1519)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 미술가·과학자·기술자·사상가이다. 그는 피렌체 근교의 빈치에서 출생하였고 그의 생애는 대개 5시기로 나눌 수 있다.

제 1 시기는 1466년에서 82년 까지로, 제 1 피렌체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베로키오 밑에서 도제수업을 받았으며, 엄격한 사실주의 기법을 터득하였는 데, 스승과의 공동작인 《그리스도의 세례》는 이러한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지네브라 데 벤치》,

《마돈나 베아노》에서 그의 치밀한 사실기법은 명암법에 스푸마토(Sfumato: 그 특유의 발림)를 병용함으로서 완성의 경지에 다다랐다. 이 시기의 그의 작풍은 엄격한 寫實에서 깊은 정신세계를 발견 할 수 있다.

제 2 시기는 1482년에서 99년 까지로, 제 1 밀라노 시기이다. 이 시기는 그동안 축적된 그의 다양한 재능이 충분히 발휘된 시기이다. 《최후의 만찬》은 객관적 사실과 정신내용을 훌륭하게 융합함으로서 다음 세기 고전양식을 이미 완성하였다.

또한 과학 연구와 저술에 힘쓴 시기이기도 했다.

제 3 시기는 1500년에서 06년까지로, 제 2 피렌체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모나리자》를 제작하였고, 특히 과학연구에 몰두한 시기이다.

제 4 시기는 1506년에서 13년까지로, 제 2 밀라노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동굴의 성모》를 완성하였고, 《성 안나》 등의 제작에 착수하였다.

《성 안나》 그의 예술의 귀결인 동시에 전성기 르네상스 고전 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시기의 그는 오히려 여러 가지 과학연구, 특히 水流에 관한 연구나 운하공학 또는 기계학과 해부학 등에 주력하고 있었다.

제 5 시기는 1513년에서 19년까지로, 로마·앙부아즈 시기이다. 그는 이 시기에 수학연구에 몰두하였고, 앙부아즈의 궁정화가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방대한 양의 수기를 정리하고 여러 가지 사색에 잠겼으며, 운하 설계나 궁정설계를 지휘하면서 충실한 생활을 하였다.

그의 방대한 수기는 평생에 걸친 여러 과학(물리학, 역학, 광학, 천문학, 지리학, 해부학, 기계공학, 토목공학, 식물학, 지질학 등)의 연구 및 예술론과 인생론이 비롯된 것으로, 현재는 서구각지에 분산 소장되어있다. 과학론은 그의 실증적 경험주의와 냉철한 관찰적 사고법의 결정체로, 科學史上 그 선구적 의의가 크다. 전분야에 걸친 그의 지칠줄 모르는 탐색과 광범위한 업적은 당대의 특징인 '全人(L'uomo universale)의 최고 전형이라 할만하다.

 

②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이탈리아의 화가·조각가·건축가·시인이다. 그는 기를란다요에게 배우다가 이듬해 베르톨로에게 옮겨 도나텔로의 작품을 배웠다. 그는 로렌초 일 마니피코에게 인정받아 그의 집에 체류하면서 조각을 위한 인체해부와 많은 인문학자들과 접촉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스칼라의 성모》,

《켄타우로스족과 타이족의 싸움》의 부조가 있다. 로렌초 사후에 프랑스군이 침입하자 볼로냐로 피난하여 《바쿠스》,《피에타》를 제작하였다.

1501년 피렌체로 돌아와 그는 《다비드》상을 제작하였다. 1508년에는 그는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를 위촉받아 12년만에 완성하였다. 천정화 완성 다음해에 율리우스 2세가 죽자 그의 무덤앞에 《모세》와《노예》를 만들었으나 교황 레오 10세의 다른 건축 강요로 중단하게 되었다. 그 후 1541년 교황 바오로 3세의 부탁으로 시스티나 성당 안쪽벽의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였다.

③ 라파엘로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대 천재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초기 작품은 청순한 색채와 감미로운 음악적 리듬이 보이며, 격정이나 위대성을 강조하지 않고 부드러운 매력을 나타내려 하였다. 그는 페루지노의 기풍을 익혀 《성모대관》,《그리스도의 책형》,《성모의 결혼》등은 페루지노의 그림이라 착각할 정도이다. 그러나 공간처리나 환상적인 표현에는 그의 스승에게서 볼 수 없는 신선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 이후에 그는 바르톨로메오의 장대한 화면 구성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암법을 배워 페루지노의 화풍을 탈피하여, 피렌체 派의 화풍으로 발전하였다. 그가 그린 초상화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을 받았고, 성모의 자태나 피라미드형 구도에 있어서도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매장》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선의 움직임까지 모방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인의 기법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여 화면 구성에 있어서의 선의 율동적인 조화라든지 인물태도의

고요함이나 용모의 청순함등에는 언제나 독자성을 나타 내었다. 그는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남긴 많은 걸작은 19세기 전반까지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④ 띠지아노 (Tiziano Vecellio: 1448∼1576)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베네치아 畵派의 화가. 띠지아노는 일찍이 뛰어난 대가로 인정 받았으며, 수세기에 걸쳐 그의 명성은 이어져 내려왔다. 미술 이론가 조반니 로마초는 그를 '이탈리아의 여러 대가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화가들 가운데 태양같은 존재'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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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르네상스 2010.05.24 22:27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첫 세대의 대표자는 조각에서 도나텔로, 건축에서는 브루넬레스키, 그리고 회화에서는 마사치오이다. 그들 사상의 중심은 예술의 이론적인 기초 속에 있는 신념과 발전과 진보는 가능하다는 삶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확신이었다.

 

고대의 예술은 재생된 모델로써 뿐만아니라 위대한 예술가들의 성공에서 볼 수 있는 시행착오의 기록이다. 고대의 작품을 단지 모방하는 것보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발전의 경향을 가지고 있었고, 초기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자연계의 모습, 인간의 개성, 인간 행동의 경험과 일치하는 예술형식 창조를 추구하였다.

 

합리적인 연구는 성공의 열쇠라고 믿었으며, 그리하여 건축과 인간 육체의 묘사와 회화상의 묘사를 체계화하는 비례의 정확한 법칙의 발견을 일구어냈다. 또한 자연의 날카로운 탐구로 자연의 일률적인 모방을 지양하고, 이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특징을 예술 작품속에 불어 넣으려 노력했으며, 자연에서 발견되는 것보다 더 영구적이고 위대한 美와 중요성을 예술작품에 부여하였다.

 

자연에서 보이는 것보다 정신적인 美와 이상적인 형태를 묘사하려는 이러한 특징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의 발전의 기본적인 요소였다.

르네상스 예술적 사고의 요람인 피렌체는 의심할 여지없이 예술의 개혁에 있어서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Pollaiudo, Botticelli 같은 大家들도 약 1450년 경 새로운 예술가 세대들의 선두주자로서 피렌체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비례법, 꼬인듯한 몸짓, 그리고 線 투시법 같은 일반적 개념의 수용이 쇠퇴하고 예술가 개인적 표현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

 

이 시대에 이룩되었던 혁신적인 발전의 하나로 미술과 미술가들의 지위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중세의 건축·조각·회화는 그 이론적 기초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공업 또는 단순한 기계적 기술에 불과한 것들 이었다.

 

그러나 초기 르네상스에 이르면 미술가들은 엘리트적인 집단으로 대접받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自由學藝」란 고전·고대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신사의 교육을 위한 知的 수련과정에 수학(음악이 포함됨)·변증법·문법·수사학·철학등이 포함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예술가는 사상가로 대접받게 되고 그들의 작품은 고도의 창조적 산물, 즉 수공업적 기능이라는 기성의 척도로는 가늠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근대적인 견해가 초기 르네상스의 피렌체에서 급속히 고조되어 갔다.

 

초기 르네상스 시기를 정의하자면, 비록 불완전 하였지만 절정기 르네상스의 완벽함에 필요한 준비 시기였고, 예술 작품의 외형적 묘사는 완전한 작품을 만들기에는 부족한 시기였으나, 근대적인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개념이 태동하던 시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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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사랑에 대해서 2010.05.24 22:11
낭만적 사랑은 의견이 갈리는 감정이다. 혹자는 낭만적 사랑이 공포나 분노처럼 두뇌 안에 영구 회로로 새겨져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한다.

 

 라로슈푸코는 "사랑이란 말에 대해 들어 보지 않고는 결코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낭만적 사랑이 문화적으로 특수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구약성서의 아가雅歌에 표현되어 있는 명백한 사랑의 열정

 

  나의 신부, 나의 진정한 사랑이여,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그대 눈짓 한 번에

  그대 목걸이 하나에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많은 진화심리학자들은 최초의 인간들 역시 오늘날 우리처럼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정사를 벌이고, 비탄에 빠져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주장한다.

 

 한 사람에게 느끼는 강한 성적 매혹,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때 느끼는 고통과 열망 그리고 그가 있을 때의 강한 기쁨이 그것이다.

 

 누구든 낭만적 사랑의 보편성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낭만적 사랑이 갑자기 당신을 사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 낭만적 사랑은 평생의 헌신을 위한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낭만적 사랑은 자기 완성의 최고 형태라는 생각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낭만적 사랑이란 보편적 테마이면서도 약간의 사소한 변형들을 허용한다.

 

 철학자 폴 그리피스는 감정에는 두 종류가 아니라 세 종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본 감정과 문화적으로 특수한 감정 외에 그는 "고등한 인지적 감정higher cognitive emotions"이 있다고 주장한다.

 

 고등한 인지적 감정은 기본 감정보다는 덜 본유적이지만, 문화적으로 특수한 감정보다는 더 본유적이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달의 기간을 두고 점차 성장하는 사랑이 좀더 일반적이다.

 

 인지적 감정이 기본 감정보다 피질적이라는 점은 그 감정이 상대적으로 의식적 사고의 영향을 더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달리 말하면 문화적으로 더 가변적이라는 뜻도 된다. 그러나 문화적 가변성이 크다고 해도 고등한 인지적 감정은 여전히 보편적이다. 고등한 인지적 감정은 우리의 공통적인 진화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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