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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하게 하는 율법 2010.08.16 09:55

 

 

 

자유하게 하는 율법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야고보 1장 25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긴 세월에 걸친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광야로 나온 지 3개월 만에 시내 산기슭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백성들은 기슭에 머물고 모세는 시내 산 위로 올라가

하늘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계약 공동체가 되었다.

그렇게 맺어진 계약문서가 십계명이라 하겠다.

 

 

그런데 흔히 이 십계명을 중심으로 하는 율법에 대한 오해가 있다.

율법이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행동을 규제하고

삶에 불편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해이다.

그러나 십계명은 우리가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이자 사랑의 표현이다.

 

 

야고보서에 이르기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 표현하였다.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행하는 자가 복을 누리게 된다.”하였다.

이 점이 십계명을 중심으로 하는 율법의 근본정신이다.

율법의 정신은 우리의 삶을 구속시키고 억압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자유를 지키며 누리게 하려고 주신 것이다.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하려고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표현이다.

 

 

예수님께서 십계명의 정신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이르시기를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자신의 몸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십계명의 기능을 비유하자면 교통법규와 같다.

교통법규가 운전자나 보행자들을 괴롭히려고 제정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 주려 제정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십계명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얻은 자유를 누리게 하려고 주신 것이다.

계명을 성실히 지켜나감으로써 자유를 누리며

주신 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도록 다짐하자.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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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2010.08.14 13:23


 

 

" 그들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

<눅 22:24~27>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며

제자들에게 자신의 살과 피라고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시던

유월절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제자들은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권세잡은 자들은 사람들은 다스리면서

은인이라 칭송을 받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큰 자는 어른이 아니라 나이 어린 사람(Youngest)과 같고,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와 같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적인 관점으로는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자가 크다고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앉아서 먹는 자가 큰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섬기는 자로 당신이 너희 중에 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섬길 수 있다.

돈 많은 사람이 빈곤한 사람을 섬길 수 있다.

아량이 넓은 사람이 속 좁은 사람을 섬길 수 있다.

많이 아는 사람이 잘 모르는 사람을 섬길 수 있다.

 

누가 크냐 하는 제자들의 다툼.

그것은 우리가 삶속에서 주변 사람들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늘 다투게 되는 갈등의 주제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예수님께서는 몸소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 주시면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다.

당신이 크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을 섬겨라

당신이 큰 자라면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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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의 섬기는 리더십 2010.08.13 09:57

 

 

도산의 섬기는 리더쉽

 

 

오늘 낮에 이만열 교수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덕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만열 교수는 한국 역사학계의 양심이라 할 수 있는 분이다.

높은 덕성과 탁월한 학문에다 투철한 기독교 신앙까지 갖춘 분이어서

많은 후학들의 존경과 높임을 받고 있는 어른이다.

이 교수가 헤어지는 자리에서 자신이 쓴,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는 저서를 주었기에 읽는 중에

‘도산의 섬기는 리더십’이란 글이 특히 마음에 닿았다.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리더십이라 여겨져 한 부분을 인용한다.

 

 

“오래 전부터 선진화의 화두가 떠오르면서 거기에 어울리는 가치관을

어떤 지도자에게서 찾아야 할까를 생각해 왔다.

아직도 수직적인 가치관이 극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통행의 리더십이 쌍방향적 소통의 리더십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면,

거기에 부응하는 민족 지도자는 도산만 한 분이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요즘 들어 너도나도 선진화를 말하고는 있지만

정작 선진화를 이루어 나갈 리더십의 부재에 대하여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만열 교수가 선진화를 이끌어 나갈 가치관을 지닌

지도자를 찾으려 하는 의도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그에 부응하는 민족 지도자들 중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을 손꼽는 점에서 더욱 수긍이 간다.

이 교수는 이어서 도산의 리더십 중 중요한 덕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도산의 리더십에서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과 절제다.

그의 지도력의 기초는 ‘참되어라. 거짓말 말아라. 거짓은 나의 불공대천지원수다’라고

강조한 데서 보듯이 투명성 그 자체다.

…도산의 탁월한 지도력은 민주적인 통합력과 조직력에서 먼저 나타났다.

임시정부의 화합과 뒷날 공산당과의 대동단결을 모색했던 것은 이 점을 보여 준다.

…도산의 지도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상대방을 감복시키고 이해시키는 설득력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무를 시작하는 초기에

‘섬기는 지도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발언을 하였다.

그런 점에서라면 도산에게서 본보기를 찾는 것이

바람직스러울 것이란 생각이 절실하다.

 

 

 

-김진홍 목사의 아침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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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자랑 2010.08.11 11:29

 

 

 * 같이 다니면 저를 날씬하게 보이게 만들어 줍니다 ( 남편 뚱뚱함 80Kg 넘음 )

 

* 장점은 돈 잘벌어다 줍니다.. 단점은 돈을 못쓰게 합니다 -_-;;;;

 

* 아이한테 좋은 아빠예요.. 설겆이 좀 하라고 그러면

5살짜리 아이 다칠까봐 옆에 있어줘야 한다고 방에서 꼼짝 안합니다..

 

* 몸개그 잘해요. 굳이 안해도 니 몸 웃기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오늘도 참습니다

 

* 아주 낙천적입니다.......

지금 빚이 집대출 6천에... 주식하다 8천 마이너스 통장 갖고 있는데도 걱정안합니다...ㅠㅠ..

 

* 맥주 잘 마십니다. 한박스사면 일주일을 못가요

 

* 직장 다니고 있습니다 

 

* 친구 많아요... 등쳐먹는

 

* 똥을 잘 쌉니다. 아침저녁 두번씩..

변비라 2주 1회 할까말까한 저로써는 이해 안되고, 무진장 부럽습니다. 쾌변인간..  

단점은 물내리는거 잘 잊어먹습니다. 화장실 갈때마다 두근두근 합니다.

이 인간이 또 한무데기 놔두고 갔는가 싶어서...    

┗ 스릴있는 결혼생활 이시네요. 저희집에도 있는데..쾌남이 아니라 쾌변남

 

* 물건을 잘고쳐요...ㅜㅜ 새거 사고 싶은데...또 고치고...또고치고.......    

┗ 안보는데서 아예 박살을 내세요     

┗ 나사 몇개를 숨겼는데..같은넘으로 어디서 찾아서 또 고쳐영.. 또고치고 또고치고....

 

 * 마누라 너무 아껴줘요. 마누라 깨질까 밤일도 혼자해요

 

* 우리 신랑 매추리알 안까고 통째로 씹어먹네요--;: 자랑할만하죠^^

 

* 청소를 잘합니다. 등짝으로.. 집에 있으면 방바닥에 들러붙어서 등으로 걸레질 합니다. 

 

* 싸우면 무조건 미안하다 합니다.

소리 버럭버럭 지르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고~~~미안하다, 됐나~~~~~~~!!!!!"   

그리고 싸워도 화 절대 안냅니다.

소리 버럭버럭 지르면서

"화 안났다~~~, 화 안났다 했제~~~~, 화 안났다고~~~~~!!!!!!!!!!" 

 

* 울신랑은 자상한 목소리로 전화를 자주합니다.

아이데리고 밖에 있으면 집에 빨리 와서 밥차리라고 무지하게 전화합니다.  

정말 자상한 목소리로.... 

 

* 주는대로 잘 먹습니다. 혀가 완전 바보입니다.

마늘 덩어리를 닭고기라고 착각하는 사람입니다.ㅋㅋㅋ

그래서 제가 뭘 만들어줘도 맛있다고 먹어요.

ㄴ 저희 남편이랑 비슷하네요. 장금이 싸대기 날리는 마비혀를 가지고 있는 신랑 

 

* 물을 엄청 아낍니다... 물아끼느라 밤엔 이도 안닦구요....

샤워 자주하면 물값 많이 나올까봐 안씻어요... 더러워 죽겠어요ㅠ.ㅠ

 

* 때 잘 밀어여..ㅎㅎㅎㅎ 등 한번 밀어주면 전문인 못지 않게..ㅎㅎㅎ

누구한테 인증도 못하지만..ㅎㅎ 오빠야...시원하고 고맙대이.... 하지만 그거뿐....ㅜㅜ 

 

* 효자아들이에요. 효자손으로 때려주고 싶을 만큼!! ㅋㅋㅋㅋㅋ

 

* 애정표현 많은 하는 신랑하고 살아요.

아침마다 거의 살상무기에 가까운 입냄새를 풍기며 뽀뽀를 하는데

정말 입냄새 반사해서 본인 스스로 냄새를 맡았으면 한다는...

전 웬만한 냄새에 비위가 상당히 강해졌어요. 신랑 고마워~

 

* 머리숱이 없어 샴푸값 안드네요. 댕장 

 

* 사람은 좋은데 인상이 참 드럽습니다.

다들 부인인 내가 너무 착하다고 착각해줍니다. 승질은 내가 더 더러운데.. ㅋㅋ

┗ 333 저희도 돈 없어도 밖에 나가면 사장님(형님) 대접받습니다

 

* 진짜 칭찬이지요?ㅋ

어젯밤에 눈물 질질 흘리면서 파 썰어 줬어요. 두 단이나 되는 파를..ㅋ

하지만 직업이 없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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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양보다 질 2010.08.09 11:44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눅 21:1~4>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양적인 것을 중시한다.

2,000만원을 기부한 사람과 2,000원을 기부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2,000만원을 기부한 사람에 주목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양보다는 질을 중요시 하셨다.

부자들의 많은 액수의 헌금보다는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칭찬하셨다.

 

여기서 '렙돈'은 그리스의 최소 동전 단위로

빵 한 조각을 살 수 있는 앗사리온의 1/8에 해당되며

'호리'라고도 불렸으나 (눅 12:59)

개역개정판에서는 '푼'으로 번역되었다.

 

마태복음 20장에서는 오전 6시, 오전 9시, 정오, 오후3시, 오후 5시에

포도원 주인에게 발견되어서

각각 다른 시간 동안 일을 한 포도원 품꾼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이 사람들이 오후 6시까지 일을 했다면

각각 일한 시간은 12시간, 9시간, 6시간, 3시간, 1시간이 된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포도원에 와서 1시간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게 되자

일찍 와서 일한 사람들은 더 많은 액수의

품삯을 받을 줄로 생각하였다.

정량적으로 계산한다면 맨 먼저 일을 시작한 사람은

열 두 데나리온의 품삯을 기대해도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포도원 주인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 씩의 품삯을 주었고

항의하는 일꾼에게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비유에서도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불합리해 보이지만

양보다는 질을 중요시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맨 마지막에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하게 된 일꾼은

일자리가 생겼다는 기쁨과

일이 없어서 놀던 자신을 채용해 준 포도원 주인이 고마워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힘을 다하여서 열심히 일했을 것이다.

하지만 맨 먼저 포도원에 들어온 일꾼은

시간이 지나면 약속한 품삯을 당연히 받을 줄 알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면서 일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12시간 일한 사람과 1시간 일한 사람의 양으로 비교한다면

12시간 일한 사람에게 양으로 보나 애쓴 시간으로 보나

더 많은 품삯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품삯을 주셨고

이로 인해 일찍 들어온 사람은

처음에 약속한 품삯을 받았지만 불평이 생겼고

포도원 주인으로부터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는 책망까지 들었다.

하지만 늦게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은

감격하며 포도원 주인에게 감사했을 것이다.

 

주위에서는 예수님을 믿은지 몇 십년 된다는 식의

은근한 자기자랑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교회에서 맡은 직책이 몇 개이고,

받은 훈련이 뭐, 뭐, 뭐라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양보다는 질을 중요시 하신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새벽예배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공예배를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A와

주일 예배만을 참석하는 B가 있다고 하자

A는 예배는 빠지면 안된다는 의무감과 형식주의 속에 예배 보는 사람이고

B는 주일 예배만 드리지만 삶 속에서 늘 주님과 동행하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다가 기쁨과 헌신의 자세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이라면

정량적인 예배의 횟수만으로

두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도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으며(마 12:7)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예물을 제단에 놔두고 가서 형제와 화목한 후에 예물을 드리라고(마 5:24-25)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실제적인 삶 속에서 자신의 삶으로 드리는

산 제사, 산 예배를 더욱 기뻐하신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2b>

 

주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이웃과 화목하지 못한 삶을 산다면

그런 삶을 살다가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예배는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다.

 

자신의 삶 속에서 이웃과 화목하고, 불쌍한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삶속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주님 앞에 나아와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예배가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인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중요한 것은 횟수가, 양이, 시간이, 액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양보다 질이며

그 속에 담긴 우리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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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빛을 되찾자 2010.08.03 13:45

 

 

 

벌써 8월이라니.....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하다.

8월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광복은 한자로 해석하면, 光復 - 즉 '빛을 되찾다'는 뜻으로

잃어버렸던 국권의 회복을 의미한다.

 

 

우리들은 빛의 자녀이다.

하지만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찬들이 빛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는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 많다.

 

이 땅에서의 국권 회복 뿐만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국권회복,

하늘나라 시민으로서의 주권회복이 이루어지는 광복절을 기대하며

8월을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아니 1년 내내 빛을 되찾아 어두운 곳을 비추는 광복절이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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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이름 없는 헌신 2010.07.31 10:59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어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눅 19:29~36>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초라했다.

멋진 마차를 타신 것도 아니고,

길 위에 화려한 레드 카펫이 깔린 것도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한 것도 아니었으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한

예루살렘 입성이었지만 이처럼 초라하고 동상이몽의 환영이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름없는 헌신이 눈에 들어온다.

 

보잘 것 없는 나귀 새끼.

하지만 그 주인에게도 과연 보잘 것 없는 것이었을까?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라 할지라도 소중히 여길 것이며

거저 내놓으라고 한다면 그 누구라도 쉽게 내놓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주께서 쓰시겠다는 말 한마디에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내준

나귀 새끼 임자의 이름없는 헌신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온유와 평강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이심을 드러내고 있다.

메시아의 예루살렘 입성에 소중한 자신의 재산을

이름도 없이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소중한 도시락을 내놓았을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처럼,

나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작은 것이든지, 큰 것이든지 주님 앞에 내어 놓을 때

주님의 사역에 사용되는 놀라운 축복이 있을 것이다.

 

내가 주님 앞에 내놓을 나귀 새끼, 겉옷, 보리 떡과 물고기는 무엇일까?

아까워 하지 않으며 또한 나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으며

나는 그것들을 드릴 준비가 되어있는지 되돌아본다.

그리고 이사야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소원한다.

 

"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8b>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눅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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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원하면 날 수 있다. 2010.07.27 18:10

 

 

 

 




 

 

 

 

 

 

애벌레는 물었다.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

 

"날기를 간절히 원하면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그럼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비가 되어보지도 못하고 죽는 애벌레들 하고는 다르단다."

 

 

-Trina Paulus의 '꽃들에게 희망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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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보다 더 2010.07.26 11:31

 

 

 

-모래는 어떻게 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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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 흙 흙

 

 

 

 

 

 

-반성문의 순 우리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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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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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나는 나다.(I am I) 2010.07.24 13:11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라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니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눅 24:9~14>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1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꼬박꼬박 드렸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훌륭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와 비교해도 본문의 바리새인은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예수님의 평가는 다르다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자신은 죄인이니 불쌍히 여겨 달라는 세리는 의롭다 함을 받겠지만

바리새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만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자신이 높다는 우월감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한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우월하다고 여기는 순간

다른 사람을 멸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는 어울리지 않고 따로 고상한 척(?)하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른 사람과 비교를 통해서 구원을 베푸신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5:1>

 

우리의 믿음은 그분과의 일대일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 수 있으며

반대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다.

 

동생이 돌아왔는데도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버지에게 항의하는 큰아들은

얼마나 교만하며 또한 얼마나 초라한가? (눅 15장)

이 또한 자신을 의롭다 여기며

동생과 비교를 통해 동생을 멸시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나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모양 이대로 지으셨으며

연단을 통하여 나를 다듬어 가신다.

 

"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를 단련하신 후에는

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다른 사람들은 다른 모습으로 지으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따로따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돌아보며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함께 즐거워해야 하는 것이다.

 

"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고전 12:17,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 10:24>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소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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