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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산이 아니라 사막이다 2012.12.31 09:29
    인생은 산이 아니라 사막이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세계 최대의 사막인 사하라 사막을 횡단했던 스티브 도나휴는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란 책을 통해 인생을 산이 아닌 사막으로 볼 것을 제시한다.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정상이라는 목표가 있기에 소요 시간과 등정 방법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사막은 이와 전혀 다르다. 사막은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실하다. 사막에서는 지도가 없다. 설사 정확한 지도를 갖고 출발한다 하더라도 사막에 모래 바람이 불어 닥치면 순식간에 지형이 바뀌고 만다. 그래서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고, 신기루를 쫓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사막을 건널 때와 산을 탈 때 걷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등산할 때는 등산화를 신어야겠지만, 등산화를 신고 모래가 끝없이 쌓인 뜨거운 사막을 걷는다면 발에 물집만 생길 뿐이다. 사막에서는 힘차게 걷던 발걸음에 힘을 좀 빼야 한다. 사막의 지형은 변화무쌍하기에 지도가 아닌 정확한 방향을 가르쳐 주는 나침반을 봐야 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산이 아닌 사막이 펼쳐질 때 당황한다. 목표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 사막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만들어 가실 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인 인생 여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추구하려는 정상을 향해서만 우리를 인도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계획과 준비가 별 소용이 없는 사막과 같은 곳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기꺼이 내려놓을 때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고 독특하게 인도해 가신다. - 양형주의 ‘내 인생에 비전이 보인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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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어떻게 극복되나? 2012.12.31 09:26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되나? (2:8-11)

 

 

                 우리가 누리는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관계된 기쁨이며 예수님의 생명에

                 근거한 기쁨입니다. 우리에게 이 기쁨을 누리게 하려고 예수님은 피 흘리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기쁨은 생명에 근거한 기쁨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시고 극복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두려움과 슬픔, 상처는

                 경계를 만들고 폐쇄적으로 만들지만, 예수님의 생명에 접붙인 우리는 근본적인

                 기쁨과 생명을 누리고 삶의 모든 두려움을 이깁니다. 기쁨은 경계를 뛰어넘고

                 영적 면역력을 강화시키며, 교회만이 생명의 기쁨과 능력을 재생산합니다.

                 베들레헴 목자들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천사들의

                 찬란한 빛을 보고 크게 무서워했을 때, 천사들은 이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헤롯의 공포정치와 로마의 정복전쟁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우리나라도 계층, 이념, 지역, 세대, 남북의 갈등 때문에 세대 간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이 만연한 두려움을 푸는 해법은 구원자 예수입니다.

                 ‘무서워하지 말라는 천사의 말은 완전한 절망과 죽음에서 생명으로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 회복은 우리 마음에 주님이 오셔야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인 희락을 누리는 자입니다. 주님 주신 기쁨은

                 환경을 통해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를 기쁘게 한 환경이 사라져도 우리는

                 거룩한 상실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차원까지 성숙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 위에 사명의 사람이 있고 사명의 사람 위에 기쁨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 주시는 기쁨은 생명의 기쁨, 거룩한 상실의 기쁨, 모든 경계를 돌파하는

                 초월의 기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과 기쁨의 원천입니다.

 

                                                 20121229일 토비새 뉴스위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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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송 2012.12.31 09:20

 
        주기도문송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 거룩하사 주님 나라 임하시고 뜻이 이루어지이다. 우리를 먹이시고 우리들의 큰죄 다 용서하옵시며 또 시험에 들게 마시고 죄에서 구원하소서. 대개 주의 나라 주의 권세 주의 영광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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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네 2012.12.27 09:44
      나사렛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네 나사렛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네 그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며 살아가지만 주를 찾지 않는 것을 보았네 하지만 누구드니 주님을 믿어야 구원 얻으리 그는 사람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이신 그가 진심으로 세상을 사랑하셨네 때때로 그 나사렛의 예수께서는 홀로 굶주리고 아파 하셨네 그를 만난 모든 사람들은 주님을 보며 하나님이라고 말을 했다네 하지만 누구든지 주님을 믿어야 구원 얻으리 그는 사람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이신 그가 진심으로 세상을 사랑하셨네 하지만 누구든지 주님을 믿어야 구원 얻으리 그는 사람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이신 그가 진심으로 세상을 사랑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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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옵고 주시고 주옵시고 2012.12.27 09:43
    주시옵고 주시고 주옵시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가운데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6:11)가 있습니다. 새로 바뀐 성경에 '주시옵고'가 전에 성경에는 '주옵시고'로 되어 있습니다. 요즘 예배를 드리면서 여럿이 함께 주기도문을 하다보면 반 정도는 '주시옵고'로 하고 반은 '주옵시고'로 하는 바람에 그 부분에 이르러서는 두 개가 섞여서 도대체 먼 소리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번역을 할 때 소위 <전문가>라는 양반들이 글자를 뒤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만약 제가 번역을 했다면 '주시고'로 간단히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로 하면 얼마나 간단합니까. '주옵시고'라고 한 것은 하나님은 왕보다도 더 높으신 분이시니 '극존칭'을 써야 한다는 의미랍니다. 그런데 '주시고'라는 말이 이미 '높임말'입니다. 지금은 왕이 다스리는 왕권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사극(史劇)에서 배우들이나 하는 말인 '주옵시고'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아침에 게으름을 피우다 등교시간이 늦어진 딸이 "아빠! 늦었어요. 오늘만 저 좀 학교까지 차로 태워다 주세요." 하고 아빠에게 부탁을 합니다. 딸은 아빠에게 부탁을 할 때 아무런 염려나 망설임도 없습니다. "주실만 하거든 주세요" "주실 수 있으시면 주시고"가 아닙니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주세요"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필요를 무엇이든 공급해주실 수 있는 능력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재정상태(?)를 걱정해서 "형편껏 주세요."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자존심 상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세요' 오늘도 무슨 맛있는 양식을 주실지 기대 됩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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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 2012.12.26 09:30
      좁은 길 지금껏 걸어온 나의 길 다시 돌아가도 후회하지 않을까 언제나 기쁨만 허락되지 않던 나의 길 나의 삶은 누구의 뜻일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날 좁은 길로 인도하시네 내게 큰 것을 얻게 하시는 그분의 큰 사랑 그것을 바라라 절망 속에서 한 길 여시는 그분의 뜻을 난 따라가리라 지금껏 걸어온 나의 길 다시 돌아가도 후회하지 않을까 복되고 성결한 길을 걷는다는 건 험난한 여정이지만 그분의 뜻이라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내게 큰 것을 얻게 하시는
      그분의 큰 사랑 그것을 바라라 절망 속에서 한길 여시는 그분의 뜻을 난 따라가리라
        어지러운 이 세상 나를 두렵게하지만 이젠 주의 손으로 날 인도하시고 다시 나를 이끄시네 내게 큰 것을 얻게하시는 그분의 큰 사랑 그것을 바라라 절망 속에서 한 길 여시는 그분의 뜻을 난 따라가리라 내게 큰 것을 얻게 하시는 사랑 그것을 바라라
        절망 속에서 한 길 여시는 그분의 뜻을 난 따라가리라
          그분의 뜻을 난 따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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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의 덫이냐, 은혜의 기쁨이냐? 2012.12.26 09:28



                                       율법의 덫이냐, 은혜의 기쁨이냐? (갈라디아서 4:1~6)

       

                       함께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누군가는 은혜의 기쁨 아래 사는가 하면, 누군가는

                       율법의 덫에 걸려 두려움의 삶을 살아갑니다. ‘은혜는 구원받은 자녀의 확실함을

                       더해 주고, 성숙한 주의 백성으로 인도하므로 기쁨을 안겨줍니다. 이에 반해

                       ‘율법은 구원의 감격을 잊게 하여 여전히 죄에 종노릇하는 노예라고 정죄하며,

                       영원히 초등학문에 매여 사는 어린아이로 그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주는 특권을 망각한 율법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첫째, 두려움과 죄책감 속에 살아가며, 둘째,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공로주의와

                       타인을 향한 비난의 태도를 보이며, 셋째, 율법의 참 정신을 깨닫지 못하고

                       오직 그 형식에만 얽매여 위선적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죄인들과

                       제자들을 친히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시대는

                       지나가고, 은혜의 시대가 도래하였으며,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때가 차매이루어진 하나님의 철저한 시간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가득한 이때에 더 이상 율법과 초등학문(미신과 운명론)에 빠져 율법의

                       시대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율법의 정죄로부터 은혜의 구원을

                       얻게 하신 하나님을 찬미하며 큰 기쁨을 표현해야 합니다. 실례로 다윗 왕은

                       주께서 베푸신 은혜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의 그런 모습에 아내였던

                       미갈은 조롱하며 비웃었습니다. 미갈은 율법주의의 덫에 걸려 기쁨과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였기에, 다윗의 기쁨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다윗의 큰 기쁨을 이해하며 동시에 누리고 있습니까?

                       미갈의 덫에서 풀려나 다윗과 같은 은혜의 큰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20121222일 토비새 뉴스위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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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여유 2012.12.26 09:23
        마음의 여유 김상연 /수필가 약속 시간이 빠듯하다. 계단을 뛰어오르고 미끄러지듯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주춤하다 앞사람과 살짝 부딪치기도 했다. 묵례를 하고선 다행히 늦지 않겠다는 안도감에 밖으로 나와 숨을 고르는데, 웬 청년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봐, 공중도덕도 몰라요?” 하며 무례한 말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정신이 얼얼했다. 그렇게 화낼 일인가 싶어 엉거주춤하는 사이 연세 지긋한 어른 한 분이 성큼 다가섰다. “옆에서 보았는데 서로가 부주의해서 생긴 일입니다. 어머니뻘 되는 분에게 대드는 젊은이와 한세상 함께 사는 내게도 책임이 있으니 내가 먼저 사과하겠소.” 하곤 활짝 웃으며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닌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얼마나 민망하고 감사하던지 눈물이 핑 돌아 얼떨결에 두 사람을 향해 꾸벅 절을 하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사소한 일에도 고슴도치처럼 각을 세우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배려는커녕 어찌나 살벌한지 험한 세상 만들기에 너도 나도 앞장서는 꼴이다. 사람보다 기계에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며 종종걸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들. 황폐해진 가슴으로 어찌 부드러운 몸짓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는지. 그 시류에 나도 편승해서 무언가 결핍된 것처럼 동동거리기 일쑤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 중요한지를 놓친 채 황금을 좇는 자박마니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불행이다. ‘활짝 웃으면 물 한 컵으로도 파티를 열 수 있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엊그제 무성하다가 오늘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모든 것은 지나가는데 웃음조차도 왜 이리 인색한지 모르겠다. 뭔가 불안하고 답답할 때면 곧잘 삭막한 길을 벗어나 숲에 이른다. 다행히 서울은 천혜의 도시로 몇 걸음만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산이 빙 둘러 있고, 생명의 젖줄인 한강이 흐르고 있다. 아무리 속내를 드러내도 받아주기만 할 뿐 부풀리거나 소문을 내지 않는 자연은 허물없는 벗이요, 안식처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한 듯 풍요롭고 편안하다. 이곳에서 나는 영육간의 고단함을 추스르며,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즐겁고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예전에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구던 시절이 기억난다. 신 나게 고추 모종을 끝내고 며칠이 지났는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너무 빽빽하게 심었다며 절반 정도는 뽑아내라고 했다. 띄엄띄엄 심어서 바람길을 터주어야 가지도 잘 치고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종을 뽑아내는 것이 얼마나 아깝던지 하찮은 욕심으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행복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최고의 선물이다. 꿈, 소망, 평화, 사랑은 이웃을 배려하고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의 여백에서 싹튼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역에서 겪었던 일도 웃으며 보듬어주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이었다. 훈훈한 모습으로 다가와 감동을 준 노신사처럼 그냥 내가 먼저 활짝 웃으며 사과할 걸 그랬다. <2012년 목마르거든 12월호-햇살드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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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irst noel 2012.12.24 09:58
          
          The first noel The first Noel, the angel did say, Was to certain poor shepherds in fields as they lay In fields where they lay tending their sheep, On a cold winter's night that was so deep. Noel, Noel, Noel, Noel Born is the King of Israel. They looked up and saw a star Shining in the East, beyond them far; And to the earth it gave great light, And so it continued both day and night. Noel, Noel, Noel, Noel Born is the King of Israel. Jesus Christ is Born is the King of Israel. Noel, Noel, Noel, Noel Born is the King of Israel. Jesus The first Noel He is the Son yeah Born is the King of King of Oh yeah yeah Oh Christ is born Ooh hallelujah hey He is born Oh Christ the King is 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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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와 신자와 교인 2012.12.24 08:58
        성도와 신자와 교인 그리스도인을 성도(聖徒) 즉 '거룩한 무리'라 합니다. 하나님만을 위해 살도록 특별히 구별하여 부르시고 그런 삶을 살도록 새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대가로 얻은 고귀한 신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성도로 살지 못하면 신자(信者)가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산다거나 하나님의 '거룩'의 속성을 잃어버리고 타락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성도가 아니라 그저 믿는 사람(信者)일 뿐입니다. 자신의 삶이 진정 어디에 속해있는지를 망각하고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기독교 신앙을 이용해 먹는 자(者)가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신자(信者)의 삶에서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그때부터는 교인(敎人)이 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그냥 교회에 속해있는 회원일 뿐입니다. 그것은 계모임의 회원이나 동네 조기축구회 멤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거룩한 성도로 부름을 받았는데 점점 거룩의 빛이 약해져 신자가 되고 그 빛이 사라져 교인이 되어버렸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중 제사장들만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었는데, 물두멍에 손발을 씻어 깨끗하고 정결한 상태에서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퇴색되거나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깨끗해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이후 누구나 죄에 물들어 있고 더러워져 있습니다. 그 상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당장에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더러움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님을 희생시키셔서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셨는데, 만일 이것을 잃어버리거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다면 이거야 말로 너무나 원통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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